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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록의 백두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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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남북간 관광교류협력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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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지만 긴 여정(旅程)

이번 ‘남북 교차관광 대표단’의 북한 방문은 6박 7일의 길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50여 성상이라는 긴 세월을 뛰어넘은 여정이었다. 산이 막힌 것도 강이 가로막은 것도 아니었다. 한 번 뚫리면 이리 쉬운 것을, 남의 땅을 돌고 돌아 겨우겨우 찾았던 그 곳을 단숨에 넘나든 것이 그렇게 가슴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분단과 대립과 갈등을 뛰어넘는 감동의 서장이었다.

두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백두산 천지 해돋이는 두고두고 소중한 기억으로 오래오래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두만강가에서 ‘두만강 뱃사공’을 합창하면서 흘린 눈물은 설움과 비탄에 젖은 눈물만은 아니었다.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을 바라보면서 읊조린 ‘한 많은 대동강’은 저 강이 더 이상 원한과 통곡의 물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희망도 함께 묻어 있는 곡절이었다. 이제는 북쪽 동포에게도 ‘다시 보자 한강수야, 돌아오마 삼각산아’가 꿈속의 노래가 아니라 현재형으로 다가오고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그런 만큼 깊이가 문제될 수는 있을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밑돌을 잘 놓아야 한다. 그래서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보는 일도 중요하다.

‘묻지마 관광’에 대하여

이번 여행을 두고 ‘묻지마 관광’이라는 불만이 나온 것은 우리 쪽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방북 일정을 사전에 충분히 조율하지 못한 탓인지 서울을 출발하기 전부터 일정이 두 번씩이나 일방적으로 연기되었다. 북녘 땅에 와서도 행선지가 사전에 고지되지 않거나 촉박하게 결정되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형국이 된 것이 사실이다.

우리 측의 교섭력을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섭 상대의 입장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우리와 똑같은 잣대로 그들을 재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사상이나 이념 같은 큰 얘기는 제쳐놓더라도 사회시스템이 우리와 다르게 작동한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일정이나 행선지를 바꾸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내부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평양 방문을 관광일정에 포함시키는 문제는 북한 로동당 창당 55주년 기념행사 준비와 시기적으로 맞물려 있어서 그들에게는 풀기가 쉽지 않은 숙제였을 수도 있다. 일정이 조금만 달라져도 거기에 따르는 이동수단이나 숙박시설, 관광 프로그램 등등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까지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남측 인사들의 관광 보이콧 등이 평양과 묘향산을 관광지에 추가시키는 데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보이지만 그들로서는 상당히 난처했으리라고 본다. 어쨌든 북측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했다는 점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점(點)보다는 선(線), 숲(森)보다는 산(山)을 보는 지혜

북한에서의 관광 대상 또한 계속 문제가 된 부분이다. 관광지 대부분이 사실 여부를 떠나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연계된 항일유격전 전적지나 관련 조형물 중심으로 짜여 있어 이른바 ‘주체사상’의 학습기회로 십분 활용하는 듯한 느낌을 준 것이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관광 참여 인사들을 상당히 곤혹스럽게 한 것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혁명의 성산’으로 일컫고 있는 백두산 일대의 ‘혁명 사적지’를 비롯한 이들 항일투쟁의 현장들이 외부인들에게 가장 자랑스레 보여주고 싶은 관광자원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현 체제의 이념과 연관시켜 기리고 보존하고자 하는 것들을 우리의 시각으로 비판만 하는 것은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드리기보다는 선별적으로 듣고 보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본다. 점(點)보다는 선(線), 숲(森)보다는 산(山)을 보는 지혜는 비단 백두산 밀영에서만 필요한 게 아닐 것이다.

변화를 응시하고 듣는 눈과 귀도

이번 방북에서 느낄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북한 사회도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북측 인사들과의 접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님이 코끼리 말하는 격일지 모르지만 북한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비록 속도가 느리고 보폭이 크지 않지만.

한때 관광일정이 김 주석의 항일투쟁 사적지 중심으로 짜여진 것을 문제 삼아 관광을 포기하기도 했던 국회의원들 가운데는 북한이 유연해지고 그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향후 관광교류를 비롯한 남북교류가 계속 확대되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 이도 있었다.

백두산 부근 오지의 주민들의 생활상은 얼핏 봉 우리의 1960년대 수준과 엇비슷했지만 그들이 표정은 남쪽에서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밝아보였다. 어려운 삶을 굳이 가리려 하지 않았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슬로건을 방방곡곡에 내걸어놓았다. 그쪽 지도층 인사들도 경제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하기도 했다. 떳떳해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를 안내하고 접대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자존의 냄새가 짙게 묻어나왔다. 그것이 어떤 훈련이나 교육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초대소 숙소를 정리하는 이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으로 건네는 사소한 선물조차도 나라에서 생활용품은 부족하지 않을 만큼 공급해 준다면서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는 명색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몇몇 우리 측 인사들이 낯 뜨거운 언행이나 유치한 객기로 일행을 난처하게 하고 분위기를 어색하게 했던 것과는 대조가 되었다. 그 가운데는 지도층에 드는 인사까지 끼여 있었는데 그런 치기어린 행동의 저변에는 상대를 얕잡아보거나 무시하는 태도가 깔려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북측은 오히려 이런 행태에 대해 짐짓 모른 체하거나 덮어주려는 의연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북한 관광국의 고위 간부는 묘향산 관광길에 현황 설명을 하다가 무심코 북한을 ‘우리나라’라고 했다가 미안하다면서 이를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금강산 관광 초기에 우리 여자 관광객의 사소한 말실수로 한때 관광이 전면 중단되었던 것과 비교한다면 사뭇 달라진 자세였다.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다루어야

또 하나 지나쳐서는 아니 될 것은 남북 교차관광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다. 북측의 한라산 관광도 언젠가는 성사되리라 보지만 이번 남측 각계 지도층과 북한 관광에 나서게 된 것은 ‘6?15 남북 공동선언’이 빚어낸 소중한 성과물의 하나라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히 북녘의 산하나 풍물을 둘러보는 관광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 정도라면 굳이 이렇게 엄청난 세월과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그 곳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 좋고 기억에 남을 만한 나라와 명소가 얼마든지 있다. 그보다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반세기 너머 무참히 흘려보낸 세월 속에 깊어만 가는 이질성에 물을 타고, 그 벌어진 틈을 메워나가자는 노력이다.

50년 넘게 키워온 남북의 이념, 정치사회적 환경, 경제체제상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지난한 일임에 틀림이 없고 시간적으로도 상당히 늦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이질성은 평양에 갔을 때 개선문을 안내하던 이의 입에서 북한 동포를 ‘김일성 민족’으로 거듭 부르는 데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 췌사(贅辭)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

몸에 딱 맞는 기성복이란 없다. 쉬운 것부터 하나씩 둘씩 풀어나가야 한다. 한땀 한땀 정성들여 바느질을 해가다 보면 보다 나은 옷맵시가 나올 것이다. 남북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서로에게 충격과 부담을 적게 주면서 질그릇을 다루듯 조심조심 변화를 유도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릇을 깨서는 안 된다.

민중가수 안치환(安致環)의 노랫말에 나오는 ‘마른 잎’을 다시 살려내려면 백도웅 목사가 칼럼에서 제시한 것처럼 ‘작은 감정’들을 소중히 다뤄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는 서로가 서로의 체제와 가치관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상대에게만 변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각자가 하기 쉬운 일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변화의 불씨를 살리고 지켜나가려면 진지한 자세와 함께 인내심을 가꾸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출처 : 백두고원에서 만난 희망의 돋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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