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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雨中 산책

  • 지역 : 강원도 화천군
  • 조회 : 5315
  • 최종수정일 : 2017.06.23

신록이 녹음으로 짙어지는 유월의 끝에는 장마가 온다. 지루하게 쏟아지는 장맛비는 자주 여정을 망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여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비가 내려서 더 근사한 여행도 있는 법이다. 장마철에 가장 근사한 여행지라면 누가 뭐래도 '호수'다.

큰 연잎 세장위에 빗방울이 모여 맺혀있다. 큰 나무가 있고 물이 발목까지 오는 계곡. 그 나무아래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쉬고있는 한사람

호숫가 숲속에 들어 타닥이는 빗소리를 들어도 좋겠고, 호수 위로 떨어지는 빗물이 동심원을 만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활엽수 숲의 초록색은 빗줄기 속에서 수채화 속 풍경처럼 싱그럽게 반짝이고 낮게 내려온 구름은 자주 앞산 능선에 척척 걸려 선경을 빚어낸다.
잠시 비가 그치면 뻐꾸기 청아한 울음이 보태진다. 저물녘 논바닥 개구리 울음소리의 정취는 또 어떤가. 장마 즈음이면 길옆 옥수숫대는 어깨높이쯤 자라고 연못의 둥그런 수련 이파리 위에는 또르르 물방울이 굴러다닌다.

비 내리는 날 연잎사이에 선홍색 수련꽃 두송이가 피어있다. 크림색의 수련꽃

비 오는 날의 여정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강원 춘천과 화천이다. 우선 가는 길부터. 춘천과 화천은 춘천고속도로 개통으로 가까워졌지만 속도와 시간을 얻는 대가로 내준 건 '호반을 따라 달리는 정취'였다. 옛 경강국도와 경춘국도는 어땠던가. 팔당과 두물머리를 지나서 청평댐과 대성리, 가평, 강촌을 따라 춘천으로 가는 길은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여름 휴가철이면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지만 노점에서 갓 따서 삶아 파는 옥수수를 사서 물고 여행의 가벼운 흥분 속에서 호반을 달리는 맛이 그만이었다. 이게 그리 오래전의 일도 아니다. 때로는 '길 자체'를 목적지 삼아도 좋은 경우가 있다. 비 오는 날에 춘천을 지나 화천으로 향하는 길이 그렇다. 마음이 바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다. 어차피 빠른 속도를 원하는 차량들은 죄다 고속도로를 택했을 터이니, 이 길에서는 속도를 내지 않아도 좋다.

춘천과 화천으로 떠나는 '우중(雨中) 여행'의 목적지로는 화천군 하남면 서오지리 수변의 '건넌들 연꽃마을'을 추천한다. 춘천댐을 지나고 사북 우체국과 신포리 성당을 지나 절집 '현지사'의 이정표를 따라가다 다리를 건너면 '건넌들'이 있다. 한때 화천에서 가장 넓은 들이 있었다는 마을. 너른 들은 춘천댐이 들어서면서 죄다 수몰이 되고 말았다. 60호 남짓의 마을 주민들도 뿔뿔이 흩어져 단 8가구만 남아 있다. 남은 주민들이 14년 전부터 습지에 연을 심었다. 그동안 손수 심은 수련만 130여 종, 연은 150종이나 된다. 그렇게 심어진 연이 자라면서 지금 습지 16만5000여 ㎡(5만여 평)는 온통 수련으로 뒤덮였다.

비 내리는 날 연잎위에 맺힌 빗방울은 장관을 이룬다. 호반 숲길속으로 들어가고있는 등산객 한명

6월로 접어들면 건넌들 습지는 선홍색 수련꽃과 탐스러운 크림색의 수련꽃, 그리고 엄지손가락만 한 노랑어리연이 앞다퉈 피어난다. 백련의 커다란 이파리 위에는 빗방울이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며 굴러다닌다. 후두둑 빗줄기가 연잎에 떨어지는 소리와 흙길에 빗줄기가 쏟아지면서 풍기는 내음. 이런 것들은 비 오는 날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것들이다.

연꽃마을에서 호수 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은밀한 호반 숲길을 만나게 된다. '신선이 다니는 길'이라 해서 '선로(仙路)'란 이름이 붙은 길. 화천군은 관내에서 빼어난 생태길 23코스를 정해 '동려이십삼선로(同侶二十三仙路)'란 길을 만들었다. 이름을 풀어보자면 '함께 걷는 스물세개의 신선의 길'쯤 되겠다. 이 중 세 번째 길이 연꽃마을을 지난다. 호반에 딱 붙어 지나는 길은 가벼운 언덕을 넘어 네 번째 길 '물 위 야생화길'로 이어진다. 우산 하나 펴들고 빗물이 호수로 떨어지며 동심원을 그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후두둑 활엽수 이파리에 비 드는 소리와 건너편 숲의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걷는 맛이 그만인 길이다.

호반 숲길 속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에 있는 여자.

낭패처럼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 해도 할 일은 많다.
지금은 쇠락했으되 한때 젊은이들의 명소였다는 춘천의 공지천 옆 '이디오피아의 집'에서 향긋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비 오는 창밖을 내다보는 일. 구봉산 능선의 제법 높은 자리에 길게 늘어선 카페에 들어가 접은 우산을 탁탁 털어내고 춘천의 도심과 건너편 산자락에 걸린 운무를 내려다보는 일. 강원 숲체험장의 고즈넉한 숲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빗소리를 듣는 일….
빗속을 걷든, 그 비를 바라보든 춘천과 화천으로의 여정은 눅눅하고 지루한 장마를 수채화의 근사한 낭만으로 바꿔주기에 모자람이 없는 곳들이다. 마치 마술처럼 말이다.

카페 이디오피아의 집 내부

출처 : 청사초롱

글, 사진 : 박경일(문화일보 여행전문기자)

※ 위 정보는 2017년 6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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