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홈페이지 위치정보

최신기사 게시글 상세보기

영화 속 그곳 <남한산성>으로 떠나는 가을 산책

  • 지역 : 경기도 광주시
  • 조회 : 3453
  • 최종수정일 : 2017.10.23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했다. 조선시대 인조와 조정이 청나라의 침입을 피해 47일 동안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머물렀을 때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본 전쟁의 참혹한 모습과 다르게 오늘날 남한산성은 평화롭다. 청량산과 남한산 등을 두루 걸친 남한산성은 등산객이 좋아하는 산행 코스다. 산성로터리 주변에 음식 맛 좋은 식당이 많아 가족과 연인들이 즐겨 찾는다. 201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영화 <남한산성> 속 장면과 함께 남한산성 곳곳을 산책해 보자.

남한산성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어장대(守禦將臺). 남한산성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어장대(守禦將臺)

나라의 운명을 고뇌하다, 남한산성 행궁(行宮)

"나를 성 밖으로 나오라고 하는구나.
나가면 다음은 어찌 되는 것이냐."
-인조(박해일 분)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사진제공·CJ E&M>

― 영화 속 행궁 ―
* 영화에서 인조가 주로 머물렀던 곳.
* 김상헌(김윤석 분)과 최명길(이병헌 분)이 인조를 앞에 두고 논쟁하던 그곳.
* 청나라의 압도적인 공격으로 남한산성이 무너졌을 때 인조가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던 장소.

한남루 외행전 내행전 [왼쪽/가운데/오른쪽]한남루 / 외행전 / 내행전

행궁은 국왕이 궁궐을 나왔을 때 잠시 머물렀던 건물이다. 전쟁이 터진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거나 임금의 휴양 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다. 선대왕의 능에 다녀올 때도 왕은 행궁에 들렀다.

상궐 남행각을 통해 행궁의 후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상궐 남행각을 통해 행궁의 후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이 터졌을 경우 지원부대가 한양에 올 때까지 국왕과 신하가 피신해 임시로 머물 목적으로 건립했다. 행궁의 정문은 한남루(漢南樓)다. 누각 모양으로 생긴 문을 통과해 외삼문(外三門)을 만난다. 다시 외삼문을 지나 외행전 앞에 도착한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신하들과 국정을 운영하던 장소다. 오늘날 임시정부청사에 해당한다. 조선왕조실록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쏜 홍이포가 외행전 기둥을 맞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화에도 이때의 장면이 나온다. 인조는 외행전에서 군사들에게 음식을 베풀기도 했다. 외행전 뒤 계단을 올라 내행전으로 향한다. 임금의 침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대청마루엔 일월오봉도 병풍과 임금이 앉던 어좌(御座)가 놓여 있다.

지붕 사이로 보이는 나뭇가지. 지붕 사이로 보이는 나뭇가지.

행궁에서 가장 볼만한 장소는 내행전 뒤 후원이다. 건물 뒤에 면적은 작지만 소박하고 아늑한 정원이 나온다. 후원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임금이나 군사가 활쏘기 연습을 하던 이위정(以威亭)이다. 정자 주변에서는 10월 말까지 전통 활쏘기를 무료로 할 수 있다. 어른, 아이 모두 좋아하는 전통 체험이다. 진행요원들이 일대일로 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행궁의 모든 건물은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구조로 배치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후원 영역은 내행전과 외행전 쪽으로 탁 트인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장소다.

행궁 후원에 있는 전통 활쏘기 체험장 이위정(以威亭) [왼쪽/오른쪽]행궁 후원에 있는 전통 활쏘기 체험장 / 이위정(以威亭)

임금의 편지를 품고 산성을 나서다, 암문(暗門)

"내가 이 일을 해내면
성 안의 모두가 살 수 있다."
- 날쇠(고수 분)

극중 날쇠 역을 맡은 고수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사진제공·CJ E&M>

― 영화 속 암문 ―
* 날쇠가 임금이 쓴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던 문.

암문(暗門)은 무기나 물품, 식량을 옮기거나 적군 몰래 외부와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만든 성문이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16개의 암문이 남아 있다. 이름처럼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장소에 만들어 놓았다. 특성상 성문보다 작아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암문도 있다. 여러 암문이 있지만 행궁에서 나와 수어장대 방향으로 오르다 발견하는 제6암문 쪽으로 가 보자. 6암문 주변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사와 싸워 크게 승리한 곳이다.

성 안쪽에서 본 암문 성 밖에서 본 암문 [왼쪽/오른쪽]성 안쪽에서 본 암문 / 성 밖에서 본 암문

영화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암문은 서날쇠라는 인물과 관련한 장소다. 서날쇠는 남한산성에 살던 대장장이다. 천민 신분이지만 성 밖에 머물던 조선 군사에게 인조의 편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의 원작 소설 《남한산성》에 비중 있게 등장한다. 소설과 영화는 날쇠가 임금의 편지를 품에 감추고 산성을 몰래 빠져나가던 통로를 암문으로 묘사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허구의 인물일 것 같은 날쇠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날쇠는 남한산성에 살던 서흔남(徐欣男)이란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 서흔남은 영화에서처럼 대장장이이자 기와를 만드는 기술자였다. 청나라 군대가 산성을 포위했을 때 목숨을 걸고 지방에 있던 군사에게 상황을 알렸다. 그는 이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전쟁 후 천한 신분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높은 벼슬을 받았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기를 결심하다, 수어장대(守禦將臺)

"한 나라의 군왕이 어찌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
- 김상헌(김윤식 분)

극중 김상헌 역을 맡은 김윤식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사진제공·CJ E&M>

― 영화 속 수어장대 ―
* 결사항전의 의지를 담은 인조의 글을 김상헌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군인들 앞에서 읽었던 장소.
* 이시백(박희순 분)을 비롯해 장군이 군인들을 지휘하던 건물.

남한산성 성곽 길 남한산성 성곽 길

6암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수어장대(守禦將臺) 오르는 길이 나온다. 영화에서 청나라에 대항하는 인조의 결사항전 의지를 담은 교지를 김상헌이 대신 읽었던 장소다. 수어장대의 장대(將臺)는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고 적군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설치한 누각을 말한다. 장대는 적을 관측하기 위한 건물이었기 때문에 산성 안 가장 높은 위치에 짓는다. 남한산성에는 원래 장대가 5개 있었으나 현재는 수어장대만 남았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에 남은 건물 중 가장 화려하다. 수어장대에 걸터앉아 잠시 쉬어 보자. 맞바람이 통해 땀을 식힐 수 있는 곳이다. 장대를 가운데 두고 주변을 거닐며 느긋하게 가을 날씨를 즐기기에 좋다.

영조가 지은 현판인 무망루를 보관 중인 보호각 영조가 지은 현판인 무망루를 보관 중인 보호각

수어장대 오른쪽에 있는 보호각은 병자호란 당시 겪었던 치욕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영조가 지은 무망루(無忘樓)라는 현판을 보관 중이다. 원래 수어장대 2층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옮겨 놓았다. 수어장대로 들어서는 입구 옆은 청량당(淸凉堂)이다. 남한산성을 쌓는 과정에서 누명을 쓰고 죽은 이회 장군과 그의 부인을 위해 지은 사당이다.

삶의 길로 나아간다, 우익문(右翼門)

"적의 아가리 속에도
분명 삶의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 최명길(이병헌 분)

극중 최명길 역을 맡은 이병헌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사진제공·CJ E&M>

영화 속 우익문
*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러 갈 때 말에서 내려 걸어 나갔던 문.

남한산성 서문인 우익문(右翼門) 남한산성 서문인 우익문(右翼門)

수어장대를 나와 다시 성곽을 걷다 우익문(右翼門)을 만난다. 남한산성의 서문이다. 성곽 위에서는 우익문 현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칫 지나칠 수 있는데 성곽 아래로 내려가 우익문 밖으로 나가야 잘 보인다. 국왕은 항상 남쪽을 보고 앉아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서문이 오른쪽에 있어 우익문이라 이름 지었다. 암문을 시작으로 우익문까지는 송파구 쪽 전경이 잘 보여 포토 존으로 유명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들릴 만큼 사진 찍는 이가 많다.

우익문 현판 우익문 현판

우익문 밖으로 연결된 길은 경사가 급해 산성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옮기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대신 송파나루에서 출발해 남한산성까지 가장 빠르게 들어올 수 있는 문이다. 영화 <남한산성> 시작 부분에 김상헌이 나루터 부근에 사는 노인의 안내로 언 강을 건너는 장면이 나온다. 강을 다 건넌 후 산성으로 함께 가자는 김상헌의 제안을 거절한 노인은 빨리 가기 위해선 서문으로 가라고 알려 준다.

성곽 길을 조금 더 걸어가 바라본 서문 성곽 길을 조금 더 걸어가 바라본 서문

영화 후반부 청나라에 항복하러 가는 인조가 서문을 통과해 삼전도(三田渡 : 조선시대에 서울과 남한산성을 이어주던 나루)로 나갔다. 임금의 옷인 곤룡포가 아니라 신하의 옷인 푸른색 옷을 입은 채였다. 서문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치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임금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다.

행궁에서 시작해 제6암문과 수어장대를 거쳐 서문을 보고 돌아오는 데 1시간 30여 분쯤 걸린다. 서문을 지나 산성 길을 조금 더 걸어 북문을 거쳐 산성로터리로 돌아와도 좋다. 행궁 매표소 옆 방문자센터에서 남한산성 지도를 얻고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주말에는 산성로터리 쪽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남한산성의 가을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은 날씨다. 늦기 전에 여유로운 산책을 권해 본다.

여행정보

남한산성
  • 주소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731(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문의 : 031-8008-5155
주변 음식점
  • 강마을다람쥐 : 도토리묵밥, 묵국수 /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태허정로 556 / 031-762-5574
  • 라또마떼 : 화덕피자, 파스타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정영로 941-9 / 031-767-0558
  • 골목집소머리국밥 : 국밥, 수육 /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경충대로 625 / 031-763-2882, 6265
숙소
  • 정온펜션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갈올길11번길 38 / 031-768-3917
  • 제이알랜드 :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독고개길302번길 15-6 / 031-797-3330
  • 한옥마을 : 경기도 광주시 새오개길 31 / 031-766-9677

글, 사진 : 이시우(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7년 10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 담당부서 : 국내온라인홍보팀
  • 등록 및 수정문의 : 033-738-3570
  • 관광안내문의 : 1330(일반, 공중전화, 핸드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