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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이 말을 걸어왔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 지역 : 경기도 광주시
    • 조회 : 3797
    • 최종수정일 : 2018.08.30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할머니들은 아무 말이 없다. 얼굴로 지난한 세월을 이야기한다. 그림 속 할머니들은 깊게 팬 주름에 서러운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박물관 얼굴에는 1000여 개의 얼굴이 복닥거린다. 어떤 얼굴은 뭔가를 염원하는 듯하고, 어떤 얼굴은 기나긴 세월을 지나며 감정의 무용함을 깨달은 듯하다. 시간이라는 씨줄과 이야기라는 날줄로 직조된 얼굴들. 무수한 얼굴이 전하는 말을 들으러 경기도 광주를 찾는다.

    깊게 팬 주름에 서러운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는 할머니 사진 뭔가를 염원하는 듯한 할머니 사진 시간이라는 씨줄과 이야기라는 날줄로 직조된 얼굴의 할머니 사진 [왼쪽/가운데/오른쪽]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초상화

    소녀 얼굴에 피눈물 말라 주름이 졌네

    1930년대 솜털이 하얗던 소녀들은 2018년, 백발성성한 할머니가 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생긴 지 80여 년이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0명 중 생존한 할머니는 28명뿐. 이들의 평균 나이는 90대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할머니들을 좀 더 잘 기억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반가운 소식이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새로 증축된 것이다.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 말에 힘입어 1998년 처음 문을 열었다. 그 후로 20년에 접어드는 지난해 말, 유품전시관과 추모기록관(이하 추모관)이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 ‘못다 핀 꽃’과 할머니들 흉상이 있는 입구를 지나 나눔의 집 뒤편으로 향하면 추모관이다. 옅은 회벽에 기와를 얹은 2층 건물이다. 추모관 1층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기획전시관에는 할머니들 초상화가, 유품전시관에는 할머니들 유품이, 그림전시관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 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입구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흉상 공연예술가 팝핀현준이 그린 할머니들 초상화 [왼쪽/오른쪽]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입구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흉상 / 공연예술가 팝핀현준이 그린 할머니들 초상화

    벽 양옆에 가로세로 1m가 넘는 그림 10점이 나란하다. 공연예술가 팝핀현준이 그린 할머니들 그림이다. 그는 말했다. “할머니들 얼굴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할머니마다 표정도 분위기도 제각각이다. 백발의 박옥련 할머니는 입을 한 일자로 굳게 다물었고, 배춘희 할머니는 생긋 미소 지을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김군자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밥은 먹었우?” 하고 말을 걸어올 듯 장난기 어린 눈빛이다. 할머니들은 입을 열어 자신을 설명하는 대신, 선과 색이 빚은 표정으로 한 많은 인생을 내비친다. 소녀의 피눈물은 말라붙어 할머니의 주름이 됐다. 화폭 속 할머니들은 끝내 일본의 공식 사죄를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나이 든 소녀들은 말하고 그렸다

    “가까운 일은 기억 못해도 옛일은 왜 이리 생생한지 모르겠다.”
    김순덕 할머니의 말씀이다. 유품전시관에는 할머니 열일곱 분의 인생 이력과 사진, 생전에 쓰던 물건이 있다. ‘한 맺힌 삶을 살다.’ 전시관 소개 글에 딸린 제목이다. 즐거운 일보다는 한스러운 일이, 기억하고픈 일보다는 잊고 싶은 일이 많은 인생이었다.
    “끌려간 친구들은 다 죽고, 나 혼자만 살아 돌아왔어.”
    11살,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중 가장 어린 나이. 김외한 할머니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혼자 돌아왔다. 김옥주 할머니는 일자리가 있다는 일본인 집주인의 말에 속았다. 도착한 곳은 중국 하이난섬 위안소였다. 단 몇 줄로 축약하기에는 사연 하나하나가 길고 길다. 생전 쓰시던 물건들은 어찌나 소박한지. 돋보기, 화투, 한글 교본, 고국으로 넘어올 때 손에 ‘단디’ 쥐었을 여권…. 울컥했다 화가 났다 아릿했다 분주한 마음을 달래가며 보느라 걸음이 느려진다.

    유품전시관 전시 유품전시관 전시 유품전시관 전경 할머니들의 소박한 유품 [왼쪽/오른쪽]유품전시관 전경 / 할머니들의 소박한 유품

    그림전시관에는 잔잔한 음악이 깔린다. 서촌 골목길, 작은 갤러리에 들어온 듯하다. 할머니들은 1993년부터 그림 수업을 받았다. 처음에는 주변 사물을 따라 그리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비통한 지난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열다섯쯤 됐을까. 흰 저고리 입은 소녀가 누군가의 팔에 속절없이 끌려간다. 고향 땅에 핀 들꽃은 소녀의 외침을 듣지 못한 건지 야속할 정도로 아리땁다. 김순덕 할머니의 <끌려감>은 ‘위안부’로 끌려간 순간을 생생히 묘사한다. 그림 속 소녀들은 대부분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 있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표정이 없다. 그렇다. 사람 한 명 누울 수 있는 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본군들 앞에서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그 정도였다.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 20여 점을 전시한 그림전시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 20여 점을 전시한 그림전시관 고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끌려감 고 강덕경 할머니의 작품 빼앗긴 순정 고 강덕경 할머니의 작품 책임자를 처벌하라 [왼쪽/가운데/오른쪽]고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끌려감> / 고 강덕경 할머니의 작품 <빼앗긴 순정> / 고 강덕경 할머니의 작품 <책임자를 처벌하라>

    추모관에서는 피해자들의 핸드 프린팅, 국내외 ‘위안부’ 피해자 105명의 사진과 280명의 명단을 볼 수 있다. 일본의 전쟁 범죄를 고발한 용기 있는 이들의 얼굴이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기존 역사관도 둘러봐야 한다. ‘위안부’ 제도의 성립 배경, 진상 규명에 관한 활동 기록, 일본군 위안소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등이 정연히 정리돼 있다. 제3전시공간에는 피해자 증언을 참고한 위안소 모형이 있다. 쪽방은 5~7㎡ 남짓. 순간 화가 치밀어 씩씩거릴 뻔했지만 꾹 참는다. 평정을 잃지 말고 역사적 진실을 똑똑히 보아두자 다짐한다.

    피해자들의 핸드 프린팅, 국내외 위안부 피해자 105명의 사진과 280명의 명단을 볼 수 있다 국내외 위안부 피해자의 사진과 명단 국내외 ‘위안부’ 피해자의 사진과 명단

    한바탕 가슴 아파했다 홱 돌아서지 말 것,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말 것, 현재 진행형인 할머니들의 아픔을 지그시 마주할 것. 그림 속 할머니들이 나직하게 건네는 당부다. 신설 추모관도 개관했다. 나눔의 집에 사전 문의 후 방문할 것을 권한다.

    얼굴의 거대한 아카이브

    설움 깊은 낯빛을 마음에 품고 좀 더 다양한 얼굴을 만나기 위해 박물관 얼굴로 향한다. 고물상 같다고 해야 할까, 엄마 몰래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두던 다락방 같다고 해야 할까.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에 있는 박물관 얼굴의 첫인상이다. 이런 박물관은 처음이다. 전시물이 연대별로 정리된 것도 아니고 친절한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얼굴들이 와글댄다. 무속화 옆에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석불 옆에 제임스 딘 사진이 있는 식이다. 박물관 얼굴은 사진과 그림, 초상화부터 가면, 꼭두, 석인(사람 모양 돌조각)까지 1000여 점이 넘는 얼굴 조형물을 전시한다. 그야말로 얼굴의 거대한 아카이브다. 원로 연극연출가 김정옥 관장이 50여 년 동안 수집해온 것들이다.

    박물관 얼굴 내부 전경 박물관 얼굴 내부 전경 탈, 조각 등 다양한 얼굴 조형물 전시 다양한 탈들 사람 모양 돌조각 탈, 조각 등 다양한 얼굴 조형물

    1층 중앙은 텅 비어 있다. 연극무대 같다. 박물관 작품들을 무대 위 배우라 생각하고 옛사람들과 축제의 장을 만들고 싶다는 관장의 건축 의도다. 왼쪽 벽에는 색색의 탈이, 오른쪽 벽에는 연극인들 사진이 빼곡하다. 전통 탈은 눈매만으로 표정이 미묘히 다르다. 오르막길처럼 치켜 올라간 눈매는 매서운 인상, 내리막길처럼 완만한 눈매는 시무룩한 기색이다. 석불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 평화로운 얼굴이다. 영화배우 제임스 딘은 뭔가에 골똘하다. 동서양 작품이 뒤섞인 1층과 달리 2층에는 동양적 색채가 짙다. 상여와 꼭두를 중점적으로 전시하는데, 특히 다양한 사람 꼭두가 볼거리다. 꼭두는 전통 장례식 때 상여를 장식하던 조각상이다. 망자의 영혼을 배웅하는 저승길의 친구랄까. 슬피 우는 꼭두는 없다. 알록달록 색동옷 차려입고 미소를 띤 흥겨운 표정이다. ‘생전의 힘듦일랑 다 잊고 즐거웠던 기억만 가지고 가소.’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꼭두는 신명 나는 소풍 길에 오른다.

    전통 장례식 때 시신을 무덤으로 운반하는 가마, 상여 망자의 저승길을 동행하는 꼭두의 경쾌한 표정 [왼쪽/오른쪽]전통 장례식 때 시신을 무덤으로 운반하는 가마, 상여 / 망자의 저승길을 동행하는 꼭두의 경쾌한 표정

    “찡그리지 말게, 모든 건 세월에 씻겨 갈지니”

    박물관 얼굴의 하이라이트는 야외정원의 석인들이다. 석인은 옛날, 무덤이나 마을 입구에 세웠던 사람 형상의 돌을 말한다. 장승은 마을 수호신 노릇을 했고, 무덤 앞의 문관석과 동자석은 죽은 이를 기린다는 의미다. 경남 진주시, 전남 진도군, 제주도 등 각 지방에서 데려온 석인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안온한 표정의 문관석이 있는가 하면 동그란 눈을 끔뻑거리는 동자석도 있다. 대개는 세월에 닳고 비바람에 깎여나가 이목구비가 또렷하지 않다. 석공이 돌을 쪼아 숨결을 갓 불어넣었을 때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수백 년 전 얼굴을 상상해 본다. 입을 꾹 다문 석인이 어느덧 말을 건넨다. “그렇게 찡그리지 말게. 그렇게 기뻐하지도 말게. 그래 봤자 모든 건 세월에 씻겨 간다네.” 수백 년 풍상을 견딘 자만이 할 수 있는 위로다. 길고 긴 세월을 지나온 자는 다변하지 않아도 가르침을 준다.

    야외정원의 석인 천진무구한 얼굴의 동자석 [왼쪽/오른쪽]야외정원의 석인 / 천진무구한 얼굴의 동자석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석인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석인

    박물관 얼굴에 들어서면 무엇부터 봐야 할지 당황할 수 있다. 관람법은 간단하다. 무질서한 오브제에 시선을 이리저리 던지다가 마음을 잡아끄는 얼굴을 발견하면 가만히 바라보자. 이제 곧 침묵이 깨질 것이다. 수천 가지 얼굴이 모인 박물관에는 고요한 소란이 가득하다.
    경기도 광주에는 수많은 얼굴이 있다. 유심히 본다. 그가 말하지 않는 것 너머의 것을 듣기 위함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을 감히 이해한다. ‘인식의 확장’을 여행이라 한다면 광주는 좋은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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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정보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 주소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가새골길 85
    • 문의 : 031-768-0064
    • 이용시간 : 10:00~17:00
    • 쉬는 날 : 월요일, 명절 연휴
    • 입장료 :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박물관 얼굴
    • 주소 :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길 3-6
    • 문의 : 031-765-3522
    • 이용시간 : 수요일 13:30~18:00, 목~일요일 10:00~18:00
    • 쉬는 날 : 월, 화요일
    • 입장료 : 성인 4000원, 학생 3000원
    주변 음식점
    • 강마을다람쥐 : 도토리 묵밥, 도토리 물국수 /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태허정로 556 / 031-762-5574
    • 쇠뫼기 : 청국장 정식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정영로 580-3 / 031-767-9852
    • 라또마떼 : 화덕 피자, 파스타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정영로 941-9 / 031-767-0558
    숙소
    • 정온펜션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갈올길11번길 38 / 031-768-3917
    • 드리밍하우스펜션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934 / 031-769-1278
    • 제이알랜드 :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독고개길302번길 15-6 / 031-797-3330

    글 : 이수린(여행작가), 사진 : 권대홍(사진작가)

    ※ 위 정보는 2018년 8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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