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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실야구장 별미 장외 열전

    • 지역 : 서울 송파구
    • 조회 : 3208
    • 최종수정일 : 2018.05.11

    어릴 적 기억 중에 명승부 스포츠 경기 몇 가지.
    코흘리개 시절엔 10원짜리 만화방에서 까까머리들과 밀치며 보던 흑백TV 속 ‘박치기왕’ 김일의 프로레슬링이 기억의 전부다. 김일의 박치기 한방에 뻥뻥 나가떨어지는 상대 선수를 보며 승자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코 밑 수염이 날 즈음엔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승전보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카라스키야를 KO 시킨 ‘4전 5기의 신화’ 홍수환의 권투경기다. “엄마, 챔피언 먹었어!”란 목소리는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다음은 경기종료 7분을 남기고 혼자서 3골을 몰아넣었던 ‘갈색 폭격기’ 차범근의 축구경기다. 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으로 개최한 박스컵에서 말레이시아에 1대4로 뒤진 후반 38분부터 5분 동안 3골을 기록했다. 차범근의 원맨쇼에 전 국민이 TV 앞에서 발을 구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지구의 크기가 ‘달’만 했다면 기울어져 있던 지축이 바로 잡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실 야구장에서 경기중인 KIA타이거즈 잠실 야구장에서 경기중인 KIA타이거즈

    앞의 기억과 견줄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 깊었던 야구경기가 있다. 국가대항이었지만 기록조차 찾을 수 없고, 우리 팀이 이긴 것도 아닌, 진 경기다.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 기억과 섞여서 뒤죽박죽이기는 한데, 요약하면 ‘야구는 9회 말 2아웃 이후’다. 지금은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라고 불리는 동대문야구장에서 벌어진 한미대학야구경기. 9회 말 2아웃 한국의 수비 상황. 2점이나 앞서고 있으니 당연히 이길 것으로 생각하고 훌훌 자리를 정리하고 뜨려는 순간, 미국 공격수가 하나둘 출루하더니 결국 3점짜리 홈런을 얻어맞았다. 씁쓸한 역전패. 패배의 아픔은 컸지만 야구경기의 참맛을 제대로 느꼈다.

    두산베어스 수원 KT위즈파크 [왼쪽/오른쪽]두산베어스 / 수원 KT위즈파크

    그 때를 전후해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것 같다. 1980년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피하려고 스포츠를 이용했는데 그 첫 번째 결과물이 프로야구다. 서울을 연고지로 한 MBC 청룡을 비롯, OB 베어스(충청권), 해태 타이거즈(호남권), 롯데 자이언츠(부산·경남권), 삼성 라이온즈(대구·경북권), 삼미 슈퍼스타즈(인천·경기·강원권) 등 6개 구단을 구성해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개막전을 열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시구로 벌어진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는 삼성 ‘이만수의 1호 홈런’에도 불구하고, 연장 10회 말 이종도의 만루 홈런으로 드라마 같은 청룡의 대역전승(8대 7)으로 끝났다. 그해 프로야구 관중 수는 140만명. 35년이 지난 2017년까지 누적 관중 수는 1억4685만9877명에 달했다. 명실상부한 국민 레저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야구장을 찾는 이유는 세 가지 재미 때문이다. 보는 재미, 응원하는 재미, 그리고 먹는 재미다. 열성 팬이라면 이 중 최고는 단연 ‘보고 응원하는 재미’. 하지만 승패에 목숨을 걸지 않고, 가끔 나들이 삼아 야구장을 찾는 관중이라면 솔직히 ‘먹는 재미’가 으뜸이다.

    잠실 야구장 야구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과자 ‘홈런볼’ [왼쪽/오른쪽]잠실 야구장 / 야구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과자 ‘홈런볼’

    한국 프로야구 35년. 야구장 먹거리도 많이 변했다.
    80년대 야구장을 돌아보자. 야구장은 낡았고, 먹을거리도 보잘 것 없었다. 먹을 거라곤 아줌마들이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파는 마른오징어와 김밥이 전부였다. 바구니 밑에 숨겨 팔던 팩소주도 생각난다. 그 소주에 취해 내야석 그물망을 오르던 주정뱅이 광팬 아저씨들의 추태도 기억난다. 요즘은 맥주보이나 비어걸이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맥주를 판다.

    잠실야구장의 맥주보이 맥주보이가 맥주를 따르고 있다. 잠실야구장의 맥주보이

    90년대 후반부터 야구장에도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치맥 열풍이 불었다. 그래도 먹거리는 부족했다. 1998년 경남 마산(지금의 창원)구장의 외야 관중석에서 한 관중이 휴대용 가스버너에 삼겹살을 구워먹은 것은 전설의 해프닝으로 유명하다. 요즘은 야구장에서 떳떳하게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다. 2009년 인천을 연고로 한 SK 와이번스가 홈구장인 문학구장에 바비큐존을 처음 설치했고, 뒤이어 수원 kt위즈파크도 바비큐존을 만들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근처 맛집이 야구장 안으로 들어왔다. 닭강정, 납작 만두, 닭똥집, 어묵까지 각종 지역 별미가 지방 구장의 별난 메뉴로 태어났다. ‘야신고로케’ ‘김광현 치카치카’ ‘힐만버거’처럼 선수와 감독의 이름과 별명에서 따온 메뉴도 개발됐다.

    수원 KT위즈파크 진미통닭과 보영만두 SK행복드림구장 힐만버거 [왼쪽/오른쪽]수원 KT위즈파크 진미통닭과 보영만두 / SK행복드림구장 힐만버거

    야구장에서 먹는다는 건 일반적인 식사나 간식의 개념과는 크게 다르다. 거창하게 차려놓고 한판에 끝낼 수도 있고, 편의점에서 몇가지를 비닐봉지에 골라 담아 간단하게 해결할 수도 있다. 그래도 기본은 3단계다. 경기 전(前), 경기 중(中), 경기 후(後). 공식적인 3차 과정이다.
    경기 ‘전’에는 야구장 근처에서 가볍게 한 잔. 맥주라도 한 모금 마시며 목청을 가다듬어 놓는다. 경기 ‘중’을 대비해 먹고 마실 상품을 쇼핑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숨겨둔 요리 실력을 발휘해 직접 닭도 튀기고 김밥도 싸서 야구장으로 향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잠실야구장의 곱창 잠실야구장의 생맥주 잠실야구장의 먹을거리

    서울 잠실야구장 풍경을 한번 보자. 오후 2시에 시작하는 주말 경기가 있는 날.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주변은 먹을거리가 빼곡하다. 한 손에 치킨 봉지를 다섯 개씩 들고 있는 아저씨, 길가에 좌판을 벌이고 김밥과 오징어를 팔고 계신 할머니, 판매대를 밖으로 끌어내어 햄버거를 파는 아르바이트생 등. 상기된 표정의 관중들은 저마다 먹을 것을 챙겨서 경기장 안으로 쏙쏙 들어간다.

    잠실야구장의 피자 맥주를 마시는 관객 [왼쪽/오른쪽]잠실야구장의 피자 / 맥주를 마시는 관객

    경기 ‘중’에는 대략 이렇다. 1회가 어영부영 끝나고 나면 슬슬 마실 걸 찾는다. 싸 들고 온 먹거리를 펼친다. 연인끼리는 알콩달콩, 맥주 하나를 둘이 나눠 마시며 목을 축인다. 친구들이 몰려온 곳에선 스케일이 다르다. 외야석에 자리를 틀고 치킨 다섯 마리에 피자 다섯 판을 펼쳐놓고 멋지게 한판 벌인다. 먹고 마시는 양만큼이나 응원도 화끈하고 광적이다. 내야석에선 ‘우리 팀 공격 시간에는 먹지 않기’의 암묵적 약속이 있다. 그렇다고 절대 불가는 아니다. 단지 먹으면서 응원하는 게 불편한 정도다. 공격마다 일으켜 세우는 응원단장 때문이다. 반대로 수비시간이 길어지면 먹고 마시는 양이 급증하는 괴로움도 있다.

    잠실야구장의 컵밥 잠실야구장의 삼겹살 [왼쪽/오른쪽]잠실야구장의 컵밥 / 삼겹살

    야구는 시작하는 시간만 있을 뿐,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투수전이든 타격전이든 보통은 3시간. 길어지면 4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응원하다 지치면 그나마 다행. 먹다가 지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기 '후', 이번엔 제대로 먹으러 가는 뒤풀이가 기다리고 있다. 경기 ‘전’과 ‘중’ 내내 먹었던 무시무시한 칼로리를 뱃속에 품고 경기장을 나선다. 이기면 이겼다고 맥주 한잔. 지면 졌다고 소주 한잔. 결국 경기 후 뒤풀이는 알싸한 알코올로 마무리된다.

    이때 만만한 곳이 근처의 재래시장. 반갑게도 잠실야구장 옆엔 5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새마을시장’이 있다. 시장 이름에서 풍겨 나오는 느낌처럼 197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생겼다. 70년대 후반 잠실 아파트 단지가 완공되면서 영동시장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던 때도 있었다. 유명백화점 푸드코트에 밀린 듯하지만 여전히 반찬 파는 할머니가 말을 걸고, 참기름 짜는 아저씨가 넉넉하게 양을 주는 소박한 옛날 시장이다. 1만원짜리 한 장이면 빈대떡에 막걸리 한 통을 마실 수 있고, 방앗간 찹쌀떡과 길거리 호떡도 맛볼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시장이다. 이곳은 잠실야구장에 관한 한 3단계 경기 전·중·후 먹거리 모두가 가능한 전천후 순례 성지다. 그중에서도 몇 곳만 골라 소개한다.

    파오파오 공씨네 족발보쌈 [왼쪽/오른쪽]파오파오 / 공씨네 족발보쌈

    ①파오파오
    경기 직전에 오면 기다리다가 자칫 1~2회를 놓칠 수 있어 2시간 정도 일찍 가야 한다는 만둣집. 속 재료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얇은 피가 특징이다. 특히 새우만두의 인기가 좋다. 모든 만두를 그날 빚고 그날 찐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12길 22 / 02-412-9198 / 새우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 각각 1인분 4000원. 3가지 맛 1세트 1만원
    ②공씨네 족발보쌈
    ‘하루에 두 번 족발을 삶는 집’으로 유명하다. 시간은 낮 12시 반과 저녁 6시. 주말 야구 경기가 있을 땐 낮 12시 반, 주중 야간 경기가 있는 땐 저녁 6시에 손님 줄이 길다. 족발은 삶은 직후가 가장 쫄깃하고 탄력이 있어서 그렇단다. 왕족발은 육질이 부드럽고 양이 많은 앞다리만 쓴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12길 17 / 02-418-7197 / 왕족발 3만원

    늘푸른목장 해주냉면 김판조닭강정 [왼쪽/가운데/오른쪽]늘푸른목장 / 해주냉면 / 김판조닭강정

    ③늘푸른목장
    새마을시장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소갈빗살 하나로 주변을 평정한 곳이다. 응원한 팀이 이겼을 때 경기 후(後) 최고 맛집으로 꼽힌다. 얼리지 않은 소고기 생갈비를 현장에서 직접 손을 봐서 손님상에 올린다. 빨간 살코기 속으로 흰 마블링 기름의 맛이 혀에 착착 감긴다.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9길 34 / 02-3431-4520 / 100g 1만6000원
    ④해주냉면
    가격은 싸지만 맛은 결코 싸지 않은 냉면집. 가성비, 가심비를 따지는 냉면 마니아층에겐 이미 소문난 곳이다. 야구 경기 전(前)에 출출한 속을 화끈하게 채우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매운 냉면을 잘 먹는 사람들도 코끝에 땀방울이 맺히는 뜨거운 맛을 볼 수 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12길 5-22 / 02-424-7192 / 비빔냉면, 물냉면 각각 5500원
    ⑤김판조닭강정
    주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파오파오 건넛집이다. 닭강정에 주인 이름을 앞세웠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표현이다. 인천의 재래시장에서 만들어 팔던 아버지 ‘김판조’의 노하우를 아들이 전수 받았단다.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닭강정은 야구장으로 포장해가는 손님이 많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12길 21 / 02-421-4792 / 순살강정(소) 7500원

    출처 : 청사초롱
    글 : 유지상(음식칼럼니스트), 사진 : 박은경(청사초롱 기자)

    ※ 위 정보는 2018년 5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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