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의 출발선 ‘설날’이 지났다. 시끌벅적했던 연말과 연초 분위기가 이제야 조금 가라앉는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먼 훗날을 가늠하며 현 위치를 재보정하기 좋은 시기다. 1년이라는 마라톤,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 따라서 갈증 날려버리는 ‘활력소 여행지’를 미리 알아두면 큰 도움이 되겠다. 이에 박달재를 권한다.
서울톨게이트를 지난 지 약 한 시간 조금 지났을 무렵 제천시 입성. 충북과 강원 사이의 첩첩산중이 꽤나 거칠다. 태백산맥과 가까운 지역은 아니지만,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 지역이다 보니, 그 강산이 수려하다. 충북지역이지만, 강원도의 냄새가 물씬 나기도 한다. 백운면 박달재, 터널이 뚫려 무심히 지나쳐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50년 전 이곳은 위험한 고갯길 하나뿐이었다.
박달재(해발 826m)는 제천 백운면과 봉양면에 솟은 천등산의 약 20km 산길의 중심. 포장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겨울마다 이 고개에서 인명사고가 자주 발생했을 정도. 1974년에 충주와 제천을 잇는 도로가 포장되면서 많은 이가 보다 쉽게 넘어다닐 수 있게 됐다. 제천과 충주 사이를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자 교통량이 몰렸고 명절은 물론이고 공휴일에는 꽤나 차가 막히는 구간으로 유명세를 탔다.

박달재 서쪽 대문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터널이 뚫리면서 옛 정취를 간직한 추억의 도로가 됐다. 현재는 ‘박달재’ 현판을 건 대문 사이 구간 약 5.5km가 박달재로 통용되고 있다. 경관이 수려한 드라이브코스 중 하나로 유명세를 떨치니 시대에 따라 그 용도가 변하게 된 도로 중 하나 되겠다.
경사가 가파를수록 도로는 더 꼬불꼬불 길게 돌아간다. 약 5부 능선부터 도로가 크게 휘는 것이 등고선 하나 넘기가 쉽지 않다. 시원히 뚫린 터널을 놔두고 이 길을 일부러 넘는 사람이 있으랴. 도로는 한산하고 박달재를 찾은 사람밖에 없다. 휴게소에 도착하니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가 울려 퍼진다. 휴게소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이번 여정,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왼쪽]박달재 정상 서원휴게소, 이곳에 주차하면 된다
[오른쪽]휴게소 한켠에 마련된 제천 출신 애국지사 추모비와 단암 이용태, 여산 이용준의 동상
주차장의 서쪽방향에 추모비와 동상이 눈길을 끈다. 제천출신의 애국지사 ‘단암 이용태’, ‘여산 이용준’ 선생을 기리는 공간이다.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말을 탄 기마상이 크게 세워졌는데, 김취려 장군이다.

김취려 장군 역사기념관
박달재는 고려시대에 거란족의 침입을 막아낸 격전지이기도 하다. 그 혁혁한 공을 세운 이가 김취려 장군이다. 기마상 옆에 전적비, 뒤로 역사관이 조성됐으나 규모나 구성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고려의 무인으로 유명한 강감찬, 최영, 최충헌 등 그들의 업적은 널리 잘 알려졌으나 김취려에 관해선 우리의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한반도의 수많은 외세침탈을 막아낸 선조의 공을 다시 한 번 기리고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를 만나러 가보자.

박달재 목각공원
박달재 정상, 넓은 터에 공원이 조성됐다. ‘박달재 목각공원’이다. 전망대, 박달·금봉 가묘, 인간생활상, 장승, 12지신상, 12연기상, 박달·금봉 전설 재현상, 박달·금봉당 등 다양한 주제로 구성돼 볼거리가 풍성하다.

박달·금봉상, 이 고갯길의 주인공이다
공원 초입에는 박달·금봉상이 세워졌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서 애틋함이 묻어난다. 그들의 유별났던 사랑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니 영원한 사랑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들어 하룻밤을 묵는다. 그런데 이집에는 금봉이라는 딸이 있었고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친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으며 금봉은 박달의 초조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 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잠을 못 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게 된다. 박달과 금봉은 금세 가까워졌다.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었고 밤마다 두 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했다.

[왼쪽]전설 중
‘금봉을 만나고 싶다는 시만 지었다’의 해당 작품
[오른쪽]전설 중 ‘금봉을 끌어안았으나 박달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다’의 해당 작품
서울에 온 박달은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다는 시만 지었다. 과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 결국, 박달은 낙방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내 보내고는 날마다 서낭에서 빌었다. 박달의 장원 급제를, 그러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서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에서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사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왔다.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박달은 땅을 치며 목 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따라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은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끌어안았으나 박달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후로 사람들은 박달의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됐다.
→ 박달재 목각공원 설명 전문
박달·금봉상 뒤편으로 그들의 가묘가 있다. 짧은 만남 이후 비극적 사랑으로 끝마친 현세의 한을 풀어주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근방의 전망대에 올라 그들의 사랑이 이뤄진 박달재를 널리 살펴본다. 제천 근방에서 살핀 산세와 달리 협곡이 깊다. 충청도의 두루뭉술한 지형은 여기서 찾기 어렵다. 뾰족한 솟음과 봉우리의 연이은 병풍이 조금은 급하게 중첩한 이곳. 박달재는 험준한 곳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지도에서 살핀 지형보다 재미있는 것은 박달재의 동서 산길을 기준으로 북쪽의 지형과 남쪽의 지형이 다른 형상을 띠는 것. 북쪽 치악산에서 시작한 맥이 백운산을 거쳐 박달재 근방을 에워싸니 굽이굽이 산자락이 만만한 고갯길이 없다. 이런 지형을 살피기 위해선 목각공원에서 북쪽으로 조금 산을 타면 볼 수 있다.
공원의 중심으로 향하면 ‘인간생활상’이란 주제의 목조각물이 전시됐다. 하나하나가 참 정겹다. 청정 산림 속 공원에서 나무로 된 조각물을 보고 있자니 여느 전시장보다 운치 있는 관람이다. 사랑스러운 연인, 아기를 업고 있는 어머니, 바깥일 하는 아버지 등 정다운 한 가족의 면면이 작은 감동이다. 방에서 컴퓨터 하는 자녀, 퇴근이 늦어 아이들과 마주할 시간이 없는 아버지,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신없는 어머니. 현 가정에 부재한 것이 무엇인지 말과 글이 아닌 나무로 만든 작품이 정확히 짚어준다.
또한 조각물을 자세히 보면 조각칼이 지나간 흔적, 흔적 사이로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반질반질한 조형물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투박하면서 거친 겉면이지만 멀리서 보면 가감 없는 실루엣과 생동감 넘치는 표정에 감탄하게 된다.

‘인간생활상’ 주제의 조각품

제천시의 마을별 특색을 담은 장승 조각품
다음으로 장승이 이어지는데 이것 또한 장관이다. 한 장소에 30개 이상의 장승이 줄을 지어 서 있으니 기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은 물론, 무속신앙에 등장하는 수호신이 부활한 듯 하다.

숲길 곳곳에 배치된 전설 재현상
건너편, 박달·금봉의 전설을 재현한 상들이 숲길 곳곳에 배치됐다. 그들의 첫 만남, 헤어짐의 아쉬움, 그리움 등이 다양한 표현으로 드러났다. 금봉 낭자의 목을 길게 표현한 작품에서는 그녀의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지 잘 알 수 있다. 입에는 나지막이 ‘울고넘는 박달재’의 가사가 읊조려진다. 조선시대 중엽 한 사랑이야기가 노래로 알려지고 많은 이의 입에 맴도니 이곳이 그곳인가 이제야 실감이 든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 온다면 옛 문화를 자연스럽게 눈에 익힐 수 있는 학습장도 되겠다. 연인이 함께 온다면 박달과 금봉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담소를 나눌 수도 있겠다.

[왼쪽부터]성황당 / 공원 내부에 마련된 박달금봉당
마지막으로 박달재를 떠나기 전에 돌 세 개를 던지고 가야 할 곳이 있다. 박달과 금봉의 혼을 기리는 성황당이다. 예부터 성황당을 지날 땐 돌 세 개를 던지고 지나가면 재수가 좋다는 말이 있는데, 성황당 옆으로 돌이 쌓인 것이 꽤 거대하다. 영검하긴 하나보다.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쌓인 돌들이리라.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안정수 취재기자(ahn856@gmail.com)
TIP
[제천 가는 방법]
자가용
* 서울-춘천방면
서울 → 영동고속도로 → 남원주(만종 분기점) → 중앙고속국도 → 제천IC, 남제천IC → 제천
서울 → 중부내륙고속국도 → 감곡IC → 충주 → 제천
춘천 → 중앙고속국도 → 제천IC, 남제천IC → 제천
* 부산 / 대구방면
부산 → 경부고속국도 → 북대구 분기점 → 중앙고속국도 → 남제천IC, 제천IC → 제천
* 강릉방면
강릉 → 영동고속국도 → 남원주(만종분기점) → 중앙고속국도 → 제천IC, 남제천IC → 제천
* 광주방면
광주 → 호남고속국도 중부고속국도(증평IC) → 충주(36번 국도) → 제천
광주 → 호남고속국도 → 88고속국도 → 서대구 분기점 → 북대구 →중앙고속도로 → 남제천IC, 제천IC → 제천
* 대전방면
대전 → 경부고속국도 → 남이 분기점 → 중부고속국도 → 증평IC → 음성 → 충주 → 백운면(박달재) → 제천시내
기차
* 서울 / 경기
청량리 → 제천역 → 서부터미널(직행,시내) → 백운평동하차 → 도보(2km) → 박달재
* 부산 / 대구
부산,대구 → 제천역 → 서부터미널(직행,시내) → 백운평동하차 → 도보(2km) → 박달재
* 대전 / 청주
조치원 → 제천역 → 서부터미널(직행,시내) → 백운평동하차 → 도보(2km)→ 박달재
[박달재 가는 방법]
제천I.C(충주방향) → 38번국도8.5km → 박달재터널 진입 전 우회로
음성감곡I.C → 38번국도(제천방면) → 다릿재터널5.5km → 박달재터널 진입 전 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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