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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셰프의 재해석, 막걸리와 와인 통하다

조회: 1415 추천: 0 작성일: 2012.02.08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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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셰프의 재해석, 막걸리와 와인 통하다




한국 교포가 많이 사는 뉴저지 주 포틀리(Fortlee)에서 온 이제 갓 서른을 넘은 셰프 제임스 폴리나. 3대째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부터 요리를 시작했다는 그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막걸리 주도가 세왕주조를 찾았다. 음식과 술은 일맥상통한다는데, 막걸리와 와인은 더욱 그러했다.





80년 전통의 막걸리 주도가, 세왕주조에 가다

충북 진천에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는 주도가 세왕주조. 이 건물은 빈티지 그 자체다. 양조장 문을 여는 순간 8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한창땐 술 받으러 오는 꼬마며 배달 자전거가 저 끝까지 줄을 섰다는 출납구가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그 옆 벽면에 이런 글귀가 큼직하게 써 있다. ‘술 석 잔을 같이 마시면 크게 통하고, 한 말을 마시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 우리 정서와 술 문화를 너무도 잘 표현한 글귀다. 세계 방방곡곡 술이 있는 곳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다는 미국인 셰프 제임스와 찾아간 세왕주조는 여전히 전통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여 전통주를 만들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양조장이다. 때 아닌 막걸리 붐으로 양조장은 정신없이 바빠 보였지만 80년 전통을 무시할 수 없듯 체계적이고 안정돼 보였다. 발효실 안에 들어서면 콤콤한 막걸리 냄새가 문지방까지 마중을 나온다. 그래봤자 세월이 오래돼 짝이 뒤틀린 유리 미닫이문과 나무 여닫이문이 방패막이의 전부인데 신기하다고 했더니 이 건물은 애초부터 양조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기 때문이란다. 낮에 강에서 산으로 바람이 불었다가 밤에 산에서 강으로 바람이 부는 지형적 특성을 살려 지었단다. 저절로 인공적인 환기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도 환기가 이뤄지는 것. 게다가 천장에 왕겨를 쌓아놓아 술 발효에 딱 좋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셰프 제임스 폴리나는… 미국 뉴저지 주 포트리에서 온 젊은 셰프 제임스는 3대째 가업으로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는 폴리나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부터 서빙을 도왔고, 열한 살 때부터 요리를 시작, 열일곱 살에는 푸드&베버리지 담당 지배인이 됐다. 자신의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의 반 이상이 한국 교포들이었는데,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으니 한국에 분점을 내라는 권유를 수차례 받아왔다. 피노 그리지오 품종의 스파클링 화이트와인 ‘보가(VOGA)’를 국내에 론칭한 (주)인덜지의 젊은 CEO이자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 중인 오너 셰프.




[왼쪽]
막걸리는 녹두빈대떡이나 두부처럼 단백질 성분을 함유한 안줏거리와 잘 어울린다고 한다. 탄수화물의 막걸리와 단백질 안주를 같이 먹으면 영양학적으로도 보완이 되고 곡주 특유의 맛을 살려준다. 우리 선조들은 예전부터 과학적인 원리를 터득했던 듯.
[오른쪽]
증기로 쪄낸 고두밥을 식혔다가 이틀 정도 종균실에서 배양한 다음 항아리에 담고 물을 잡아 이틀 더 묵히면 막걸리가, 열흘 정도 묵히면 청주가 된다. 좋은 막걸리는 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이 잘 어우러져 감칠맛이 난다고.




한국형 와이너리와 막걸리의 매력에 빠지다


막걸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 듣고 떠난 셰프의 양조장 견학(?)은 기대 이상이었다. 제임스는 20여 년 동안 푸드 컨설턴트, 소믈리에, 믹솔로지스트(칵테일 만드는 사람), 파티 플래너, 오너 셰프까지 지내면서 세계의 거의 모든 종류의 식음료 비즈니스를 경험했는데, 막걸리 만드는 과정을 보며 와인과 막걸리가 일맥상통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하루~열흘까지 발효 과정을 거치고 있는 막걸리와 청주를 일일이 맛보면서 수많은 와이너리에 가본 경험과 세왕주조 양조 과정을 비교했다.
“덕산막걸리와 덕산청주는 세계 어느 나라에 내 놓아도 손색없는 훌륭한 술이라고 생각해요. 요리할 때 사용하면 좋을 덕산명주, 친환경 흑미로 만들었다는 청주 흑비, 한약재를 넣어 만들어 달지 않아 좋은 천년주 등 맛이 디테일하게 살아 있네요. 양조장 역시 유니크하고요. 번듯한 현대식 시스템을 갖추진 않았지만 한국의 전통 술이라는 걸 생각해볼 때 그 제조 과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데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캘리포니아에 있는 와이너리에 갔을 때 숙성 창고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2명의 직원이 죽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창고에서는 시금털털한 막걸리 냄새 말고는 별 냄새가 안 나네요. 80년 전에 지은 양조장이란 게 믿기지 않아요.” 막걸리와 청주는 그 종류가 딱 한 가지라고 생각했는데 6~16도까지 세밀한 도수 차이는 물론 한약재와 쌀의 종류를 달리한 것까지 선택의 폭이 그토록 넓다는 게 감동적이다. 세왕주조에서 그동안 생산한 여러 가지 전통주 맛을 보면서 셰프는 미세한 맛의 차이를 감지했는데, 대중적인 맛을 맞추기 위해 인공 감미료를 넣은 술을 마셨을 때는 영락없이 얼굴을 찌푸렸다.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서양인들을 겨냥한 술을 출시할 때는 이처럼 훌륭한 막걸리와 청주의 맛 그대로를 살려주기를 진심으로 부탁했다.




종국실과 발효실 벽면이 새까만 것을 보고 비위생적이라고 지적했더니 때가 아니라 흑국·백국 균이 피어오른 것이라고. 이걸 닦아내면 지금의 덕산막걸리 맛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왼쪽]
완성 단계의 막걸리가 담겨진 항아리에 코를 가까이 대고 5초 정도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 막걸리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단숨에 콧속으로 옮겨가는데 이 느낌이 참 묘하다.
[오른쪽]
1935년에 들인 술 항아리를 아직도 쓰고 있다. 
 


[가운데]
젊은 사람들의 감각에 맞춰 막걸리 패키지 디자인을 고민하는 중이다. 이규행 대표가 막걸리를 눕혀놓고 살짝 눌러 술이 새는 것을 보여주며 큰 병에 든 막걸리가 맛있다고 귀띔했다. 뚜껑의 크기가 똑같은 경우 큰 병에 들어 있는 막걸리에서 탄산이 덜 빠져나간다는 것.
[오른쪽]
발효시킨 막걸리는 중간에 한번 섞어주는데 와인 만들 때의 펀칭 다운(Punching Down)이라는 기술과 방법이 흡사하다.




막걸리와 어울리는 안주

막걸리도 맛이 다양하기 때문에 단맛이 나는 막걸리에는 주로 고소한 맛이 나는 안주를 곁들이면 단맛을 어느 정도 감소시켜 입 안에 부드러운 풍미가 감돈다. 녹두빈대떡, 파전 등이 대표적인 찰떡궁합 안주. 또 막걸리는 주로 탄수화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맛과 신맛이 공존한다. 수육, 홍어회 등이 영양 균형을 맞춰준다. 과일 안주는 별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


제임스가 말하는 한식의 세계화

홍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막걸리와 홍어는 궁합이 잘 맞는다. 사실 외국인 셰프에게 삭힌 홍어회는 좀 과하다 싶어 메뉴에서 뺄까도 했었다. 하지만 이렇듯 막걸리 하면 홍어, 홍어 하면 막걸리가 떠오를 정도로 맛이 잘 어우러지는 조합이라 막걸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경험해봐야 할 관문으로 정했다. 사전에 이야기하지 않고 홍어회무침 접시를 쑥 내밀었는데 반응이 의외였다. 서양에도 비슷한 요리가 있다는 것. 그 톡 쏘는 맛을 그저 강한 비니거 소스의 맛이라고 생각하는 게 신기했다. 이렇게 선조 때부터 막걸리와 함께 먹었던 우리 음식을 제임스에게 선보이며 서양인의 입맛에 맞도록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었더니 이대로 좋은데 왜 바꾸려 하느냐고 반문했다. 서양인들은 대부분 너무 매운 건 못 먹으니까 약간 덜 맵게 하는 정도지 한국 음식의 장점을 아예 서양식으로 바꾸려고 하지 말라는 거였다. 너무나 맛있는 한국 음식이 있는 그대로 세계 여러 곳으로 뻗어나간 후에는 저절로 그 나라의 실정에 맞춰 변할 테니 그것은 그들 몫으로 남겨두라고 조언했다.


[왼쪽부터]두부와 볶음김치 / 녹두빈대떡


[왼쪽부터]오징어무말랭이무침 / 도토리묵과 오이무침, 수육과 묵은지&부추무침



제임스가 재해석한
홍어 세비셰 with 스파클링 화이트와인

홍어회무침을 먹자마자 페루에서 먹었던 세비셰를 떠올렸다는 제임스. 세비셰는 신선한 채소와 날생선을 함께 양념한 요리인데 식초를 가미해 숙성시킨 해산물 애피타이저쯤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한국인 중에도 홍어회를 못 먹는 사람이 많은데 제임스는 의외로 삭힌 홍어에서 느껴지는 톡 쏘는 맛을 식초의 강한 맛 정도로 생각했다고. 매운 한국식 양념 대신 감귤 주스, 소금, 후춧가루 등으로 간을 한 후 파프리카 가루, 양파, 미나리, 고수잎과 함께 버무려 서양식 홍어회무침을 만들었다. 이 메뉴에는 스파클링 화이트와인을 곁들여 먹으면 톡 쏘는 맛이 잘 어우러진다.


제임스가 재해석한
해산물 막걸리 진저 수프


막걸리, 생강, 마늘을 냄비에 넣고 간장으로 간해서 알코올이 날아갈 때까지 끓이다가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 신선한 해산물(조개, 홍합, 흰살 생선 등), 양파, 홍고추와 함께 찜통에 쪄낸 국물 요리. 평소에는 해산물로 찜 요리를 할 때 사케를 이용했는데 막걸리로 해보니 색다른 맛이 난다고. 막걸리 특유의 단맛을 조금 줄이기 위해 생강과 마늘을 함께 사용했고, 찜통에 물을 넣고 약간의 막걸리를 더해 찌는 동안 해산물에 막걸리 향이 잘 배도록 했다.


제임스가 재해석한
주꾸미 쿠스쿠스 with 막걸리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 서양 음식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대번에 주꾸미 쿠스쿠스(으깬 밀가루 혹은 그것을 이용해 만든 요리)를 만들어 내왔다. 올리브유, 허브잎, 귤껍질로 밑간한 주꾸미를 불에 올려 2분 정도 구운 후 으깬 밀가루 위에 올린 지중해식 요리로, 달착지근한 곡주인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단다.


[왼쪽부터]홍어 세비셰 with 스파클링 화이트와인 / 해산물 막걸리 진저 수프 / 주꾸미 쿠스쿠스 with 막걸리




[출처] 제이콘텐트리 레몬트리 | 기획 정미경 | 사진 이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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