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유진하우스

1960년대의 서울 그리고 혜화동
서울대학교가 관악구가 아닌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시절이 있었다. 1940년대, 해방 전후 시기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한 학자는 1960년대에 서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철학자이자 수필가로 알려진 우송(牛松) 김태길 선생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살았던 집이 바로 이곳, 한옥유진하우스다. 집은 1940년대에 세워졌으니 벌써 70년이 조금 넘었다. 고택과 같은 웅장함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현대식 주택에 비하자면 더없이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풍기는 'ㅁ'자 미니 한옥이다. 마당은 서울에 있는 보통 집들이 비해 넓은 편이고 사계절 내내 햇살이 잘 들며 날씨의 변화에 따라 늘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종로구 1호로 등록한 최초 한옥체험살이
'유진하우스'라는 이름으로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지금의 집 소유주는 5년 전 이 한옥을 구입해 여기저기를 보수했다. 일본, 중국 등지의 외국에서 오랜 타향살이를 하고 돌아왔다는 이력 때문인지, 주인은 어릴 적 살았던 한옥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고자 이 집을 구입했다. 그리고 단출한 세 식구가 살기에는 조금 큰 듯한 느낌이 들어 집을 만인에게 공유하기로 했다.
마침 그해 2009년 가을에는 한옥체험업 관련 법이 정립되던 시기였기에 주인장은 망설이지 않고 종로구에서 최초로 체험주택 등록을 마쳤다. 이로써 유진하우스는 종로구 제1호 '한옥체험살이'로 거듭난다.
한옥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보수를 시작했지만 편의를 위해 최신식 화장실이나 외풍을 막아줄 현대식 창틀 등을 갖추었다. 묵는 손님들은 오히려 이런 부분을 높이 사겠지만 정작 주인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한다. 하지만 외향적으로는 지붕의 서까래를 이중으로 처리한 겹처마, 건물의 벽이나 기둥에 새긴 주련(柱聯) 등을 살리어, 고풍스러운 한옥을 표현하였다.

한옥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공간
현재 유진하우스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외국인 손님 비율이 더 높다. 그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싶었다는 주인장은 다양한 물건들을 마련해 집안 곳곳에 비치했다. 마당에 들어서면 대나무로 짠 듯한 다양한 크기의 채반과 장이 담긴 항아리, 고운 빛깔의 사기그릇 등이 보이고 벼루나 붓과 같은 전통 문방구와 탈 등으로 벽면을 장식했다. 손님들이 묵는 방에는 기본적으로 전통 반닫이나 문갑, 자개장 등의 고가구를 들였으며 기타 유기식기나 놋그릇 등도 구경할 수 있어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또, 한 번 묵고 간 손님들과는 SNS를 통해 계절별로 변하는 한옥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매일 선물하고, 소통한다.
이곳 유진하우스는 구조가 꽤나 오밀조밀한 편이다. 크기가 작고 아담한 방들이 여럿 있어서 간혹 몇몇 단체에서 통째 빌려 묵기도 한다. 대청마루를 끼고 있는 안방과 건넌방, 아래채가 있는가 하면 별헤는방, 철학하는방, 사색의방 등의 이름을 붙인 공간들도 있다. 김치 만들기, 한복 및 한글 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갖추어져 있으니 한옥 갤러리와 같은 아늑한 공간에 묵고 싶다면 충분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