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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래 1945년 광복을 맞기까지 35년간 일제는 강압적인 방법으로 식민 통치를 하였다. 일제는 우리나라에서 전쟁에 필요한 사람과 물자를 강제로 끌고 가고 빼앗아 갔다. 많은 한국인들이 전쟁터로 끌려갔고 광산이나 공장, 공사 현장으로 보내져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다. 독립운동가도 아니고, 애국열사도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때 이름 없이 스러져간 한 많은 민중들. 그들의 흔적들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여수 마래터널은 그야말로 민중들의 피와 땀, 한과 눈물로 깎아 만들어낸 암반 터널이다. 이 터널은 일본이 군수물자 등을 나르기 위해 만든 것으로서 힘없는 우리 민중들이 강제 동원되어 노역한 현장이다. 마래터널을 빠져나오면 한국전쟁 당시 여순사건으로 죄 없는 마을 주민들이 학살당한 여순사건의 현장을 만나게 된다. 이밖에도 진남관, 충민사 등 조선시대에 왜적과 맞서 싸운 충무공 이순신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여수다. 공교롭게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8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전남 여수 마래터널을 찾은 날이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동원되어 마래터널을 뚫은 민중들의 한이 서린 곳이기 때문일까. 회색빛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마래터널 입구를 적시는 모습마저 스산하다. 여수시 만덕동에서 만성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을 통해 지날 수 있는 마래터널. 보통 마래2터널이라고 하나 마래큰터널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마래1터널과 구분하기 위한 것. 이 터널을 통과하는 차량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차량들은 속도를 줄이고 주춤거렸다. 터널 어둠 속으로 차를 서서히 밀어 넣으니 터널 천장에 형광빛의 표시등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마래터널은 길이 640미터, 높이 4.3미터이기 때문에 두 대의 차량이 동시에 지날 수 없는 좁은 폭을 가졌다. 그래서 오가는 차들은 양보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 터널을 빠져 나갈 수 없다. 마래터널에 들어간다면 조금 늦더라도 마음을 비우고, 양보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터널에 들어서자마자 앞 쪽에서 전조등 불빛을 깜빡이는 차량이 한 대 마주 들어온다. 오른 편에 보니, 마주 오는 차를 비켜줄 수 있도록 마련된 별도의 공간이 있다. 별도의 공간은 차량 두 세대를 나란히 세울 만큼만 벽면을 더 안쪽으로 깎아 놓았다. 마래터널의 벽면을 쓰다듬어 본다. 손끝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벽면의 질감. 일제강점기 때 한 정, 한 정, 망치와 정으로 깎아 낸 흔적들이 고스란히 손끝을 타고 가슴까지 전해진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에게 가혹한 매질을 하며 이 터널을 뚫었을 것이고, 힘없는 민중들은 손에 피가 나도록 망치질을 했을 비극의 현장. 지금은 마래터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벽면을 맨손으로 깎아 낸 민중들의 피와 땀의 흔적이 손끝의 감촉을 통해 느껴지는 듯하다. 면에는 구멍이 뚫린 곳도 있고, 날카롭게 정으로 긁어낸 자국, 바위가 날카롭게 떨어져 나가 삐죽삐죽한 모양의 질감이 벽면에 가득하다. 어느 곳 하나 매끄럽지 않고 부드럽지 않은 터널 내부. 아마도 어느 곳 하나 피땀 어린 곳이 없지 않기 때문이리라. 가만 보니, 벽면에 조명이 비춘다. 보랏빛이 거친 터널 벽면을 비추는 듯하다가 또 다시 초록빚, 푸른빛 등으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빛깔을 바꿔간다. 벽면을 더듬었던 손을 펴보니, 까만 분진이 묻어있다. 오가는 차량들로 인한 먼지와 매연이 들러붙어서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왠지 당시 민중들의 새까맣게 타들어 간 마음이 마래터널 벽면에 분진이 되어 배어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머릿속을 맴돈다. 마래1터널이 뚫린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이다. 일본은 이 곳을 군량미 창고로 설계하고 2년 후에 건설될 철길로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군량미를 비축하기 위해 미리 창고를 만들어두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터널 옆에 나란히 파고들어 간 2터널은 차량 통행용 터널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단단한 돌산을 맨손으로 뚫어야만 했던 민중들의 눈물로 깎아낸 마래터널. 차량이 터널을 지날 때마다 소음의 울림이 터널 안을 윙윙거리다가 소멸된다. 만성리해수욕장으로 통하는 터널 출구 쪽을 보니, 터널 내부의 어둠에 대비되어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터널 밖으로 나가보니 터널 오른편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다. 마래터널의 어둠 속에서 빠져 나온 건 어쩌면 칠흑같이 어두운 일제강점기 과거의 아픔을 통과해 빛의 세상을 만난 광복을 의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640미터의 길지 않은 터널을 지나왔을 뿐인데, 멈춰진 시간 속에 진공상태로 있다가 현실로 빠져 나온 것처럼 밝은 빛이 낯설다. 넓게 펼쳐진 바다가 평소보다 푸르러 보인다. 터널에서 나와 만성리해수욕장 방향으로 100여 미터 정도 가니 좌측에 만성리 학살지 표지판이 보인다. 1948년 여순사건 부역혐의자로 수용된 민간인들이 만성리 계곡에서 희생된 곳이다. 이 사건이 지난 후 이 계곡을 지나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의미로 작은 돌을 계곡에 던져 넣는 풍속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도 했다고 한다. 여수시 만덕동에서 마래터널을 통과해 나오면, 오른 편에는 바다가 펼쳐지고 조금 더 가다 보면 기찻길과 만난다. “띵띵띵~” 멀리서 기차가 오는지 기차 건널목에서 신호음이 들려오며 신호등은 빨간색으로 바뀐다. 순식간에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기차, 그리고 남은 것은 기찻길 너머로 보이는 작은 해변 마을, 만성리해수욕장이다. 기찻길을 건너 마을 아래로 내려가니, 멀리 바다 위에 어선들이 평화로이 떠 있고, 만성리해수욕장의 해변이 눈앞에 펼쳐진다.만성리해수욕장은 검은모래해변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해변에 검은 모래가 많아서이다. 직접 해변으로 내려가니, 검은 모래보다는 바닷물에 닳고 닳은 자갈돌인 해옥이 파도와 실랑이를 하고 있다. 파도가 해변에 부딪혔다가 해옥들을 쓸고 바다 쪽으로 끌고 가며 도로록, 도로록 해옥 굴러가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다른 해변에서는 온전히 파도의 찰싹거리는 소리만을 들었는데, 이 곳에서는 해옥들이 파도에 쓸려 내려가며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내 인상적이다. 여수는 아직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곳곳에 시간을 뛰어넘어 이순신 장군과 마주할 수 있는 유적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수 군자동에 자리한 진남관은 국보 제304호로서 목조 단층 건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진남관은 조선조 때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에 임진왜란 뒤인 선조 32년 삼도수군통제사 이시언이 건립한 객사이다. 지난 2009년 단청보수 작업을 진행했던 진남관은 더더욱 선명한 색으로 찾는 이들을 반긴다. 진남관은 팔작지붕으로 양 측면은 합각마루이고, 내림마루와 귀마루로 이어져 있으며 처마는 겹처마에 곡선이 매우 아름다운 전통적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 기둥은 처마기둥 40개와 2개의 최고주, 내진주 26개로 모두 68개의 기둥이 있는데 그 수령이 300년에서 400년이나 되는 소나무들로 만들어져 둘레가 2미터에서 2.7미터에 달한다. 성인 남자가 감싸 안아도 손이 맞닿기 어려울 정도다. 진남관에서 만난 한 여수시노인복지회관 문화재 해설사는 일반 관람자들이 잘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는 진남관 단청에는 용형상의 조각이 있다는 것은 일반인들도 쉽게 찾고, 알고 있지만 봉황형태의 조각도 단청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라며 봉황이 있는 자리를 손으로 가리킨다. 진남관을 마주 보았을 때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 처마 밑을 보면 두 마리의 봉황 조각이 나란히 있다. 그는 이어 보통 이러한 전통 건축물에 용이 있는 것은 흔하지만, 봉황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진남관을 찾는다면 처마 밑에 숨은 봉황을 찾아봐도 좋을 듯싶다. 진남관 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또 한 가지는 석인상이다. 석인상은 전남유형문화재 제 33호로 거북선 등의 조선이 한창일 때 왜적들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해 높이 2미터의 석인상 7구를 만들어 세워 놓고, 마치 사람이 서 있는 양 의인전술을 펼친 역사적 증거물이다. 석인상 중 6구는 없어지고 현재는 1구만 남아 진남관 안에 서 있다. 진남관 입구에는 진남관의 역사와 임진왜란에 대해 한눈에 볼 수 있는 유물 전시관이 있다. 전라좌수영성, 진남관 거북선 등의 모형을 비롯하여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진남관을 둘러봤다면 충민사와 석천사로 발길을 돌려보자. 이 곳 역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충민사는 여수 덕충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당 제1호라는데 의의가 있다. 아산 현충사보다 103년 전에 지어진 곳으로서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선조 34년(1601)에 영의정 이항복의 계청에 따라 통제사 이시언이 건립하였다. 충민사 서쪽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석천사라는 절이 있다. 작은 암자인데 이 곳은 정유재란이 끝난 3년 후(1600년)에 옥형 스님과 자운 스님이 이순신 장군의 인격과 충절을 기리는 뜻으로 충민사 곁에 암자를 세운 것이다. 석천사라는 이름은 충민사 뒷편 바위 아래 샘이 하나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오동도 선착장에는 보트를 탈 수 있는 곳과 유람선을 타는 곳이 구분되어 있다. 유람선을 타기 위해서는 보트 선착장을 지나 한참을 더 들어가야 된다. 일반 관광객 차량은 유람선 선착장까지 들어갈 수 없다. 오동도 유람선의 매력은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볼 때와는 다르게 바다 가운데서 육지의 이모저모를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유람선이 파도의 출렁임에 넘실거리며 중심을 잡는다. 유람선 선장이 정겨운 남도 사투리로 안내를 한다. 중간 중간 실소를 머금게 하는 입담도 유람선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유람선을 타고 가며 볼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꽤 많다. 여수 돌산대교를 건너기만 했다면, 바다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돌산대교의 모습이 이색적으로 느껴질 것이다.거북선대교라 불리는 제2돌산교의 모습도 보인다. 여수시 종화동에 있는 무인등대인 하멜등대는 높이 10m로 광양항과 여수항을 오가는 선박을 위해 만든 것이다. 이 등대는 해가 지면 자동으로 불을 밝히는 무인 등대이다. 하멜등대가 만들어진 유래는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인 핸드릭 하멜이 여수 지역에 머무르다가 현종 7년에 네덜란드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4년 12월에 세워졌다. 이 밖에도 멀리 보이는 진남관 등 이순신과 얽힌 유적들도 보인다. 1시간여를 여수 앞바다를 항해한 유람선은 곡선을 그리며 다시 출발했던 유람선 선착장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역사적으로 사연 많은 여수를 한 바퀴 빙 둘러 본 느낌이다. 마래터널, 만성리 학살터, 왜적들의 침략지 등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여수. 굴곡이 많았던 곳이니만큼 그 생채기를 함께 보듬고 빛으로 나아가는데 함께 하고픈 도시, 그곳이 바로 여수다. 오동도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오동도로 238-32 -문의 : 여수시 관광문의 1899-2012 http://cafe.daum.net/soungmun/ 용문사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문사길 91 -문의 : 061-682-6169 향일암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로 60 -문의 : 향일암 종무소 061-644-4742 ※ 위 정보는 2016년 9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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