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낮보다 한참 길어진 계절이다. 그만큼 야경을 즐기기에 좋은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야경은 말 그대로 밤의 풍경이다. 달빛이나 인공조명 속에 드러나는 풍광은 절제미로 가득 차 여행객들에게 보여줄 곳은 보여주고, 생략하고 싶은 곳은 보여주지 않는다. 야경을 도심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 시내 곳곳의 유적지마다 야간 조명을 설치해 한밤에도 은은히 광채를 발하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감상할 수 있다. 2010년 경주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관광객이 급증했다. 이어서 KTX 신경주역의 등장으로 기차여행이 한결 편리해져 경주에 관광의 기운이 되살아났다. KTX를 타면 서울역에서 신경주역까지 불과 2시간 정도밖에 안 걸린다. 게다가 2011년 2월 경주의 남산 월성유적지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한국관광 으뜸명소 8곳' 중 하나로 뽑혀 올 한 해 경주시는 여행객들로 넘쳐났다. 차분한 발걸음으로 문화유적을 답사하면서 정신없이 보낸 한 해를 마무리하고 알찬 새해를 준비하고 싶다면 경주로 최소한 1박2일 여행을 떠나보자. 그곳에 가면 신라 역사의 장구한 숨결이 들리고, 템플스테이를 하는 사찰들이 반겨주는가 하면, 일출이 장관인 동해바다가 기다린다. 어디 그뿐이랴. 한밤에는 시내에서 야경 투어의 묘미에 젖어볼 수도 있다. 경주 여행은 경주시내권, 불국사권, 보문관광단지권, 남산권, 서악권, 북부문화권, 동해권 등등 권역별로 나누어 다니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경주시내권의 명소로는 대릉원을 비롯해 첨성대, 황남동고분군, 경주 동궁과 월지(예전의 안압지), 국립경주박물관, 계림과 월성, 분황사, 황룡사지, 경주 최씨 고택 등이 손꼽힌다. 이 명소들에는 문화관광해설사들이 상주하면서 여행객들에게 신라 역사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려준다. 신라는 한반도 남동쪽에 있던 진한의 12국 가운데 경주 지역의 사로국을 모체로 발전했다. 경주는 신라의 건국 때부터 멸망 때까지 약 1천 년간 신라의 수도였다. 삼국시대 이 도시의 이름은 서라벌 또는 계림이었다. 고려 태조 18년(935)에 경주로 개칭되고 고려 성종 때인 987년에 동경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고려 현종 때인 1012년 다시 경주로 개칭돼 오늘날까지 그 지명이 이어져 오고 있다. 경주 시내에서 야경 투어를 즐기려면 대릉원에서 출발, 첨성대를 거쳐 경주 동궁과 월지의 밤 풍경을 감상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야경 투어를 하기 전 오전부터 오후 서너 시까지는 경주 시내의 다른 권역을 여행하도록 한다. 만일 오후에 기차를 타고 신경주역이나 경주역에 도착한다면 시내버스를 이용해 대릉원 후문까지 가면 매우 편리하다. 일단 대릉원에 들어갔다면 가장 먼저 천마총 내부를 살펴보고 밖으로 나오는 시간을 일몰 무렵으로 맞추면 좋다. 신라 제22대 지증왕의 무덤으로 짐작되는 천마총은 1973년 발굴 당시 여러 부장품 가운데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그림이 발견돼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천마도(국보 제207호)에 그려진 천마는 하얀 털, 다리 사이로 난 날개, 바람에 휘날리는 갈기, 하늘로 솟은 꼬리, 불을 뿜듯 길게 내민 혀를 갖고 있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로 금관, 관모, 나비모양관식, 금제 허리띠, 금팔찌와 은팔찌, 금반지, 가슴걸이, 말갖춤(마구) 등이 있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천마총 내부를 답사하고 밖으로 나오는 시각을 오후 5시 안팎으로 잡는 것이 좋다. 황남대총 앞 연못 주변에서 천마총을 바라보면 부드러운 봉분 뒤로 해가 걸리면서 하늘이 붉게 물드는 모습,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국가, 인간사 희로애락을 품은 고분, 세상을 밝혔다가 말없이 지는 해…. 그것들과 한 마디 교감의 언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여행자일까. 천마총에서 나와 뒤로 돌아서면 두 개의 능이 붙어 있는 황남대총을 만나게 된다. 동서 길이 80m, 남북 길이 120m, 봉분 높이 25m로 신라의 고분 중 가장 거대하다. 1975년 발굴조사 때 남쪽의 능은 남자, 북쪽의 능은 여자의 것으로 드러났다. 누구의 무덤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황혼 무렵, 천마총 쪽에서 황남대총을 대하면 따스한 겨울 햇살이 무덤을 감싸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한동안 그 안락함에 시선을 빼앗기다가 발걸음을 옮겨 황남대총 뒤로 돌아가 본다. 시내를 밝히는 인공조명 불빛이 묘한 색감을 띠며 하늘로 분산된다. 무덤을 비추는 가로등의 노란빛과 밤하늘로 번져가는 보랏빛의 경계 어디쯤에 생과 사의 갈림길이 놓여 있는 것만 같다. 고분 사이로 난 산책로를 천천히 걷고 미추왕릉을 지나 대릉원 정문으로 나와서 길을 건넌다. 그곳에 첨성대가 야간 조명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다. 역시 첨성대는 한낮보다는 밤중에 바라보는 맛이 더 각별하다. 낮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차분하게 한 바퀴 돌면서 살펴보기가 어렵지만 야간에는 그렇지 않다. 마침 하늘에 달이라도 떠 있다면 첨성대의 역할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첨성대 옆 고분군과 월성의 숲이 야간 조명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도 꼭 사진에 담아오기를 권한다. 첨성대(국보 제31호)는 제27대 선덕여왕 16년(647)에 축조되었으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 첨성대는 총 361개 반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음력으로 따진 1년의 날수와 같다. 원주형으로 된 전체 석단은 27단이다. 맨 위 우물 정(井)자 모양의 돌까지 합치면 모두 28단이고 이는 기본 별자리 28수를 상징한다. 첨성대 중간의 네모난 창은 별을 관측하는 사람들의 출입구였으며, 이 창문 높이까지 안에는 흙으로 채워져 있다. 이 창문의 아래위 석단은 각각 12단으로 이는 1년 열두 달, 24절기를 의미한다. 창문은 정확히 남쪽을 향하고 있다. 경주 야경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경주 동궁과 월지이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압지로 불렸으나 2011년 7월부터 경주 동궁과 월지로 부르기로 했다. 고요한 월지 수면에 비친 화려한 동궁의 모습은 누가 찍어도 작품으로 남을 만큼 아름답다. 제1건물에서부터 삼각대를 메고 걷기 시작, 제2건물, 제3건물을 지나면 연못을 사이에 두고 궁궐의 반대편인 숲길 산책로로 접어든다. 걷다가 문득문득 고개를 돌려 연못에 비치는 단청이 화려한 궁궐 건물과 화강암 축대를 감상해본다. 풍요롭던 신라시대의 어느 하루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에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월지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궁궐을 세우면서 조성한 인공 연못이다. 연못 주위에는 임해전이라는 궁궐과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다. 현재 3동의 건물이 복원되었다. 이 연못에서 출토된 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 전시되어 있다. 혼자서 야경 투어를 즐기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사단법인 신라문화원이 진행하는 '신라달빛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본다. 문화유적 답사는 물론이고 백등과 함께하는 탑돌이, 국악 공연 감상, 차 마시기, 천체 관측 등으로 구성된다. 이 행사는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월 2회, 매월 첫째 셋째 주 토요일에 진행된다. 경주 여행 중 한정식을 맛보고 싶다면 경주 최 부잣집 이야기가 전해오는 요석궁을 추천한다. 노송이 우거진 정원과 은은한 국악이 한정식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음식을 상에 차려주는 종업원들은 특색 있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친절한 소개를 잊지 않는다. 요석궁이라는 명칭은 이 집터에 신라시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 담겨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 경주시에는 '천년마중택시'라는 것이 있다. 예약을 하면 신경주역, 버스터미널, 각 호텔 등으로 마중을 나오며 운전기사가 유적지 안내까지 해준다. 현재 30여 대의 천년마중택시가 운행되고 있다. 이용요금은 시내권 8시간 기준 10만 원 선이며, 여기에 양동마을과 감포를 모두 돌아본다면 15만 원 선이다. 신라문화원 054-774-1950 요석궁 054-772-3347 천년마중택시 054-775-7979 글, 사진 : 유연태(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6년 5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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