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의 5월은 만춘(晩春)의 계절이 피워낸 꽃들로 환하다. 치렁치렁 만개한 이팝나무꽃들이 그림 같은 연못 양량지(陽良池)에도, 밀양댐으로 이어지는 길가에도 한가득이다. 아름다운 5월. 향기를 뿜어내는 것이 어찌 꽃뿐일까. 깊은 절집 표충사로 드는 숲에서도, 예림서원의 반들반들한 마루에서도, 만어사의 이끼 낀 바위에서도 오래된 것들이 봄볕 속에서 익어가는 그윽한 향기가 묻어난다. 간질간질 피어나는 매화가 3월에 봄의 기미를 처음 알린다면, 일순 화르르 피었다가 꽃비로 지는 벚꽃은 4월에 봄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봄이 더 깊어지는 5월에는? 단연 이팝나무 꽃이다. 순백의 꽃을 치렁치렁 피워 내는 이팝나무 꽃은 화려하기가 벚꽃 못지않다. 만개한 이팝꽃은 가지마다 소복하게 쌓인 눈처럼, 둥실 뜬 흰 구름처럼 화려하다. ‘이팝’이란 이름의 유래로 전해지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잔 꽃송이가 한꺼번에 피어나는 것이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 쌀밥처럼 보여서 ‘이밥나무’라고 했다가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는 게 하나.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입하(入夏)에 꽃이 피어 입하목(入夏木)이라 불렀고, 입하가 ‘이파’를 거쳐 ‘이팝’으로 되었다는 얘기가 다른 하나다. 이팝나무 꽃이 가장 화려한 풍경을 빚어내는 곳이 경남 밀양에 있다. 가지 가득 피는 꽃의 절정은 모여서 필 때 가장 화려하다. 밀양에는 이팝나무가 도처에 있다. 모여서 화려하게 피는 곳도 있고, 띄엄띄엄 그윽하게 피우는 곳도 있다. 밀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팝나무는 부북면 화악산 아래 연못 양량지에 있다. 양량지는 ‘위양지(位良池)’란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연못 앞에 ‘선량한 백성들을 위해 축조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란 그럴듯한 설명과 함께 ‘위양지’란 안내 현판을 세워두었지만, 그건 근래 바뀐 이름이고 본래 이름은 양량지다. 제멋대로 이름을 바꾸고 ‘선량한 백성’ 운운하는 낯간지러운 설명을 매달아둔 셈이다. 신라 때 축조됐다는 양량지는 논에 물을 대던 수리 저수지였지만 인근에 거대한 가산저수지가 들어서면서 쓸모를 잃었다. 논에 물을 대는 대신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으니 ‘쓸모가 바뀌었다’고 하는 쪽이 맞겠다. 아름드리 왕버드나무와 소나무들로 울창한 숲을 두르고 있는 양량지의 늦봄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 같다. 양량지의 풍경을 완성하는 건 정자다. 연못에 떠 있는 섬 하나에 1900년에 지어진 안동 권씨 문중 소유의 정자 ‘완재정’이 있다. 당시에는 배로 드나들었다는데 지금은 정자로 건너가는 다리가 놓였다. 노 저어 배로 드나들었던 연못 속의 정자라니…. 누가 이런 기막힌 곳을 정자 자리로 택했을까. 밀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팝나무는 완재정 담 너머에 있다. 정자 담장을 끼고 있는 아름드리 이팝나무가 꽃을 피우면 실가닥 같은 순백의 꽃들이 가지마다 터져 세상이 온통 환하다. 정자로 건너가는 다리 주변에도 이팝나무 몇 그루가 더 있고, 담장 한쪽에는 이팝나무에 질세라 찔레꽃이 흰 꽃을 화려하게 피워낸다. 이팝나무와 찔레꽃이 고요한 수면에 거울처럼 비치는 모습은 황홀하다. 밀양의 이팝나무 명소 또 한 곳.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밀양에는 이팝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길이 있다. 밀양 단장면 아불 삼거리에서 밀양댐 아래로 이어지는 1051번 지방도로다. 이 길 양쪽으로 이팝나무가 도열해 있는데 나무가 늘어선 거리만 5km다. 한쪽에만 이팝나무가 심어진 곳도 있지만, 만개한 꽃을 매단 이팝나무가 길 양쪽에서 가지를 맞잡으면서 꽃 터널을 이룬 구간도 있다. 단장천의 물길을 끼고 밀양댐 아래까지 이팝나무 흰 꽃이 구불구불 긴 띠를 이뤘다. 나무마다 만개한 꽃의 모습이 마치 설경(雪景)을 연상케 한다. 이팝나무 가로수는 밀양댐을 완공한 2001년 무렵 심어진 것. 당시 심었던 묘목의 수령을 감안한다면 이팝나무의 나이는 대략 20년을 헤아리는데도, 성장이 빨라서 가지가 길 양옆을 가득 덮고 있다. 이팝나무의 평균 수명은 자그마치 500살. 지금도 좋지만 나무들이 한 해 한 해 더 크게 자랄수록 이팝나무 꽃 터널도 더욱 화려해지고 깊어지리라. 꽃 좋다고 꽃만 보고 올 수는 없는 일. 밀양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표충사와 만어사, 그리고 영남루다. 표충사. 밀양에서는 ‘표충’이란 이름이 보통 헷갈리는 게 아니다. 절 사(寺)자를 쓰는 표충사(表忠寺)가 있고, 사당 사(祠)자를 쓰는 표충사(表忠祠)가 있다. 여기다가 ‘표충비’와 ‘표충서원’도 있다. 밀양에서 ‘표충’이란 밀양 출신 조선시대 승병장 사명대사를 기리는 이름. 그 이름이 붙여진 절집과 사당, 서원이 곳곳에 있는데다 그것들이 여기저기로 자리를 옮겨다니는 바람에 더 혼란스럽다. 연원을 파고들자면 더 복잡해지니 이쯤에서 접고 여기서는 절집 표충사 얘기만 하자. 표충사는 단정하면서도 우아하다. 사찰의 직선 공간 배치가 단정함을 보여준다면, 우아한 맛은 전각의 처마 선과 손때 묻은 누각의 마루, 그리고 굽은 기둥이 만들어낸다. 표충사에는 한센병에 걸린 신라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마시고 나았다는 약수도 있고, 260년 된 토종 매실나무도 있다. 표충사 경내에는 희한하게도 서원과 사당이 있다. 불교의 산문 안에 유교를 품은 것이다. 불교는 물론이거니와 유교적 가치까지 실현했던 사명대사의 영향이다. 사명대사는 불법을 닦으며 수도의 삶을 꿈꾸었지만, 나라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조정은 그를 끊임없이 호출했고, 그때마다 그는 고뇌 속에서 그 큰 짐을 기꺼이 졌다. 밀양까지 갔다면 만어사도 빼놓을 수 없다. 해발 670m의 만어산턱밑의 절집 만어사는 마당 아래 비탈에 펼쳐진 너덜겅으로 이름이 난 절집이다. 무너져 내린 큰 돌들이 절집 옆의 비탈면에 가득하다. 그게 무슨 볼거리가 되나 싶지만, 시커먼 돌들이 주르르 흘러내린 형상과 거기 곁들여진 전설이 자못 흥미롭다. 만어산에 살던 독을 품은 용이 부처의 설법으로 제자가 되자, 소문을 들은 용왕의 아들이 자신도 제자가 되길 소원해 수만 마리의 물고기 부하를 이끌고 부처를 찾아 제자가 되길 간청했단다. 그때 용왕의 아들을 따라온 물고기들이 만어사에 당도하자 돌로 변했고 그게 바로 너덜겅의 바위라는 것이다. 신기한 건 너덜겅의 돌들이 서로 두드리면 깊고 맑은 종소리를 낸다는 것. 만어사의 돌들이 ‘종과 경쇠 소리를 낸다’는 얘기는 삼국유사에도 기록돼 있다. 만어사를 찾은 이들은 너나없이 너덜겅의 돌을 두드려 보는데, 모든 돌이 다 맑은 소리를 내는 건 아니다. 바위 표면에 돌이 부서진 흰 가루가 묻어 있다면 그게 곧 여러 사람이 두드려본 자리. 거길 두드리면 영락없이 맑은 종소리가 난다. 하나의 돌도 두드리는 자리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너덜겅 위에 세운 전 각 미륵전 마당의 커다란 바위에서는 서로 다른 일곱 가지 소리가 났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곳은 밀양 여행의 필수 코스인 영남루. 양쪽에 침류당과 능파당이란 건물을 거느린 웅장한 규모의 영남루는 진주 남강의 촉석루,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힌다. 누각은 규모부터 현판의 글씨까지 시원시원하다. 영남루는 밀양강 건너편에서 보는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조명 켜진 영남루를 바라보면서 천변을 따라 느릿느릿 걷는 것만으로도 봄밤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관광 문의 -밀양시청 홈페이지 http://www.miryang.go.kr/ -밀양시 문화관광 http://tour.miryang.go.kr/ -밀양시 문화예술과 055-359-5637 양양지(위양못)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로 273-36 -문의 : 055-359-5641 표충사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문의 : 055-352-1150 만어사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로 776 -문의 : 055-356-2010 출처 : 청사초롱 글, 사진 : 박경일(문화일보 여행전문기자) ※ 위 정보는 2019년 12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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