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과 허준을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이 있을까? 《소설 동의보감》은 밀리언셀러였고, 드라마 <허준>은 그때까지의 시청률 신기록을 갈아치웠으니. 하지만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서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그것들은 아무래도 사실보다는 허구, 역사보다는 흥미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2013년 탄생 400주년을 맞는 《동의보감》에 대해 좀더 정확한 사실, 풍부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서울 강서구의 허준박물관을 찾아가보자. 아이들 손을 잡고 같이 둘러보면 더욱 좋은 곳이다. 구암 허준은 양천 허씨다. 조선의 양천은 지금의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에 해당하는 지역. 강서구의 구암공원 일대는 허준이 태어났고, 《동의보감》을 집필하고, 세상을 떠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지난 2005년 이곳에 허준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허준과 《동의보감》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한의학의 상징이다. 책과 드라마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마주치게 된다. 그러니 허준과 《동의보감》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것은 꼭 필요한 상식일 뿐 아니라 역사적 지식을 쌓는 일이다. 《동의보감》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한의학 지식을 담고 있고, 그것이 태어난 시대적 배경을 아는 것은 바로 그 당시의 역사를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허준박물관은 당시 우리 한의학이 어떠했고, 왕실과 일반 백성들은 어떤 방식으로 병을 고쳤는지 알 수 있게 도와준다. 그것도 딱딱한 설명이 아니라 조선시대 내의원과 한의원의 모습을 정교하게 재현한 미니어처 등을 통해서 입체적으로 보여줘 더욱 좋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허준박물관 탐방에 나서보자. 박물관 매표소를 지나 로비에 들어서면 조선시대 양천 고을의 모습을 재현한 미니어처 뒤로 양천 지역의 역사를 설명해놓은 커다란 안내판이 눈에 띈다. 삼국시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양천의 역사를 일별하고 계단을 오르면 ‘허준기념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시실이 이어진다. 첫 전시실에는 허준의 일생과 《동의보감》 탄생의 배경에 관련된 유물과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임진왜란이 남긴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선조는 허준에게 새로운 의서의 편찬을 명했다. 그것은 허준이라는 탁월한 의원이자 의학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선조가 내려준 의학서 500여 권을 철저히 분석하고 거기에 자신의 임상 경험을 더해, 중국의 의학이 아닌 우리 풍토와 체질에 맞는 의학서를 집필한다. 하지만 《동의보감》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조가 승하하고, 당시 어의였던 허준은 책임을 지고 귀향길에 오르게 된다. 당시에는 왕이 설령 불치병으로 죽었다 하더라도 어의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자 시절 허준의 도움으로 두창(천연두)를 치료했던 광해군이 허준을 유배에서 풀어준다. 그리고 1년 뒤, 허준은 《동의보감》을 완성해 광해군에게 바친다. 동양 의학을 집대성한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여러 차례 간행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체계가 잘 짜여 있고, 각 병마다 처방을 풀이해놓아서 누구나 보고 활용하기 편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동의보감》은 학문적으로 큰 획을 그었을 뿐 아니라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살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동의보감》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전시실에 잘 설명되어 있다. 그전에 먼저 제목의 뜻부터 살펴보자. 《동의보감》의 ‘동의(東醫)’란 글자 그대로 ‘동쪽의 의학’을 뜻한다. 그렇지만 ‘서양 의학’과 대비되는 ‘동양 의학’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할 당시에는 서양 의학이 아직 조선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이때 동의는 중국의 동쪽, 그러니까 조선의 의학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조선을 ‘동국(東國)’, 조선의 의학을 ‘동의’라고 부른 것이다. ‘동의’ 다음의 ‘보감(寶鑑)’은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말을 책에 붙이면 ‘다른 사람이나 후세에 본보기가 될 만한 귀중한 일을 적은 책’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니 《동의보감》은 ‘조선 의학의 정수를 담은 귀중한 책’이라는 의미이다. 《동의보감》은 <내경편>과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 등 다섯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이중 <내경편>은 인간의 오장육부, 그러니까 서양 의학으로 치면 내과를 다룬다. 이어지는 <외형편>은 외형적으로 관찰되는 신체 각 부분들의 의학적인 기능과 질병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머리는 정신의 근본이 위치한 곳으로 하늘을 나타내는데, 여기에는 어지럼증과 두통, 중풍 등이 생기기 쉽다, 하는 식이다. 아이와 함께 보기에 내용이 좀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전시실에는 이런 내용이 그림이나 유물과 함께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으니까. 아빠나 엄마가 조금만 설명해주면 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허준의 일생과 《동의보감》의 내용을 다룬 ‘허준기념실’ 다음에는 ‘약초∙약재실’이 이어진다. 여기선 우리 조상들이 임상적으로 경험한 전통 약초를 비롯하여 약재의 종류와 효능에 대해 알 수 있다. 이 역시 사진뿐 아니라 약재들을 식물 상태로 용액에 담가놓아 이해하기 쉽다. 거기다 우리가 흔히 먹는 쌍화탕이나 십전대보탕에 들어가는 약재들을 볼 수 있어 흥미를 더한다. ‘약초∙약재실’을 지나면 전통 제약기를 이용해 직접 약을 갈아보는 ‘약갈기 체험실’이 나온다. 이곳에서 아이와 함께 한약 냄새를 맡으며 전통 약재를 갈아보는 체험도 기억에 남을 만하다. 이어지는 ‘의약기실’에는 침과 뜸을 비롯한 한의학 의료기구들과 약초를 캐는 채약도구들, 약을 만드는 제약기, 한약을 달이는 약탕기, 약의 무게를 재는 약도량형기 등이 보인다. 기능도 기능이지만 모양이나 문양 등도 매우 아름다운 것이 눈에 띈다. 다음으로 ‘체험공간’에서는 사람의 체질을 네 가지로 분류한 이제마의 ‘사상의학’에 따라 자신의 체질을 알아보고 거기에 맞는 건강 관리 요령까지 알려준다. 아이와 함께 박물관을 둘러본다면 여기서 잠깐 설명이 필요하다. 허준 이후에 한의학에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 바로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다. 사상의학에 따르면 사람은 체질에 따라 태양인과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나뉘는데, 지금도 한의학에서는 사상의학에 따라 체질을 진단하고 약을 쓴다. 여기서 주의할 것 두 가지. 우선 이러한 네 가지 체질에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다른 하나는 여러 체질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 ‘복합체질’도 있다는 사실. 한마디로 이러한 체질론을 맹신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조선시대 내의원과 한의원을 정교하게 재현한 ‘내의원∙한의원실’은 제법 규모가 크다. 건축 구조까지 알 수 있도록 만든 궁궐 내의원 안에는 처방에 몰두하는 어의들, 탕약을 달이는 의녀들, 약초를 다듬는 일꾼들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여기까지 보았다면 전시실은 모두 둘러본 셈이다. 그럼 이제 어두운 실내를 벗어나 옥상정원에서 탁 트인 서울 시내를 감상할 차례. 이곳 ‘약초원’에서는 《동의보감》에 소개된 90여 가지의 약초를 직접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으로 박물관 입구에서 옥상의 약초원까지 허준박물관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맑은 날 아이의 손을 잡고 좀더 걷고 싶다면 박물관 옆에 있는 구암근린공원을 걸으면 된다. 허준과 《동의보감》, 한의학 유물 등 오늘 둘러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허준박물관 주소 : 서울 강서구 허준로 87 문의 : 02-3661-8686, www.heojun.seoul.kr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올림픽대로 → 강서구청IC → 사거리에서 우회전 → 허준박물관
* 대중교통
지하철 9호선 가양역에서 허준박물관까지 도보 10분 소요 시내버스 652, 672, 6631, 6643, 6645, 6712, 1002, 6630, 6657번을 타고 허준박물관 앞에서 하차
2.맛집
수라간 : 한정식 / 강서구 양천로 364 / 02-3663-3500
옛골토성 : 한정식 / 강서구 공항대로 353 / 02-3662-5192 취복헌 : 중국요리 / 강서구 강서로 360 / 02-2668-8885
3.숙소
아바타호텔 : 고양시 일산서구 산현로17번길 7-30 / 031-919-6761
클레오파트라호텔 : 고양시 일산동구 장백로 34 / 031-908-0062
럭셔리호텔 :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224-3 / 031-917-1717
- 글, 사진 : 구완회(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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