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창원까지 남해를 가까이 두고 달리던 2번국도는 진해만을 지나자 내륙으로 파고든다. 2번국도 맛기행 세 번째 지점인 진주에 닿고 나서야 남해가 다시 따라 붙기 시작한다. 진해만 서쪽에서 남해를 향해 튀어나온 고성 때문이다. 2번국도보다 남쪽에 자리한 경남 고성, 이 고성을 지나야 남해와 닿는다. 남해를 향해 툭 튀어나온 고성부터 통영, 거제까지 뻗은 남쪽나라들이 남해 위를 수놓으며 한려수도 물길의 시작을 알린다. 마산(창원)과 더불어 대한민국 대주가들의 파라다이스, 통영과 거제와는 다음을 기약하며 진주로 향한다. 경남 진주. 어떤 고장인가. 진주의 맛을 논하기 전에 일단 ‘진주’를 알아보는 게 순서이기도 하겠지만 이번 2번국도 미식여행은 맛의, 맛에 의한, 맛을 위한 여행인 만큼 맛에서 시작하겠다. 설령 당신이 진주의 ‘남강’조차 모른다고 해도 괜찮다. 진주의 맛이 그가 품은 시간과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진주의 별미는 육회비빔밥과 냉면이다. 먼저 육회비빔밥부터 살펴보자. 육회비빔밥을 별미로 내놓는 고장은 제법 많다. 비빔밥의 고장으로 자리 잡은 전주를 비롯해 조금은 생소한 익산, 함평에도 육회비빔밥이 있다. 아마 육회비빔밥 별미 동네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알고 있는 고장을 중심으로 살펴보자면 이들은 대부분 너른 평지를 품고 있다. 너른 초지에서 소를 키우거나 우시장이 열리는 주변에 자리한다. 소를 키우는 고장, 그 중에서도 소를 잡는 우시장 주변이라. 양반들이야 익혀서든 생(生)으로든 고기의 좋은 부위를 양껏 먹었겠지만 민초들이야 살아생전 고기 한점 제대로 맛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의 좋은 부위는 싹 발라가고 남는 부위들, 버려지기에는 너무 싱싱했으리라. 만날 비벼먹던 나물밥에 잽싸게 올라가지 이게 별미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볼 뿐이다. 비빔밥의 옛 이름은 ‘골동반(骨董飯)’이다. 고기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찬을 밥에 섞어 만든 음식을 뜻한다. 골동반에 대한 기록은 조선 말기에 편찬된 저자 미상의 요리책인 <시의전서>에서 처음 나온다. 한자로 ‘骨董飯’, 한글로 ‘부븸밥’이라고 적었다. ‘밥을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각색 나물을 볶아놓고…. …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 라고 적힌 조리법에서 지금 비빔밥과 비슷한 모양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또 남은 음식은 해를 넘기지 않고 그해 음력 12월30일 섣달그믐에 모두 모아 골동반을 먹었다는 민간풍속도 비빔밥의 역사를 보탠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반찬이 부실하거나 입맛이 없을 때, 있는 반찬을 모두 넣어 고추장에 넣고 슥슥 비벼 언제든 맛볼 수 있는 비빔밥이 되었지만 그의 과거는 의외로 화려하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인 진주비빔밥에 담긴 이야기는 다른 ‘골동반’과는 약간 다르다. 있는 반찬을 모두 넣어 슥슥 비벼 먹는 것이야 비빔밥이 틀림없지만 그걸 먹던 우리 선조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때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년간 지리한 전쟁으로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든 임진왜란. 이 전쟁의 3대 대첩 중 하나가 진주성 대첩이다. 치열한 전투였다. 진주가 지리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길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925년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진주는 경남의 중심이었다. 내륙이면서 남해가 깊게 파고들어 물길과 땅길 모두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진주 서쪽은 군량 보급지인 전라도와도 닿는다. 전장에서 총알만큼 중요한 군량미 보급이 끊긴다면 전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진주성은 왜구들의 조선내륙 진입로인 동시에 군량미 보급지인 전라도와 닿는 통로로 반드시 지켜야 했던 절대 방어선이었던 셈이다. 진주성 전투가 필사적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적장을 품에 안고 남강에 뛰어들었다는 논개의 충절을 품은 진주성 소속의 촉석루 의암도 한몫 더한다. 진주성은 한쪽에 남강을 끼고 자리한다. 진주시의 남쪽으로 흐른다고 ‘남강’이라 이름 붙은 이 강 역시 얘깃거리가 많다. 진주성과 함께 임진왜란을 지켜보던 물줄기다. 임진왜란 당시 12만 왜군에 맞선 7만 조선군과 백성은 남강에 등을 띄워 왜적의 침입을 막는 동시에 가족에게 안부를 전했다. 매년 가을 이면 진주 남강을 빛으로 물들이는 유등축제도 여기서 유래했다. 다시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로 돌아가 보자. 싸우는 남자들을 위해 아녀자들은 그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었다. 반찬과 밥을 넣어 한그릇에 해결할 수 있는 비빔밥은 최상의 전투음식이었으리라. 그렇다고 만날 나물밥만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힘을 내는데 필요한 단백질은 갓 잡은 소의 싱싱한 고기를 더해 보충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서 고기라도 한번 맛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거나 진주성 전투가 진주비빔밥을 육회비빔밥으로 고정시킨 장본인이다. 비빔밥 한 그릇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맛이야 기본은 넘지만, 진주비빔밥은 감히 맛을 논할 음식이 아닌 듯 싶다. 진주비빔밥을 맛보려면 진주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중앙시장을 찾으면 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천황식당><제일식당> 등 진주비빔밥 전문점들이 자리한다. 갖은 나물을 기본으로 하면서 여기에 신선한 육회를 더한다. 여기에 진한 선짓국이 탕국으로 함께 나온다. 갓 잡은 소에서 얻은 신선한 피로 만든단다. 진주성 전투에서 싸우던 우리 선조들도 이 따끈한 선짓국을 맛봤을까. 진주성 전투는 2번 있었다. 김시민이 이끌던 1592년 1차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다음해 전투에서 7만 민·관군이 순절했다. “랭면 가운데서 제일로 일러주는 것이 평양랭면과 진주랭면이었다.” 1994년 발간된 <조선의 민속전통>이란 북한과학백과사전의 내용이다. 평양냉면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진주냉면은 들은 바, 본 바 없다. 냉면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좋다고 달려드는 기자이건만 기사 쓰는 이 순간도 두렵다. 과연 진주냉면의 맛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맛을 제대로 알아야 표현할 텐데 평생 단 한번 맛본 진주냉면의 맛을 깨달을 길이 없다. 사실 진주냉면이 왜 이렇게 유명할까에 대해 의구심마저 품고 있다. 이런 ‘혀’로 맛기사를 계속 써도 되는 것일까. 심란한 마음은 ‘진주냉면은 세 번은 맛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에 위안을 얻어 계속 쓴다. 한반도에는 3대 냉면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함흥랭면과 평양냉면,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진주냉면이 주인공이다. 앞의 둘은 이북 출신, 진주냉면은 유일한 남한 출신이다. 이들 냉면이 유명해진 것은 재료 덕분이다. 강원도 북쪽에 자리한 함흥도는 (쌀 대신) 감자가 많이 난다. 덕분에 감자녹말을 활용한 함흥랭면이 탄생했다. 여기에 함흥의 바닷가에서 많이 잡히는 가자미를 매콤하게 양념해 얹어 먹었다. 매콤한 양념은 메밀 물냉면인 평양냉면과 큰 차이를 보인다.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맛보는 함흥랭면(회냉면)은 가자미 대신 홍어회를, 감자대신 고구마전분을 더한다. 6·25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은 이 땅에서 많이 나는 재료를 더해 고향의 맛을 즐겼다.
여러모로 진주냉면과 비교되는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로 만든 면을 찬 냉면 국물에 말아 먹는다. 평양은 북한의 수도이자 문화 경제의 중심지. 너른 들판과 황해를 품고 있어 어물도 과일도 풍성해 먹는 것을 즐기는 고장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니 음주가무가 발달했을 터. 예로부터 ‘평양기생’이 유명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짜지도 맵지도 않은 슴슴한 냉면을 맛본 적 있다면, 그게 바로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의 특징은 담백한 맛에 있다. 이 역시 6·25전쟁 이후 전국에 퍼지게 되어 사계절 별미가 되었다. 남한 대표 진주냉면은 메밀가루로 면을 만드는 것은 평양냉면과 비슷하다. 경남 산간지역에서 나는 메밀 덕분에 진주와 근방지역에서는 메밀국수를 즐겨 먹었다. 이 메밀국수가 어쩌다 이렇게 화려한 진주냉면이 되었을까. 진주 역시 평양과 마찬가지로 ‘기생’이 따라온다. 때는 구한말, 휘몰아치는 격동기였다. 내로라는 진주관아의 기생과 요리사들은 권번과 요릿집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진주성 전투에서 왜구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같은 기생도 있었지만 돈 많은 왜인이나 한량들을 상대하던 기생들도 있었을 터다. 이들이 야참으로 즐기던 별미가 냉면이다. 귀한 음식에 익숙한 혀끝을 만족시켜야 했으니 맛은 기본, 심미적으로도 뛰어나야 했으리라. 색색의 고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진주냉면의 특징은 육수와 고명에 있다. 남해와 바싹 닿는 진주의 냉면은 마른 명태머리, 건새우, 건홍합 등의 해물을 육수에 더했다. 그 위에 잘게 자른 쇠고기전을 필두로 실고추, 계란 지단과 오이 등을 고명으로 올린다. 원래는 전복과 해삼까지 더해지는 음식이었으나 서민음식으로 사랑받으면서 고명도 소박해졌단다.
감자국수처럼 질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메밀국수처럼 뚝뚝 끊기지도 않는 면발이다. 처음 진주냉면을 맛보러 갔다면 물냉면이 먼저다. 여기에 여유가 있다면 육전을 따로 맛보는 것도 좋다. 진주냉면을 즐기는 이들은 진주냉면의 진가는 ‘육수’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육수를 만드는 데만 2~3일, 숙성시키는 데 10여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정성이 담긴 육수 맛을 음미할 수 있어야 진주냉면의 맛을 아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슴슴한 냉면의 맛을 알아차릴 그 날까지, 아직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어떤가. 진주비빔밥과 냉면 한 그릇씩 들고 나니 진주라는 고장에 대해 감이 잡히는가. 수 백년 전 역사가 담긴 음식을 맛보며 자연스럽게 진주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이번 가을 진주 남강유등축제에서 진주성 전투 당시 목숨을 바친 이들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1.주변 음식점 천황식당 : 진주비빔밥, 불고기 / 촉석로 / 055-741-2646 제일식당 : 진주비빔밥 / 중앙시장길 / 055-741-5591 남강장어 : 장어구이 / 본성동 / 055-747-0888 하연옥 : 진주냉면, 쇠고기전 / 이현동 / 055-746-0525 2.숙소 동방관광호텔 : 논개길 / 055-743-0131 http://www.hoteldongbang.com 아시아레이크사이드호텔 : 남강로 / 055-746-3734 www.asiahotel.co.kr 롯데모텔 : 논개길 / 055-741-4886 모텔유 : 논개길 / 055-748-7458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이소원 취재기자( msommer@naver.com ) ※ 위 정보는 2014년 8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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