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단양의 성재산에는 신라의 적성이 축조되었고, 그 증거로 신라적성비가 세워져 있다. 신라는 죽령을 넘어 고구려 영토인 적성을 차지한 후 성을 쌓고, 백성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적성비를 세웠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정 이후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게 신라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 바람이 현실로 다가온 게 제24대 진흥왕이 즉위(540년)한 이후의 일이다. 신라가 백제와 동맹(나제동맹)을 맺고 한강 유역으로 진출을 시도한 것이 진흥왕 때부터다. 단양 신라적성비를 찾아가는 길은 두 가지다. 단성면사무소를 지나 단성생활체육공원 앞 하방리 마을길을 지나는 것과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휴게소(춘천 방향) 뒷길로 오르는 길이다. 이중 단양팔경휴게소에서 오르는 길이 수월하다. 휴게소가 산 중턱에 위치해 오르는 길이 짧고 잘 정돈되어 있어서다. 휴게소를 돌아 성재산을 오른다. 이 산 정상부에 적성이 있고, 그 안에 신라적성비가 세워져 있다. 신라적성비까지는 10여 분이면 충분하다. 넓고 평평한 터에 비각이 덩그러니 서 있다. 비각 안에는 윗부분이 잘려나가 왜소해 보이는 비가 있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이다. 두께도 아래보다 위가 두껍다. 돌을 가공하지 않고 자연석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의 상단부가 훼손되어 정확한 글자 수를 알기 힘드나 대략 440자 정도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글자는 288자로 거의 판독 가능하다.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가 1978년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이 땅속에 30㎝ 정도 묻혀 있는 비를 발견했다. 신라적성비에는 이사부를 비롯한 신라 장군이 왕명을 받고 출정해 고구려 영토였던 적성을 빼앗은 후, 자신들을 도와 공을 세운 적성 출신의 야이차와 가족 등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신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포상을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신라의 중앙과 지방의 통치 조직, 촌락의 존재 양상, 율령과 조세제도 등 기존 문헌 자료에 보이지 않는 신라사를 이해할 수 있다. 점령 지역에 비를 세운 것은 새 영토에 대한 확인, 새로 복속된 고구려인들을 흡수하려는 신라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신라적성비는 진흥왕 대에 건립되었지만, 아쉽게도 비가 일부 파손되어 비문을 작성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신라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 시기가 551년이라는 점, 각종 역사서에 보이는 인물의 관등과 비문에 보이는 인물의 관등을 비교한 결과에 근거해 진흥왕 6~11년(545~550)경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적성은 성재산 정상부와 남쪽 비탈을 둘러쌓은 퇴뫼식 산성이다. 퇴뫼식이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정상 주위에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축조한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 1,768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적성비에서 산 아래로 내려가다 왼쪽으로 이어진 길을 가면 북동쪽에 타원형 모양의 적성이 일부 남아 있다. 신라적성비 보러 가는 길 중간에도 성벽이 일부 남아 있지만,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요충지임을 느끼기에는 이곳이 제격이다. 외벽의 높이는 4m, 내벽의 높이는 3m 정도이다. 남쪽으로 죽령, 북동쪽으로 남한강 상류, 북서쪽으로 남한강을 따라 청풍과 충주가 한눈에 보인다. 이러한 지형은 삼국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고구려와 신라에 매우 중요한 전략 기지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신라는 이곳을 점령함으로써 한강 상류로 진출하는 북진의 전초 기지로 삼았던 듯하다. 성벽 위는 돌들이 울퉁불퉁한 데다 발을 잘못 디딜 경우 무너질 수도 있어 오르지 말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신라적성비에 '적성'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보여 성의 명칭이 적성임을 알게 되었다. 성안에서 삼국시대의 토기와 기와 조각을 비롯해 고려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고려 후기까지 단양 지방의 읍성 구실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성에서 내려와 적성대교를 건너 단양읍으로 가다 보면 애곡리에 자리한 수양개 유적을 지나게 된다. 이곳은 1983년 충주댐 수몰지구 유적 조사로 발견된 이래 2013년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슴베찌르개, 좀돌날몸돌, 긁개, 밀개, 주먹도끼, 찍개, 주먹대패 등 구석기시대의 생활환경을 알려주는 유물 3만여 점이 출토된 곳으로 한반도의 후기 구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선사 유적지다. 수양개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다. 중기 구석기시대부터 삼한시대 취락 유적 등이 발견된 곳이기도 해서 야외에 선사인들의 사냥 모습과 움집을 재현해놓았다. 전시관 안에는 직접떼기, 간접떼기, 눌러떼기 등의 제작 기법으로 만든 주먹도끼, 찍개, 슴베찌르개, 긁개, 밀개, 배모양밀개, 주먹칼 등 다양한 석기류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돌날몸돌과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슴베가 달린 찌르개는 중국 화북, 시베리아 남부, 일본 열도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나온 석기들과 비교할 수 있는 귀중한 연구 자료이다. 수양개 유적뿐만 아니라 단양의 금굴 유적, 상시 바위그늘 유적, 구낭굴 유적지에서 발굴한 사람뼈, 사슴뼈, 호랑이뼈 등도 전시되어 있다. 단양 신라적성비 주소 :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중앙고속도로 춘천 방면 단양팔경휴게소 뒤) 문의 : 043-422-1146 1.주변 음식점 장다리식당 : 마늘정식 / 단양군 단양읍 삼봉로 370 / 043-423-3960 오학식당 : 묵밥 / 단양군 단양읍 상진13길 4-1 / 043-422-3313 단양쏘가리 : 민물매운탕 / 단양군 단양읍 수변로 95 / 043-421-8826 맛나식당 : 올갱이해장국 / 단양군 단양읍 도전6길 13 / 043-422-3380 2.숙소 대명리조트 단양 : 단양군 단양읍 삼봉로 187-17 / 043-420-8311 http://www.daemyungresort.com/dy/ 베니키아호텔 단양 : 단양군 단양읍 삼봉로 31 / 043-423-7070 단촌서원고택 : 단양군 단성면 북상하리길 103-10 / 043-423-5725 카르페디엠 : 단양군 단양읍 다리안로 569 / 043-421-2155 http://www.carpediem-resortel.co.kr/main.php 글, 사진 : 오주환(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10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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