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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과 옛 일본영사관, 이훈동 정원을 지나는 사이 시간은 어느덧 오후 2시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아침에 미리 끊어둔 서울행 기차 시간은 저녁 6시 50분. 4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옛 심상소학교와 목포근대역사관 2관, 구 나상수 가옥, 오거리문화센터까지 둘러봐야했기에 발걸음을 조금 서둘렀다. 이훈동 정원에서 나와 이번엔 길 건너 오른쪽에 자리한 유달초등학교로 들어갔다. 일제의 교육기관이었던 옛 공립 심상소학교 강당을 보기 위해서였다. 강당은 1929년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됐다. 완공 뒤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가 개관 기념 공연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들었으나 한국인 입장은 철저히 막았다고 한다. 지금은 책걸상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고 있다. 유달초등학교엔 옛 심상소학교 강당 말고 또 하나 볼거리가 있는데 다름 아닌 한국호랑이다. 1908년 영광 불갑산에서 잡힌 한국호랑이를 당시 일본인이 사들여 박제로 만든 다음 기증한 것이다. 호랑이는 옛 공립 심상소학교 강당 옆 건물, 교무실 앞 복도에 있다. 유달초등학교 맞은편 골목으로 발길을 돌려 목포근대역사관 2관에 도착했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은 1921년 세워진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강점기 대표적 경제수탈기관으로 교통 요충지인 목포와 부산·이리·대전·대구·원산·평양·사리원 등지에 지점이 설치됐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곳 목포지점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소작료를 거둬들이기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현재 건물은 1·2층 모두 일제강점기 시대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자료로 채워져 있다. 대부분 목포의 옛 모습과 일제의 만행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그중 몇몇은 너무나도 잔혹하여 경고 문구가 따로 붙어 있을 정도다. 1층 계단 옆에는 당시에 쓰던 대형 금고가 그대로 남아 있다. 육중한 철문 뒤에 자리한 커다란 방은 한때 모두 금으로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광복 뒤에는 해군 헌병대의 유치장으로도 사용됐다. 계단 뒤엔 ‘전 세계가 하나의 집’이라는 뜻의 ‘八紘一宇(팔굉일우)’가 새겨진 돌기둥이 있다. 1940년 당시 총독인 미나미 지로가 전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쓰고 세운 탑이다. 최근 한 초등학교 운동장 보수공사를 하던 중 발견돼 옮겨왔다고 한다. 2층에는 조선왕조 최후의 모습과 빼앗긴 조국, 침략자 일본, 일제의 아시아 침략 등을 테마로 한 사진이 배치돼 있었다. 전시물을 쭉 훑어보다 건물 밖으로 서둘러 나왔다. 사진으로 적나라하게 남겨진 아픈 역사를 마주한다는 건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겉도 속도 잿빛인 그곳에서 빨리 벗어나 포근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어디로 갈까 지도를 뒤적이는데 때마침 대각선으로 마주 보이는 집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일본식 기와가 그대로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적산가옥이 분명했다. 담벼락에 달린 간판을 확인해보니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내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잠시 쉬었다 가고 싶기도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무엇보다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작은 마당을 지나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구조를 훼손하지 않고 카페로 개조한 공간엔 과거와 현재가 아름답게 교차하고 있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차 한 잔을 시켰다. 중앙 테이블에는 출출한 나그네들을 위한 샐러드며 빵, 잼 등이 준비돼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룬 맛이 아니었다. 커피 역시 마찬가지였다. 켜켜이 쌓인 시간을 그대로 담은 창에서는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름처럼 행복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한동안 카페에 앉아 공간이 주는 따스함을 온전히 즐겼다. 창밖에는 어느새 늦은 오후 햇빛이 노랗게 내려오고 있었다. 서둘러 나와 오거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거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거주지와 한국인 거주지의 경계지역이었다. 오거리 동남쪽 유달동·대의동·중앙동·서산동·만호동 일대에는 일본 사람들이 기거했고, 오거리 북서쪽 만호진이나 북교·죽교동 등 유달산 기슭에는 반대로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오거리문화센터를 목적지로 정하고 천천히 걸었다. 옛 화신백화점(김영자 화실), 갑자옥 모자점을 비롯한 크고 작은 일본식 건물이 발길 닿는 골목마다 박제된 유물처럼 남아 있었다. 어떤 건물은 문짝이 뜯기고 기와가 무너진 채 방치되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건물은 간판을 바꿔 달고 새 삶을 살고 있었다. 오거리를 지나 오거리문화센터에 도착했다. 옛 동본원사 목포별원 건물로 일본 특유의 크고 경사가 급한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인 주거지역에 세워진 일본식 사찰이라는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포교를 위해서였다니 어쩐지 좀 씁쓸했다. 건물은 광복 후 목포중앙교회가 인수해 최근까지 교회로 쓰이기도 했다. 불교 사찰이 교회 건물로 바뀐 점이 흥미로웠다. 어느덧 해가 지고 오거리 일대에 조명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목포청년회관, 북교초등학교, 양동교회 등 옛 목포 사람들의 또 다른 흔적을 지척에 두고 여정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꼭 한 번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온금동 다순구미마을도 다음을 기약했다. 목포역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 야속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쉬움이 두 번째 여행의 초대장이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주소 : 전남 목포시 번화로 18 관람시간 : 9시~18시 쉬는 날 : 매주 월요일 문의 : 061-270-8728 카페 행복이 가득한 집(구 나상수 가옥) 주소 : 전남 목포시 유동로 63 관람시간 : 11~22시 쉬는 날 : 첫째·셋째 주 월요일 문의 : 061-247-5887 오거리문화센터(구 동본원사 목포별원) 주소 : 전남 목포시 영산로75번길 5 문의 : 목포문화재단 061-245-8833 출처 : 청사초롱 4호 글, 사진 : 청사초롱 박은경 기자 ※ 위 정보는 2016년 7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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