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뿐히 치켜올린 기와지붕 너머 보이는 감나무에 가을이 내려앉았다. 백일홍 곱게 핀 안마당에는 강아지가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반긴다. 길 가는 나그네에게 차 한 잔 하라며 반기는 주인의 마음만큼 소복하게 찾아온 가을, 고선재와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고택에는 특유의 향이 있다. 손때 묻은 가구와 사람들의 왕래에 반질반질해진 대청에서 풍기는 시간의 흔적이다. 청주 고은리에 위치한 고선재에는 160년 동안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겹겹이 쌓아온 향기가 고택 곳곳에 묻어 있다. 잠시 머무르는 사람도, 하룻밤을 묵는 사람도 고선재의 시간 속에 자신의 향을 묻히고 간다. 그들이 내어준 시간은 그렇게 고선재의 이야기가 된다. 고선재는 조선 철종 12년(1861)에 지어진 한옥이다. 임진왜란 이후 고은리에 경주 이씨가 터를 잡으며 집성촌을 이루었다. ‘선을 많이 베푸는 집’이라는 의미처럼 대대로 고선재의 사람들은 많은 것을 나누었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고은리에 도착한 생선장수들은 가장 먼저 고선재를 들렀다. 궤짝째 생선을 사들인 고선재 사람들은 공평하게 토막을 내어 잘 구운 다음 나뭇잎에 싸서 동네 사람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백중날에는 늘 잔치가 벌어졌다. 절구 찧는 소리가 마을에 가득하면 곧이어 고선재 대문 밖으로 주먹만 한 인절미 두세 개가 꿰어진 꼬치를 들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나왔다. 서로 몸을 기대며 오랜 시간을 살아온 담 너머 향나무와 회화나무처럼 고은리의 사람들은 고선재를 중심으로 서로의 삶을 감싸고 나누었다. 이런 고선재의 마음은 가옥에도 드러난다.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하는 담장 사이로 작은 쪽대문이 나온다. 바깥마당, 중간마당, 안마당은 각각 담으로 나뉘어 있으며, 바깥쪽으로 이 구분된 공간 전체를 에워싸는 또 하나의 담이 둘러져 있다. 집 전체를 둘러싼 담장 너머로는 감나무, 향나무, 회화나무, 배롱나무들이 다시 한 번 집을 감싼다. 이곳의 담은 분리를 위한 경계가 아니라 포용을 위한 테두리다. 여름에 능소화가 만발했을 대문과 아담한 쪽대문을 지나면 ‘ㄱ’ 자 모양의 안채와 광채, 그리고 행랑채가 나타난다. 안채는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각종 체험과 연주회 등 행사가 열리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으로는 기다란 안방이, 오른편으로는 건넌방이 위치한다. 안방과 건넌방에 있는 가구들은 며느리들이 시집올 때 가져온 것이다. 150년 된 것부터 일제강점기에 사용하던 것들까지 그 연대도 다양하다. 행랑채는 ‘ㅡ’ 자 모양 건물이다. 대문간방, 헛간, 작은구들방, 큰구들방 등이 있으며, 그중 대문간방(침대방)과 작은구들방에서 한옥 체험이 가능하다. 방안에 화장실은 없지만 건물 오른쪽에 현대식으로 개조한 화장실 겸 공동 샤워실이 있다. 사실 고선재는 잘 정돈된 한옥 체험시설은 아니다. 12대손 이돈희 씨와 막내며느리 김향숙 씨의 생활공간이 한옥 체험 공간이다. 그래서 집안 곳곳에는 부부의 물품들이 놓여 있다. 사랑채 안쪽 방문을 열었다가 가득한 옷가지와 책에 놀라 문을 닫은 이들도 다수라 한다. 하지만 바로 이런 면이 고선재의 매력이다. 160년 동안 온기가 지속되어온 문화재에서의 하룻밤이 또 어디에서 가능할까. 처음 고선재를 찾는 이들의 시선은 백이면 아흔아홉 바깥마당에 있는 사랑채에 시선을 빼앗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사랑채는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개방감이 좋다. 하늘빛과 고택을 둘러싼 나무들이 유리창마다 각기 다르게 투영되어 감상하기에도, 유리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앞에 내어놓은 의자 두 개는 고선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인증 샷에 등장하며 유명해졌다. 사랑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된 사랑채는 투숙객이 없을 경우에 한해 출입이 허용된다. 기다란 복도로 이루어진 대청 테이블에 앉아 낡은 책 한 권 뒤적이면 나도 어느새 풍경의 일부가 된다. 요즘 김향숙 씨에게는 취미가 하나 생겼다. 고서점에서 <탈무드> 옛 판본을 모으는 일이다. 이렇게 모은 책을 고선재에 놀러온 아이들에게 한 권씩 나눠준다. 그 옛날 동네 꼬마들이 인절미 꼬치를 들고 집을 나서듯, 아이들은 <탈무드>를 들고 집으로 향한다. 고선재의 정신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 Accommodation - 안방 : 안채 객실.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놓여 있으며 금고로 사용하던 다락도 있다. 나란히 누우면 5명도 투숙 가능한 너비의 직사각형 방이다. 대청마루 바로 옆이다. - 침대방 : 행랑채 대문간방. 침대와 소파, 의자 등 좌식 생활을 힘들어하는 외국인이 이용하기 좋다. 벽면에 걸린 그림은 중국 화가의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2명이 이용하지만 여분의 이불이 있어 3명도 투숙 가능하다. - 작은방 : 행랑채의 전통 한옥방. 크기가 아담해 커플이 주로 찾는다. - 사랑채 : 가장 바깥쪽에 있는 독채. 사랑방, 대청, 건넌방으로 이뤄졌는데 사랑방만 이용할 수도, 전체를 다 빌릴 수도 있다. 사랑방과 건넌방 사이에 전자레인지 등이 준비되어 있으며 화기는 사용이 불가하다. 사랑방 기준 인원은 2인이고 독채는 8명까지 투숙 가능하다. 회랑식으로 되어 있는 대청마루는 책을 읽기에도, 차 한 잔 하기에도 좋은 장소다. - 건넌방 : 안채에 있는 방으로 평소에는 부부가 생활하지만 이용객이 많을 때는 한옥 체험을 위해 대여도 가능하다. 창문을 열면 안채 마당에 심긴 나무와 꽃이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다. ※ Activities / Program - 한지 등 만들기 전통한지와 문살을 이용해서 사각등을 만드는 체험으로 초등학생도 만들 정도의 난이도다. 문살을 조립하고 창호지를 바르며 한지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체험비 1인당 5000원. - 다도 체험 백차, 보이차, 녹차를 마시며 차를 내어오는 과정부터 음용하는 법, 다도의 유래와 차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가 있는 시간. 100년이 넘은 상에서 마시는 녹차라 그 맛도 다르게 느껴진다. 이돈희 씨가 직접 진행한다. 체험비 1인당 1만 원. ※ Travel information - 위 치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윗고분터길 33-15 - 가격 : 6만~7만 원 - 전화번호 : 010-5483-1991, 043-298-0148 - 고선재 홈페이지 ※ 찾아가기 당진영덕고속도로 문의IC에서 나와 문의IC삼거리에서 우회전한다. 미천고은로 따라 약 4.5km 진행하면 고은사거리가 나온다. 고은사거리에서 약 700m 직진 후 고은3리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고은3리 이정표를 보고 200m 정도 이동하면 ‘청주 고은리 고택’(고선재)이 나온다. ※ 인근 여행지 - 청남대 1983년부터 2003년까지 사용되던 대통령 전용 별장이다. 2003년부터 일반에 개방되었다. 대청호를 끼고 있어 풍광이 멋지며, 특히 가을철 국화축제장으로 인기가 높다.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을 딴 산책로와 대청호 전망대, 메타세쿼이아 덱, 역대 대통령의 역사기록이 남아 있는 본관이 대표적인 산책 코스. 승용차로 입장하려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 수암골 벽화마을 낡고 좁은 골목길에 예쁜 벽화가 그려져 있어 복고풍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오르막길을 따라 숨어 있는 벽화를 찾는 재미도 있다. 마을이 자그마한 편이라 30분이면 돌아보기에 충분하며, 정상에는 청주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는 전망대가 있다. 여러 편의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관련 카페와 베이커리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글 : 정혜정(여행작가) 사진 : 장명확(사진작가) ※ 위 정보는 2020년 1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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