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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길을 걷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지금은 목적지를 향해 걷지만 한때 이 길은 몸을 숨기려 걷던 길이었다. 천주교 박해가 이어지던 19세기, 낙동강가의 가실성당에서 팔공산 자락의 한티 순교성지까지 사람들은 옹기와 숯을 지고 오르내렸다. 경상북도 칠곡은 그 옛길을 다섯 구간으로 정비해 45.6km의 '한티가는길'을 조성했다. 구간마다 돌아보는 길, 비우는 길, 뉘우치는 길, 용서의 길, 사랑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한티가는길 5구간 코스 ★ - 가실성당: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건물이자 45.6km 순례길의 출발점 - 신나무골성지: 한옥 지붕 위에 십자가를 얹은 성당이 선 옛 교우촌 - 금낙정: 금호강과 낙동강을 굽어보는 조선 시대 정자 - 원당공소(동명성당 남원공소): '작은 한티'라 불리던 다랑이논 사이의 작은 공소 - 한티 순교성지: 이름 없는 순교자들이 묻힌 한티가는길 종착지 한티가는길은 왜관읍 낙산리의 가실성당에서 시작한다. 첫 구간의 이름은 '돌아보는 길'이다. 신나무골성지까지 10.5km로 논둑과 마을 안길을 지나 야트막한 산으로 접어든다. 가실성당은 경상북도에 남은 성당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1890년대에 다섯 칸 기와집으로 올렸고 지금의 붉은 벽돌 건물은 1923년에 완공됐다. 서울 명동성당 완공을 이끌고 대구 계산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도면을 그렸고 중국인 기술자들이 현장에서 벽돌을 구워 쌓았다. 성당의 자세한 내력은 마당 건너 역사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여름이면 성당을 둘러싼 배롱나무에 꽃이 붉게 피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천장은 반원 아치 형태를 이루고 있고 회벽 사이사이 색유리화가 있다. 독일의 세계적인 유리화 작가 에기노 바이너트의 작품으로 열 개의 창을 통해 예수의 일생을 아름답게 펼쳐 보여준다. 제대 옆에는 성녀 안나의 조각상이 서 있다. 프랑스에서 석고로 만들어 들여온 것으로 국내에 하나뿐이다. 성당은 저마다 수호 성인을 한 분씩 모시는데 이를 주보성인이라 하고 안나를 주보성인으로 모신 성당은 국내에서 가실성당뿐이다. 이 석상은 6·25전쟁 때 왼쪽 가슴에 총을 맞아 구멍이 뚫렸지만, 지금은 본래 모습으로 되살려 놓았다. 성당 바깥벽을 따라 걷다 보면 벽돌 한 장에 새겨진 영문 이름과 마주친다. 'KELLEY'. 전쟁 때 이곳에 머물던 미군이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성당은 온전한 모습을 지키고 있다. 남과 북 양측 군인이 번갈아 야전병원으로 썼기 때문이다. 성당을 둘러본 뒤 주차장 한편에 마련된 자판기에서 스탬프북을 구입해 첫 도장을 찍는다. 길 위의 도장을 모두 채우면 한티에서 완주를 인증해 준다. 이제부터는 리본만 따라가면 된다. 가실성당 -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가실1길 1 - 운영 시간 [가실성당 역사전시실] 하절기 09:30~17:30, 동절기 09:30~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문의: 054-976-1102 2구간은 지천면 연화리 신나무골에서 시작한다. 골짜기에 단풍나무의 일종인 신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비우는 길'은 여기서 창평지까지 9.5km에 걸쳐 이어진다. 임도를 따라 오르내리는 숲길이 대부분이다. 중간에 양떼목장을 지나고 전망쉼터에서 한 번 쉬어 간다. 마당에는 기와지붕을 인 성당이 있다. 김보록(로베르) 신부가 대구 계산동에 처음 지었던 '십자가형 한옥 성당'을 되살린 것이다. 원래 건물은 1901년 지진 여파로 일어난 화재로 타버려 사진 한 장만 남았다. 그 사진을 토대로 이곳에 다시 세웠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지붕이 십자 모양이다. 한옥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통나무 기둥과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내부를 만날 수 있다. 고개를 들면 마룻대에 상량문이 적혀 있다. 집을 올린 날을 적어 두는 한옥의 방식이다. ‘2018년 8월 9일’, 성당의 뼈대를 다시 올린 날이다. 창호를 통과한 은은한 빛이 아늑함을 준다. 신나무골에 신자들이 모여 산 것은 1800년대 초로 짐작된다. 대구 읍내에서 걸어서 하루 거리에 골이 깊어 눈에 띄지 않는 자리였다. 1885년 김보록 신부가 이곳에 사제관을 마련하면서 신나무골은 영남 전교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초가지붕을 얹은 사제관 옆에 그의 흉상이 섰고 아래에는 프랑스의 생가에서 퍼 온 흙이 놓여 있다. 마당을 가로질러 오른편 솔숲으로 걸음을 옮기면 무덤 하나가 있다.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다. 신나무골에 숨어 살다 한티로 피했고 그곳에서 아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 길은 이선이 엘리사벳이 생전에 오가던 두 교우촌을 이어주고 있다. 성지를 나서면 길은 곧 숲으로 접어든다. 쉼터에서 채비를 갖추고 출발한다. 짙은 나무 그늘 덕에 걷기 편안하고 오롯이 자신의 발걸음 소리만 조용히 퍼진다. 이 구간에 '비우는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을 걷는 동안 짐작하게 된다. 신나무골성지 -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칠곡대로 2189-22 - 운영 시간: [미사] 화요일~일요일 11:00 - 문의: 054-974-3217 3구간은 창평지에서 출발해 동명성당까지 9km다. 오르막길이 있어 다섯 구간 가운데 가장 힘든 길이다. 창평지에는 산 그림자가 그대로 비친다. 제방을 건너면 길이 가팔라진다. 열두 번을 굽어 오른다 하여 '열두굽이길'이라 부르는 구간이다. 오르막을 넘어서면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숨이 가빠질 무렵, 차분히 숨을 고르며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다 보면 이 길에 왜 '뉘우치는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것 같다. 능선 꼭대기에는 '그대 어디로 가는가' 하고 말을 건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오르막이 끝나는 자리에 금낙정(琴洛亭)이 있다. 조선 시대 벼슬을 내려놓은 선비가 은거하며 지은 정자로 전해진다. 왼편으로 금호강, 오른편으로 낙동강이 함께 굽어보인다고 하여 두 강의 첫 글자를 땄다. 신을 벗고 마루에 오르면 난간 너머로 보호수 느티나무가 가지를 넓게 펼쳤고 그 뒤로 산줄기가 겹겹이 포개진다. 정자에 앉으면 산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옆 건물에는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작은 방도 있다. 금낙정 -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심천리 4 - 문의: 054-979-6605 4구간은 동명성당 앞에서 출발해 가산산성 진남문에 이르는 8.5km '용서의 길'이다. 저수지와 산길, 다랑이논과 마을 안길이 차례로 나온다. 길은 동명수변공원을 지난다. 저수지 위에 있는 부잔교를 따라 걷다 보면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송림사 인근과 팔각정을 지나 한동안 숲이 이어진다. 숲을 빠져나오면 다랑이논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깊이 들어간다. 다랑이논 뒤로 작은 종탑이 눈에 들어온다. 원당공소다.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이따금 찾아와 미사를 드리는 작은 신앙 공동체를 말한다. 마을 어귀 표석 너머 돌담 위에는 예수상이 서 있다. 담쟁이가 감아 오른 종탑 아래에 파란 기와를 얹은 아담한 건물이 공소다. 원당공소는 한티에서 내려온 신자들이 이 마을에 자리 잡으며 생겼다. 이들은 고갯길을 넘어 신나무골까지 오가며 신앙을 전했다. 신자가 늘어 한때 한티공소보다 규모가 커지자 '작은 한티공소'라 불렀다. 지금의 건물은 6·25전쟁 폭격으로 무너진 자리에 다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헐린 학명리 공소의 자재를 가져다 썼다. 안에는 예배 공간인 방 하나가 전부다. 제대와 십자가, 성모상, 벽을 두른 십자가의 길 액자. 성당이라기보다 가정집 안방처럼 소박하다. 공소 한쪽에는 순례자를 위한 양심냉장고가 있다. 음료를 꺼내 마시고 값은 알아서 넣는다. 순례자가 하루 묵어갈 수 있는 작은 방도 마련되어 있다. 공소를 나와 조금 더 걸으면 4구간의 끝, 가산산성 진남문이다. 문루에 걸린 현판은 '영남제일관방(嶺南第一關防)'으로 영남에서 으뜸가는 방어의 관문이라는 뜻이다. 외세를 막으려 세운 산성이지만 역설적이게도 1868년 한티 교우촌을 짓밟고 많은 신자를 순교로 몰아넣은 이들 가운데 이 산성을 지키던 군사들이 있었다. 원당공소(동명성당 남원공소) -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로3길 98-2 - 문의: 054-975-5151 마지막 구간은 진남문에서 출발해 마당재를 넘는 8.1km '사랑의 길'이다. 그 끝에 한티가 있다. 서쪽으로 가산이 있고 남동쪽으로 팔공산이 있다. 두 산 사이 해발 600m 산중턱이다. 지금은 길이 잘 나 있지만 예전에는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던 곳이었다. 1868년 봄에 포졸과 군사들이 한티를 덮쳤다. 40명 남짓이 목숨을 잃었고 마을은 불탔다.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손상되어 그 자리에 그대로 묻혔다. 후에 확인한 무덤은 모두 37기, 그중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은 4기뿐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높이 14m의 십자가상이 서 있고 그 아래에 야외 제대를 두었다. 곁으로는 크고 작은 돌이 무리 지어 섰다. '한티마을사람'이라 부른다. 이름을 알 수 없으니 비석 대신 돌을 세웠다. 큰 돌은 어른, 작은 돌은 아이를 뜻한다. 숯가마터로 가는 숲길로 가보면 이번에는 무덤이 하나씩 이어진다. 숙연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 숲길을 지나면 당시 신자들이 삶을 이어가던 흔적이 남아 있는 억새마을로 들어선다. 박해를 피해 숨어든 사람들의 집을 되살린 곳이다. 돌을 쌓아 벽을 세우고 흙을 발랐다. 산중턱에서는 벼를 심을 수 없으니 지붕에는 볏짚 대신 억새를 얹었다. 지금도 주변에서 자란 억새를 베어다 엮어 인다. 한티 억새마을 길목에는 순례자의 집이 있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마지막으로 숨을 고른다. 도장을 모두 채운 스탬프북을 들고 피정의 집 1층 사무실로 가면 완주 스탬프를 찍고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기념품인 손수건에는 지금까지 걸어온 45.6km 전 구간을 그린 지도가 있다. 손끝으로 지도를 짚어 보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걷기 여행을 마무리한다. 한티 순교성지 -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1길 69 - 운영 시간 [순교성지] 09:00~17:00 [피정의 집] 입실 15:00~17:00, 퇴실 12:00 - 이용 요금 [피정의 집] 1인 50,000원, 2인 80,000원 ※ 식대 별도 (1식 10,000원) - 문의: 054-975-5151 | 글, 사진: 김덕식 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6년 8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글, 사진은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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