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안락한 도심 속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호캉스도 좋지만, 가끔은 자연 속 수많은 배경 속 작은 조연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완주군 산속 단아한 한옥 고택 숙소, 소양고택을 소개해 보려 한다. 서울역에서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전주역. 그곳에서 택시를 타면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한 소양고택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직접 차를 몰고 방문하면 가장 좋겠지만, 뚜벅이 여행자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소양고택 가는 법 주소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472-23 택시 이용 시 : 전주 역에서 약 2만원 소요 시내버스 이용 시 : 810, 820, 81번 버스 탑승 후 소양농협 정류장에서 소양 마을버스 82-1번으로 환승 처음 소양고택을 맞이했을 때 든 생각은 생각보다 알차다는 것이었다. 고택이나 한옥 스테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출하고 소박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책방, 카페, 숙소 등 다양한 시설이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옥 스테이는 전통을 따르고 감성을 쫓는다는 면에서는 좋지만 간혹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소양고택은 이런 단점도 잘 보완한 모습이었다. 규모를 앞세워 자연을 가리는 모습이 아닌, 주위의 산세와 어울리면서도 구석구석 볼거리를 담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오늘 묵을 소양고택은 정성스레 가꿔진 정원 사이로 난 돌계단 위에 위치하고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며 올라갈 때 마다 대문 뒤편의 한옥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데,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풍경이 실제 눈 앞에 펼쳐지니 체크인 전부터 신이 났다. 무엇보다 대문에 걸려있는 '한국관광 품질인증' 현판이 화룡점정. 오늘 하룻밤 묵을 공간에 대한 강한 확신을 주는 모습이다. 대문을 통과하면 잘 가꿔진 잔디밭을 가운데에 두고 두 채의 한옥이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되실봉을 배경으로 정말 옛날 양반이 살았을 법한 묵직함이 느껴지는 한옥이다. 실제로 소양고택은 2010년 여름, 고창과 무안의 철거 위기에 놓인 180여 년 된 고택 3채를 해체하여 이축한 곳이기도 하다. 기존 고택이 가진 역사성과 전통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긴 시간 동안 문화재 장인들의 손을 거쳐 재탄생하게 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지금 소양고택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움이 이해가 되었다. 소양고택은 제월당부터 서현당까지 총 아홉 종류의 객실을 가지고 있다. 기존 고택을 이축하여 만든 곳이니 만큼, 각 객실마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내가 1박을 한 '혜온당2'의 경우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집'이라는 의미로, 해체 전 원래 살던 집주인이 당시 사회복지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기존 고택이 가지고 있던 조선시대 말기의 모습을 이축하면서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한다. 혜온당2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정원 쪽으로 난 누마루였다. 일반 마루와 달리 마루 주변을 따라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점이 멋스러운 정자나 누각과 같은 모습이다. 삼면이 탁 트여 있는 만큼 준비된 방석에 앉아 있으면, 산바람이 볼을 간지럽히는 곳이다. 아까 지나온 고택의 대문 뒤편으로 보이는 종남산 골짜기는, 자연 속에서 즐기는 휴식이라는 이번 여정의 목적에 가장 어울리는 풍경이다. 누마루 안쪽은 거실과 침실 역할을 하는 두 칸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방안 기둥이며 서까래며 하나하나 실제 고택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이 느껴지는 모습. 한옥 스테이라고는 하지만 실내는 현대식으로 꾸며놓은 곳들이 많은데, 소양고택은 정말 옛날 한옥의 모습 그대로이다. 문도 전통 방식 그대로 한지로 막아 놓은 모습이며 방충망이나 유리 창문 등을 찾아볼 수도 없다. 일부 도시 사람들에겐 불편함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나 불편함 대신 고즈넉한 멋과 자연의 풍경이 함께하니 감수할 만하다. 그 와중에 에어컨과 미니 냉장고가 설치되어 있고 와이파이가 잡힌다는 점이 감사하다고 하면 너무 이중적인 걸까. 방과 잘 어울리는 전통장 안에는 투숙객을 위한 간단한 간식과 전기포트 그리고 선풍기가 들어있다. 이 전기포트를 이용해 방안 탁자에 준비되어 있는 차도 즐길 수 있다. 안쪽에 있는 침실은 침구만 놓여있는 소박한 방이다. 대신 소양고택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직접 만든 광목 자수 이불이라 그런지 이불 두 채만으로도 방이 꽉 차는 느낌이다. 실제 오랜만에 온돌바닥에 자면서도 불편함 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침구 덕분일지 모르겠다. 이불 외에도 바람이나 빛을 막는 커튼도 같은 모습의 자수가 놓여있는데, 대나무 발을 옮겨가며 필요한 곳에 설치할 수 있다는 점이 실용적이다. 가장 안쪽에 있는 욕실은 한옥고택이지만 고택 내에서 유일하게 현대적인 모습의 공간이다. 좌변기와 세면대, 샤워를 하는 공간까지 도시 사람들도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건실 욕실로 몸을 씻는 공간은 한 계단 낮게 되어 있으며, 어메니티는 국내산 호텔 어메니티 브랜드 '캄모멘트리', 헤어드라이어는 다이슨 제품, 빗과 칫솔, 치약까지 부족한 것 없이 준비되어 있다. 혜온당 둘러보기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오며 지나쳤던 책방 '플리커'에 가보았다. 완주 1호의 독립서점으로 정기적으로 '심야 책방의 날'과 '작가 북 토크'등이 열린다고 한다. 거창한 행사가 없어도 이런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조용히 책을 읽을 공간이 있다는 점 하나만 가지고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나처럼 휴대전화만 달랑 들고 온 투숙객들을 위해 자유롭게 책도 대여해 준다고 하니 오랜만에 책과 친해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주위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다시 혜온당으로 돌아와보니 은은하게 조명이 켜져 있었다. 미리 준비해 온 맥주 한 캔 챙겨 누마루에 앉아, 개구리 울음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친구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니 행복이란 게, 힐링이란 게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 밝고 조식을 먹으러 카페 두베를 방문하였다.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는 두베는 한옥고택과는 다른 현대적인 건물이었지만 석재와 목재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개방감을 주는 설계 덕분에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조식은 따뜻한 누룽지에 전라도식 밑반찬이 준비된다. 거창한 식사나 뷔페는 아니었지만 고택과 어울리는 담백한 식사여서 좋았다. 식사 후 준비되는 차와 한과, 과일까지 먹고 나면 제법 배도 든든하다. 체크아웃 시간인 10시 반에 맞춰 객실을 나섰다. 아무래도 1박만 하기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다행히 전날 체크인을 할 때 제공되었던 '웰컴 티'를 체크아웃 때에 이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전날 이것저것 숙소를 둘러 보기 바빠서 '웰컴 티'를 미뤘던 것이 오히려 고택에 더 머물 수 있는 반가운 핑곗거리가 되었다. '웰컴 티'는 카페에서 판매하는 음료 중 자유롭게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커피 한 잔 마시며 마지막으로 소양고택을 눈에 담고 다시 도시로 향했다. 요즘 오래된 한옥을 복원하여 한옥스테이를 제공하는 곳은 많지만 제대로 된 한옥스테이를 제공하는 곳은 흔치 않다. 그런 면에서 '소양고택'은 제대로 된, 진짜 한옥스테이가 가능하다는 것이 참 인상 깊다. 옛 고택을 해체해 이축했다는 것도 한몫 했지만, 산수 절경에 둘러싸여 자연 한복판에 폭 안겨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진짜'의 느낌을 준다. 화려함 대신 소박함, 시끌벅적함 대신 고요함, 채움 대신 비움이 필요한 도시인이라면 오늘 소개한 '소양고택'을 꼭 메모해두자. ※ 위 정보는 2022년 6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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