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이 섬으로 들어갔다. 섬을 수호하던 나무는 전입신고를 마친 오래된 집을 감쌌다. 사람은 손길을 뻗어 길을 내고 연못을 만들었다. 섬에서 본 바다가 조화로워 상화원이라 이름 붙였다. 죽도에 정원이 생긴 사연이다. 풍경이 아름다워 보물섬이란 소문이 뭍으로 퍼졌다. 혼자 조용히 무더위 피할 시간이 간절하다면 보령시 죽도 상화원으로 향하자. 장항선 대천역에 내려 택시로 갈아타니 죽도까지 10여 분 거리다. 원래 서해에 떠 있던 섬이 간척사업으로 도로가 놓이며 육지와 연결되었다. 한때 난개발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죽도의 자연을 온전하게 지키겠다는 섬 주인의 고집 덕분에 지금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다. 주인은 섬을 보호하기 위한 의미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조화를 숭상한다는 뜻을 담아 상화원(尙和園)이라는 이름의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죽도의 자연에 상처 내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였다. 섬에 한옥을 들여올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이질적으로만 느껴지는 둘의 만남은 오늘날 생각해보니 절묘했다. 방문객들은 예상치도 못한 한옥을 섬에서 만나 기뻤다. 사라질 위기 앞에서 생명을 연장한 한옥이었다. 상화원 어디에서든 바다는 손에 잡힐 듯하다. 길과 어깨를 맞댄 울창한 숲은 몸을 숨기기에 충분하다. 인파가 몰리는 여행지가 부담스럽다면 상화원은 잠깐 나의 행방을 묘연하게 만들 근사한 은신처가 된다. 상화원 전체를 도는 데 1시간 30여 분이면 족하다. 섬까지 와서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조급함은 잠시 접어두자. 상화원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잘생긴 한옥 한 채가 반긴다. 의곡당이다. 경기도 화성 관아에서 정자로 이용하려고 지었던 한옥이다. 고려 후기 또는 조선 초기에 세웠다고 추정한다. 상화원으로 옮겨오기 전에는 천막을 쳐서 다방으로 썼다. 보존을 위해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이미 철거되었을 가옥이다. 의곡당은 현재 방문객센터로 쓰인다. 관람하는 이들에게 간단한 음료와 떡을 제공한다. 상화원 안에는 식당이나 매점이 없으니 참고하자. 마실 물을 챙기지 못했다면 회랑에 갖다놓은 생수자율판매대를 이용하면 된다. 상화원 관람은 입구를 등지고 오른쪽에서부터 시작된다. 1km가 넘는 회랑을 따라 걸으면 된다. 회랑으로 향하기 전 초록 잎이 무성한 팽나무에게 눈길 한 번 주자. 누가 적어두었는지 '팽나무 약 200살'이라 쓴 나무판자가 익살스럽다. 넉넉하게 드리운 나무 그늘이 고마운 계절이다. '산책로 입구'라 쓰인 푯말이 출발점이다. 회랑 바닥에 설치한 하얀색 줄은 방문객들에게 이정표 구실을 한다. 50m마다 설치한 거리 표시가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려준다. 덕분에 길을 찾는 수고는 덜하고 마음에 담는 풍경의 크기는 배가 된다. 회랑은 죽도 원주민이 오랜 시간 지나던 길을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 섬의 등고선과 닮은 높낮이에 지루할 새가 없다. 지붕을 얹어 궂은 날씨에도 산책하는 데 어렵지 않다. 계단이 많아 유모차나 휠체어로 가기엔 불편하다. 길 중간에 의자와 탁자를 둔 쉼터가 충분하다. 길에서 조금 벗어나 숲에서 보는 회랑 지붕의 곡선이 유려하다. 오르고 내리고 꺾이는 모습이 서해의 파도 같기도 하고 한옥의 지붕을 모방한 듯도 하다. 길을 놓는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나무를 베지 않았다. 바닥과 천장에 구멍을 뚫어 자연을 지켰다. 나무를 피해 걸어야 하는 불편함이 오히려 흥미롭다. 회랑을 따라 조성된 해변 연못도 볼거리다. 아기자기한 수중식물과 물고기가 산다. 연못을 두른 돌담은 사람 손으로 직접 쌓았다. 회랑을 걷다 보면 중간에 설치한 한옥 대문을 볼 수 있다. 전통 문양을 한 문고리에는 이미 두꺼운 녹이 앉았다. 문을 열 때 들리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정겹다. 대문 안쪽에 있는 전통 창틀은 인기 포토 존이다. 창틀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겨보자. 직선과 곡선으로 채워진 창틀 문양이 우아하다. 직접 열고 닫을 수도 있다. 500여 m쯤 지점에 도착하면 해변독서실이 나온다. 느긋하게 독서에 빠지기에 이만한 풍경이 또 있을까. 책을 챙겨오지 않았다고 해도 아쉬워 말자.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감상하다 보면 시간이 잘도 흐른다. 휴대전화에 저장해둔 음악을 들어도 좋을 장소다. 생수자율판매대에서 물 한 병 사들고 와 목을 축이며 잠시 더위를 식히자. 멀리 보이는 바다 위에는 보령요트경기장에서 출발한 요트가 유유히 바람에 떠다닌다. 항해에 나선 배에서는 종종 즐거운 환호도 들려온다. 상화원 산책의 마지막 코스는 한옥마을이다. 마을에는 한옥이 일곱 채 모여 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집이 상화원으로 이동해 비로소 안식처를 찾았다. 한옥마을은 원주민들의 생활 터전이던 계단식 밭에 조성했다. 계단 하나에 한두 채씩의 집을 앉힌 모습이다. 덕분에 모든 한옥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마을 맨 위에 자리한 고창읍성 관청 뒤로 오르면 한옥 지붕의 부드러운 선과 바다를 함께 조망할 수 있다. 모든 가옥의 기둥에는 집의 쓰임과 역사, 구조를 자세히 설명한 안내판을 걸어두었다. 한옥에 관심 있는 이라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상화원으로 옮겨오기 전 모습을 찍은 사진도 볼 수 있다. 당장 허물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낡고 오래된 집이다. 지금처럼 복원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정성과 발품이 대신했다. 훼손이 심한 경우엔 안채와 문간채를 따로 복원한 집도 있다. 가옥을 보호하기 위해 분리 가능한 유리벽을 설치했다. 서해의 작은 섬이 한옥의 고향이 되는 과정이었다. 회랑 하나를 올라 왼쪽으로 보이는 ㄱ자형 한옥이 이대청 씨 가옥이다. 마루에는 정수기와 티백 차를 준비해두었다. 널찍한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서해의 절경을 감상하며 차 한 잔 마시는 호사를 누려본다. 최고급 카페가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건너편에는 낙안읍성 동헌이 자리한다. 2014년 열린 바둑대회에서 이세돌 9단과 박정환 9단이 결승전을 치른 장소다. 당시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바둑판과 바둑알을 두었다. 누구나 잠시 앉아 바둑을 두어도 된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한옥은 고창읍성 관청이다. 한옥마을 가장 위에 자리한다. 활처럼 휜 소나무가 처마 끝을 뚫고 서 있다. 계단식 지형에 한옥을 앉히면서 원래 있던 소나무를 베지 않고 보존한 모습이다. 덕분에 나무는 생명을 잇고 여행자는 기이한 풍경을 추억에 담는다. 고창읍성 관청 뒤로 오르면 소나무 숲이다. 안개라도 끼는 날이면 숲 저쪽에서 섬의 정령이 날아오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방향을 빌라 쪽으로 향하면 하늘정원이다. 빌라 옥상을 이어 만들었다. 옥상 데크에 화분이 가득하다. 상화원은 몇 시간 머물다 돌아오기에 좋은 장소다. 섬을 한 바퀴 산책하는 데 크게 힘들지 않고 보고 즐길 거리도 풍부하다. 당일 여행이 아쉽다면 빌라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7~8월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개방한다. 그 외 기간에는 금요일부터 일요일, 공휴일에만 관람할 수 있다. 12월부터 3월까지는 휴관한다. 상화원 -주소 : 충남 보령시 남포면 남포방조제로 408-52 -문의 : 041-933-4750 http://www.sanghwawon.com/ 주변 음식점 -오양손칼국수 : 바지락칼국수 / 오천면 소성안길 55 / 041-932-4110 -바다와어부 : 생선회, 조개구이 / 웅천읍 열린바다2길 14 / 041-936-4459 http://www.seanfisher.net/ -카페 라스칼라 : 커피, 음료 / 해수욕장8길 14 / 041-932-6655 숙소 -웨스토피아 콘도미니엄 : 옥마벚길 10 / 041-939-3600 http://www.westopia.co.kr/ -JI호텔 : 머드로 137 / 041-934-8484 http://www.jihotel.co.kr/ -비치하우스 : 오천면 원산도7길 117-28 / 041-935-1138 http://www.wonsanbeach.com/ 글, 사진 : 이시우(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7년 8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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