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뜨겁고 향긋한 매생이국이 생각난다. 매생이국을 한 입 떠먹으면 달달한 맛 뒤에 남도의 깊은 향이 번진다. 매생이국은 끓여도 김이 나지 않고, 걸쭉한 게 국인지 건더기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김이 나지 않으니 처음 맛보는 사람은 서둘러 먹다가 입천장을 데기도 한다. ‘미운 사위에게 매생이국 준다’는 말이 그래서 생겨났다. 매생이의 본고장은 전남 장흥이다. 예전에는 완도와 장흥 일대 김양식장에서 대나무 발에 흔하게 걸려 올라오는 게 매생이였다. 촌부들은 김 대신 매생이가 걸리면 그해 김 농사를 망친다며 애물단지처럼 여겼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 밑반찬으로 만들거나 국으로 끓여 먹던 시절이었다. 장흥 일대에서 매생이를 본격적으로 양식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이다. 장흥에서도 갬바우벌로 불리던 최남단 대덕면 내저리가 매생이 양식의 원조마을이다.
어렸을 때는 생각도 못한 일이지라우. 아버지 때부터 여그도 김양식을 했응께. 매생이가 돈이 될 거 같응께 시작한 건데, 요즘은 매생이 대신 김이나 감태가 붙으면 손해본당께요. 내저리 어촌계 김삼봉 씨는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도 매생이 뜯는 손길을 늦추지 않는다. 대덕면 내저리 일대는 푸른 매생이밭이 40헥타르 가량 펼쳐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매생이를 '염생이' 또는 '매산이'라고도 부른다. 인근 고금도뿐 아니라 넙도, 초완도 등으로 둘러싸인 갬바우 일대는 큰 바람이 없고 바다가 잔잔해 예전부터 양식하기에 좋았다. 한 줄로 늘어선 장대 10개를 '한 때'라 하는데, 풍년일 경우 한 때에서 450g짜리 매생이 500여 개가 나온다. 주민들은 매년 서리가 내릴 때쯤 바닷가 자갈밭에서 매생이 씨를 받은 뒤, 갯벌 말뚝에 씨가 매달린 대나무 발을 넓게 펼쳐둔다. 겨우내 바닷물이 들고 빠지며 햇볕도 쬐고 바다 속에서 숙성돼야 맛 좋은 매생이가 나온다. 줄보다 적당히 굵고 늘어지는 대나무는 바다의 양분을 머금기에 좋다. 매생이는 겨우내 세 차례 정도 채취가 가능하다. 가느다란 대나무 발에 차분하게 달라붙은 매생이는 마치 명주실 같다. 한 손으로 발을 잡고 쭉 훑어내면 다른 한 손에 치렁치렁 부드러운 매생이가 매달린다. 바닷물이 깊을 때는 갑판에 허벅지를 의지한 채 온몸을 구부려 훑어내고, 간조 때는 바다로 뛰어들어 팔을 후리며 밭을 매듯 매생이를 채취한다. 겨울이 깊어지면 바다는 차고 저리다. 내저리 주민들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매생이와 함께 겨울을 난다. 매생이는 음력 정월 대보름 전까지가 제일 맛나고 부드러울 때지라우. 이때가 참기름 발라놓은 것처럼 파랗고 자클자클하단(부드럽단) 말이요. 날이 따뜻해지면 색깔이 연해진당께요. 그렇게 수확한 매생이는 포구에서 뻘 등 이물질을 씻어내는 과정을 거친 뒤 곧바로 작업장에서 주먹 크기의 덩어리로 변신한다. 마을 아낙들이 물에 씻어 척척 헹궈내면 헝클어진 매생이는 곧 여성의 맵시 있는 머릿결 모양이 된다. 이곳 주민들은 이것을 한 ‘재기’라고 부른다. 한 재기는 400~450g 정도로 3~4인분 양이다. 한겨울 매생이가 맛이 올랐을 때는 한 재기에 5,000원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장흥에서 매생이를 구입하려면 장흥읍내 토요시장이나 대덕읍 5일장으로 가면 된다. 탐진강변의 장흥읍 토요시장은 매주 토요일만 열리는 풍물시장으로 매생이 외에도 키조개, 석화 등 장흥의 먹을 것들이 죄다 모인다. 내저리에서 가까운 대덕읍 5일장도 규모는 작지만 갓 수확한 매생이가 나온다. 서울 등지에서 매생이국은 웰빙 별미 음식으로 통한다. 하지만 정작 장흥에 가면 매생이국을 내놓는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걸 뭐 땜시 돈 주고 식당에서 사 먹으라우? 집에서 그냥 끓여먹으면 되재. 시장통 아줌마들의 얘기다. 장흥읍내 몇몇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데 메뉴판에 별도로 매생이국이 적혀 있지는 않다. 끓여달라고 해야 밥상 위에 오른다. 매생이는 칼국수나 전을 해먹기도 하는데 국으로 먹어야 역시 제 맛이다. “매생이국은 너무 펄펄 끓이면 녹아부려서 못써.”
장흥버스터미널 옆 식당 주인장은 매생이국도 맛있게 끓이는 법이 있다고 전한다. 장흥의 석화(굴)를 넣어도 되지만 예전에는 돼지고기 등심을 볶아서 넣어 먹기도 했단다. 간장, 마늘을 넣고 물을 먼저 끓인 뒤 굴을 넣어 맛을 우려내고 민물에 헹군 매생이를 넣은 뒤 끓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꺼야 한다. 그래야 매생이는 서늘하고 신선하며 국물은 뜨거운 매생이국이 된다. 여기에 깨소금이나 참기름을 살짝 뿌려서 먹는다. 청정지역에서만 자라는 매생이는 철분, 칼륨, 비타민이 풍부한 자연 건강식이다. 위궤양이나 혈압을 낮추는 데 좋을 뿐 아니라 숙취 해소 능력도 탁월하다. 시인 안도현은 매생이국을 “숙취의 입술에 닿는 바다의 키스”로 비유하기도 했다. 매생이는 겨울에 4~5일 동안 상온에 두고 먹을 수 있으며 그 이후로는 냉동 보관한다. 서울에서 봄에 맛보는 매생이는 안타깝게도 대부분 냉동 보관된 것들이다. 1.가는 길 - 서울에서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광주와 나주를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 강진을 경유하는 길도 있다. -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평일 하루 3회(주말 4회) 장흥행 고속버스가 운행된다(5시간 소요). - 광주에서 장흥까지 1시간 단위로 시외버스가 다닌다. - 대덕읍이나 내저리로 가려면 공용터미널에서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2.구입할 곳 - 매생이는 이른 봄까지 장흥읍 토요시장이나 대덕읍 5일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대덕장은 매 5일, 10일에 선다. - 좌판에서 판매하는 매생이는 1개에 2,500~3,000원 선. 내저리 어촌계(061-867-3661)를 통해 택배로도 구입이 가능하다. 10재기(개)에 2만 5,000~3만 5,000원 선. - 장흥읍 신라복집(061-862-4646), 싱싱회마을(061-863-8555) 외에 관산읍 병영식당(061-867-2276)에서도 매생이국을 맛볼 수 있다. - 식당에 예약 주문을 해야 한다. 3.둘러볼 곳 - '정남진'으로 알려진 남포마을은 소등섬 해돋이가 볼 만하다. 남포마을은 영화 <축제>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 산행을 즐긴다면 천관산 등산도 좋다. - 대덕읍 내저리에서는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강진 마량항을 둘러보면 좋다. 마량항은 나무데크로 된 산책로가 조성돼 있으며, 수협이 운영하는 회타운에서 저렴한 자연산 회를 맛볼 수 있다. 글, 사진 : 서영진(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4년 5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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