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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 첫발을 디뎠다. 물빛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고, 섬에 머무는 내내 바다 곁을 어슬렁거렸다. 하루에 한 가지, 서로 다른 매력의 세 가지 방법으로 울릉도를 기억에 남겼다. 포항을 출발한 쾌속선이 요동을 멈춘다. 울릉도에 무사히 안착한 것이다. 육지에서 뚝 떨어진 외딴섬 울릉도는 아직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워낙 바다가 거칠어 제때 들어가거나 제때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태풍도 없는 먼바다에 풍랑이 일면 그저 결항이다. 출발 전 수시로 바다 날씨를 확인하고 설마 못 들어가겠어? 호기롭게 말했지만 걱정은 됐다.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은 도동항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다. 항구 좌우로 우뚝 솟은 기암절벽이 마치 섬으로의 입성을 환영하듯 와락 달려들었다. 울릉도 특산물을 파는 노점상을 지나 골목길의 작은 식당으로 들어섰다. 시원하게 끓여낸 오징어내장탕을 한 그릇 비우고는 지도를 펼쳤다. 버스를 타고 일주도로를 따라 구경에 나설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울릉도의 바다를 걸어서 만나는 행남해안산책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항구 근처 숙소에 짐을 풀어 몸을 가볍게 하고 산책에 나섰다. 행남해안산책로는 본래 도동항에서 행남등대를 거쳐 저동항 촛대바위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행남등대에서 저동항으로 넘어가는 구간 일부가 지난해 낙석으로 유실되어 당분간은 저동 옛길로 우회해야 한다. 바다와 맞닿은 길을 고스란히 걸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한편으론 예정에 없던 옛길을 만난다는 생각에 반가웠다. 산책로는 도동여객선터미널 뒤쪽에서 시작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에메랄드빛 바다가 발아래 출렁인다. 길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가 얼굴을 스칠 만큼 바닷가에 바짝 붙어 있다. 깎아지른 기암절벽과 절벽 사이를 연결하는 철다리를 건너는데 기분 좋은 스릴감이 느껴진다. 비밀의 방처럼 움푹 들어간 해식동굴을 만나고 자연이 빚은 거대한 동굴을 통과하다 보면 왜 울릉도를 '신비의 섬'이라 부르는지 알 수밖에 없다. 도동항 동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던 길은 바다를 벗어나 숲으로 향한다. 울창한 해송 숲과 대숲을 지나 10분쯤 오르면 행남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등대 오른쪽으로 보이는 나무 데크를 따라 뒤로 돌아가면 전망대가 있다. 아늑한 저동항과 무지개다리 해안산책로, 촛대바위 그리고 저 멀리 죽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한눈에 다 들어온다. 행남등대에서 되돌아 나와 '촛대바위' 이정표를 따라가면 '저동 옛길'과 '촛대바위' 갈림길이 나타난다. 여기서 저동 옛길을 택해 40분 정도 걸으면 저동마을이 나오고, 곧 저동항에 이른다. 옛길은 외지고 가파른 게 흠이지만, 이따금 시야가 트이는 곳에 바다가 반갑게 동행한다. 저동항에 도착해 촛대바위 오른쪽으로 펼쳐진 해안산책로를 마저 걸었다. 절벽과 절벽 사이를 이어주는 알록달록 무지개다리가 신기하고 또 낭만적이다. 원래대로라면 행남등대를 지나 소라계단을 통과하고, 해안산책로를 건너 촛대바위로 왔어야 한다. 길이 끊기는 바람에 코스가 뒤바뀌고 무지개다리도 일부 출입이 제한됐다. 철문에 가로막힌 다리를 뒤로하고 다시 촛대바위로 향한다. 보란 듯이 바다 위로 후드득 날아오르는 괭이갈매기가 내심 부러웠다. 이튿날, 홀가분한 마음으로 천부행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생각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관광버스를 탈까 차를 빌려야 하나 고민했다. 관광버스는 주요 명소를 돌며 운전기사가 설명을 해주는 대신 시간에 제약이 있고, 렌터카는 주차 등 신경 쓸 요소가 많아 결정이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하루를 알차게 보낼까 고민하던 중 숙소 옆 마을버스 정류장이 떠올랐다. 시간표를 살펴보니 보통 40분 간격으로 하루 16~18대가 운행 중이었다. 요금은 한 번 타는 데 1000원~1500원으로 저렴했고 교통카드 사용도 가능했다. 무엇보다 관광버스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금액으로 느긋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버스는 10명 남짓 되는 손님을 태우고 정해진 시간에 도동항을 벗어났다. 도동에서 출발하는 마을버스는 통구미·태하 등을 거쳐 천부로 가는 서북쪽 노선과 저동·봉래폭포·내수전으로 향하는 동쪽 노선으로 나뉜다. 바닷가 주변 볼거리를 챙기기에는 천부행 버스가 알맞다. 울릉터널 앞에서 산길을 올랐다가 다시 터널 반대쪽으로 내려온 버스는 이윽고 바다를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왼쪽은 망망대해, 오른쪽은 수직 절벽이거나 가파른 산비탈이 주로 펼쳐졌다. 동해 묵호항 출발 여객선이 들어오는 사동항을 지나 통구미해변에 다다를 때쯤 내릴 채비를 했다. 통구미는 거북바위와 향나무 자생지로 소문난 마을이다. 거북바위는 파도의 침식으로 육지에서 떨어져 나와 형성됐다. 옆에서 보면 마을 쪽으로 기어가는 거북이를 닮았다. 동쪽은 평탄하고 서쪽은 울퉁불퉁한데, 이는 좌우의 암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위 오른쪽 산자락에는 천연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된 향나무 자생지가 있다. 조선시대 파견 나온 관리들은 이 일대 향나무를 베어 조정에 토산품을 바쳤다고 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남양리를 지나 태하리 쪽으로 달렸다. 가는 길에 신호등이 있는 일방통행 터널과 태극무늬를 닮은 수층교를 지났다. 영지버섯처럼 보이는 버섯바위와 두 팔 벌린 곰바위를 찾느라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물론 지도에 없는 기암괴석에 이름을 붙이는 일도 잊지 않았다. 대풍감을 보기 위해 태하마을에서 내리려는데 옆자리 아주머니가 전망대 공사 소식을 알려줬다. 대신 아주머니는 현포전망대에 가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운전기사에게 근처 적당한 곳에서 차를 세워주라며 부탁까지 해두고 버스에서 내렸다. 현포전망대는 기대만큼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른쪽으로 현포항과 코끼리바위, 노인봉, 송곳봉이 한눈에 잡히고, 왼쪽에는 대풍감이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내며 아쉬움을 달랬다. 팔각정은 수평선과 눈을 마주치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아득하게 펼쳐진 현포마을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현포항까지 슬렁슬렁 걸어가 버스를 타고 종점인 천부항까지 한달음에 달렸다. 나리분지나 석포·관음도로 가려면 천부정류장에서 소형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버스는 노선별로 하루 5~7차례 운행한다. 관음도 방면은 아무래도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나리분지행 버스에 올랐다. 나리분지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꽤 가팔랐다. 버스는 두어 차례 꿀렁거리더니 창밖으로 나리분지를 펼쳐 놓았다. 나리분지는 해발 984m의 성인봉 일부가 함몰돼 형성된 지형으로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넓은 평지다. '나리'라는 지명은 과거 개척민이 이곳에 자라는 섬말나리 뿌리를 먹은 데서 유래됐다. 종점 근처에 있는 너와집은 울릉도 개척 당시의 가옥 형태를 잘 보여준다. 바람이 강한 울릉도 특성에 맞춰 지붕에 너와를 겹겹이 얹고 무거운 돌로 누른 것이 특징이다. 나리분지에 있는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천부 방면 버스에 올랐다. 울릉도는 아직 일주도로가 완성되지 않은 탓에 지나온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가야 한다. 천부에서 다시 한 번 버스를 갈아타고 도동항으로 향했다. 낮에 봤던 풍경들이 또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창에 머리를 기대고 어스름하게 지는 해를 찬찬히 놓아줬다. 그렇게 찰나의 감탄으로 끝나지 않는 풍경 하나를 가슴에 품었다. 다음 날 아침, 도동 버스정류장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미뤄둔 석포와 관음도 일대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마을버스를 타고 천부까지 가서 관음도행 버스로 갈아탔다. 일주도로는 북면 소재지인 천부리를 지나면서부터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 버스는 삼선암을 지나 관음도 매표소 앞에서 멈춰 섰다. 입장료는 4000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려 탐방로를 걷다 보면 관음도와 이어진 연륙교에 도착한다. 관음도는 죽도, 독도에 이어 울릉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깍새(슴새)가 많아 지금도 주민들은 '깍새섬'이라 부른다. 2012년, 길이 140m의 보행전용 연륙교가 지어지면서 일반인에 처음 공개됐다. 섬은 둘레가 약 800m에 불과해 산보 삼아 둘러보기 좋다. 섬에 들어 나무계단을 따라 절벽을 오르면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빽빽한 숲길이 나타난다. 산책로 곳곳에 마련된 전망대에서는 울릉도의 비경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동쪽에서는 죽도를 코앞에서 만나고, 북서쪽으로는 삼선암이 다른 각도에서 보인다. 관음도의 최고 절경을 꼽는다면 단연 관음쌍굴이다. 관음쌍굴은 관음도 동쪽 해안절벽에 나란히 뚫린 높이 14m의 동굴 한 쌍을 말한다. 섬 안에서는 볼 수 없고, 오로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야만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면 장수한다는 얘기도 전한다. 관음도에서 나와 삼선암까지 1시간쯤 바다를 끼고 걸었다. 울릉도 3대 비경 중 하나인 삼선암을 차분히 둘러보고 근처 선창에서 페리를 이용해 저동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게다가 이 일대는 울릉도에서 물빛이 가장 맑기로 소문난 곳이기도 했다. 연륙교를 뒤로하고 천연 바위굴을 지나자 삼선암이 우아한 자태로 다가왔다. 울릉도 풍광에 반한 세 명의 선녀가 하늘로 돌아갈 시간을 놓쳐 바위가 됐다고 전해진다. 멀리서 보면 2개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3개의 바위로 이뤄져 있다. 그중 멀리 떨어져 있는 일선암이 더 놀자고 조른 막내 바위로 알려졌다. 막내 선녀는 옥황상제의 미움을 가장 많이 받아 지금도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한 바위로 남았다고 한다. 삼선암까지 쉬엄쉬엄 거닐다가 배 시간에 맞춰 선창으로 돌아왔다. 선창에서 출발하는 페리를 타면 왔던 길을 에둘러 갈 필요 없이 바닷길을 따라 30분만에 저동에 도착한다. 여기에 관음쌍굴까지 엿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단 양방향 모두 배가 자주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배가 선창을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관음쌍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섬 아래 시커멓게 입을 벌린 두 개의 동굴이 압도적이다. 옛날 해적들의 소굴이었다는 소문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다른 기암괴석도 바다에서 보고 싶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배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도동항으로 넘어갔다. 도동항에서 출발하는 섬 일주 유람선을 타기 위해서였다. 운 좋게 마침 출발하는 배가 있어 표를 샀고, 2층 갑판에 자리를 잡았다. 울릉도 섬 전체를 한 바퀴 도는 유람선은 도동항에서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운항한다. 가두봉등대를 거쳐 거북바위, 사자암, 대풍감, 송곳봉과 코끼리바위, 삼선암, 관음도, 촛대바위 등 울릉도의 해상 절경을 1시간 50분 동안 일주한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울릉도는 그 안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바다 위에 뭉텅뭉텅 떨어져 앉은 바위들은 웅장했고, 세찬 파도에 맞선 기암들은 강렬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코끼리바위(공암)다. 북면 현포리 앞바다에 위치한 코끼리바위는 거대한 코끼리가 물속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암석 표면이 주상절리로 되어 있는데 그마저도 뻣뻣한 털이 듬성듬성 난 코끼리의 피부를 쏙 빼닮았다. 그 앞으로 마치 바다에 금방이라도 뛰어들 듯 거대하게 솟구친 송곳봉과 물속에 발이 묶여 애가 타는 삼선암도 긴 여운을 남긴다. 울릉도 가는 배편 현재 울릉도로 가는 배편은 강릉, 묵호, 후포, 포항에 있다. 강릉, 묵호, 포항에서는 3시간~3시간 30분, 후포에서는 약 2시간 30분이 걸린다. 여객선을 탈 때는 신분증 지참이 필수다. -강릉여객선터미널 1577-8665 -묵호여객선터미널 1577-8665 -포항여객선터미널 1899-8114, 1688-9565 -후포여객선터미널 1644-9605 관광지 요금 -섬 일주 유람선 어른 2만5000원, 유아 및 초등학생 1만2000원 / 1시간 50분 소요 / 문의 054-791-2002 -저동항↔선창 섬목페리호 편도 어른 1만원, 유아 및 초등학생 5000원 / 편도 30분 소요 / 문의 054-791-7775 -관음도 어른 4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 / 문의 054-791-6022 관광 문의 -도동관광안내소 054-790-6454 -저동관광안내소 054-791-6629 -나리분지관리소 054-790-6423 -마을버스(무릉교통) 054-791-8000 -울릉군청 홈페이지 www.ulleung.go.kr -울릉군 문화관광포털 www.ulleung.go.kr/tour 출처 : 청사초롱 2017년 7월호 글, 사진 : 청사초롱 박은경 기자 ※ 위 정보는 2018년 4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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