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골은 조선 시대 서민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대작의 ‘말〔馬〕을 피해〔避〕 다니던 길’이다. 피맛골은 한양도성의 백성이 지지고 볶으며 관계를 맺고, 먹고 마시며 ‘생활’을 이어가던 골목이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삶터가 이어져 종로 뒷골목은 서민이 고된 하루를 소주 한잔으로 씻어내는 곳이다. 재개발의 축복 혹은 재앙의 손길이 아직 미치지 않은 종로3~4가 피맛골의 대표 선수, ‘계림식당’을 찾았다. 종로에 있는 식당의 위치를 글로 소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종로, 얼마나 복잡한 곳인가. 하지만 계림식당은 글로 위치 설명이 가능하다. 종묘공원 건너편 오른쪽에 자리한 종로 먹자골목의 첫 식당이기 때문이다. ‘대기 시간 한 시간’ 맛집으로 자리 잡는 데는 이런 지리적 조건도 한몫했으리라.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자마자 빨간색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유명세와 달리 조그마한 문으로 들어서면, 닭볶음탕의 후끈한 기운이 코와 얼굴에 와 닿는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이 자동으로 들어가고, 이윽고 커다란 양푼이 나온다. 닭볶음탕 대(4인), 중(3인), 소(2인)에는 각각 닭 두 마리, 한 마리 반, 한 마리가 들어간다. 상차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낡은 양푼.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자, 계림식당의 50년 역사를 말해주는 증거 1호다. 닭볶음탕 위에는 다진 마늘이 수북하다. 마늘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물으니, 주방을 책임지는 최순분 씨가 간단히 대답한다. “원래 닭이랑 마늘이 잘 맞잖아요?” 푸짐한 마늘은 50년 전 계림식당의 중간 창업자라 할 수 있는 이배영 사장의 차별화 전략이다. 곱게 다진 마늘은 닭고기 누린내를 잡아주고, 탕을 진국으로 만드는 일등 재료다. 날마다 마늘을 30kg 정도 쓰고, 계림식당의 브랜드가 ‘계림 마늘닭’인 걸 보면 이 집에서 마늘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만하다. 혹 마늘의 풍미를 더 진하게 느끼고 싶다면, 탕이 나왔을 때 마늘을 덜어 소스에 섞은 뒤 고기를 찍어 먹는다. 마늘 말고 계림 닭복음탕의 차별화 포인트는 몇 가지 더 있다. 먼저 떡이다. 음식을 빨리 제공하기 위해 계림식당의 닭볶음탕은 얼추 끓인 상태로 나온다. 그리고 탕에는 떡볶이 떡이 제법 들었다. 토핑 수준이 아니다. 고기가 다 익을 때까지 쫀득한 떡을 심심치 않게 건져 먹을 수 있다. 쫄깃한 식감 때문에 젊은 여자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다. 드디어 고기가 익었다. 닭볶음탕에는 닭 한 마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다. 닭고기 특유의 뻑뻑한 살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슴살을, 부드러운 살을 좋아하는 사람은 날개를, 그 중간 육질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리를 먹으면 된다. 가슴살은 젓가락으로 찢어서 국물에 여러 번 찍어 먹으면 식감이 훨씬 부드럽다. 고기를 먹는 동안에는 불을 줄여야 국물이 졸지 않고, 감자가 먹기 좋게 익는다.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닭볶음탕 국물은 얼큰하고 진해서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이 집의 또 다른 차별화 포인트는 모든 맛집의 기본이 되는 신선한 재료다. 계림식당은 식재료가 동나서 평소보다 일찍 문 닫을 때가 있다. 날마다 장을 보기 때문에 닭은 물론, 재료를 주방에서 묵히는 일이 없다. 계림식당 간판에는 ‘50년 전통’이라고 쓰였으나, 식당이 시작한 것은 70여 년 전이다. 1967년 이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부터 계림식당이 있었다. 50년 전 세운상가가 들어설 무렵, 지금의 사장님이 계림식당을 인수해 마늘을 듬뿍 넣은 닭볶음탕으로 제2의 창업을 한 것이다. 그 후 1970~1980년대 경제성장기에 주변에 작은 공장들이 계속 생겼다. 사람이 몰렸고 당연히 식당도 호시절을 만났다. 푸짐한 닭볶음탕에 저렴한 가격, 좋은 입지 조건, 마늘이 듬뿍 들어간 독특한 맛으로 입소문이 났고, 인터넷 시대 맛집 열풍을 타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2014년에는 종로 본점에 이어 충무로에 직영점 두 곳이 문을 열었다. 거창한 프랜차이즈는 아니고 가업 형태로 조금 확장한 것이다. 지난해 <백종원의 3대 천왕>에 소개되면서 계림식당이 더 유명해졌다. 식당에는 머리가 허연 단골손님부터 젊은 연인, 각종 동호회 모임까지 손님의 연령과 구성이 다양하다. 전국구 맛집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빈 그릇에 닭 뼈가 하나둘 쌓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까지 건져 먹었으면, 칼국수로 마무리한다. 싱싱한 대파가 들어간 육수를 붓고, 육수가 끓으면 칼국수 투입!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을 한 국물이 칼칼하고, 납작한 칼국수 면발은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식당 골목을 나와 근처에 걸을 만한 곳을 찾아본다. 왼쪽 종로를 건너면 종묘, 오른쪽 세운상가를 지나면 청계천이다. 걷기에는 종묘가 세운상가 쪽보다 훨씬 품위 있고 쾌적하나, 오늘은 특별히 계림식당과 이 지역 요식업을 든든하게 받쳐준 세운상가로 길을 잡는다. 도심 여행지로서 세운상가는 빵점에 가깝지만, 서울의 ‘도시화 이야기’ 측면에서 보면 점수가 꽤 높은 편이다. 삭막하고 쇠락한 지금의 이미지와 달리 내부 인테리어와 상가 고층이 주는 전망에는 의외의 반전도 있다. 세운상가는 종로3가와 4가 사이에서 시작하여 청계천을 건너 을지로, 퇴계로까지 건물 여러 동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섰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은 ‘소개 공지대’, 즉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워둔 일종의 방화 벨트였다. 1945년 5~6월, 일제는 공습에 따른 화재를 막기 위해 이곳에 있던 건축물을 철거했다. 두 달 동안 1차 철거만 실시한 상태에서 해방을 맞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빈터에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그 후 이 지역은 서울의 대표적인 빈민가가 되었다. 판잣집이 다닥다닥 들어섰고, ‘종삼’이라 불리던 종로의 거대한 사창가가 이곳까지 확장되었다. 1967년 이런 도시의 그늘을 걷어내고 들어선 지상 8층 최첨단 주상복합건물이 세운상가다. 서울의 도시계획에 큰 획을 그은 세운상가 준공식에는 대통령이 참석했다. 상가 좌우, 비행기 사다리 같은 계단으로 올라간다. 상가 3층 좌우에 있는 보행 데크는 이곳의 독특한 구조물이다. 호기심에 5층 옥상정원까지 올라간다.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고, 상가 앞으로 종묘가 보인다. 종묘 뒤로는 서울의 내사산 능선과 백악산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싼다. 그제야 이곳이 서울 한복판임을 인지한다. 내친김에 건물로 들어간다. 5층 내부로 들어서니 의외의 공간이 펼쳐진다. 자연 채광이 은은하게 실내를 비추고, 자그마한 중앙 광장은 맨 위 8층까지 시원하게 트였다. 세운상가의 아트리움(중앙 홀)이다. 간이매점이 오래된 유적지를 지키듯 아트리움 입구에 자리 잡았다. 세운상가는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 김수근이 설계한 것으로, 아트리움 외에 공중 보행 데크, 공중 정원, 1층 자동차 전용 공간 등 설계가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건축 과정에서 분양 수익과 임대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건설 자본의 욕심이 대가의 이상과 도시의 비전을 어그러뜨렸다. 진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지만, 그런 욕심과 악착같은 노력이 오늘의 번영을 일구었기에 타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대의 효율과 효용이 최고의 선이자 가치인 시대 아니었나. 8층 복도에서 바라보는 북쪽 전망이 5층의 전망보다 멀고 시원하다. 상가에서 나와 남쪽 청계천으로 향한다. 청계천으로 가는 길, 조명 가게의 밝고 화려한 조명이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 청계천은 사통팔달한 곳이니 목적지와 가까운 쪽으로 산책을 이어가면 된다. 계림식당 종로 본점 -주소 :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4길 39 -영업시간 :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50분 -휴무 : 일요일 및 설·추석 연휴 -메뉴 : 닭볶음탕 소(2인) 2만 원, 중(3인) 3만 원, 대(4인) 4만 원 -전화 : 02-2263-6658, 02-2266-6962 주변 여행지 -종묘 : 종로구 종로 157 / 02-765-0195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 중구 을지로 281 / 02-2153-0000 http://www.ddp.or.kr/MA010001/getInitPage.do -남산공원 : 중구 삼일대로 231 / 02-3783-5900 http://parks.seoul.go.kr/template/default.jsp?park_id=namsan 숙소 -호텔코타 : 종로구 종로 294 / 010-7310-6232, 010-4793-8727 http://hotelkota.com/ -케이팝호텔 동대문 : 중구 을지로 255 / 02-771-7755 http://ddp.kpophouse.co.kr/ -고궁호텔 : 종로구 율곡로 164 / 02-741-3831 글, 사진 : 이병유(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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