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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주항이 자리 잡은 제주시 건입동은 조선시대 제주도의 관문이었다. 이곳을 통해 수많은 물자가 오갔고, 그것을 중계하는 객주들이 들어섰다. 기녀 출신인 김만덕(1739~1812)의 객주도 그중 하나였다. 제주도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그녀는 전 재산을 털어 쌀 500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기녀에서 거상으로, 다시 자선사업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김만덕을 기리는 기념관이 지난달 건입동에 문을 열었다. 요즘 같으면 9시 뉴스에 날 일이다. 청와대로 초청되어 대통령 표창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때는 정조 18년(1794), 제주 목사 심낙수가 조정에 급한 장계를 올렸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돌과 기와가 마치 나뭇잎처럼 날리더니 곡식이 바다의 짠물에 김치를 담근 듯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제주를 덮친 흉년이 고금에 드문 것이라 당장 구호미 2만 섬을 긴급 요청하였다. 조정에서는 순차적으로 2만 섬을 보내기로 하지만, 곡식을 싣고 출발한 수송선마저 풍랑에 침몰하면서 제주에서는 아사자가 속출하고 만다. 이때 나선 사람이 산지항에서 객주를 운영하던 행수 김만덕이었다. 어린 시절 너무도 가난하여 기녀가 되어야 했던 김만덕은 누구보다 배고픈 설움을 잘 알았다. 기녀의 신분에서 꿈에도 그리던 양인이 된 뒤, 객주를 차려서 번 돈을 털어 곡식을 사서는 배고픈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녀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수천 명이나 되었다. 2015년 5월 29일 문을 연 제주시 건입동의 김만덕기념관에서는 당시 상황을 각종 자료와 멀티미디어를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제주도민들의 생활상과 제주의 특산품, 당시 제주도 객주에서 취급한 물건들과 함께. 김만덕기념관은 단순히 그녀의 업적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김만덕 할망’의 정신을 이어받아 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도 보여준다. 별도로 마련된 ‘나눔실천관’에서 나눔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사람과 물건, 생명까지도 나눌 수 있는 나눔의 스펙트럼을 알아본다. 여기다 나의 나눔지수를 체크하고, 나눔약속 타임캡슐에 참여하며, 나눔사전을 함께 만드는 체험도 가능하다. 이 모든 것들을 게임처럼 즐기며 나눔을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자, 다시 김만덕 할망의 이야기로 돌아가볼까? 김만덕의 선행을 들은 정조는 그녀에게 큰 상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김만덕이 왕의 상을 사양하고 다른 소원을 말한 것이다. 육지로 올라가 금강산 구경을 하고 싶다는 것. 아니, 금강산을 보고 싶으면 그냥 가서 보면 되지, 굳이 임금님한테까지 청을 드리는 건 또 뭔가? 당시 제주도민들은 마음대로 육지로 나갈 수 없었다. 이른바 ‘출륙금지령’ 때문이었다. 이런 법이 생긴 것은 나라에서 부과하는 해삼, 전복 같은 공물이 과도하여 많은 제주도민이 육지로 도망을 간 탓이었다. 김만덕이 굳이 금강산 구경을 소원한 것은 혹시 출륙금지령을 에둘러 비판한 것은 아니었을까. 여하튼 김만덕의 소원을 전해들은 정조 임금은 금강산 구경뿐 아니라 한양과 궁궐 구경도 허락한다. 또 ‘의녀반수(醫女班首)’라는 벼슬을 내리고 임금을 알현할 수 있는 영광까지 주었다. 마지막으로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에게 김만덕의 선행을 담은 전기까지 지으라 했으니, 임금의 상을 사양한 덕분에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된 셈이다. 김만덕기념관에서 조금 떨어진 모충사에 있는 김만덕의 묘비에는 ‘행수내의녀김만덕지묘(行首內醫女金萬德之墓)’라는 글자가 지금도 선명하다. 모충사는 1976년 김만덕과 제주 의병들의 뜻을 기리고자 세운 사당이다. 원래 이곳에 김만덕의 묘지와 함께 기념관도 있었는데, 가까운 건입동으로 확장 이전한 셈이다. 정조 임금도 뵙고 금강산 구경도 마친 김만덕은 제주도로 돌아와 객주 일을 계속 하였다. 혼인을 하지 않고 양자를 들였는데, 74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재산의 대부분을 제주도민을 위해 기부했다고 한다. 훗날 제주도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가 김만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로운 빛이 온 세상에 퍼진다)’라는 편액을 써주기도 했다. 추사가 쓴 편액은 현재 국립제주박물관에 있고, 김만덕기념관에서는 모조품을 볼 수 있다. 또 모충사의 김만덕 묘비 옆에는 추사의 편액 글씨를 새겨놓은 비석이 있다. 김만덕기념관과 모충사가 있는 제주시 건입동은 옛날부터 제주의 관문이었다. 덕분에 거리 곳곳에 옛 이야기가 담긴 유적과 유물이 숨어 있다. 모충사가 자리한 사라봉 뒤편의 산지등대도 그중 하나다. 1916년에 처음으로 불을 밝힌 산지등대는 83년 동안 등대 역할에 충실하다가, 지난 1999년에 새로 지어진 ‘동생’에게 등불을 양보하고 지금은 근대문화유산이 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새하얀 등대도 아름답지만, 이곳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제주항의 풍경이 지금도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산지등대라는 이름은 산지천에서 나왔다. 한라산에서 발원한 산지천은 건입동을 관통한 뒤 제주항으로 빠져나간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60년대에 산지천을 복개하여 주택과 상가 건물이 들어섰지만, 1990년대 중반에 산지천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려는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이곳에는 홍수를 막아달라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조천석이 복원되어 있다. 산지천 인근에서는 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미륵상 2기를 만날 수 있다. 동쪽에 있는 것은 동자복, 서쪽에 있는 것은 서자복이라 불린다. 김만덕기념관에서 출발한다면 바로 앞 산지천을 보고 동자복과 서자복을 만난 뒤, 모충사에 들렀다가 산지등대에서 해지는 풍경까지 즐기면 좋다. 하루짜리 나들이 코스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김만덕기념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산지로 9-1 문의 : 064-759-6090 http://www.mandukmuseum.or.kr/ 모충사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사라봉길 75 문의 : 064-722-0614 1.주변 음식점 골막국수 : 고기국수 / 제주시 천수로 12 / 064-753-6949 산지물식당 : 물회 / 제주시 임항로 26 / 064-752-5599 흑돈가 : 흑돼지 / 제주시 한라대학로 11 / 064-747-0088 http://www.mandukmuseum.or.kr/ 2.숙소 호스텔린든 : 제주시 서광로 278 / 064-756-5506 http://www.hostellyndon.com/ 메이플호텔 : 제주시 원노형3길 41 / 064-745-6775 http://www.hotelmaple.com/ 호텔EJ : 제주시 제원1길 19 / 064-712-7880 http://www.hotelej.co.kr/ 글, 사진 : 구완회(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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