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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도 더 지난 옛날,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중앙선 비둘기호에 몸을 싣고 떠난 여행이 생각났다. 기차가 덜컹대며 덕소와 양평을 지나 원주 방면으로 느린 듯 꾸준한 힘으로 달릴 때, 창틀에 턱을 괸 채 열흘쯤 남은 입대일이 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원도나 동해안에 갈 때면 곧잘 지나는 곳이 구리와 남양주다. 요즘엔 새로 난 길이 많아서 강원도에 이르는 경로가 다양하지만, 옛날에는 춘천이든 원주든 가려면 남양주경찰서 앞 도농삼거리를 거쳐야만 했다. 여기서 원주 쪽으로 방향을 잡고 덕소를 지나 양평까지 가는 국도는 중앙선 철길과 마주보며 함께 달렸다. 때로 나란히 달리거나 엇갈려 지나기도 하면서 객차 안 승객들과 얼굴을 마주치기도 했다. 그런 중앙선 철로가 몇 년간 공사를 거쳐 어느 틈엔가 복선 전철로로 탈바꿈했다. 새 전철로가 놓이면서 옛 중앙선 철로는 구간에 따라 운명이 엇갈렸다. 철로를 걷어낸 뒤 자전거길이 되거나, 레일바이크용으로 쓰임새가 바뀌거나, 또 어느 구간은 아예 흔적조차 없어졌다. 남은 건 철로를 잃고 홀로 선 간이역 몇 개뿐. 덕소를 지나 팔당역 근처에 이르자 길가에 자전거 대여점이 여럿 보인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팔당 부근은 자전거 동호인들의 메카로 새롭게 떠올랐다. 전국의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길이 많이 열렸지만, 팔당~양수리~양평 구간만큼 멋진 곳도 드물다. 옛 중앙선 철로를 걷어낸 자리를 따라 난 자전거길은 예봉산 자락 터널 구간을 지나고 아름다운 팔당호반을 바라보며 이어진다. 그 길이 조안면에 이르면 능내역을 만나게 된다. 능내역은 1956년에 문을 열었다가 2008년 중앙선 복선 전철화가 끝난 뒤 폐역이 됐다. 하지만 오래된 역사를 철거하지 않고 사진전시관으로 꾸며서 보존한 점이 다행스럽다. 실내에 들어서면 벽면에 주렁주렁 매달린 빛바랜 사진들이 눈에 들어온다. 능내역의 옛 모습, 교복을 입은 중년 남녀, 앳된 커플의 밝은 미소를 담은 사진도 있다. 방문객들이 빌려 입고 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교복도 갖춰놓았다. 개찰구였던 문을 밀고 나서면 승객들이 열차를 기다리던 플랫폼과 철로가 보인다. 플랫폼에는 나무걸상이 마련돼 있다. 거기에 아주머니 몇이 앉아서 오래전 여고 시절로 돌아간 듯 깔깔대며 수다가 한창이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능내역과 달리 양수리에서 양평에 이르는 간이역들은 모두 없어지고 현대식으로 지은 번듯한 역사가 새로 들어섰다. 용문에서부터는 국도를 벗어나 341번 지방도에 들어선다. 지평역을 중심으로 한 지평면 일대는 6·25전쟁 때 유엔연합군과 중국 인민해방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1951년 겨울부터 중국군의 대공세에 밀리던 연합군이 대대적인 반격에 성공한 전적을 기려서 해마다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하지만 행사가 열리는 지평역 광장은 최근 새로 조성해서 옛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어지는 석불역은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간이역이다. 비록 새로 지은 역사지만 워낙 작은 데다 생김새도 남다르다. 운길산역에서 지평역까지 새로 지은 역들이 하나같이 네모나고 개성 없는 모습인 것과 비교하면 뾰족지붕을 갖춘 새 석불역은 장난감처럼 앙증맞다. 몇 년 전 근처를 지나면서 본 현수막이 생각난다. 거기에는 ‘지역민의 발이 되는 석불역 철거 반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땐 무심히 보며 지났지만 지역민들에게는 심각한 사안이었던가 보다. 그 덕분인지 이렇게 작으나마 새 석불역이 세워졌으니 다행이다. 옛 석불역은 가까운 곳에 아직 남아 있다. 철로를 걷어낸 낡은 역사를 살피다가 마침 양평군청 직원과 마주쳤다. 그는 관내에 남은 낡은 간이역들을 보존하여 관광자원으로 만들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으려면 고개 너머 구둔역이 보존 상태가 좋으니 거기로 가보라고 알려준다. 구둔역은 최근 국가유산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제296호로 지정되었다. 양평에서 원주 구간에 있는 간이역들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고 주변 경관도 뛰어나 보존 가치를 인정받은 덕분이다. 최근에는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찾는 이가 늘었다. 대합실에 들어서면 기다란 의자와 열차시각표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개찰구 문을 열고 플랫폼으로 나가면 빨갛게 녹슨 철로와 객차가 전시돼 있는 것이 보인다. 정면에 선 향나무에는 ‘소원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방문객들이 저마다 소원을 적은 쪽지를 가지마다 매달아두었다. 하지만 역 구내는 문화재로서 본격적인 정비가 이루어지기 전인 듯 전체적으로 좀 황량한 느낌이다. 그래도 큼직한 은행나무와 소원나무가 볼 만하고, 간이역다운 정감 어린 분위기가 마치 단편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매곡역과 판대역도 역사가 새로 들어섰다. 옛 매곡역은 벌써 철로를 걷어냈고 판대역은 아직 옛 모습 그대로다. 문 닫힌 대합실 앞 화단에는 무성한 잡초들 틈에 키 큰 참나리가 꽃을 피웠다. 비록 철로는 붉게 녹슬었지만 지금이라도 기차가 저편 산모퉁이를 돌아서 들어올 것만 같은 풍경이다. 판대역 다음 간현역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원주시에 속한다. 두 역 사이 경기도와 강원도를 나누는 건 섬강이다. 섬강에 걸린 지정대교를 건너서 찾은 간현역 입구에는 ‘원주레일파크’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간현역은 간이역답게 아담하고 새로 칠을 해서 깔끔해 보인다. 내부는 레일바이크 발권 창구로 변모했고, 플랫폼에는 레일바이크들이 늘어서 탑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간현역과 판대역 사이 7km 구간은 섬강과 삼산천을 건너는 교량이 7개, 터널이 6개나 있는 데다 주변 경관이 뛰어나 앞으로 무척 인기를 끌 것 같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곧잘 숨 막히는 경험을 한다. 속도에 지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는 잠시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옛 중앙선 간이역들을 찾으면 왠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느낌과 따뜻함을 맛볼 수 있다. 양평군 홈페이지 : www.yp21.net 양평레일바이크 : 031, 775-9911, www.yprailbike.com 원주레일파크 : 033-733-6600, www.wjrailpark.com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하남시 → 팔당대교 → 6번 국도 → 양평 → 341번 지방도 → 88번 지방도 * 대중교통 용산역이나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전철 이용 2.주변 음식점 육콩이네순두부 : 유기농쌈밥 /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102 / 031-773-6733 옥천냉면 : 냉면, 고기완자 / 양평군 옥천면 경강로 1493-8 / 031-773-3575 3.숙소 애화몽펜션 : 양평군 용문면 덕촌길 109 / 031-771-6030 http://www.ypension.net/ 양평여울펜션 : 양평군 용문면 상원사길 30-10 / 010-3737-6820 http://www.yeoulps.com/ 양평자작나무 : 양평군 서종면 북한강로 1062-19 / 010-8957-0713 - 글, 사진 : 김종한(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4년 4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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