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을 간질이는 꽃 내음에 덩달아 마음까지 간질거리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만춘, 나는 이맘때면 은은한 색감을 따라 하루종일 정처 없이 걷고 싶어지곤 한다. 이 어여쁜 계절을 가만히 두고 볼 수 는 없는 노릇. 봄바람이 살랑이던 날, 나는 배낭을 둘러메고 갈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보다 깊은 봄을 만날 수 있는 남쪽, 거기서 더 더 남쪽으로 가다보면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제도. 겨울조차 따뜻해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빨리 찾아온다는 곳이다. 푸른 봄 한옥집, 소낭구 펜션 4월이 시작되던 날, 서울은 꽃샘추위로 여전히 조금 쌀쌀했지만, 이곳은 달랐다. 벚꽃은 흐드러지고, 샛노란 수선화가 지천에 만발이다. 더군다나 이 모든 봄꽃이 푸른 남해 바다와 어우러져 화폭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자아낸다. 아, 여기에 딱 어울리는 숙소 없을까? 그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흙 내음이 잔뜩 깃든 전통 한옥, 소낭구. 거제대학교 초입에 대규모 전통 한옥으로 유명한 소낭구 펜션이 있다. 고현 버스터미널에서 20번 버스를 타고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6,000평의 넓은 대지에 사장님의 정성이 깃든 야생화와 벚꽃나무, 그리고 황토와 소나무만으로 지어진 전통 한옥 건물이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이 안에 올봄이 모두 있구나, 굳이 나갈 것 없이 이곳에만 있어도 봄을 느끼기에는 충분하겠구나- 싶었다. 소낭구는 크게 소낭구 펜션, 옛마실 펜션, 소낭구 팔각정 건물로 나누어져 있고, 소낭구 펜션의 경우 13평짜리 2인실과 16평, 18평짜리 가족룸, 그리고 30평짜리 대형 가족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혼자 떠나온 길이었기에, 13평짜리 '해송정'이라는 객실에 묵었다. 침실, 화장실, 거실로 이루어져 혼자 쓰기에 아주 넉넉한 규모였다. 가옥을 빙 둘러싼 소나무 덕에 방 안에서도 자연의 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주방에는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등 온갖 조리기구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야외 바비큐도 가능했다. 내가 머무는 건물에서 계단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별정마실'이라는 차실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사장님께서 내려주신 따끈한 대추차 한 잔을 마셨다. 차 한잔과 함께 가진 잠깐의 휴식으로, 서울에서 거제까지 이어진 긴 이동의 피로가 싸악 가시는 듯 했다. 2022년 4월 기준, '별정마실'은 오후 5시까지만 운영한다고 하니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진 후, 방에서 나와 건물 2층으로 올라가보니 소낭구 펜션 전체와 지세포항이 내려다보였다. 나는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찬찬히 해가 넘어가자, 이내 바다가 캄캄해지고 소낭구 펜션 곳곳에 노오란 불빛이 밝혀졌다. 그 모습이 마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속 한 장면 같았고, 나는 오래도록 그 모습을 보며 거제도에서의 첫 봄밤을 보내었다. 새벽 6시 반, 평소 같으면 한창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지만, 봄기운 탓일까 웬일로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가볍게 옷을 걸쳐 입고 문밖으로 나섰다. '해송정'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2,000평에 달하는 소낭구 정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정원 우측으로 걷다 보면 사장님께서 만들어 둔 그네 하나가 나오는데, 발리의 관광 명소 '발리스윙'에서 따온 '거제스윙'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나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네 위에서 노래를 들으며 이곳의 아침을 만끽했다. 거제도의 절경, 해금강 숙소에서 좀처럼 발을 뗄 수 없었던 나는,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야 거제도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소낭구 펜션에서 30분 정도 걸으면(버스 이용 시 약 20분, 자가용 이용 시 약 5분) 장승포항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외도 보타니아에 가는 투어 유람선을 탈 수 있다. 나는 외도 보타니아 왕복에 해금강 선상 관광이 더해진 패키지 상품을 예약해 두었는데, 정가는 2만 원이나 온라인 예약 시 1만 4천 원으로 할인되므로 사전 예약을 하는 편이 좋다. 시간은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며, 짧게 외도 보타니아만 다녀오고 싶다면 다른 항구의 배를 이용하는 편을 추천한다. 출항 후 5분 쯤 지나자 왼편으로 동백섬이라 불리는 지심도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대마도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신랑, 신부 바위라 불린다는 해암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해금강의 절경이 펼쳐졌다. 배애서는 위태롭게 솟아 있는 촛대 바위, 일출 때 가장 멋지다는 사자 바위 등 아름다운 돌섬 곳곳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곳은 날씨가 좋지 않으면 오기 어려운 곳이라, 오늘은 정말 운이 좋았다. 운이 좋으니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졌다. 이국적인 봄, 외도 보타니아 출항 후 해금강 투어를 포함하여 한 시간 쯤 지났을 무렵,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외도 보타니아에 도착했다. 외도 보타니아는 한려해상국립공원 내에 있는 해상 식물공원으로, 남해의 파라다이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섬에 내려 길을 따라 올라가자 740여 종의 희귀 열대식물과 천국의 계단, 비너스 가든, 벤베누토 정원 등 곳곳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줄지어 있어,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이 무척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유럽의 어딘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곳은 1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다고 한다. 따스한 나날이 지나고 언젠가 코끝이 시린 계절이 찾아왔을 때, 봄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언제든 이곳에 돌아와 남아있는 봄을 걸어야지-나는 생각했다. 청량한 봄, 맹종죽순 체험길 이젠 본격적으로 거제의 길을 찾아 나섰다. 거제도 내에는 섬&섬길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걷기 코스가 조성되어 있는데, 나는 가장 먼저 대나무 숲이 우거진 맹종죽순 체험길을 택했다. 이 코스는 전체 3개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사환마을 입구에서 시작해 맹종죽 테마파크 둘레길을 걷는 1,2구간을 걸었다. 3구간까지 다 걸을 경우 8km에 달하는 길이지만, 잘 다듬어져 있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맹종죽(대나무)이 가장 많은 지역이 바로 거제도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2구간에서 만날 수 있는 맹종죽 테마파크는 다양한 체험요소가 가득한 곳으로, 몸과 마음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한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하늘이 여느 때보다도 맑은 4월, 맹종죽순 체험길을 걸으며 청량한 봄을 느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봄바랑 살랑이는 바람의 언덕길 거제도 북부의 길을 걸어보았으니, 이번에는 남쪽의 길을 걸어봐야지 싶은 마음으로 도장포 마을로 내려왔다. 이곳에는 새파란 바다와 풍차가 어우러진 그림같은 풍경으로 유명한 '바람의 언덕'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곳을 지나는 산책로 '바람의 언덕길'도 만나볼 수 있다. 도장포에서 바람의 언덕, 우제봉 전망대를 지나 해금강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가벼운 등산로를 포함하여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이 길의 하이라이트는 다름 아닌 1구간, 바람의 언덕. 이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앉아 있노라니 살랑살랑 차지 않은 바람이 앞머리를 기분좋게 간질였다. 거제의 바다와 산, 그리고 봄바람이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는 봄 산책이었다. 글/사진 : 여행작가 메이 ※ 위 정보는 2022년 4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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