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름이 물러간 산은 아침 공기부터 다르다. 경상북도 영양은 산줄기가 겹으로 두른 산간분지여서 일교차가 크다. 서늘해 걷기 좋고, 굽은 산길을 한참 달려야 닿는 자리라 붐비지도 않는다. 영양에서는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걸어도 좋다. ★ 영양 나홀로 여행 추천 코스 ★ - 영양 서석지: 연못 속 돌마다 이름을 붙여 만든 민가 정원 - 연당림: 연당마을 빈집을 되살린 한옥 브런치 카페 - 영양 자작나무숲: 솔잎혹파리 피해지에 심은 나무가 국내 최대 군락이 된 100대 명품숲 - 지훈문학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애와 문학을 담은 주실마을의 문학관 영양 여행은 입암면 연당마을에서 시작한다. 돌담을 따라 걷다 열린 문으로 들어서면 서석지라는 작은 연못이 나온다.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조선의 3대 민가 정원으로 꼽힌다. 세 곳은 저마다 멋이 다른데, 못 속의 돌마다 이름을 붙인 정원은 서석지뿐이다. 서석지는 석문 정영방이 만들었다. 정영방은 160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은거할 곳을 찾아 이 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다. 정자를 짓고 못을 판 시기는 1645년으로 추정한다. 담장 안에 못과 정자, 서재와 화단을 들여 아담하게 꾸민 정원이다. 마루가 넓은 경정은 못을 내려다보며 손님을 맞던 정자이고, 앞에 툇마루를 길게 낸 주일재는 정영방이 글을 읽던 서재다. 주일재 앞에는 못 안쪽으로 네모난 화단을 내밀어 쌓았다. 선비가 벗으로 삼던 매화와 국화,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고는 사우단(四友壇)이라 했다. 담장 뒤쪽에는 집을 지키고 돌보던 이가 머물던 수직사가 있다. 물이 들어오는 도랑을 읍청거, 빠져나가는 도랑을 토예거라 했다. 두 이름에는 ‘맑은 것을 떠 담고 흐린 것을 뱉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못은 바닥의 돌을 치우지 않은 채 가장자리만 다듬어 쌓았다. 걸어 다니며 보는 정원이 아니라, 마루에 올라앉아야 못이 제대로 보인다. 못 이름도 물속의 돌에서 나왔다.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돌이 예순 남짓이다. 정영방은 이 돌들을 상서롭다고 하여 서석(瑞石)이라 부르고 하나하나에 이름을 지어 주었다. 신선이 노니는 선유석, 물고기를 닮은 어상석, 별이 떨어진 낙성석. 각각의 이름은 돌에 새기지 않고 시를 지어 남겼다. 여름이면 연꽃이 올라와 돌을 덮는다. 가을로 접어들면 잎이 성글어지고 그 자리로 돌이 하나씩 드러난다. 신을 벗고 경정 마루에 오른다. 처마가 볕을 가려 마루 끝까지 그늘이 든다. 담 너머에서 이따금 새소리가 들어온다. 기둥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뻗으면 좀처럼 일어서고 싶지 않을 만큼 편안한 휴식이 찾아온다. 마루를 혼자 차지하는 시간을 가지며 영양 여행을 시작한다. 영양 서석지 - 주소: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서석지1길 10 - 문의: 054-680-6442 서석지를 나와 흙돌담을 따라 걸으면 몇 분 만에 연당림에 닿는다. 연당마을에는 한때 고택이 많았지만, 사람이 떠나며 빈집이 늘었다. 담이 무너지고 기와가 내려앉았지만, 영양군은 2020년부터 연당1리 빈집들을 카페와 마을도서관,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하며 조용해진 지역을 되살렸다. 그중 두 채를 고쳐 귀촌한 청년이 문을 연 곳이 연당림이다. 회벽 건물에서 주문을 받는다. 문을 나서면 잔디 마당인데 파라솔과 평상, 낮은 나무 단을 곳곳에 흩어 놓았다. 마주 보는 본채는 긴 툇마루 위에 소반과 방석을 올렸다. 소반 하나를 앞에 놓고 마당 쪽으로 돌아앉으면 시골집에 잠시 들른 기분이다. 시골집의 운치뿐만 아니라 세련된 감각도 공존한다. 단정한 벽면에 세로로 새긴 연당림 상호와 작은 의자를 둔 포토존은 소박한 멋을 지닌다. 창호문으로 나눈 실내 공간이 있지만,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는 툇마루 자리가 좋다. 연당림에는 영양 특산품인 사과를 넣은 메뉴가 많다. 사과 에이드, 라떼, 샌드위치를 선보인다. 대표 메뉴인 사과 에이드는 붉은 기가 도는 색에 상큼함이 앞서고 이따금 작은 사과 알갱이가 씹힌다. 브런치 플레이트에는 파스타와 소시지, 달걀과 빵, 과일과 샐러드를 한 접시에 담아낸다. 쟁반을 들고 툇마루로 돌아와 소반에 살포시 올린다. 한옥 마루에 앉아 구수한 한식이 아닌 서양식 브런치를 즐기는 일은 낯설지만 색다른 경험이다. 연당림 - 주소: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서석지2길 4 - 운영 시간 [평일] 10:00~20:00 (주문 마감 19:00) [주말] 10:00~19:00 (주문 마감 18:00) ※ 매주 월요일 휴무 - 문의: 0507-1344-8519 연당마을을 나와 북동쪽으로 차를 몰면 수비면 죽파리다. 검마산, 울연산, 금장산이 사방을 막아선 산골이다. 조선 시대에 보부상들이 흘러들어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언덕에 대나무가 흔해 죽파라 불렀다. 힐링센터에서 자작나무숲까지는 좁은 임도로 3.2km다. 일반 차량은 들어가지 못한다. 걸어도 되지만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힐링센터 앞에서 무료 전기차를 타면 15~20분이면 자작나무숲 초입에 닿는다. 차창 밖으로 붉은 고추를 너는 주민이 스치고 밭을 지나면 이내 마을이 끝난다. 두 번째 차단봉이 올라가고 포장이 끊기는 데서부터 숲길이다. 나뭇가지가 머리 위로 터널을 이루고 계곡 물소리가 따라붙는다. 전기차에서 내리면 공기부터 선선하다. 흰 줄기가 산기슭을 가득 메운 숲이 눈앞이다. 1990년 무렵 해충인 솔잎혹파리가 이 일대 금강소나무를 덮쳤다. 나무가 대규모로 말라 죽자 산림청은 대체 수종으로 자작나무를 골랐다. 시베리아와 만주처럼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여서 검마산 자락의 높고 서늘한 기후와 잘 맞았다. 1993년 국유림에 시범 조림한 것이 30년 만에 국내에서 가장 넓은 군락이 되었다. 2023년에는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으로 선정됐다. 흰 줄기 사이에는 살아남은 금강소나무 몇 그루가 섞여 있다. 길은 두 갈래로, 1코스가 약 1.49km, 2코스가 약 1.52km다. 표지판을 세우는 대신 나무 줄기마다 작은 이정표와 화살표를 걸었다. 가까이 서면 흰 껍질이 종이처럼 얇게 벗겨져 말려 있다. 초입은 목재 산책로고, 안으로 들어서면 흙길로 바뀐다. 돌이 드러난 오르막이 이어져 발밑을 살피며 걷게 된다. 앞뒤로 인기척이 끊기는 구간이 길어 걸음을 늦춰도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중간에는 액자 모양 포토존과 평상을 놓은 쉼터가 나온다. 두 코스는 모두 전망 공간에서 만나는데,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숨이 차오를 무렵 시야가 트인다. 난간 너머로 검마산 자락이 겹겹이 포개진다. 숲 한가운데를 계곡이 가른다. 아치형 목교를 건널 때 물소리가 가장 크다. 돌 사이로 얕은 물이 지난다.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고, 가을에는 청량한 소리로 숲을 채운다. 여행TIP 전기차 운행 간격은 평일과 주말이 다르다. 영양문화관광 누리집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양 자작나무숲 - 주소: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자작나무길 96 - 문의: 054-682-6853, 054-680-6851 영양 여행의 마지막 걸음으로 지훈문학관으로 향한다. 영양읍에서 7km 떨어진 주실마을에 자리한다. 주실마을은 1629년 호은공 조전이 터를 닦은 뒤 한양 조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실학자들과 교류하며 일찍 개화했고 일제강점기 내내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시인 조지훈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2007년 문을 연 지훈문학관은 봉우리 아래 앉은 정면 열두 칸의 긴 한옥이다. 문을 열면 흉상이 먼저 서 있다. 그 뒤로 전시가 ‘ㅁ’자를 그리며 돌아간다. 일생을 시기별로 나누어 소개한다. 첫 방은 조지훈의 어린 시절이다. 벽 한 면에 오래된 사진이 걸려 있는데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소년 16명이 나란히 서 있다. 세 살 위 형 세림이 마을 아이들을 모아 만든 소년회다. 형제는 북간도로 밀려가는 사람들의 사정을 소인극으로 꾸며 마을에 올렸다. 일본 경찰의 감시가 뒤따랐다. 복도 진열장에는 육필 원고가 펼쳐져 있다. 두보의 시를 우리말로 옮긴 원고다. 세로줄 칸을 넘지 않게 한자와 한글을 또박또박 눌러썼다. 획이 흐트러진 데가 없다.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승무」가 그의 시다. 청송에서 영월까지 이어지는 걷기길 외씨버선길도 이 시의 한 구절에서 이름을 땄다. 13개 길 가운데 6길인 조지훈문학길이 주실마을로 들어와 문학관 앞에서 끝난다. 전시 중반에 이르면 걸음이 느려진다. 일제가 문인들을 친일 문학 단체로 끌어들이던 무렵이다. 조지훈은 가입을 마다했고 그길로 붓을 놓았다. 그는 주실로 돌아왔다. 청록파라 불리는 세 사람이 나란히 걷는 사진이 눈길을 끈다. 조지훈이 가운데, 박두진이 뒤, 박목월이 옆이다. 광복 이듬해 함께 낸 시집 『청록집』에서 나온 이름이다. 일제강점기 말, 많은 문인이 시국에 협력하는 글을 썼지만 셋은 붓을 놓고 물러나 있었다. 이들은 일제의 강요에 동조하지 않고 순수시를 다듬었다. 광복이 오자 곧바로 시를 묶어 낼 수 있었던 까닭이다. 좌우로 갈려 문단이 시끄럽던 때에 이들이 내놓은 것은 자연을 노래한 시였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는 생전에 쓰던 유품을 놓았다. 안경, 나비넥타이, 서예 도구가 나란히 놓여 있다. 안경은 세상을 떠나기 예닐곱 해 전, 1960년대에 쓰던 것이다. 조지훈은 마흔여덟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전시관에 걸린 시를 되새기다 보면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문학관을 나와 마을 쪽으로 몇 분 걸으면 호은종택이다. 조지훈이 나고 자란 집으로, 팔작지붕을 얹은 ‘ㅁ’자형 반가다. 겨울이 긴 영남 북부에서는 마당을 안으로 감싸는 이런 집을 지었다. 앞서 본 문학관 전시가 ‘ㅁ’자로 도는 것도 이 배치를 닮았다. 솟을대문 아래에는 태극기를 새겨 채색한 판을 살창에 끼웠다. 이 집에서 의병장과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다. 돌아 나오는 길도 들어올 때와 같다. 굽은 산길을 한참 달려야 한다. 영양에서는 하루 동안 말을 몇 마디 하지 않아도 마음이 풍족하다. 지훈문학관 - 주소: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길 55 - 운영 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입장 마감 17: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입장 마감 16:00)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 휴관 - 문의: 054-682-7763 | 글, 사진: 김덕식 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6년 9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글, 사진은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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