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은 닭고기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다. 말도 안 된다. 그런데 차분하게 생각하면 말이 된다. '닭고기' 하면 털이 뽑힌 알몸뚱이가 떠오르지만 치킨은 그렇지 않다. 바삭한 튀김옷으로 알몸을 가리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기름으로 치장한 모습만 연상된다. 치킨이 닭고기가 아니란 말은 닭고기는 생물, 치킨은 상품이란 의미다. 억지 주장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잘 튀겨진 치킨 한 조각에 하얀 거품 올라온 맥주 한잔 대접하면 인정해줄 것으로 믿는다. 치킨은 국민 간식이다. 출출할 때 배달전화 한 통이면 금세 '딩동' 벨소리와 함께 배달 왔어요 다. 요즘 같은 철이면 소풍 메뉴로도 손색이 없다. 때론 한 끼 식사로, 때론 술안주로 변신한다. 어른들은 '치맥', 아이들은 '치콜' 한 마디면 어느새 무장해제다. 잘 튀겨진 튀김옷의 바삭거림, 그 속에서 뜨겁게 드러나는 하얀 속살이 어색한 인간관계를 부숴버리고, 머리를 누르고 있던 시험 걱정들을 모두 다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치킨은 우리의 현대사다. 역사는 비록 반세기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그 안에 우리의 가까운 어제와 오늘이 보인다. 국내 치킨의 원조는 '명동영양센터'의 전기구이 통닭이다. 1960년 명동 한복판에 기묘한 닭고기집이 들어섰다. 발가벗은 생닭 여러 마리를 긴 꼬챙이에 끼워 빙글빙글 돌려 구웠다. 시간이 흐르면 하얀 껍질이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변해갔다. 유리창 너머 전기오븐 속 풍경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기름이 쪽 빠진 살코기와 새콤달콤한 하얀 깍두기. 생전 처음 먹어보는 것이지만 둘이 제대로 어울렸다. 대도시 중심가에 속속 '영양센터'가 들어섰다. '전기구이'란 얘기를 들으면 잠자던 아이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전기구이통닭의 등장은 '치킨시대'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물을 붓고 끓여 양을 늘려 나눠 먹는 '닭'이 아니라 통째로 불에 구워 뜯어 먹는 '치킨'이 된 것이다. 1970년 말 '림스치킨'이 국내 최초의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등장하면서 닭 조각 튀김이 급속히 퍼졌다. 'OB비어' 등 생맥주 체인점에서도 닭 조각 튀김을 취급하면서 프라이드치킨은 맥주 안주의 대명사가 됐다.
닭튀김을 치킨으로 부르기 시작한 건 미국계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 'KFC'가 서울에 진출한 1984년부터다. 태평양을 건너온 치킨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내 치킨 브랜드도 잇따라 생겨나면서 프라이드치킨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국민 메뉴가 됐다.
한국어로 귀화한 치킨은 양복 위에 한복을 겹쳐 입는 신 메뉴로 변신한다. 새빨간 양념을 온몸에 바른 '양념치킨'이다. 고추장, 마늘, 물엿 등을 넣은 매콤달콤한 소스에 튀긴 닭 조각을 버무린 것으로, 1982년 대전에서 출발한 '페리카나'에서 처음 내놓았다고 한다. 이후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까지 가세하면서 프라이드치킨을 밀어낼 기세로 '반반(프라이드치킨 반, 양념치킨 반)'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TV 앞에 앉아 스포츠 경기를 볼 때면 으레 치킨을 배달시키게 됐다. 손가락을 쪽쪽 빨아가며 우리 선수들을 응원했다. 1990년대 말엔 '찜닭'과 '불닭'이 혜성처럼 나타난다. 안동의 재래시장 골목에서 팔던 찜닭이 서울 대학로에 상륙한다. 안동찜닭은 닭과 함께 당면, 청양고추 등을 넣고 간장소스에 볶은 요리다. 양이 넉넉해 지갑이 얇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인기를 누렸다. 그 뒤를 이은 입안에 불이 난 것처럼 매운 불닭. 2002년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에 오르며 응원단 붉은악마의 물결이 온 나라를 뒤덮었을 때 불닭도 신바람이 났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몇 년 뒤 조용히 사그라졌다. 찜닭과 불닭을 통해 모처럼 일던 '닭의 부활'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2008년엔 웰빙 바람을 타고 튀김이 아닌 구운 치킨이 출시된다. 몸에 나쁜 트랜스지방의 부담이 덜하고, 칼로리도 상대적으로 낮다고 열심히 선전했지만 프라이드치킨의 아성을 넘기엔 역부족이다. 반세기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늘 서민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눈 치킨. 그 변신과 발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맘때 밤공기는 알싸하니 기분 좋다. 여기에 닭 튀기는 치킨 냄새까지 더해지면 버틸 재간이 없다. 날개라도 하나 들고 '와그작' 씹어줘야 한다. 그리고 하얀 거품의 맥주 한 모금 마셔주면 이 계절이 모두 당신 것이 된다. 신호등 장작구이 뱃속에 찹쌀, 인삼, 대추, 마늘, 은행 등을 품은 닭 한 마리가 뜨거운 철판에 납작 엎드려 나온다. 삼계탕처럼 뱃속을 가득 채운 닭을 꼬챙이에 끼워 기름을 빼며 장작불에 익힌 뒤, 손님상에 내기 직전 뜨겁게 달군 철판에 올려낸 것이다. 마지막에 철판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긁어먹는 재미도 있다. 선주후면(先酒後麵, 술 마신 뒤에 국수 먹기)에 걸맞게 잔치국수도 판매한다. 닭장작구이 1만7000원, 잔치국수 4000원.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96-14. 02-382-4536 계열사 이름부터 유별나다. 한번 들으면 머리에 콕 박히는 브랜드다. 다른 곳의 치킨에 비해 튀김옷이 바삭거리고 짭짤하다. 치킨만 먹기엔 부담스럽다. 맥주나 음료를 부르는 맛이다. 속살은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있다. 큼직하게 썬 감자튀김과 함께 소쿠리에 담아낸다. 감자튀김 덕에 추가 주문을 안 해도 배가 든든하다. 부암동의 명물로 자리 잡아 주말엔 줄 설 각오를 해야 한다. 프라이드치킨 2만원. 서울 종로구 백석동길 7. 02-391-3566
명동영양센타 1960년 서울 명동에 처음 문을 연 전기구이 통닭집. 기름기가 쪽 빠진 쫄깃하면서도 담백한 속살, 바삭거리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닭 껍질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단박에 전기구이통닭을 국민 별식으로 끌어올렸다. 사실 닭을 전기구이로만 익히는 게 아니라 손님에게 내기 전 기름에 한 번 더 튀겨낸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통닭 한 마리 中1만6500원, 大1만7500원. 서울 중구 명동2길 52. 02-776-2015 반포치킨 반포의 랜드마크인 치킨집이다. 다른 곳에선 맛보기 어려운 마늘치킨으로 강남의 고급 입맛을 평정했다. 알싸한 마늘향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닭고기의 뒷맛을 잡아준다. 닭을 전기오븐에 넣기 전에 다진 마늘 한 숟가락을 닭 속에 넣어 살점 깊숙한 곳에도 마늘 맛이 배도록 했단다. 몇 년 새 골뱅이 무침 등 맥주 안주 메뉴가 많이 늘었다. 전기구이 마늘치킨 1만6000원.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38. 02-599-2825
양재닭집 치킨 메뉴 한 가지만 있는 곳. 시장 건물 지하에 있어 허름하지만 가격과 양을 따져볼 때 만족도가 가장 높다. 짭조름한 튀김옷에 기름이 적당히 배어 나오는 투박한 맛이 기분 좋게 다가온다. 오후 10시가 넘어서도 2차, 3차까지 헤어지지 못하는 술손님들 때문에 맛보기 쉽지 않다. 치킨 1만4000원.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356길 15. 02-572-1741 새로나호프 청담동의 터줏대감 치킨집. 1977년 영업을 시작해 2000년 카레를 접목한 퓨전통닭을 내기 시작한 게 손님들에게 먹혔다. 닭고기를 재울 때부터 카레를 뿌리고 튀긴 치킨을 테이블에 낼 때도 카레가루를 듬뿍 뿌려서 낸다. 중독성 강한 카레 맛 때문에 자주 찾는다는 게 단골손님들의 설명이다. 카레치킨 1만8000원.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522. 02-544-2802 출처 : 청사초롱 글 : 유지상(음식칼럼니스트) 사진 : 박은경 ※ 위 정보는 2019년 7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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