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농, 반닫이, 문갑, 탁자… 소박하고 검소한 전통가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탁자 앞에 앉아 사서삼경을 읽던 선비, 장과 농에 소중한 물건을 보관하던 여인은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그네들의 온기가 스며든 전통가구만 제 모습 그대로다. 전통 민속품 수집을 취미가 아닌 숙명이자 의무로 생각한 사람의 노력 덕분이다.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성재정 관장은 귀중한 전통 민속품이 사라져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 1970년대부터 하나둘 수집하기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수집하고 또 수집하기를 30여 년. 선조들의 삶을 혼자 보는 것이 안타까워 미리벌민속박물관을 열었다. 그의 고집스런 노력으로 우리는 조선시대 고관대작부터 평민들이 사용하던 사랑방과 안방, 주방가구를 비롯해 각종 생활용품을 통해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미리벌민속박물관으로 가는 길, 시내에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초동면 범평리의 조용한 시골에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도 화려하지 않다. 폐교된 범평초등학교를 박물관으로 활용해 길가의 '미리벌민속박물관' 안내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박물관 건물로 들어간다. 특이하게 입구에 매표소가 없다. 무료는 아니고 관람을 마치고 나갈 때 지불하는 방식이다. 전시공간은 교실 5개로 꾸몄다. 사랑방 가구, 안방 가구, 부엌가구와 생활소품, 초등학교 사회 교과과정에 나오는 민속품, 평상 전시실 등으로 구분했다. 제1전시실의 주제는 사랑방 가구다. 사랑방은 남자들의 공간이다. 선비가 글을 읽기도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방이다. 그러다 보니 가구들이 단순하고 간결하다. 전시물은 사랑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반닫이다. '닫이'란 문짝을 의미한다. 반닫이는 문이 반만 닫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로 책이나 문서, 옷 등을 보관했다. 장식은 적지만 나뭇결을 살려 가구 자체의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만석꾼이 엽전을 보관하던 돈궤도 눈에 띈다. 하늘이 내린다는 부자가 사용하던 금고니 한눈에 보기에도 두꺼운 나무판자에 시우쇠를 달아 튼튼해 보인다. 돈궤는 문을 위로 연다고 해서 윗닫이, 문을 들어서 연다고 해서 들닫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2전시실은 여성의 공간에서 사용되던 장과 농이 주를 이룬다. 박쥐와 나비 문양 경첩으로 한껏 멋을 낸 가구들은 얼핏 봐서는 어느 것이 장이고, 어느 것이 농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요즘에는 옷가지를 넣어두는 가구를 장롱이라 부르지만, 예전에는 장과 농이 구별되었다고 한다. 장은 층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구성되고, 농은 각 층이 분리되는 형태다.
장과 농은 생김새가 비슷하나, 사용자의 신분과 경제력은 차이가 난다. 장은 양반가의 대표적인 혼수품이었다. 제작비가 많이 들고 공간의 제약도 받아서 일반 서민은 사용하지 못했다. 서민들은 고리짝이나 값싼 농을 주로 썼다. 농은 경제력이나 가족의 수에 따라 크기와 모양새가 결정되었다. 아래층에는 철 지난 옷을 보관하고, 위층에는 평상시 입는 옷이나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넣어 사용했다. 제3전시실에는 부엌에서 사용하던 물건이 가득하다. 입구에 쌀과 보리 등 곡식을 보관하던 뒤주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별하게 멋을 내지 않은 투박한 생김새지만, 붕어 모양 자물통을 채운 게 유독 시선을 끈다. 탱글탱글한 물고기의 알처럼 항상 곡식이 가득 차 있으라는 기원을 담은 것이다.
한쪽 벽면을 사기그릇과 소반, 소쿠리가 가득 메웠다.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소반이다. 소반은 작은 상으로 둥그런 것도 있고, 네모난 것도 있다. 둥그런 것은 흔히 '개다리소반'이라 부르며,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내는 밥상이다. 반면 사각 소반은 신분이 높은 이들을 대접할 때 사용했다.
복도 쪽 창에는 대형 채반이 걸려 있다. 싸리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둥글게 만든 채반인데, 지름이 118cm나 되어 국내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크다. 이처럼 커다란 채반에 먹음직스러운 부침개를 가득 채울 정도라면 보통 부잣집이 아니었을 게다. 전시실을 이동할 때도 복도에 가지런히 정돈된 민속품과 마주한다. 주로 농사에 사용되던 도구다. 새끼를 꼬는 기계도 있고, 지게에 얹힌 멍석도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보고 만질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우리 것에 친숙함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제4전시실은 초등학교 관련 교과 단원에 나오는 민속품으로 꾸몄다. 떡 만들 때 문양을 새기는 떡살, 옛사람들의 밥그릇, 대나무로 엮은 닭장, 가마솥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물건이 많다. 여인들이 시집갈 때 타던 가마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재미난 것은 가마 옆에 작은 요강이 놓인 점이다. 가마를 타고 갈 때 급한 볼일을 보기 위한 것이다. 한데 너무 작아 소변이나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싶다. 가마 요강의 다른 용도는 멀미를 위한 것이다. 실제 가마를 타고 가면 흔들거려서 멀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제5전시실에는 눕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평상이 놓여 있다. 평상은 오수를 즐기는 데 요긴한 가구이자, 사람들과 차를 나누며 이야기하기에도 좋은 자리다. 굽다리가 높은 평상은 주로 고관대작의 것이라고 한다. 전시실 밖에는 잔디가 깔린 너른 운동장이 펼쳐지고, 담장은 대나무 울타리다. 텅 빈 운동장과 한쪽에 깔린 기찻길, 장승 몇 개뿐 별다른 시설은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난다. 축구공 하나가 더해지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자연 그대로 즐기는 공간이다. 한눈에 봐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임을 느낄 수 있다. 박물관이라는 어렵고 딱딱한 공간을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로 활용하겠다는 관장의 생각이 읽힌다. 미리벌민속박물관에는 관람객을 위한 특별 서비스가 있다.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한 학예사가 동행하는 것. 모든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안내하고 유물에 대해 설명해주기 위해서다. 초등학생에게는 옛날이야기와 퀴즈를 곁들여 재미있게,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에게는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말벗이 되어 민속용품의 모든 것을 자세히 알려준다.
* 문의 055-391-2882
* 홈페이지 www.miribeol.org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신대구부산고속도로 → 남밀양IC → 25번 국도(부곡 방면) → 제일비료 → 수산교차로 우회전 → 파서리 → 안강교 → 귀명리 → 초동교차로 우회전 → 미리벌민속박물관
* 대중교통
[버스] 부산-밀양 :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1577-8301)에서 1일 18회(07:00~20:40) 운행, 약 1시간 20분 소요 밀양-미리벌민속박물관 :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산버스터미널 하차, 초동 방면 버스 타고 초동면사무소 하차(15분 소요), 도보로 5분
[기차] 서울-밀양 : 서울역(1544-7788)에서 밀양역까지 KTX 1일 17회(07:40~21:50) 운행, 약 2시간 30분 소요 대전-밀양 : 대전역에서 밀양역까지 KTX 1일 17회(08:39~22:48) 운행, 약 1시간 30분 소요 부산-밀양 : 부산역에서 밀양역까지 KTX 1일 11회(06:15~20:55) 운행, 약 40분 소요
2.맛집
단골집 : 내일동 / 돼지국밥 / 055-354-7980 오늘한점 : 삼문동 / 흑돼지구이 / 055-355-8892 밀양할매메기탕 : 교동 / 메기구이 / 055-356-6664 설봉돼지국밥 : 내이동 / 돼지국밥 / 055-356-9555
3.숙소
필모텔 : 내이동 / 055-356-2880 마리포사모텔 : 내이동 / 055-356-5450 르네상스모텔 : 내이동 / 055-352-6839 하야트모텔 : 내이동 / 055-352-2211
- 글, 사진 : 오주환(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2년 1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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