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건축은 땅에 새긴 무늬다. 최근 경기도 화성에서는 기억과 시간이 깃든 자리에 새로운 공간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성당, 옛 양조장을 되살린 복합문화공간, 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새기는 기념관, 평화를 염원하는 추모 공간까지. 역사를 덮으려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한 건물이다. 여행자의 발걸음을 오래 붙드는 화성의 건축, 네 곳을 소개한다. ★화성 건축여행 추천 코스★ - 남양성모성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대성당이 자리한 가톨릭 순교지 - 박봉담: 옛 국순당 화성 양조장을 되살린 복합문화공간 -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화성 사람들의 독립운동을 소개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 - 매향리평화기념관: 옛 미군 사격장 자리에 들어선, 평화를 염원하는 기념관 경기도 화성의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가톨릭 신자가 처형된 순교지다. 성지 안쪽에는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대성당이 서 있다. 손을 모아 기도하는 형상의 이 대성당은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설계했다. 강남 교보타워와 리움미술관 M1도 그의 손길을 거쳤다. 벽돌을 즐겨 쓰는 보타의 건축은 기하학적이고 단순하지만, 빛이 스며들며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나무 골조가 부챗살처럼 펼쳐지며 천장을 이룬다. 골조 사이로 자연광이 은은하게 스며들고, 제대 뒤편의 좁은 틈으로는 한 줄기 빛이 수직으로 떨어진다. 붉은 벽돌과 나뭇결이 어우러져 경건함이 감돈다. 바닥이 완만하게 경사져 있어, 어디에 앉든 시선이 자연스럽게 앞을 향한다. 대성당 외관을 뒤편에서 바라보면 마리오 보타의 건축 언어가 한눈에 드러난다. 원과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벽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기둥. 단순한 형태와 좌우 대칭에서 강렬함과 안정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성지에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방향에서든 대성당의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남양성모성지 - 주소: 경기도 화성특례시 만세구 남양읍 남양성지로 112 - 운영 시간: 09:30~16:00 (11:00 미사) ※ 매주 월요일 휴무 - 문의: 031-356-5880 박봉담은 1986년 문을 연 국순당 화성 양조장을 되살린 복합문화공간이다. 2004년 문을 닫은 양조장 건물을 허물지 않고 옛 흔적을 남겨둔 채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었다. 공원을 뜻하는 '파크(Park)'와 지역명 '봉담'을 합쳐 이름을 지었다. 이름 그대로, 잠시 쉬기 좋은 공원 같은 곳이다. 박봉담 여행은 양조장 시절 가장 오래된 건물 '풍류정'에서 시작한다. 자재를 보관하던 창고는 사방이 트인 정자로 다시 태어나, 박봉담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풍류정을 뒤로하고 계단을 오르면 본관과 중정이 나타난다. 길게 이어진 양조장 복도는 천장을 걷어내 빛을 받아들이는 작은 정원이 되었다. 콘크리트 바닥 일부를 걷어낸 자리에는 나무를 심고 자갈을 깔았다. 건물 곳곳에 놓인 오래된 도구들이 술이 익어가던 옛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본관 1층에는 술이 익어가는 발효실이, 2층에는 카페와 시음장이 자리한다. 국순당의 역사를 소개한 작은 전시공간도 눈에 띈다. 햇살이 드는 자리에 앉으면, 유리창 너머로 중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카페에서는 막걸리로 반죽한 술빵, 막걸리 아이스크림 등 양조장의 정체성을 살린 메뉴를 선보인다. 옆 스마트팜에서 갓 수확한 채소로 만든 샐러드와 브런치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여행 TIP 도슨트 투어에 참여하면, 건축 설명과 함께 이곳에서 직접 빚은 막걸리도 맛볼 수 있다. 박봉담 - 주소: 경기도 화성특례시 효행구 봉담읍 매송고색로 452 - 운영 시간: 10:30~21:00 (마지막 주문 평일 19:30, 주말 20:00) - 대표 메뉴: 술빵, 막걸리 아이스크림, 박봉담 새참 - 문의: 031-302-6123 1919년 4월 15일,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는 일본군이 마을 주민들을 교회에 가두고 불을 질렀다. 이날 제암리와 인근 고주리에서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제암리 학살사건'이라는 비극이 벌어진 자리에 세워졌다. 희생자를 기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에 맞선 화성 사람들의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기념관은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상설전시관은 땅 아래에 자리하고, 지붕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제암리 순국유적지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입구까지 내려가는 진입로를 따라 철망 안에 채워진 돌이 긴 벽을 이룬다. 작은 돌 하나는 보잘것없지만, 모이면 쓰러지지 않는 벽이 된다. 이 돌벽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이 나라를 지켜낸 독립운동의 정신을 닮았다. 기념관 입구 앞에는 '하늘담은 마당'이라는 작은 연못이 있다. 하늘을 담은 수면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상설전시관에 들어서기 전, 양쪽으로 길고 높은 벽이 서 있고, 천장의 좁은 틈 사이로 은은한 빛이 내려온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희망의 빛은 아니었을까. 기념관을 나와 지붕 위로 올라가면 거울정원을 마주한다. 거울에 비친 돌은 끝없이 이어진다. 전국으로 번져나간 민초들의 함성처럼.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 주소: 경기도 화성특례시 만세구 향남읍 제암고주로 34 - 운영 시간: [상설전시실] 10:00~18:00 (입장 마감 17:00) [어린이전시실] 10:00~17:00 (입장 마감 16:20, 정비 시간 12:00~13:00) ※ 매주 월요일 (공휴일인 경우 다음 날), 1월 1일, 설·추석 당일 휴관 - 문의: 031-5189-1950 내륙에서 시작한 화성 건축여행은 바다 앞에서 끝난다. 매향리는 매화 향기 대신 화약 냄새가 자욱하던 마을이다. 6·25전쟁 이후 미군이 설치한 쿠니(Koon-Ni) 사격장은 주민들의 오랜 투쟁 끝에 2005년 폐쇄되었고, 그 땅 위에 매향리평화기념관이 세워졌다. 매향리평화기념관도 마리오 보타가 설계했다. 성당과 기념관 모두 붉은 벽돌로 지어졌고, 절제된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진 외관도 닮았다. 다만 기념관의 위령비만이 회색 콘크리트 그대로 놓였는데, 추모의 무게를 색으로 표현한 듯하다. 건물 전면에 반복되는 M자는 매향리(Maehyangri), 추모(Memorial), 박물관(Museum)을 의미하며, 심장박동 그래프를 닮았다. 포탄 소리가 멈춘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다시 돌아왔음을 알리는 듯하다. 붉은 벽돌이 길게 이어진 회랑을 걷다 보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며 발걸음을 이끈다. 기념관 끝에는 전망대 역할도 하는 높이 46m의 위령비가 서 있다. 위령비에 오르면, 옛 사격장 건물과 포탄의 표적이었던 농섬, 그리고 그 너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매향리평화기념관 - 주소: 경기도 화성특례시 만세구 우정읍 고온리안길 24-11 - 운영 시간: 10:00~18:00 (입장 마감 17:00)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 휴관 - 문의: 031-5189-7410 | 글, 사진: 김덕식 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6년 5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글, 사진은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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