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이 아니더라도 북촌행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북촌 나들이는 흐리거나 눈 오는 날 가는 게 제법 어울린다. 적어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 <북촌방향>을 보고 난 다음이라면 말이다. 흑백으로 단장한 영화 속에서 북촌은 '영화쟁이'들의 일상과 겨울 추억을 낱낱이 담아낸다. <북촌방향>은 <오! 수정> 이후 홍상수 감독의 두 번째 흑백 영화로, 칸 영화제에도 진출했다. 사실 요즘 북촌의 인기가 꽤 치솟았다. 한겨울인데도 한옥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에게는 서울 방문 때 꼭 들르는 단골 코스가 됐다. 죄송하지만 중국어와 일본어 안내지도는 있는데 한국어판은 없네요. 북촌 골목길에서 만나는 안내 도우미의 의상이 꽃분홍색이다.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띄지만 왠지 영화 속 장면이나 한옥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북촌방향>에는 유준상(성준 역), 김상중(영호 역), 송선미(보람 역) 등이 전직 영화감독, 영화평론가, 교수 등으로 나온다. 주연을 맡은 유준상은 홍상수 감독의 자화상쯤 되는 듯싶다. <북촌방향>과 어우러진 북촌 여행은 안국역 사거리에서 출발해도 좋고, 정독도서관에 차를 세우고 시작해도 좋다. 두 곳 모두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다. 정독도서관 앞에서 유준상과 김상중이 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고, 안국역과 헌법재판소 사이 길목은 영화에서 술 취한 군상들과 함께 일상처럼 등장했다. 반복되는 장소로만 따지면 한정식집 '다정'과 술집 겸 카페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장면 그대로 실제 분위기가 엇비슷하다. 영화인들이 자주 오는 건 아닌데. 홍상수 감독이 여기 단골이에요. 김자옥 씨 나오는 다음 영화도 여기서 찍었어요. 한정식집 아주머니 말대로라면 주인공들이 즐겨 찾았던 '다정'을 홍 감독의 다음 영화에서도 볼 수 있을 듯하다. '다정' 뒷벽에는 <북촌방향>을 촬영한 곳이라는 포스터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나물, 보쌈, 해장국이 어우러진 이 집 음식 맛은 꽤 훌륭하다. 감독들이 빌붙어 먹을지언정 맛없는 음식은 결코 안 먹는다는데, 홍 감독이 단골로 들렀을 만하다. 영화 <북촌방향>이 흥미로운 것은 흔한 북촌의 명소를 담고 있지 않아서다. 혹 북촌문화센터나 한옥거리 등이 롱테이크로 투영됐으면 영화는 조금 식상했을지 모른다. 스크린 위에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오가는 골목과 식당, 술집 등이 소박하게 어우러질 뿐이다. 카페 '소설'은 재동초등학교를 지나 명인미술관 뒷골목으로 접어들면 한옥 락고재 못 미쳐 자리했다. '소설'이라는 손바닥만 한 간판조차 없었다면 막다른 길에 들어선 영화 속 공간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설'의 주인장은 잠시 부재중이다. 성준(유준상)이 피아노를 치고, 카페 주인과 농을 주고받고 사랑에 빠진 곳 역시 바로 이곳 '소설'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들은 슬며시 북촌의 한 귀퉁이를 채우고 있다. 걷다 보면 북촌의 명물들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내민다. 요즘 북촌 산책은 다양한 테마를 갖추고 진행된다. '북촌8경'이라고 기념사진 찍기 좋은 장소들도 추려놓았다. 가회동 31번지 일대의 한옥 골목은 북촌에서도 한옥이 가장 잘 보존된 명소다. 현대 사옥에서 중앙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계동 골목은 오래된 목욕탕, 의원, 이발소 등 옛 주민들의 삶이 담겨 있다. 이 외에도 개방 한옥과 공방들이 숨어 있는 가회동 공방 골목, 갤러리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사간동 갤러리 골목, 분식집이 곳곳에 들어선 덕성여고 앞 학교 골목 등이 북촌이 자랑하는 주요 산책 코스다. 골목 산책에 나서기 전 '북촌산책'이라는 간이 약도를 챙기면 듬직한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북촌 골목길은 1750년에 그려진 도성도에도 고스란히 등장한다. 2013년의 북촌 역시 주민들과 이방인들의 삶이 뒤엉킬 뿐, 한옥이 옹기종기 들어선 모습은 여전하다. 영화 <북촌방향>은 이렇게 끝난다. 할 일 없이 북촌을 배회하던 성준이 자신의 팬(고현정)을 우연히 만나 사진 모델이 되는 것으로 말이다. 어색한 표정의 주인공 뒤로 북촌의 옛 골목 지도가 나란히 카메라에 잡힌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계절이 눈 오는 겨울이다. 같은 계절에 그 영화를 보고 북촌 산책에 나서는 것은 꽤나 운치 있다. 단언컨대 예전과는 색깔이 다른 북촌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1.주변 음식점 다정 : 종로구 안국동 / 선지해장국 / 02-720-9857 소설 : 종로구 가회동 / 카페 / 02-723-8393 공드리 : 종로구 계동 / 굴소스치킨볶음밥 / 02-765-6358 촌 : 종로구 관훈동 / 북촌정식, 해물파전 / 02-720-4888 2.숙소 북촌게스트하우스 : 종로구 계동 / 010-6711-6717 www.bukchon72.com 가인게스트하우스 : 종로구 가회동 / 02-763-0365 www.gainguesthouse.com 북촌여관 : 종로구 계동 / 070-4150-3428 글, 사진 : 서영진(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4년 4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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