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을 걸으면 왠지 모르게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이 떠오를 것만 같다. 아름다운 해안 풍경과 정겨운 포구 마을의 정취를 가득 담고 있는 제주 올레 5코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영화 <건축학개론> 에 등장한 서연(한가인)의 집이 나타난다.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의 기억을 안고 재회한 승민(엄태웅)과 서연. 그들이 함께 짓던 그 집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할 예정이지만, 작고 아담한 포구 마을 위미리에는 그들이 남기고 간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과 설렘이 지금도 여전히 배어나온다. 대학 시절 서로에게 마음은 있었지만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의 기억을 안은 채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승민과 서연. 옛 시절 서연에게 나중에 살게 될 집을 공짜로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던 승민은 15년이 지난 후 제주도에 아버지와 함께 살 집을 지어달라며 나타난 서연과 다시 만나게 된다. 고민 끝에 서연의 집을 자신의 첫 작품으로 짓기 시작하는데, 집을 완성해가면서 둘은 옛 추억과 그 시절의 감정을 새삼 꺼내보게 된다. 승민과 서연을 다시 만나게 한 주요한 모티브는 제주도에 있는 서연의 집이다. <건축학개론> 을 본 많은 관객들은 영화 속 서연의 집이 실제 존재하는 건물인지 궁금해한다. 답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건축학개론> 을 촬영한 곳은 제주도 남동부 지역인 남원읍 위미리로 서연의 집도 이곳에 있다. <건축학개론> 이전에 이곳에서는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 가 촬영되기도 했다. 드라마 방영 당시 화제가 되었던 장민호(전광렬)의 대저택 세트장이 지어졌으며, 감귤농장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작고 아담한 포구를 앞에 두고 겨울이면 까만 돌담 너머로 주홍빛 감귤이 주렁주렁 열리는 위미마을. 사실 영화와 드라마 덕분에 전보다 더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그전에도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시크릿 여행지'로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위미마을 해안 도로변에 자리한 서연의 집은 이용주 감독이 빈집을 구입해 영화를 위해 리모델링한 세트 아닌 세트장이다. 이곳은 영화가 개봉되고 서연의 집을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늘면서 위미리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영화에서는 완성된 건물로 나오지만 사실 아직은 가건물 상태로, 현장에는 관람객 안전을 위해 '내부 출입 금지'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영화사 측은 6월 중 이 집을 철거해 11월 15일 갤러리 & 카페로 다시 문을 열 계획이다. 영화 속 서연의 집이 사라지게 되는 건 아쉽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할 새로운 서연의 집이 기대된다. 다행히도 서연의 집에서 바라다 보이는 시원한 바다 풍경은 이곳에만 있는 건 아니다. 위미리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영화에서보다 더 멋지고 근사한 풍경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서연의 집 앞으로 올레 5코스가 지나가기 때문에 올레길 표식을 따라 쉬엄쉬엄 걸어보는 것도 색다른 여행이 된다. 위미마을 골목길 구석구석을 탐방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찬찬히 영화 속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라. 장면들과 매치되는 바로 그 장소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혼자 걸어도 좋고, 함께 걸어도 좋은 올레 5코스. 이 길을 걸을 땐 잠시 전화기는 꺼두어도 좋다. 대신에 이어폰을 살짝 꺼내들고 귀에 꽂아보자. <건축학개론> 팬이라면 음악은 물론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이 정답이다. 이왕 나선 걸음, 내친 김에 올레 5코스를 완주해보는 건 어떨까. 혼자 걷는다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첫사랑의 풋풋함 감성에 젖어보기 딱 좋다. 남원포구에서 쇠소깍까지 14.7km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니 시간을 넉넉히 두고 출발하는 게 좋다. 보통 남자들이라면 3~4시간에도 완주하지만 사진도 찍고 풍경도 감상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4~5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올레 5코스 시작점인 남원포구에는 올레 안내소가 있다. 이곳에서 올레길 안내를 받거나 5코스 시작 스탬프를 찍고 갈 수 있다. 남원포구를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금세 남원 큰엉 산책길로 접어들게 된다. 동쪽의 구렁비부터 서쪽 황토개까지 약 2.2km에 걸쳐 조성된 해안 산책길은 가는 길목마다 절경을 쏟아낸다. '큰엉'은 제주 사투리로 '큰 바위'란 뜻으로 해안 절벽 아래에 난 큰 바위동굴을 가리킨다. 산책길 중간중간 벤치들이 놓여 있어 여유롭게 바다 풍경에 취할 수 있다. 특히 바람 부는 날에 들려오는 우렁찬 파도 소리는 어마어마할 정도다.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영영화박물관도 지나간다. 영화에 관심이 많다면 가볍게 둘러봐도 좋다. 남원 큰엉을 지나 마을길과 해안길을 들락날락하다 보면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늦은 겨울이나 초봄에는 풍성하게 꽃을 피운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길게 이어진 해안길을 빠져나와 작고 아담한 위미항에 도착하면 또 다른 분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위미항은 아기자기하게 잘 가꿔진 외국의 어느 정원 같은 느낌이 든다. 잔잔하게 파도치는 포구 앞 바다는 여느 어촌 마을들과 달리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하다. 바로 앞에 유유히 떠가는 요트며 그림에나 나올 법한 예쁜 집들이 잠시 이곳이 제주도임을 잊게 만든다. 위미항에서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얼마쯤 걸어가면 <건축학개론> 에 나온 서연의 집이 보인다. 영화 덕분인지 요즘 이곳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건물 입구에 '출입 금지' 현수막이 걸려 있지만 호기심 많은 몇몇 여행객은 내부까지 들어가 보기도 한다. 완성된 건물이 아닌 세트인 탓에 붕괴와 추락의 위험이 있다고 하니 가급적 안전을 지키면서 여행하는 게 좋겠다. 세트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새파랗게 펼쳐진 바다며 명확히 수평선을 이루고 있는 하늘, 새하얀 뭉게구름, 해안가 돌 틈에서 자라는 나무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풍경에 취해 하염없이 걷다 보면 공천포 쉼터를 지나 어느새 쇠소깍으로 넘어가게 된다. 쇠소깍으로 이어진 아스팔트 길 정면에 보이는 한라산의 자태가 웅장하기만 하다. 마치 하늘을 넘어 한라산을 향해 걸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에 빠져든다. 쇠소깍 다리를 건너 바닷가 쪽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드디어 올레 5코스 종점!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하며 하루 종일 걸어 힘들었을 다리를 좀 쉬게 하자. 투명한 물빛 위로 투명카약이나 제주 전통 고깃배인 테우를 타고 유유자적한 시간을 누려보는 것도 좋다.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제주국제공항 → 공항로 → 신제주 입구에서 좌회전(성산, 시청 방면) → 서광로→ 국립박물관 사거리에서 우회전(표선, 봉개동 방면) → 번영로 → 남조로 교차로에서 우회전(남원, 제주돌문화공원 방면) → 남조로 → 남원 교차로에서 우회전(서귀포 방면) → 일주동로 → 위미 방면 좌회전 → 위미항구로 → 위미해안로 * 대중교통 제주국제공항에서 100번 버스를 탄 뒤 남서광마을에서 남조로 노선으로 갈아타고 위미초등학교에서 하차. 해안 방면으로 도보 약 10분. * 올레 5코스 남원포구에서 종점인 쇠소깍까지 14.7km 구간이다. 길은 대체로 평탄하지만 해안 구간에는 험한 바윗길도 있다. 남원 큰엉 산책로와 <건축학개론> 속 서연의 집, 쇠소깍 등 명소들을 지나간다.
2.주변 음식점 아서원 : 서귀포시 하효동 / 짬뽕, 탕수육 / 064-767-3130 별주부전 :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 김치찌개, 양푼이비빔밥 / 064-764-8899 지귀도 섬마을 :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 고등어조림, 한치물회 / 064-764-7177 오복식당 :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 전복해물뚝배기 / 064-764-1795
3.숙소 밸리통나무빌리지 :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 064-767-3337
http://www.valleyvillage.co.kr/
라임벤치포유펜션 :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 064-764-7122
www.jejulime.co.kr
검은돌펜션 :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 064-767-3113
www.gumundol.co.kr
글, 사진 : 정은주(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1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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