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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남산은 신라의 불교 문화 유적으로 이루어진 국립공원이다.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1000년 가까이 산은 신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산은 바위에서 나타난 부처 앞에 두 손을 모은 신라인들을 품어줬다. 그때로부터 기나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산은 찾아오는 이에게 수많은 불교 유적을 아낌없이 드러내 보인다. 산길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돌부처를 이정표 삼아 옛 신라를 거슬러 오르고 오늘의 경주를 마주한다. 남산은 노천 박물관이라고들 한다. 남산을 오르는 건 단순한 등산이 아니다. 바위에 새겨진 석불을 따라 신라인의 불심을 더듬고 가늠하는 길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495m인 아담한 산에 석조 불상 100여 점, 석탑 90여 기 등 불교 유적 670여 점이 담뿍 담겨 있다. 보물도 12점이나 된다. 남산을 오르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등산을 하고 불교 유적도 돌아보고 싶다면 서남산 코스를 택한다. 동남산에 비해 경사가 완만한 데다 산길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불상을 이정표로 삼으면 될 만큼 불교 유적이 옹골차다. 삼릉계곡을 따라 금오산 정상을 거쳐 용장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네댓 시간 만에 종주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능 세 개보다 능을 에워싼 소나무 군락으로 더 유명한 삼릉을 지나 500m쯤 올랐을까. 냉곡 석조여래좌상이 길옆 바위에 턱하니 가부좌를 틀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위풍당당한지, 딱 벌어진 어깨하며 늠름한 풍채하며 머리가 없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자연스레 동여맨 옷 주름은 봄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릴 듯하다. 등산로에서 샛길로 살짝 빠지면 선으로 새긴 여섯 분의 부처, 삼릉계곡선각육존불(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1호)과 순백 화강암에서 태어난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이 나타난다. 서남산 코스의 화룡점정은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58호). 우선 크기에 압도당한다. 바위 절벽에 6m 높이로 새긴 불상은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크다. 가늘게 뜬 눈과 강건한 입매가 또렷한 얼굴은 돋을새김, 몸체는 그림을 그린 듯한 선각이다. 상선암이라는 작은 암자에서 좁다란 길을 150m쯤 올라가면 불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낙석 때문에 안전을 위해 통제해 놓았다. 상선암 윗길에서 왼쪽으로 빠져 바둑바위를 지나 상사바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최선이다. 멀리서 보아도 아쉬운 풍경은 아니다. 절벽 끝자락에 앉은 부처 너머로 형산강 들판과 파란 지붕을 인 마을이 펼쳐진다. 첩첩산중이 아니다. 속세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부처는 옛 신라를 굽어봤고 오늘의 경주를 굽어보고 있다. 정상에서 금오봉을 지나 용장계곡으로 향하는 길, 너른 터에 우뚝하니 선 석탑은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이다.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탑은 단출하지만 기품이 흐른다. 눈여겨볼 부분은 하층 기단이다. 신라시대 석탑은 대개 상층과 하층, 두 개의 기단을 만들었는데 이 석탑은 상층 기단만 보인다. 남산 전체를 하층 기단으로 삼은 것이다. 남산 위에 탑을 세운 게 아니라 남산이 탑의 일부가 된 셈이다. 4.5m 높이의 삼층석탑이 500m 남산을 품고 있다.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석탑이 묻는 듯하다. 너는 네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고, 그것은 얼마나 큰마음이냐고.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3504-24 - 문의 : 054-771-7616(경주국립공원 남산분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주가무에 일가견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 흥은 신라인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라의 왕과 신하들이 풍류를 즐겼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왕실의 별궁, 포석정이다.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수로에 술잔을 띄우고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 시 한 수를 읊는 놀이)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지만 포석정지처럼 보존이 잘된 경우는 드물다. 봄볕 따사로운 어느 날, 물에 동동 띄운 술 한 잔에 시 한 수가 절로 나오고 시 한 수에 술맛은 더욱 달아졌으리라. 풍류를 꽃피우던 곳이 비운의 장소가 된 건 신라 55대 왕인 경애왕 때다.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에게 포위당해 이곳에서 자결한 것. 경애왕은 백제 군사들이 쳐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한바탕 연회를 벌이다 습격을 당했다고 한다. 지금은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메마른 물길만이 남아 신라의 흥망을 말해준다.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454-3 - 문의 : 054-750-8614 - 이용시간 :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 이용요금 : 성인 1000원, 청소년 600원 달빛을 타고 134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동궁과 월지에 어둠이 내리면 2018년의 경주가 사라지고 674년의 서라벌이 나타난다. 동궁과 월지는 역시 낮보다는 밤이다. 달빛, 월지 수면에 어른거리는 동궁의 반영, 산책로를 수놓은 밤 벚꽃, 모든 것이 어우러져 서라벌의 밤을 거니는 듯한 흥취가 인다. 이리도 찬란한 야경을 보고 살았을 신라 왕족들이 부러울 지경이다. 현재 3동의 건물(제1,3,5건물)이 복원되어 있는데, 야경은 월지 북쪽에서 제3건물을 바라볼 때와 동쪽에서 제1건물과 제3건물을 동시에 담을 때 특히 빼어나다. 봄철에는 저녁 6시40분부터 밤 10시까지 조명이 들어온다. 동궁과 월지는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 14년 때 조성된 신라 왕궁의 별궁 터다. 동궁은 왕자가 거처하던 궁, 월지는 동궁에 속한 인공 연못이다. 이곳은 나라의 경사나 귀한 손님맞이용 연회장으로 쓰였다. 야경 외에 눈여겨볼 만한 것은 직선과 곡선이 조화로운 건축 기법이다. 남서쪽 누각 3채를 받치는 석축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데 반해 북동쪽은 곡선이 굽이친다. 공중에서 내려다보지 않는 이상 어느 곳에서도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다. 좁은 연못을 끝을 알 수 없는 너른 바다처럼 보이도록 한 신라인들의 뛰어난 조경술이다.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 문의 : 054-750-8655 - 이용시간 : 09:00~22:00 - 이용요금 : 성인 2000원, 청소년 1200원 봄날, 대릉원을 찾는다면 연둣빛 고분만큼 분홍빛 벚꽃을 놓치지 말지어다. 대릉원은 신라 시대 왕과 왕비, 귀족들의 고분 30여 기가 모인 사적공원이다. 정문에서 출발해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 순으로 둘러보는 게 보통의 동선이지만 벚꽃 무리를 보려면 정문에서 오른편 돌담길로 빠진다. 야트막한 돌담길 따라 아름드리 벚꽃이 우르르 피어 있다. 시골 마을에서 본 듯한 돌담의 예스러움 때문일까. 대릉원 벚꽃에는 은은한 운치가 깃들어 있다. 벚꽃 비 맞으며 봄 산책을 즐긴 후에는 후문으로 들어가 대릉원을 둘러본다. 대릉원 고분은 신라가 왕권을 강화하던 시기인 4세기 중반에서 6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천마도가 나온 무덤, 천마총은 6월 말까지 내부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 천마총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은 황남대총으로 대신한다. 황남대총은 신라 고분 중 가장 큰 무덤으로 높이는 약 22m. 무려 건물 7층에 달한다. 낙타 등 같은 쌍봉 고분의 생김새 또한 눈길을 끈다. 신라의 첫 번째 김씨 왕이자 13대 임금, 미추왕이 묻힌 미추왕릉은 대릉원에서 유일하게 주인을 알 수 있는 능이다.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14 - 문의 : 054-750-8650 - 이용시간 : 09:00~22:00 - 이용요금 : 성인 2000원, 청소년 1200원 조선시대에 경복궁이 있다면 신라시대에는 월성이 있었다. 월성지구에는 신라 궁궐이 있던 월성을 중심으로 계림, 첨성대, 내물왕릉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서울 여행에서 경복궁을 빼놓을 수 없듯 월성지구는 경주 여행의 필수 코스다. 대단한 역사 유적들이 지척에 있으니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 월성은 파사왕 22년(101)부터 신라가 멸망하는 935년까지 830여 년 동안 신라 궁이 있던 자리다. 지금은 성곽 터와 해자, 조선시대의 얼음창고 석빙고가 남아 있다. 월성을 제대로 보려면 동궁과 월지 방면 출입구에서 언덕을 오른다. 언덕배기의 울퉁불퉁한 돌은 성곽의 흔적이다. 월성이 돌과 흙을 섞어 쌓은 토석혼축 기법의 성이었기 때문이다. 계림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저 굽은 나뭇가지에 김알지가 담긴 궤가 걸려 있던 걸까.’ 전설이 믿어질 정도로 나이 지긋한 고목이 무성하다. 정문 앞 회화나무는 약 1300살로 추정된다. “이렇게 작았었나?”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대, 첨성대를 오랜만에 본 사람들의 첫마디다. 높게만 기억하던 천문대는 10m가 채 되지 않는다. 4월 중순경에는 유채꽃 무리가 첨성대에서 월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샛노랗게 치장한다.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387-1 - 문의 : 054-779-8743 - 이용시간 : 상시 삽만 뜨면 유적이 발굴된다는 경주. 그도 그럴 것이 신라는 천년 동안 도읍지를 한 번도 옮기지 않았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의 수많은 유물 중 알짜배기만을 모아놓았다. 찬찬히 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날 만큼 전시 구성도 촘촘하다. 중요한 유물이 한둘이 아니지만 신라역사관의 국보 제188호 천마총 금관, ‘신라의 미소’라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수키와가 쭉 이어져 형성된 기왓등의 끝에 드림새를 붙여 만든 기와), 신라미술관의 황룡사 망새(용마루 양쪽 끝에 세우는 장식 기와), 월지관의 나무배와 주령구(14면 나무 주사위), 옥외전시장의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은 유독 울림이 깊다. 금관의 나라, 신라를 보고 싶다면 58개의 곡옥과 382개의 원형 영락을 모두 금사로 연결한 천마총 금관을, 고려시대에 불타버린 절, 황룡사의 위세를 간접 경험하고 싶다면 황룡사 망새를, 신라인의 풍류를 느끼고 싶다면 술자리 놀이도구인 14면체 주사위 주령구를 찾는다. 노래 없이 춤추기, 술잔 비우고 크게 웃기 등 각 면에 적힌 짓궂은 벌칙에 피식 웃음이 난다. 성덕대왕신종의 곡선미만큼 아리따운 건 종 표면의 비천상. 향로를 든 비천(하늘에 살면서 하계 사람과 왕래한다는 여자 선인)은 다소곳한 자태로 성덕대왕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듯하다. 신종 보호 차원에서 타종을 금하고 있는데 매시 정각, 20분, 40분에 녹음한 종소리를 들려준다.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 문의 : 054-740-7500 - 이용시간 : 평일 10:00~18:00, 일요일·공휴일 10:00~19:00, 야간 연장개관(매월 마지막 수요일, 3~12월 매주 토요일) 10:00~21:00 - 휴무 : 1월 1일, 설·추석 당일 - 이용요금 : 무료 - 웹사이트 : http://gyeongju.museum.go.kr ✔ 여행 팁 서남산 코스 산행은 개인차가 있지만 평균 4~5시간 정도 걸린다. 완주가 여의치 않다면 주어진 시간에 따라 기점을 정한다. 산행 시간을 3시간으로 잡는다면 상선암을 지나 상사바위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2시간이라면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까지, 1시간이라면 삼릉계곡 선각육존불까지 왕복한다. 산행 전 도시락과 물은 필수. 바위산이라 햇볕을 피할 그늘이 적으니 모자를 챙기면 좋다. ✔ 추천 여행코스 당일 여행 : 경주 남산 → 대릉원 → 동궁과 월지 1박 2일 여행 : 경주 남산 → 포석정지 → 동궁과 월지 → (숙박) → 대릉원 → 월성지구 → 국립경주박물관 ✔ 자가운전 정보 경부고속도로 → 당진영덕고속도로(청주~상주) 청주분기점에서 직진 → 상주영천고속도로 → 경부고속도로 영천분기점에서 직진 → 오릉네거리에서 ‘언양’ 방면 우회전 → 포석로 따라 직진 → 경주 남산 ✔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경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일 26회(06:10~23:55) 운행, 약 3시간 30분 소요 * 문의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www.exterminal.co.kr , 경주고속버스터미널 054-741-4000 ✔ 숙소 141미니호텔 : 경상북도 경주시 원효로 141 / 054-742-8502 / 한국관광품질인증 엔모텔 : 경상북도 경주시 금성로 260-6 / 054-777-4364 ✔ 주변 음식점 해오름한정식 : 연잎한정식 /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258 / 054-749-6185 삼포쌈밥 : 쌈밥 /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1050번길 42 / 054-749-5776 반월성화덕피자 : 피자 / 경상북도 경주시 알천남로 316 / 054-772-1777 글 : 이수린(여행작가), 사진 : 장명확(사진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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