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을 지나 평창에 이르는 길. 문재와 여우재를 지나면서 만나는 배추밭마다 온통 푸르른 물결이다. 주변의 웬만한 들판이 해발 600m를 넘나드는 고지대여서 고랭지 배추밭이 많기도 하거니와 마침 봄에 파종해서 여름에 출하할 배추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가히 볼 만하다. 평창읍은 평창군 소재지이긴 하지만 번잡함이 보이지 않고 아담한 느낌이다. 읍내와 장암산 사이를 흐르는 평창강 가에는 바위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물개와 펭귄, 신선암, 금수강산, 거북바위 등 인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바위들이 저마다 기기묘묘한 모습을 자랑한다. 바위공원을 구경하는 내 옆을 검은 그림자가 휙 지나간다. 뭔가 싶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동호인이 바람결에 몸을 맡긴 채 저만치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위로 보이는 산자락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보인다. 장암산 활공장이다. 노론리를 거쳐서 털털대는 오토바이 바퀴를 다독여가며 장암산 활공장에 오르자 막 패러글라이더 한 대가 바람을 한껏 받으며 지면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데 구경꾼인 듯한 사람이 말을 붙인다. “멋지죠? 사진 찍으러 오셨나 봐요?” “네.” “그런데 여기보다 저쪽 미탄에 가면 더 멋진 곳이 있어요. 육백마지기들이라고.” “거기 작년 가을에 갔었는데 멋지긴 하더군요.” “그래요? 그럼 고마루에도 가보셨어요?” “고마루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육백마지기들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아까 지나온 배추밭에 가득한 배추들을 보며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고마루는 또 어딘가 싶은 마음이 불쑥 일어난다. 이쯤 되면 안 가볼 수 없다. 미탄면사무소에 들러서 미탄면 지도와 홍보 팸플릿을 뽑아들고 먼저 청옥산 고갯길로 향한다. 사실 육백마지기들은 이미 찾은 일이 있다. 재작년인가 비 내리는 고갯길을 올라서 구름에 휩싸인 육백마지기들과 배추포기들이 물결을 이룬 모습에 경탄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미탄면 소재지를 기점으로 평안리와 회동리, 양방향에서 오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지난번엔 평안리에서 올랐으니 이번엔 회동리 쪽에서 오르기로 한다. 회동리 입구에 당도하자 수령 300년이 넘는 떡갈나무 한 그루와 청옥산 도깨비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회동리 쪽에서 오르는 청옥산 도깨비길은 아스팔트 포장이 돼 있어서 달리기 수월하다. 싱그러운 산록을 만끽하며 오르는 도중 길가에 집채만 한 바위가 보인다. 장군바위인가 보다. 이윽고 고갯마루에 오르면 평안리 쪽으로 하산하는 길과 육백마지기들 입구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비포장길이고 굵은 돌이 많지만 지나기 크게 어렵지는 않다. 비포장길을 500m쯤 들어가면 눈앞이 훤해지면서 육백마지기 들판이 나타난다. 옛날 지역 주민들이 보릿고개 때면 들어와 온갖 산나물을 캐서 호구를 했다는 곳. 곤드레, 딱죽이, 청옥 같은 산나물이 지천인 곳이다. 그러고 보니 청옥산이라는 지명도 산나물 이름에서 따왔다. 미탄에 전해오는 <평창아라리> 가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한치 뒷산의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 / 올 같은 흉년에도 봄 한철 살지.” 그렇게 산나물이 지천이던 산에 화전민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50여 년 전부터라고 한다. 거친 땅을 개간하고 경작 면적을 점차 늘려서 오늘에 이르렀다. 한 마지기는 종자 한 말을 뿌릴 수 있는 땅이다. 대략 990㎡쯤 되는데 옛날식으로 말하면 300평쯤 된다. 그러니 육백마지기는 59만 5,000㎡(약 18만 평)에 이르는 드넓은 들판이다. 해발 1,200m 고지대에 이만한 땅을 개간하려면 얼마나 많은 피땀을 쏟았을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육백마지기들에는 이제야 배추를 심기 시작했는지 붉은 밭고랑에 어린 배추 모종이 애처롭다. 아랫동네 배추는 벌써 내다팔아도 될 만큼 포기가 큰데, 여긴 워낙 고지대여서 모종 이식이 늦다. 밭가에서 아낙들이 잠시 일손을 쉬며 새참을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모두 고개 아래 회동리에서 일하러 온 분들이다. 배추는 봄가을에 두 번 파종하는데, 가을배추를 훨씬 더 많이 재배한다고 한다. 가을에는 김장용 배추 수요가 많으니 그럴 만도 하다. 평안리 쪽 하산길에 문득 돌아보니 가파른 벼랑 위에 하얀 석상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삼성신을 모시며 청옥산을 영험하게 여기는 이들이 단군상을 거기에 모셨다. 다시 미탄면을 지나쳐 한탄리를 찾는다. 미탄면 최남단 재치산에 자리한 한탄리 고마루는 ‘미탄 카르스트’라는 별칭을 가진 곳이다. 카르스트는 옛날 옛적에 바다 밑이었던 곳이 융기해서 육지가 된 땅이다. 석회암 지대에 물 빠짐이 좋은 땅이라 밭농사만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깊은 산속인데도 골짜기에 물이 별로 없다. 한탄리는 여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촌마을을 이루고 있다. 길은 계속해서 산자락과 고개를 넘으며 구불구불 이어진다. 고개를 몇 개 넘어서자 제법 널찍한 분지가 나타난다. 고마루 또는 미탄 카르스트에 당도한 것이다. 일찍이 화전민이 유입돼 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곳, 한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소개되고 몇 가구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산비탈 밭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국가에서 사들인 땅이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 곳곳에 서 있다. 고마루 일대가 특이한 카르스트 지형이며, 희귀 동식물 보존 구역이란 사실도 알리고 있다. 아직 떠나지 않은 주민들이 감자며 옥수수며 밭작물을 경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군데군데 풀숲 사이로 버려진 폐가도 보인다. 남아 있는 주민들마저 소개되면 고마루 일대는 태초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리라. 산을 내려와 수하계곡을 따라 동강으로 향한다. 미탄면 끝자락에 있는 마하리는 동강을 끼고 영월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마하리 강가의 안돌(바위)에는 뗏군과 그 아내의 애틋한 사연이 서려 있다. 강원도 산골에서 벤 나무를 뗏목으로 엮은 뒤 강물에 떠내려 보내 서울까지 운반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돼서 전해온다. 그때 물길로 보름에서 한 달쯤 걸리던 것이 이제는 하루면 다녀오는 곳으로 바뀌었다. 강을 따라 더 들어가면 백룡동굴인데 해가 서산에 기울었으니 미탄의 나머지 속살은 다음에 또 와서 봐야겠다. 평창군청 : happy700.or.kr 미탄면 주민센터 : 강원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1길1, 033-330-2602 평창문화관광포털 : http://tour.pc.go.kr/ 1.주변 음식점 강원수산 : 송어비빔회․매운탕 / 평창군 미탄면 뚝방길 30-4 / 033-332-3702 기화양어장횟집 : 송어회·철갑상어 / 미탄면 평창동강로 495-6 / 033-332-6277 2.숙소 가리왕산이야기펜션 :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 317 / 010-2289-0021 http://www.mtvill.com/ 로하스파크 : 평창군 용평면 작은도사길 162-49 / 033-333-1800 글, 사진 : 김종한(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8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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