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 올드타임은 1960~90년대 생활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이며 편집숍이고 레스토랑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임영곤, 강영숙 부부가 35년 동안 모아 왔다는 2만여 점의 전시물은 규모와 밀도가 모두 놀랍다. 강영숙 매니저는 ‘그저 어린 시절 추억에 충실한 게 전부’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그뿐이라고? 그럴 리가. 올드타임에 들어서던 한 관람객이 탄성을 지른다. “완전 미쳤다!” ‘미쳤다’는 말은 세대를 넘나드는 언어다. 젊은 세대는 ‘폼(performance) 미쳤다’는 말로 올드타임에 감탄하고, 중년 세대는 임영곤, 강영숙 부부를 열정에 ‘미친 사람’들이라며 공감한다. 그래서인지 올드타임에는 옛 시간을 추억하는 사람, 아이에게 설명을 들려주는 가족, 레트로 풍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등 다양한 관람객이 모여 있다. 개관 초기에는 농업형 테마파크 안성팜랜드가 지척이라 연계 여행으로 들리는 이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반대로 올드타임을 찾았다가 안성팜랜드로 향하는 여행객이 적잖다. “정말 미쳤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혼자 미친 게 아니라 둘이서 같이 미쳤으니까요. 일할 때는 엄청나게 다투는데 취향이나 취미는 희한하게 잘 맞았어요. 내가 이것 좋다 하면 자기도 좋다 하고. 오래된 물건 사는 데 돈 쓰는 건 아깝지 않았어요.” 부부의 옛 물건에 대한 사랑은 1988년 인사동에서 출발한다. 우연히 길을 거닐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발견했을 때는 너무 반가웠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것을 하나 사서 돌아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 추억의 옛 물건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렇게 하나둘 사들인 것들이 창고 삼아 쓰던 비닐하우스를 가득 채웠다. 어느 날은 그 즐거움을 사람들과 나눠도 좋겠다 싶었다. 마침 임영곤 대표가 상업 조각가였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혼돈’ 퍼포먼스에 등장하는 세계 각국의 탈을 작업했고, 건축물 미술 작업도 오랜 시간 해왔던 터라 미니어처나 인형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분당의 한 백화점에서 옛 물건 전시 제안이 들어왔고 ‘그때그시절’을 제목으로 작은 전시장을 꾸린 게 첫 번째 세트다. 옛 교실을 재현한 전시장이었는데, 이는 현재 올드타임 근현대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이 전시장이 인기를 끌자 곧 인천어린이대공원, 춘천 남이섬, 제주 선녀와나무꾼 등에서 찾아왔다. 부부는 다양한 지자체 축제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특히 광주 추억의 충장축제에는 무려 10년 동안 참가하며 축제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실제로 축제에 참여하는 기간 동안 7080 세대가 격한 공감을 보였다고. 10년은 어설픈 마음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니기에, ‘추억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겸손의 말은 믿을 수 없다. 이처럼 올드타임은 긴 시간 사람들의 취향과 선호를 관찰하고 반영해 만들어진 공간임이 분명하다. 올드타임이 안성에 터를 잡은 건 지난 2020년이다. 지자체 행사나 축제를 빌려 전시하던 부부는, 한 자리에 뿌리내려 박물관을 꾸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임 대표의 종가가 있던 안성은 그들에게 낯설지 않아 적합해 보였다. 박물관은 외관보다는 내실을 공들여 지었다. 비교적 땅값이 저렴한 고속도로 옆에 자리를 잡았고, 덕분에 크고 너른 실내를 확보했다. 그 스케일을 살려 내부는 옛 골목처럼 재현했다. 겉만 보고 실망했던 사람도 문을 열고 들어서서는 깜짝 놀란다. 첫 번째로 손님을 맞는 공간은 편집숍이다. 그 뒤로 음료와 음식을 파는 카페테리아가 이어진다. 70, 80년대 종로와 명동 풍경을 재현한 장방형의 공간은 마치 그 시절 골목을 그대로 실내에 옮겨놓은 것 같다. 초입에는 ‘가고파 여행사’ 간판이 걸렸다. 안성 시내에서 오랫동안 영업한 여행사라 안성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 아래 ‘똘2구멍가게’ 가판에는 뱀주사위놀이, 종이인형, 콩알탄 같은 추억의 물건이 가득하다. 카페테리아 주문대 앞에는 아폴로, 달고나 등 옛날 과자가, 테이블 곁에는 ‘단발머리’를 부르던 시절의 가왕 조용필 사진과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같은 옛날 영화 포스터가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좌우 벽에는 담배, 공중전화 같은 돌출간판이 영화 세트장처럼 펼쳐 시간을 거스른 듯하다. 음식 메뉴도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까르보나라 등 경양식으로 추억의 맛을 보여 준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예고편이다. 카페테리아에서 바깥 통로를 지나 연결되는 근현대사박물관이 이곳의 진정한 보물창고다. 근현대 생활사를 전시한 근현대사박물관은 층높이 5m에 70m 길이의 압도적인 규모를 보여 준다. 이는 여느 생활사 박물관 몇 개를 합쳐 놓은 크기이다. 전시실은 ‘ㄷ’ 자의 동선으로 크게 한 바퀴를 돌아 나오며 감상하는 구조인데, 가운데 담장을 두고 좌우로 나뉘어져 있으니, 약 140m의 골목을 거닐며 관람하게 되는 셈이다. 골목길에는 구멍가게, 대폿집, 비디오 대여점, 만화방, 사진관 세트 등이 이어진다. 실내 디자인과 소품까지 재현해 사실감이 돋보인다. 사이사이에는 ‘삐삐’라 불리던 호출기,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재생하던 ‘워크맨’, 전기레인지나 가스레인지 대신 주방을 책임지던 석유곤로 등이 시간을 거스른다. 또 확성기가 달린 마을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훌륭하다. 계단 위에 올라서면 실내 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전시라기보다는 마치 실제 마을을 내려다보는 듯 느껴진다. 그렇기에 가게 앞을 지나는 관람객마저 풍경의 일부로 스민다. 누군가에게는 아련하고, 누군가에게는 신기한 공간인데, 이곳에서 그 모든 세대가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반갑다. “4대가 같이 오기도 해요. 이민 간 지 20년 만에 귀국했다는 분은 한국을 떠나기 전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SNS에도 많이 올라가나 봐요. 젊은 관람객이 부쩍 늘었어요. 그 또한 보람 있어요.” 옛 노래가 박물관 안에 울려 퍼진다.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하는 80년대 가수 김범룡의 노래다. 추억은 바람처럼 지나버린 시간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는 우리를 울고 웃기는 눈물과 웃음이 있다. 지나갔기에 쓸쓸하고 따뜻한 ‘올드 타임’이지만, 돌이켰을 때 반짝이는 우리의 ‘골든 타임’. 안성 올드타임에는 오래전 그날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올드타임 - 장소 :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소신두길 52-9 - 문의 : 031-654-7080 - 홈페이지 : www.instagram.com/oldtime7080 - 이용시간 : 11:00~20:00(카페테리아) 11:00~21:00(근현대사박물관), 화요일 쉼 - 이용요금 : 근현대사박물관 입장료 성인(10세 이상) 6,000원, 아동(10세 미만) 4,000원, 카페 이용 시 50% 할인/ 그시절정식 1만 9,500원, 경양식돈까스 1만 2,900원 까르보나라 1만 3,500원, 식사 주문 시 아메리카노 50% 할인(주말 제외) - 오담 : 안성시 대덕면 하모산길 21-5 / 010-3301-1921 - 프로방스펜션 : 안성시 죽산면 용설호수길 134 / 031-676-9904 / www.asprovence.com - 호텔에이치 : 안성시 죽주로 268-2 / 010-4277-8667 - 그루터기 : 어죽 / 안성시 공도읍 덕봉서원로 265 / 031-652-9672 - 안일옥 : 설렁탕 / 안성시 중앙로411번길 20 / 031-675-2486 - 유유차적 : 산목련 한 송이 꽃차 / 안성시 공도읍 명삼길 267-14 / 070-4224-2822 (글, 사진) 여행작가 박상준 ※위 정보는 2023년 1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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