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하지 말라”는 말은 진리다. 서라벌의 진산인 남산은 신라가 남긴 천 년의 감동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불상과 석탑 등 문화재 670여 점이 하늘의 별처럼 땅에 총총하게 남아있다. 역사는 하찮은 바위에게도 생명을 불어넣으면서도 어느 것 하나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 역사의 흔적과 자엽의 섭리. 그 모두를 느낄 수 있었던 남산에서의 감동은 태산보다 컸다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다. 일연은 경주를 “절은 하늘의 별처럼 총총하고 탑은 기러기처럼 줄지어 늘어섰다[寺寺星張 塔塔雁行]”고 했다. 남산에 가면 이 말을 체감할 수 있다. 남산에는 절터가 150여 곳, 불상 120여 체, 탑 100여 기 외에도 왕릉, 산성지 같은 유적까지 문화재 670여 점이 총총하다. 빈말 좀 보태면 발걸음 옮기는 자리마다 문화재다. 오죽하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부를까.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노천 박물관인 경주 남산은 유네스코도 인정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남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서남산이다. 삼릉에서 용장까지 가는 이 길에는 변화무쌍한 계곡 풍경 속에 남산을 대표하는 문화재가 늘어서 있다.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에서 첫걸음을 내딛는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백제의 미소라면,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신라의 미소라 불린다. 나란히 선 삼존불 가운데 중앙 여래상이 눈에 띈다. 풍만한 얼굴에 단아한 미소가 돋보인다. 삼릉으로 걸음을 옮기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반긴다. 쭉쭉 뻗은 금강송과 달리 이리저리 휜 모양새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숲을 제대로 보려면 이른 새벽에 나서야 한다. 휜 소나무들이 짙은 안개에 싸인 모습은 이른 시간이 아니면 놓치기 쉬운 아까운 비경이다. 안개 사이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풍경은 숲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해가 조금만 높아져도 안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 숲은 사진작가 배병우 씨 덕분에 촬영 명소로 소문났다고 한다. 그의 삼릉 소나무 작품이 2005년 런던 소더비즈 경매에서 가수 엘튼 존에게 고가로 팔릴 만큼 그가 찍은 풍경은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던 듯하다. 삐뚤삐뚤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는 카메라에 담기 까다롭겠지만, 새벽안개에 싸인 풍경은 아마추어에게도 멋진 작품을 선사한다. 남산은 오르기 전에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지금껏 봐온 문화재는 잠시 잊어도 좋다. 남산의 문화재를 두고 ‘자연을 다룬 솜씨’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마음’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 등 다양한 표현을 한다. 신라의 민초에게 자연은 신이고 예술이며 삶이었다.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속에 숨은 부처를 발견하고 정으로 꺼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이다. 바위의 붉은 점을 보살의 입술로 재탄생 시킨 부분이 감상 포인트다. 깨진 바위도 그대로 작품이 되었다. 삼릉계곡선각여래좌상은 높이 10m 절벽에 새겼는데, 옆으로 금이 간 아래쪽을 연화좌로 삼았다. 얼굴은 돋을새김하고 몸통은 선각으로 표현한 수법이 미완성된 작품인 듯 여겨지나, 보면 볼수록 부처의 얼굴에서 위엄이 전해진다. 삼릉계곡선각육존불은 자연을 신으로 섬긴 흔적이 역력하다. 앞쪽 바위와 안쪽 바위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새긴 선각육존불을 자세히 보면, 앞쪽 바위 왼쪽 불상에는 대좌가 없다. 대좌를 새기려면 앞쪽 바위를 뜯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으로 새긴 연화좌보다 신이 만든 바위가 값지다는 걸 말해준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은 미완을 가장한 걸작이다. 이 탑에는 맨 아래 기단이 없다. 산의 자연 암반을 하층 기단으로 삼았다. 산을 탑의 기단으로 삼았으니 세상에 그보다 큰 탑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통 큰 솜씨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다. 미완의 극치는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이다. 머리는 파내고 몸은 파내다 만 듯 보인다. 목이 없어 왠지 어설프다. 그러나 몇 발자국 떨어져 손을 모으고 올려다보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미소를 머금은 부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진한 감동이 밀려든다. 절벽의 바위를 정으로 쪼아 기도하는 이와 부처의 눈높이를 맞춘 석공의 손길이 놀랍다.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이 새겨진 절벽은 경주의 넓은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다. 어쩌면 민초는 살기 바빠 신을 만나러 산에 갈 여유는 없고, 논을 매다가 허리를 펼 때 남산을 보았으리라. 물 한 모금 마시고 땀을 닦으며 잠시 남산을 올려다보는 그들의 삶이 떠오른다. 고개 숙인 채 까마득한 세상을 내려다보는 불상의 미소 덕분인지 노랗게 익어가는 경주평야가 풍요로워 보인다. 불상에 매듭이나 주름을 새긴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특히 용장사곡 삼층석탑 아래 있는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얼굴이 없는 아쉬움도 잠시, 대좌 뒷면의 연꽃무늬와 대좌 앞면에 흘러내린 옷자락은 감탄이 절로 난다. 남산의 문화재는 무너지고 흙에 묻힌 채 수백 년을 견뎌왔다. 제자리를 찾아 세워진 문화재 외에도 흩어진 것이 많다. 길가로 옮겨져 발에 밟히는 수모를 간신히 면한 것도 있지만, 길에 박힌 기왓장도 있다. 여전히 바위로 여겨 방치되는 보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남산에서 돌 한 조각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경주 남산 주소 : 경북 경주시 탑동 , 배동, 내남면 문의 : 054-777-7142 http://www.kjnamsan.org/ 1.주변 음식점 삼릉고향칼국수 : 칼국수 / 경상북도 경주시 삼릉3길 2 / 054-745-1038 교리김밥 : 김밥 / 경상북도 경주시 교촌안길 27-42 / 054-772-5130 남정부일기사식당 : 짬뽕 / 경상북도 경주시 배리1길 3 / 054-745-9729 2.숙소 베니키아 스위스로젠호텔경주 :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465-37 / 054-748-4848 신라게스트하우스 : 경상북도 경주시 강변로 200 / 054-745-3500 http://www.sillaguesthouse.com/ 이사금유스타운 :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465-24 / 054-745-1695 http://24k.or.kr/ 글, 사진 : 유은영(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10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조회수
한국관광공사에 의해 창작된 은(는) 공공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사진 자료의 경우, 피사체에 대한 명예훼손 및 인격권 침해 등 일반 정서에 반하는 용도의 사용 및 기업 CI,BI로의 이용을 금지하며, 상기 지침을 준수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용자와 제3자간 분쟁에 대해서 한국관광공사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