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정 원림은 경북 예천 깊숙한 곳에 자리한 조선시대 명승이다. 초간정을 중심으로 주변의 계곡, 암석, 소나무 숲을 포함하고 있다. 보기에 좋게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정원이 아닌, 주위 환경을 정원의 요소로 삼은 전통 원림이다. 깊어가는 가을, 초간정으로 달려가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을 바라보고, 황금빛 가을볕을 받으며 소나무 숲을 걷고, 옛 선비의 누정에 올라 물끄러미 계곡을 내려다본다. 아무리 궁벽한 곳이라고 해도 요사이 대한민국에 '오지'가 어디 있던가. 중앙고속도로 예천IC로 빠져 20여 분 지방도를 기분 좋게 달리면 초간정에 닿는다. 서울 수도권에서 2시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예천읍내에서 용문 방향으로 한 10km 들어갔을까 도로변에 '초간정' 표지판이 큼지막하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기암 위에 우뚝 서 있는 초간정을 만난다. 방문객 열이면 열, 계곡과 함께 어울린 초간정의 풍광을 보고서 '와~아!' 탄성을 내지른다. 초간정과의 화끈한 조우에 고무되어 곧장 정자를 향해 직행할 수 있지만, 정자를 제대로 즐기는 첫 번째 방법! 천천히 에둘러 들어가며 정자와 주위를 먼저 감상하는 것이다. 우측의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돌면 초간정 입구지만, 먼저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는 초간정 원림으로 내려간다. 계곡 앞 너른 터에 빼곡하지는 않지만 수령이 족히 200년은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 있다. 군데군데 의자도 있어 계곡 너머의 멋진 초간정을 바라보기에 좋다. 정자는 숲을 바라보고, 숲은 정자를 바라본다.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초간정을 바라보며 졸졸졸~ 계곡물 소리를 듣는다. 계곡의 물소리가 끊임이 없지만, 시끄러운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이른바 일상소음, ASMR이다. 계곡으로 내려가 초간정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 마을 뒷산에서 시작된 작은 계곡이 초간정 앞을 휘돌아 내려간다. 멀리 출렁다리도 보인다. 내친김에 돌다리로 계곡을 건너 초간정 축대 아래까지 가본다. 커다란 바위에 음각된 초간정 글씨를 발견한다. '草澗亭'. 정자의 이름표이자, 혹 정자가 재난을 당해 없어지더라도, 이 음각을 근거로 복원하라는 일종의 표식이자 기록이리라. 소나무 원림과 작은 계곡, 그리고 기암 위의 정자 한 채. 소나무와 누정이 하나의 자연으로 어울린 초간정의 숲은 국가가 지정한 명승 제 51호다. 초간정 밖에서 초간정을 바라보는 전망은 사실 초간정 주인의 앵글은 아닐 것이다. 이는 초간정을 지나치는 자의 시선이다. 초간정 주인장의 시선을 보기 위해 정자로 올라가 본다. 바위 각자 옆 돌계단을 올라 초간정의 출입문 앞에 선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소박한 문이지만, 초간정의 문은 지체 높은 여인의 가채처럼 기와지붕을 멋스럽게 올렸다. 문으로 들어서자 아담한 정자에 '草澗精舍(초간정사)'라는 현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 권문해(1534~1591)가 지은 정자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고 1626년(인조4)에 새로 지었으나, 다시 화재를 당하였다가 1739년(영조15), 1870(고종7)에 다시 짓고 고쳐지어 오늘에 이른다. 권문해는 선조 임금 연간 시작된 극심한 당쟁을 피해 낙향하여 학문에 몰입하며 말년을 보냈다. 권문해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대동운부군옥>을 지었다. 우리나라의 지리·역사·인물·문학·식물·동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고 보니 계곡에서 본 '초간정' 현판과 출입문에서 보이는 '초간정사' 현판의 한자가 다르다. 권문해의 호인 '草澗'은 같은데, 精舍와 亭이 차이가 난다. '정사'는 '학문과 정신수양을 하는 집'이라는 의미이고, '정'은 정자를 의미한다. 초간정은 집 앞뒤로 이 집의 내용적 본질과 형태적 본질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두 개의 현판을 달아 놓은 것이다. 신발을 댓돌 위에 가지런히 벗어놓고 마루에 오른다. 걸을 때마다 쿵 쿵 쿵 쿵 묵직하게 들리는 발소리가 어렸을 적 시골 대청마루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대청에 오르자 초간정의 기둥과 기둥 사이가 하나의 액자가 되어 멋진 풍경화를 담아낸다. 움직일 때마다 그림은 달라진다. 결국 풍경화를 만드는 사람은 그 풍경을 보는 사람이다. 난간 아래에는 작은 기암괴석이 솟아 있고, 바위 사이로 작은 계곡물이 졸졸졸 흘러 초간정 우측을 감싸며 흐른다. 계곡 건너 푸른 언덕에는 늠름한 소나무들이 있고, 그 가운데 비석 하나가 당당히 섰다. 초간정 마루에 잠시 앉아 계곡 소리를 BGM 삼아 소나무 원림을 바라본다. 정지화면에 계곡물만 소리 내며 흐르는 정중동의 시선, 이것이 정자 주인의 시선이다. 초간정을 세운 권문해도 이와 같은 풍광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동학과 제자들과 학문을 하며, '대동운부군옥'을 썼을 것이다. 초간정의 주인이 만약 중국이나 일본 사람이었다면, 초간정의 풍광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초간정을 일본식 정원으로 꾸몄다면, 아마도 초간정 문을 더 앞으로 빼서 보다 넓은 뜰을 확보하고 갖가지 꽃과 나무를 옮겨 심고, 정원 한쪽에는 네모반듯하게 바다를 축소하여 넣었을 것이다. 바위와 조약돌로 바다와 섬 등 자연의 여러 구성요소를 비유하며 그것을 즐겼을 것이다. 중국식 정원으로 조성했다면, 마을 입구에서부터 정원의 담을 크게 두르고 그 안에 주변의 온갖 신기한 것들을 가져다 놓고 정원 주인의 위세를 자랑했을 것이다. 일본 정원의 특징은 '축소와 비유'이고, 중국의 정원은 큰 규모를 특징으로 한다. 한국의 전통 정원은 그렇지 않다. 자연에 인공의 미와 기술을 가하되 인위적 변형을 최소화 하여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자연의 일부로 짓는다.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로 그 안에 더불어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담장 아래로 구멍을 크게 내서 계곡물이 흐르게 한 소쇄원의 오곡문이 잘 말해주고 있다. 이곳 초간정도 마찬가지다. 바위 위에 정자 하나를 얹었을 뿐, 주변을 인위적으로 손댄 흔적은 찾기 힘들다. 담장도 침입 방지의 목적이 아니라, 사람의 공간과 자연의 공간을 구분 짓는 최소한의 경계일 뿐이다. 초간정 문으로 나가면 집 앞 작은 소나무 숲을 또 만난다. 숲을 지나면 출렁다리이다. 출렁다리 중간에서 보는 계곡의 경치도 수려하다. 아담한 초간정은 주변 환경도 단출하다. 초간정과 이웃한 별채는 민박집으로 운영하고 있고, 초간정 문 앞에는 사과과수원과 민가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주변은 산과 알뜰한 논들뿐이다. 산 속에 묻힌 초간정은 해가 금방진다. 5시도 안되었는데, 따사로운 가을빛을 선사해 주었던 해는 서산 너머로 숨어 버렸다. 보석과 같은 가을빛과 어우러진 초간정을 좀 더 갖고 싶은데 아쉽기만 하다. 초간정과 그 원림을 온전히 내 것으로 하고 싶다면, 초간정 바로 옆에 있는 민박집에서 묵으면 된다. 초간정의 별채 건물로 개량한옥이 아닌, 그야말로 전통한옥 민박이다. 초간정이 바로 옆에 있으니 하루 묵으며 초간정과 소나무 숲에 수시로 드나들며 나의 정자로 만들 수 있다. 초간정 원림 -주소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경천로 874 -문의 : 054-654-3801 http://tour.ycg.kr/open.content/ko/ 주변 음식점 -용궁순대 : 국밥, 순대 / 예천군 용궁면 용궁로 158 / 054-655-4554 -언덕숯불 : 한우불고기 / 예천군 예천읍 충효로 512-5 / 054-653-2828, 054-652-2828 -신라식물원 : 뽕잎밥 / 예천군 감천면 충효로 1752 / 054-652-4857 http://www.sinrafarm.com/ 숙소 -파라다이스호텔 : 예천군 예천읍 효자로 114 / 054-652-1108 http://ycparadise.com/ -사괴당고택 : 예천군 용문면 반서울로 31 / 010-9088-7325, 010-9486-4083 -춘우재고택 : 예천군 용문면 맛질길 101 / 054-655-1717 글, 사진 : 이병유(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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