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숱한 길들 너머로 사람 살아가는 마을길이 있다. 부산 동구 초량동의 초량이바구길을 걸으며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로 여행을 떠나본다. ‘이바구’란 ‘이야기’의 부산 사투리. 초량이바구길은 일제강점기 부산항 개항부터 해방 후 50~60년대, 가히 한국의 산업혁명기라 할 만한 70~80년대 굴곡진 역사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다. 부산 사람들이 그 길에서 겪어낸 세월의 아픔과 기쁨을 길 따라 풍경 따라 조심조심 풀어낸다. 초량이바구길은 부산역에서 길 하나를 건너자마자 시작된다. 부산역과 부산항이 있어 부산의 종가라고 불리는 부산 동구의 차이나타운 옆이다. 번잡한 부산역을 벗어나 이바구길로 들어서면 바로 초량동의 옛이야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초입에는 1922년 부산 최초의 근대 병원으로 쓰였던 백제병원 건물부터 부산 최초의 창고였던 남선창고터 등이 있다. 남선창고는 당시 부산의 생선 창고로 쓰이며 북쪽에서 잡아온 싱싱한 명태를 보관했던 탓에 명태고방이라고도 불렸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사람들의 아련한 추억과 이야기만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동네를 얼마쯤 걸어가자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라는 초량교회가 모습을 드러낸다. 최초라는 수식어는 이 길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다. 초량초등학교와 초량교회는 과거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이곳 사람들의 학교이자 교회다. 세월을 잇는 징검다리처럼 여전히 생활의 중심에 들어앉아 있다. 분주한 일상 속에 그 길을 무시로 스치며 간간이나마 옛것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다. 사람들은 현재를 살면서도 여전히 옛날을 기억한다. 사람이 주인인 그 길 위에서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문득문득 담벼락에 마련된 담장갤러리와 동구 인물사 담장도 만난다. 그 담장 곁에서 마실 나온 할머니도 만난다. 스물두 살에 시집와 여든여섯 살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이곳에 사신다는 이말남 할머니의 희미한 웃음 속에서 희로애락의 세월을 짐작한다. 할머니 얼굴의 주름 마디마디에 세월의 흔적과 추억이 가득 묻어난다. 길가에 붙은 패널과 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 덕분에 살아보지 않은 그 시절 골목을 상상해본다. 저마다의 시간과 공간, 눈물과 기쁨이 스며 있는 미로 같은 우여곡절의 길에서 애잔한 우리네 인생 이야기를 읽는다. 길은 고불고불 골목을 헤매며 아기자기한 길을 내다가 문득 가파른 계단을 내놓는다. 168계단이다. 이 계단 앞에서는 누구라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 길을 밤낮으로 오갔을 사람들에게는 이 계단 역시 아침저녁으로 맞닥뜨리는 생활의 한 부분이었을 테다. 계단은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찬다. 누군가는 노동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오르내렸을 계단, 누군가는 학교에 가기 위해 고사리 같은 손 오므리고 다녔을 계단, 누군가는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올랐을 계단, 그 계단을 오르며 앞서간 무수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현재를 걸으며 과거를 만나고, 과거를 바라보다가도 문득 현재와 맞닥뜨리는 것. 이것이 사람 사는 골목을 걷는 맛이자 묘미다. 파란만장했던 우리 근현대사의 흔적은 현재의 삶 속에서도 얼핏얼핏 모습을 드러낸다. 조바심내지 않고 천천히, 이끄는 힘 없이도 저 스스로 그렇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한 번에 오르기엔 힘에 부칠 것 같더니 다행히 몇 계단 오르지 않아 아담한 전망대가 걸음을 쉬게 한다. 카페테리아를 갖춘 이곳은 ‘김민부 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 김민부 시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지난 시절 먼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로 나간 내 님은 언제 오시나’ 기다리던 사람의 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 장소다. 확 트인 시야에 마음까지 환하게 열린다. 이 전망대에서는 동구와 중구, 남구 일대는 물론 부산역과 부산항, 공사 중인 북항대교와 영도까지 시원하게 내다보인다. 부산에 와서 이곳을 지나친다면 영 아쉬울 판이다. 무엇보다 파란 바다와 맞닿은 하늘이 선사하는 청량감이 좋다.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닷바람이 시름을 잊게 한다.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기에도 좋고, 연인들 데이트 장소로도 좋다. 김민부 전망대를 둘러 가면 168계단도 금세다. 계단을 올라 이바구공작소에서 잠시 멈춘다. 이곳은 누구나 부담 없이 들렀다 갈 수 있는 갤러리이자 여행자들의 쉼터다. 해방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월남 파병의 역사를 간직한 산복도로 이야기를 그림과 사진, 전시 등으로 풀어내고 있다. 산의 배를 둘러 길을 냈다고 해서 산복도로다. 그 산복도로 위에서 사연 많은 삶을 살아냈고, 지금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잔히 그려낸다. 공작소를 지나면 이내 장기려 박사를 기념하고 박사의 뜻을 십분 살려 주민들의 복지시설을 들인 ‘더 나눔 센터’를 만난다. 국내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한 장기려 박사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가난했던 시절 약 대신 “닭 두 마리를 처방하라”는 박사의 어록은 요즘같이 팍팍한 시절에 마음을 울리는 유명한 일화다. 기념관 안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산복도로의 정점인 망양로다. 부산역을 오가는 333번 버스가 다니는 이 언덕에 ‘유치환의 우체통’이라고 이름 붙인 카페와 전망대가 있다. 유치환 시인의 작품이 곳곳에 보인다.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자신에게 엽서를 써보는 건 어떨까. 큰 우체통에 엽서를 넣으면 6개월 뒤 받아볼 수 있다.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곧 게스트하우스 까꼬막이다. 언덕배기에 있어서 이름이 ‘까꼬막’이다. 까꼬막이라 전망도 좋다. 옆으로는 마을 카페 ‘천지빼까리’가 있다. 카페 안 마을 기업 브랜드인 ‘골목점빵’에서 샴푸, 비누, 소금, 천연조미료 등 마을 사람들이 만든 다양한 수제품을 판매한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바다가 검푸른 빛깔로 몸을 바꾼다. 이 마을에서 하루를 머물며 부산에서의 시간여행을 마무리한다. 지금도 구불구불 이어지는 초량동 골목길은 숱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박제된 시간 속에서 추억에 그치고 마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로 인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눅진한 삶의 이야기들이다. 1.5km 길지 않은 길이건만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15km, 아니 150km보다 더 길고 끈끈하다. * 부산광역시 동구청 : 051-466-7191, tour.bsdonggu.go.kr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 대동분기점 → 모라로 → 백양터널 → 수정터널 → 좌천삼거리에서 부산역 방면 우회전 → 초량동 * 대중교통 [버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나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타면 부산서부버스터미널로 간다. 약 4시간 30분~4시간 50분 소요. 동서울터미널에서 타면 부산종합버스터미널로 가는데 부산역까지 거리가 머니 되도록 고속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기차]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KTX 수시 운행, 약 2시간 20분 소요 2.주변 음식점 신발원 : 중국요리 / 동구 대영로243번길 62 / 051-467-0177 초량밀면 : 밀면 / 동구 중앙대로 225 / 051-462-1575 본전돼지국밥 : 돼지국밥 / 동구 중앙대로214번길 3-8 / 051-441-2946 3.숙소 까꼬막 게스트하우스 : 동구 망양로596번길 18 / 070-7333-9195 숨 게스트하우스 : 동구 중앙대로226번길 3-7 / 051-442-6272 / www.sumhostel.com 동양모텔 : 동구 중앙대로196번길 16-10 / 051-442-1248 / http://www.dymotel.co.kr/ - 글, 사진 : 이송이(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4년 5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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