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법성포에는 오색의 꽃으로 단장한 예쁜 동산이 있다. 숲쟁이꽃동산이다.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와 법성포 숲쟁이느티나무군을 연결한 곳으로 꽃과 나무 사이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이다. 영광 하면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것이 굴비와 포구이기에 꽃동산을 마주하는 순간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바닷가 특유의 짠내와 주렁주렁 걸린 굴비 대신 화사한 꽃과 나무가 반겨주니 봄날의 포구여행이 더욱 풍성해진다. 꽃밭 사이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꽃향기에 취하고, 걷는 내내 법성포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숲쟁이꽃동산은 법성포 여행이 주는 보너스다. 영광 숲쟁이꽃동산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기나긴 터널을 지나면 설국이었다”라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마디였다. 그가 말한 것은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세상이었지만, 내 앞에 놓인 세상은 화사한 꽃들이 만발한 화원이다.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났을 때 마주했으면 하고 바라던 봄의 세상이다. 봄의 화원으로 발을 디디니 ‘숲쟁이꽃동산’이라 적힌 커다란 바위가 길손을 맞는다. 그 뒤로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펼쳐진다. 어느 길을 택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산책로는 종으로, 횡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저 눈이 가고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면 그만이다. 높은 곳에 올라 전체를 조망하고 싶다면 오른쪽 오르막 계단을 택하면 된다. 넓적한 박석을 깔아 길이 평평하고 걷기 쉽다. 제일 아래 산책로는 잔디가 깔린 흙길이다. 위쪽 산책로에 비해 꽃이 적은 반면 온통 녹색이라 눈이 편안하다. 위쪽으로 난 산책로 옆에는 붉은색, 분홍색, 하얀색 영산홍이 지천에 깔렸다. 강렬한 색감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계절에 따라 화원을 장식하는 꽃이 달라진다. 이른봄 벚꽃이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면 5월 중순에는 영산홍이 주인공이다. 동산에 영산홍이 가득하다. 영산홍 아래에는 앙증맞은 분홍색 꽃잎이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펼쳐져 있다. 영산홍은 철쭉의 한 종류다. 꽃이 진달래보다는 늦게 피고 철쭉보다는 일찍 핀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따르면, 영산홍은 조선 세종 때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1441년(세종 23년) 봄, 일본에서 바친 화분 몇 개를 왕이 뜰에서 기르도록 명하였다. 꽃잎이 크고 색깔도 석류와 비슷해서 세종은 즐겁게 감상하고 상림원에도 내려 나누어 심게 했다. 영산홍의 아름다움은 왕은 물론 선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중신들은 왕이 영산홍을 너무 좋아해서 정사를 돌보는 데 소홀할까봐 궁 안에 있는 영산홍을 베어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왕 중에는 특히 연산군이 이 꽃을 좋아해서 “영산홍 만 그루를 후원에 심으라”고 하명하기도 했다. 선비들도 영산홍의 매력을 높이 쳤다. 강희안은 ‘화목구품’이라는 화품론에서 꽃의 품계를 1품부터 9품까지 나누었는데, 영산홍을 3품에 두었다. 영산홍의 품격과 운치에 높은 평가를 내린 것이다. 영산홍의 아쉬운 점은 화려한 꽃에 비해 향기가 없다는 것이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꽃이 발산하는 색의 향연은 만끽하지만 후각으로 느끼는 향기는 와 닿지 않는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동산 아래쪽의 산책로를 걸으면 되기 때문이다. 산책로와 산책로가 만나는 구간에 등나무 터널이 조성되어 있다. 햇빛이 들지 않아 시원하고, 무엇보다 진한 등나무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절로 눈을 감고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하게 된다. 영산홍으로 눈을 정화시켰다면 등나무 터널에서는 꽃향기로 지친 심신을 힐링한다. 꽃밭을 걷다가 봄볕을 피해 잠시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는 정자도 곳곳에 놓여 있다. 단순히 쉬는 장소라기보다는 숲쟁이꽃동산을 조망하기 좋은 전망 포인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정자에 앉아 천천히 숲쟁이꽃동산을 바라보자. 쉼터 중에서 최고 명당을 꼽으라면 입구에서 이어진 산책로 끝에 있는 정자와 아래쪽의 커다란 벚나무 쉼터다. 정자는 동산에 피어난 꽃과 산책로가 어우러진 풍경이 뛰어나고, 벚나무 쉼터는 고목이 주는 편안함과 운치가 뛰어나다. 쉼터에서 바라보면 산자락에 꽃이 빼곡하게 피어 있고, 그 속에 나무들이 들어차 있다. 멀리서 보면 길이 나무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화초가 만들어내는 낮은 지평선에 불규칙하게 선 키 큰 나무가 수직으로 뻗어 풍경의 단조로움을 피했다. 500년 전에 조성된 숲에 꽃밭을 조성한 것이라더니 과연 꽃과 나무가 제대로 조화를 이룬다. 꽃과 나무 외에도 멋진 풍경이 하나 더 있다. 숲쟁이꽃동산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어 어디에서건 바다, 포구, 마을이 어우러진 법성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만히 숲쟁이꽃동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김수복 시인의 <꽃밭>이 머릿속에 맴돈다.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 힘이 자꾸 빠지는 흐린 봄날에는 / 작은 꽃밭 하나만이라도 갖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 / 이리저리 벌떼들이 잉잉거리는 오후 /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 작은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 물을 뿌리고 희망을 키우는 / 절망하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 흐린 봄날에는 갖고 싶다.” 꽃과 나무로 조성한 자연친화적 휴식공간. 인공적인 공간이지만 원래 그랬던 양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화원. 문득 ‘나도 이런 꽃밭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숲쟁이꽃동산 너머에는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가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자연스레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와 연결된다. 384년에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법성포에 처음 발을 디디면서 백제에 불교가 전해졌다. 법성포의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뜻한다. 마라난타가 법성포로 들어와 불법을 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부용루, 탑원, 간다라유물전시관, 4면 대불상을 건립했다. 부용루 벽면에는 석가모니의 출생과 고행의 모든 과정을 간다라 기법으로 조각해놓았다. 한국의 전통 사찰과는 달리 인도의 간다라 미술 양식과 유물을 볼 수 있어 이채롭다. 주변 음식점 -명가어찬 : 굴비한정식 /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굴비로 51 / 061-356-5353 -어부촌회관 : 굴비한정식 /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굴비로 64 / 061-356-6555 -일번지 : 굴비한정식 /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굴비로 37 / 061-356-2268 -다랑가지식당 : 굴비한정식 /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굴비로1길 62-8 / 061-356-5588 -국제식당 : 굴비한정식 /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굴비로 86 / 061-356-4243 숙소 -노을연가펜션 :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4길 185-37 / 061-352-0016 http://www.sunsetlove.co.kr/ -놀마루펜션 :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4길 217 / 061-351-7455 http://www.nolmaroo.co.kr/ -영광컨트리클럽 골프텔 :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 1362-70 / 061-350-2000 http://www.ygcc.co.kr/ 글, 사진 : 오주환(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10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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