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 주연의 영화 <역린>은 경희궁 존현각을 세트로 재현했다. 현재 소실되어 경희궁에도 없는 전각으로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 옆이라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관방제림과 죽녹원까지 느릿한 걸음을 내며 영화 속 <중용>의 도를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 ‘역린’은 《한비자》 <설난(說難)>편에 나오는 말이다.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을 의미한다. 용은 유순한 동물이나 이를 건드리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고 적혀 있다. 임금의 노여움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현빈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의 제목 역시 <역린>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정조 시해 사건에 기반한 작품이다. 당시 정조가 있던 궁궐은 경희궁이었다.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는 경희궁에 가장 오랫동안 머문 임금이다. 정조 역시 동궁 시절의 대부분을 경희궁에서 보냈다. 그를 시해하려던 정유역변 역시 왕위에 오른 첫해 경희궁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화의 배경은 그 가운데 존현각이다. 담장 역할을 하는 긴 행각으로 정조가 동궁 시절부터 사용했던 서재다.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경희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 흔적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크게 훼손되었다. 존현각 역시 다르지 않다. 대략 서울역사박물관 서북쪽으로 경희궁과 서울역사박물관 경계의 어디쯤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가장 많이 등장하며 정조를 드러내는 핵심 공간이요, 영화의 하이라이트 전투 신을 촬영한 공간이다. 작은 규장각을 떠올리게 할 만큼 서책으로 가득했던 장소다. 책가도(冊架圖)도 인상적이었다. <역린>의 조화성 미술감독은 고증을 거쳐 존현각을 실제 규모의 세트로 재현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궁 안에 있다고 믿기 어려운 남루하고 초라한 서재지만 정조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힘을 키울 준비를 하는 곳(《씨네21》)이다. 세트장 위치는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 옆이다. 덕분에 여행을 겸하기에 적합하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은 1972년 가로수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가로수는 어느새 수령 40년의 고목으로 성장했다. 높이가 20m에 달하는 굵직한 나무다. 오래전부터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CF에 등장하며 저만의 풍광을 뽐냈다. 굳이 촬영지를 들먹일 것도 없다. 그 길 위에서는 누구나 배우다.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연인의 뒷모습이 마치 로맨틱 멜로 영화의 한 장면인 양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몇 가지 변화도 있었다. 우선 지난 2012년부터 학동교와 금월교 사이 2.1km 구간에 입장료를 받는다. 1,000원이라 큰 부담은 없다.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난 아스팔트 도로도 걷어냈다. 흙을 밟고 걸을 수 있어 한층 푸근하다. 길 좌우로는 포토 존에서 자연습지, 장승공원, 기후변화체험관 등의 시설도 늘어났다. 테지움테마파크, 메타프로방스 등도 건설 중이다. 어느새 메타세쿼이아 공원의 풍모다. <역린>과 <협녀> 등의 세트가 위치한 담양영상테마파크도 그 가운데 하나다. 가로수길 중앙의 영산강 쪽 빈터에 지었다. 먼저, <역린>의 세트 담장에는 주인공들의 얼굴이 담긴 스틸 사진들이 붙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존현각이다. 더 정확히는 존현각이 있던 행각이다. 하나의 건물처럼 수평을 이루지만 실은 거대한 궁궐에서 담장을 겸한 건물이었다. 뒤편으로는 실내 촬영을 위해 조성한 세트들이 붙었다. 여느 세트장이 그렇듯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사후 관리가 부실해 훼손된 부분이 적잖다. 세트는 주말에만 개방하는데, 여러 가지 놀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존현각을 직접 거닐어도 좋지만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나무 사이로 감상하는 것도 운치 있다. 짧은 시간에 거목으로 성장하는 메타세쿼이아는 왠지 <역린>의 정조를 닮았다. 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은 체로키 인디언들이 전설적인 그들의 추장 세쿼이아를 기리고자 수령 3,000년 가량의 고목에 이름을 붙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나무가 바로 살아있는 화석 메타세쿼이아다. <역린> 세트 옆에는 <협녀 : 칼의 기억> 세트도 있다. 이병헌, 전도연이 주연한 기대작으로 개봉에 앞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지척에 있는 호남기후변화체험관도 들러볼 만하다. 2층 건물에 전시체험관, 3D영상관, 전망대, 휴게 쉼터 등을 갖췄다. 메타세쿼이아 길의 낭만을 누리고 관방제림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학동교 옆으로 난 제방이자 숲길이 관방제림이다. 인조 26년(1648)에 부사 성이성이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었다. 철종 5년(1854)에는 부사 황종림이 제방을 중수하며 숲을 조성했다. 세월이 지나니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경이다. 넓지 않은 둑길을 200~300년 된 노거수가 막아선다. 100여 그루의 푸조나무와 10여 그루의 팽나무 등 천연기념물 185그루다. 마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제방이 아니라 고대의 숲을 거니는 듯하다. 걸음을 부르는 길은 관방제림에서 끝나지 않는다. 곧장 죽녹원으로 잇댄다. 31만 ㎡에 이르는 거대한 대숲에 2.4km의 산책로가 이어진다. 높고 곧으며 빼곡한 숲이다. 댓잎에 이는 바람소리와 마디를 끊어 자라는 대나무의 울음도 특별한 정취다. 중간에 샛길로 빠지면 죽향문화체험마을에 다다른다. 시비공원, 소리전수관(우송당)과 면앙정, 송강정 등 담양의 정자를 재현한 체험마을이다. 그저 멍하니 망중한을 즐기기에도 좋다. 죽향문화체험마을에서 만나는 정자가 못내 아쉽다면 그 실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추천한다. 식영정, 면앙정 등도 빼어나지만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곳 100선'에 꼽히는 소쇄원을 빠뜨릴 수 없다. 소쇄원은 대숲 진입로를 지나 마주하는 무릉이다. 양산보가 자연에서 살고자 꾸민 별서로 한국 원림의 진수를 선보인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석축과 담장, 그 사이에 자리한 꽃과 나무 등 곳곳에 새긴 무수한 상징과 차경(借景)이 끊임없이 매혹한다. 특히 계곡에 기대어 선 광풍각이 압권이다.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의미를 온몸으로 체감한다. 오감이 행복에 겹다. 하루를 고스란히 담아 들여다보아도 좋겠다 싶다. <역린>을 관통하는 《중용》 23장의 말도, <역린>과는 무관한 그 자연의 품에서 비로소 이해가 간다.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중략)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메타세쿼이아 길(<역린> 세트) 주소 : 전남 담양군 담양읍 메타세쿼이아로 12 문의 : 061-380-3149 죽녹원 주소 : 전남 담양군 담양읍 죽녹원로 119 문의 : 061-380-2680 http://juknokwon.go.kr/ 소쇄원 주소 : 전남 담양군 남면 소쇄원길 17 문의 : 061-382-1071 http://www.soswaewon.co.kr/ 1.주변 음식점 한상근대통밥집 : 대나무통밥 / 담양군 월산면 담장로 113 / 061-382-1999 http://www.한상근.com/ 뚝방국수 : 멸치국수 / 담양군 담양읍 천변5길 12 / 061-382-5630 신식당 : 떡갈비 / 담양군 담양읍 담주2길 18-13 / 061-382-9901 2.숙소 담양리조트호텔 : 담양군 금성면 금성산성길 202 / 061-380-5002 http://www.damyangresort.com/ 죽향문화체험마을 : 담양군 담양읍 죽향문화로 378 / 061-380-268 골든리버텔 : 담양군 담양읍 무정로 26 / 061-383-8960 http://www.goldenriver.kr/ 글, 사진 : 박상준(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5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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