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8일 신논현역에서 종합운동장역까지 서울지하철 9호선이 연장 개통됐다. 불과 5개 역에 지나지 않지만 선·정릉과 봉은사 등 굵직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9호선 연장 개통으로 더 가까워진 선·정릉과 봉은사는 왕릉과 수호사찰이라는 인연으로 맞닿아 있다. 9호선 개통과 함께 봄기운이 살짝 깃든 선·정릉과 봉은사를 둘러보자. 선․정릉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복잡한 도심에 남아 있어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어울리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예를 다해 왕릉을 만들고 관리했던 위엄이 서린 곳이지만, 지금은 점심시간이면 커피 한 잔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곳, 주말이면 왕릉을 답사하거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친다. 선·정릉은 조선 9대 왕인 성종과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 조선 11대 중종이 잠들어 있다.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가 잠든 선릉은 한 구역 내 다른 언덕에 왕과 왕후를 따로 봉안한 동원이강릉 형식이고, 정릉은 중종이 홀로 잠든 단릉이다. 선·정릉은 각기 다른 형태로 조성되어 있어 두 왕릉을 서로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성종과 중종은 정비와 계비 2명을 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성종에게는 정비 공혜왕후, 계비이자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 씨와 정현왕후가 있었고, 중종은 정비인 단경왕후와 계비인 인종의 어머니 장경왕후,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를 두었다. 영화와 사극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이름이 조선의 생동감 넘치는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한편 선·정릉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파헤쳐진 가슴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새로 개통된 9호선 선정릉역 3번 출구에서 뒤돌아 선정릉사거리에서 내려오다 보면 선·정릉 입구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면 왼쪽으로 선릉, 직진하면 정릉으로 이어진다. 정릉 방면으로 선릉·정릉역사문화관이 있다. 왕릉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선·정릉의 주인인 성종과 중종의 생애, 왕의 국장 방법, 영상을 통해 왕릉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재실을 지나면 오붓한 숲길이 나오고, 정릉 입구에서 정자각으로 바로 이어진다. 정자각 외곽을 돌아 홍살문에서 왕릉 답사를 시작하는 게 기본이다. 제사를 지낼 때 향이 지나가는 향로와 제사를 지내는 당사자인 왕이 지나가는 어로가 정자각까지 길게 이어진다. 정릉은 조선 11대 왕 중종이 홀로 잠들어 있는 단릉이다. 정비와 계비까지 3명이나 있었지만, 어느 누구와도 같이 잠들지 못한 불우한 왕이다. 중종의 정비인 단경왕후는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폐위되었고,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6일 만에 승하했다. 이어 맞아들인 문정왕후는 명종을 낳고 수렴청정으로 조선의 권력을 쥐락펴락한 철의 여인이었다. 중종이 정릉에 홀로 잠들게 된 것은 이 무렵이다. 중종이 승하하자 서삼릉 내 정현왕후의 능인 희릉에 모셨는데, 문정왕후가 중종과 함께 묻히기를 바랐다. 그녀는 풍수지리가 좋지 않다 하여 중종의 능을 지금의 정릉으로 옮겼다. 하지만 문정왕후 역시 정릉의 지세가 좋지 않아 지금의 태릉에 홀로 안장됐다. 결국 중종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홀로 남게 된 것이다. 게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능이 파헤쳐지기까지 했으니 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정릉을 나와 선릉으로 가는 길에는 봄이면 가장 먼저 신록을 틔우는 버드나무 군락을 지난다. 푸릇푸릇 신록이 가득해 선·정릉에서 유일하게 봄이 찾아온 듯하다. 선릉으로 가려면 낮은 언덕을 하나 넘는다. 오를 때는 참나무 등 활엽수가 지천이더니 언덕을 넘어서자 하늘하늘 가냘프게 치솟은 소나무 군락이다. 언덕을 내려서면 선릉 입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큰길이다. 선릉 입구에서 정현왕후의 능으로 가는 길은 개나리와 진달래가 화사하게 어우러진 꽃길이다. 길을 따라 정현왕후의 능을 먼저 찾거나, 선릉 입구로 내려가 선릉의 홍살문부터 시작해도 된다. 정릉과 달리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은 봉분 입구까지 올라가 능의 전체를 볼 수 있다. 조선은 숭유억불을 기초로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왕조다. 당연히 불교는 억압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억불정책에도 사세를 키우거나 유지한 사찰이 있었다. 왕실의 후원을 받는 원찰, 왕릉을 관리하는 수호사찰이 그것이다. 봉은사 역시 통일신라시대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러 선릉의 수호사찰이 되면서 봉은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문정왕후가 조선의 실세로 등극해 보우스님을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면서 사세가 더욱 커졌다. 문정왕후는 선종과 교종의 양종 체제를 부활시켰고, 보우스님의 건의를 받아들여 승과(僧科)를 실시했다. 봉은사 입구에 보우스님의 동상이 세워진 것도 불교사의 업적 때문이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불교정책도 문정왕후가 승하하면서 철저하게 무너졌다. 보우스님은 제주도로 유배돼 죽음에 이르렀고, 봉은사도 사세가 기울었다. 이후 숙종 때 중건됐지만 1939년 화재로 판전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의 봉은사는 그 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예스러움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봄이 오는 길목의 봉은사는 불자뿐 아니라 봄을 즐기려는 상춘객도 불러모은다. 대웅전 뒤편으로 올라 영산전과 북극보전, 영각과 판전을 거쳐 내려오는 길에 봄 향기가 가득하다.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새하얀 목련을 비롯해 영산전 앞 노란 산수유, 영각으로 가는 길의 홍매화, 영각과 나란한 겹홍매화, 판전에서 내려오는 길에 매화, 산수유, 진달래가 어우러져 짧은 길이지만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 영각과 미륵대불을 지나면 봉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판전에 이른다. 판전은 남호 영기스님이 판각한 화엄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특히 판전의 편액이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잦다. 화엄경판을 새긴 영기스님의 행적이 적힌 남호율사비가 일주문 지나 바로 옆에 세워져 있다. 예스러움이 없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봉은사는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절집이라 늘 인파로 북적이지만, 화사한 봄꽃 향기 속에 역사의 향기도 함께 머무는 흔치 않은 명소다. 선.정릉 주소 : 서울 강남구 선릉로100길 1 문의 : 02-568-1291 http://seonjeong.cha.go.kr/ 봉은사 주소 :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531 문의 : 02-3218-4800 http://www.bongeunsa.org/ 주변 음식점 하모 : 진주비빔밥 / 강남구 언주로 819 / 02-515-4266 http://hamo-kitchen.com/ 범스 : 외할머니게장 / 강남구 도산대로55길 16 / 02-3447-0888 https://www.facebook.com/bums888 부산아지매국밥 : 아지매국밥 / 강남구 선릉로 524 / 02-592-9882 http://busanajimae.com/ 숙소 엠비즈호텔 : 강남구 테헤란로79길 11 / 02-539-1722 호텔스타 : 강남구 논현로87길 17 / 02-561-9442 맥스호텔 : 강남구 테헤란로33길 6-11 / 02-558-3180 글, 사진 : 문일식(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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