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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빛 벚꽃 흩날리고 샛노란 유채꽃이 물결치는 제주. 많은 이들이 추억하는 제주의 4월은 봄빛 찬란하다. 하지만 역사의 뒤안길 너머에 묻혀 있는 제주의 4월은 글자 그대로 ‘잔인한 4월’이었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은 섬 곳곳에 감춰진 참혹했던 근현대사의 한 장면을 마치 위령제를 지내듯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기에 더욱 서글픈 역사. 따스한 햇살 가득한 4월 어느 날, 영화 <지슬>의 배경이 된 큰넓궤를 찾아 떠났다.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무장 봉기한 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토벌대가 무고한 양민들까지 대량 학살한 사건으로 우리 근현대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이다. 영화 <지슬>은 당시 군인들을 피해 도너리오름 기슭의 큰넓궤(굴)로 피신했던 안덕면 동광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 주민들은 깜깜한 동굴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지슬(감자)’을 나눠 먹으며 도대체 무슨 난리가 난 건지 의아해한다. 그러면서도 두고 온 돼지 먹이를 걱정하거나 이웃 총각이 언제 장가를 갈지 궁금해하는 등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겨우면서 애잔함이 묻어나는 영상 이면에는 무척이나 절박했던 현실이 숨어 있다. 당시 1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군인들의 학살을 피해 동굴 안에서 두 달 가까이 숨어 지내야만 했다. 그렇다고 굴이 넓은 것도 아니다. 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굴 입구는 겨우 한 사람, 그것도 몸을 웅크리고 엉금엉금 기어들어가야 할 만큼 좁다. 현재 큰넓궤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동굴 안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에서 군인들이 굴을 발견하고 진입을 시도하는 장면, 주민들이 굴 안에서 불을 피우며 진입을 막는 장면 등이 실제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야 할 만큼 비좁고 험한 길을 지나면 그나마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을 만한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그곳, 불빛 하나 새어들지 않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영문도 모른 채 이웃들이 처형되고 고향 마을이 한순간에 불타 없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굴 주변은 온통 가시덤불이다. 큰넓궤는 마음먹고 찾지 않는 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밤길에 여기저기 가시에 찔려가며 간신히 굴까지 피난 왔을 주민들과 이들을 쫓아 샅샅이 수색에 나섰을 군인들. 그 악몽 같은 역사를 큰넓궤는 지금까지 홀로 간직해오고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온 큰넓궤의 아픈 상처에 새살이 돋을 수 있기를…. 간절한 바람을 마음 한구석에 담고 돌아선다. 영화 <지슬>에서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용눈이오름에서 촬영된 군인과 순덕의 대치 장면이다. 잘 알려진 포스터 컷이자 영화 속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군인들에게 치욕을 당한 뒤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마는 순덕. 그녀를 가슴에 품고 있던 만철이 내달렸던 능선이 순덕의 가슴과 오버랩되면서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이 탄생된 곳이기도 하다. 용눈이오름 장면은 영화적 설정이긴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그러한 비극적 상황이 바로 그곳에서 실제 일어났을지. 그만큼 제주 4.3이 남긴 흔적은 깊고 광범위하다. 그 같은 사실을 입증해주는 표지가 ‘잃어버린 마을’이다. 용눈이오름에서 마주보이는 다랑쉬오름 아래에 다랑쉬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4‧3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말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마을, 그곳엔 팽나무 한 그루와 ‘잃어버린 마을’이란 표석만 덩그러니 서 있다. 그 맞은편 다랑쉬동굴에서는 제대로 짝을 맞출 수도 없이 뒤엉켜버린 다량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모두 뼈아픈 역사의 산물이다. 지금 다랑쉬오름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과연 누가 그 아래 마을이 있었음을 기억이나 해줄까. 다랑쉬오름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잠시만 짬을 내 그 아래 세워진 마을 표지석도 함께 찾아보길 바란다. 멋있게만 보이던 다랑쉬오름의 슬픈 속사정을 알고 나면 아마도 이전과 또 다른 감흥에 젖게 될 것이다. 다랑쉬마을과 같은 ‘잃어버린 마을’을 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슬>의 배경이 된 동광리 무등이왓마을도 그렇고, 해안가에 접해 있는 화북 곤을동 등 수많은 마을이 중산간 마을 소개령과 마구잡이식 토벌로 불타 없어졌다. 지금 그곳엔 예전 마을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석과 무성한 대밭만이 오랜 세월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다랑쉬마을을 떠난 발걸음이 자연스레 제주4.3평화공원에 가 닿았다. 2008년 3월에 문을 연 제주4.3평화공원은 역사적 진실을 기억하고 당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화해와 상생의 장으로 조성되었다. 총 22만 ㎡ 부지에 기념관, 위령제단, 위령탑, 희생자 각명비, 행방불명인 표석, 모녀상 등이 세워져 있다. 매년 4월 3일이면 이곳에서 희생자 위령제가 열린다. <지슬>을 봤어도, 혹은 보지 못했어도, 제주4.3평화공원은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제주 4.3 사건에 관한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희생자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진 각명비와 위패, 시신을 찾지 못해 묘조차 만들지 못한 행방불명인 표석들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역사임에도 가슴 찌르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는지 각명비에 이름이 새겨진 희생자만 무려 1만 4,000여 명에 이르고 행방불명인 표석은 3,700여 개에 이른다. 이곳에 오르지 못한 희생자 명비는 더 많다. 실제 4.3 사건으로 희생된 제주도민은 3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생자의 이름과 성별, 연령, 사망일시 등이 새겨진 각명비를 천천히 지나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덜컥 멈춰 서는 순간이 있다. ‘ㅇㅇㅇ의 자’라고 적힌 1세의 남자아이. 세상에 나온 지 며칠이나 됐을까. 이름도 채 가질 새 없이 그대로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그 아이가 너무나 가여워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한다면 헌화용 국화는 준비하지 못해도 위령제단에 들러 희생자들에게 묵념하는 시간은 꼭 가지시길. 위령제단 뒤로 보이는 한라산이 희생자들의 넋을 품어 안은 어머니의 모습 같다. 평화공원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이 진정한 ‘평화’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보게 한다. 영화 <지슬>의 흔적을 좇아 둘러본 제주 4.3의 역사적 현장들. 섬을 할퀴고 간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많은 이들이 역사적 진실을 알아주기를, 그 힘으로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찬란한 4월의 오후, 65년 전 그때와 똑같이 꽃들은 피어나고 바람은 춤을 쳐대며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1.주변 음식점 바그다드 : 탄두리치킨 / 제주시 서광로32길 38 / 064-757-8182 섬횟집 : 자연산 활어 / 제주시 서해안로 242 / 064-742-2929 http://cityfood.co.kr/file2/h_0102/50729/index.html?mode=map&number=47950&gu_number=50729 해진횟집 : 다금바리 / 제주시 서부두길 26 / 064-722-4584 제주에서첫번째 : 손수제비 / 제주시 중앙로19길 25 / 064-752-6041 흑돈가 : 흑돼지구이 / 제주시 한라대학로 11 / 064-747-0088 http://www.blackpigkorea.co.kr/ 2.숙소 나비스호텔 : 제주시 애월읍 애월해안로 885 / 070-4348-7337 http://www.hotelnavis.co.kr/ 빌레리조트 : 제주시 애월읍 고내로13길 79 / 064-799-2002 http://www.villae.co.kr/ 늘송파크텔 : 제주시 원노형5길 22 / 064-749-3303 http://www.nepark.co.kr/ 글, 사진 : 정은주(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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