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정원은 자연을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옛사람들은 산과 물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풍경에 기대어 정원을 만들었다. 해남에는 바다를 메운 땅에 숲을 가꾼 곳도, 산을 담 안으로 들인 곳도 있다. 가을볕 아래, 머물기만 해도 쉼이 되는 정원으로 떠나보자. ★ 해남 정원 여행 추천 코스 ★ - 산이정원: 바다를 막아 생긴 땅에 들어선 정원형 식물원 - 고산 윤선도 유적지: 500년 종가 녹우당과 윤선도의 시조 「오우가」를 옮긴 정원 - 문가든: 흑석산과 저수지를 정원으로 들인 해남 1호 민간정원 - 미황사(해남): 뒤로는 달마산 바위 능선, 앞으로는 서쪽 바다를 둔 천년 고찰 목포에서 해남으로 넘어가는 길에 산이반도가 있다. 낮은 언덕 사이로 평평한 땅이 멀리까지 이어진다. 본래 바다에 섬들이 흩어져 있던 곳이다. 방조제를 쌓아 섬과 섬 사이 바다를 막았다. 오랫동안 빈 갯벌로 남아 있던 이 땅에 기업도시 솔라시도가 들어섰다. 산이정원은 전남 민간정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민간정원은 개인이나 기업이 가꾼 정원 가운데 시·도에 등록해 일반에 공개하는 곳이다. 이름에는 산이면의 정원이라는 뜻과 '산이 정원이 된다'는 뜻을 함께 담았다. 바다를 메운 땅에는 소금기가 남았다. 땅을 파면 짠물이 올라왔다. 염분을 막는 층을 깔고 새 흙을 덮은 뒤에야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바람과 염분에 강한 후박나무, 완도호랑가시나무, 녹나무를 골랐고, 한해살이꽃 대신 해마다 다시 올라오는 여러해살이풀을 심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맞이정원이 물결무늬를 그리며 호숫가로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가면 산이갤러리가 나온다. 갤러리 앞 호수는 물이정원이다. 바닷물이 머물던 자리에 빗물이 모여 호수가 됐고, 이 물이 산이정원의 나무와 꽃을 적신다. 통유리 카페에 앉으면 호수 건너로 정원이 보인다. 갤러리를 나와 언덕을 오르면 약속의 숲이다. 2050년까지 탄소를 줄이자는 약속으로 나무 2,050그루를 심었고, 인근 초등학생들이 그해에 열어 볼 타임캡슐을 묻었다. 서쪽 언덕 서약의 정원은 산이정원에서 전망이 손꼽히는 자리다. 결혼 서약을 하는 하얀 아치 아래 서면 늘어선 측백나무 너머로 호수와 정원이 내려다보인다. 아치는 넝쿨이 타고 오르면 숲과 하나가 되도록 지었다. 언덕을 내려와 정원 가운데로 가면 200년 넘은 동백나무가 서 있다. 산이면 한 농가의 밭에 있던 나무를 주인이 정원에 내주었다. 하늘마루 잔디 언덕에는 유영호 작가의 조각 'Bridge of Human'이 서 있다. 거대한 사람 형상이 양팔을 넓게 펼치고 그 위로 작은 사람들이 다리처럼 길게 줄지어 선 모습이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미래를 잇는다는 의미를 담은 작품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잔디 언덕과 어우러져 하늘마루에 특별한 여운을 더한다. 나비의 숲을 지나면 대숲 사이로 소리의 정원이 이어진다. 대나무숲 설화에서 착안해 소중한 사람의 소원을 담는 곳으로, 바람이 불면 쇠막대 풍경이 울린다. 대숲을 내려오면 '생명의 나무'가 나온다. 홍가시나무와 황금사철나무로 모양을 낸 미로다. 갈림길마다 선 안내판의 질문에 답하며 걷다 보면 나에게 맞는 반려나무를 만난다. 이어지는 흐름원은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피고 지는 풀로 계절을 보여 준다. 산이정원 -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산이면 구성리 664 - 운영 시간 [하절기(3~10월)] 09:00~18:00 (입장 마감 17:00) [동절기(11~2월)] 09:00~17:00 (입장 마감 16:00) - 이용 요금: 일반 12,000원(주말), 일반 10,000원(주중), 청소년·경로(65세 이상) 9,000원, 해남군민·장애인·국가유공자 6,000원, 어린이 5,000원 - 문의: 061-536-3001 새로 일군 땅을 떠나 해남읍 연동마을로 간다. 덕음산 아래 해남 윤씨 종가 녹우당과 고산 윤선도 박물관, 고산 오우가 정원, 사당과 비자나무 숲이 한데 모여 있다. 이 일대를 고산 윤선도 유적지라 부른다. 녹우당에 닿기 전 고산 윤선도 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은 윤선도의 증손 윤두서가 그린 자화상을 비롯해 이 집안이 대대로 지켜 온 유산을 소장한다. 윤선도는 벼슬에서 물러날 때마다 자연 속에 정원을 짓고 머물렀다. 보길도 부용동 원림이 그중 하나다. 윤선도가 해남 금쇄동에 머물며 지은 「산중신곡」은 모두 18수의 시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여섯 수가 「오우가」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윤선도는 물과 돌,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달을 벗이라 불렀다. 박물관과 종가 사이 너른 터에 이 다섯 벗을 들인 정원이 있다. 해남군이 「오우가」를 바탕으로 새로 만든 고산 오우가 정원이다. 작은 문을 지나 흙돌담을 따라가면 소나무 숲과 연못, 정자가 차례로 나온다. 돌을 쌓아 물길을 내고, 벗마다 표석을 세워 시조를 한 수씩 새겼다. 연못가 정자 오우정에 오르면 녹우당 기와지붕과 덕음산 자락이 겹친다. 다섯 벗 가운데 달은 잔디밭 위에 조형물로 세웠다. 오우가 정원을 나와 녹우당으로 향한다. 녹우당은 해남 윤씨 종가다. 윤선도의 고조할아버지 어초은 윤효정이 500여 년 전 이곳에 터를 잡았고, 지금도 후손이 대를 이어 산다. 들머리에는 그때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서 있다.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로 마당을 둘러싼 구조다. 사랑채는 효종이 스승 윤선도에게 내린 수원 집을 1668년 뱃길로 옮겨 와 다시 지었다고 한다. 여기 걸린 '녹우당' 현판은 윤두서의 벗 옥동 이서의 글씨다. 녹우당 뒤편으로 가면 윤효정을 모신 어초은사당과 윤선도를 모신 고산사당이 나온다. 북동쪽의 추원당은 후손들이 어초은을 기리고자 지은 제각이다. 사당 너머 덕음산 기슭은 비자나무 숲이 뒤덮고 있다. '뒷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진다'는 윤효정의 당부를 따라 후손들이 심은 숲이다. 집에서 사당으로, 사당에서 숲으로 길이 이어진다. 옛 선비 집안은 뒷산까지 집의 일부로 여기고 가꿨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 -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 - 운영 시간: 09:00~18:00 (입장 마감 17:30) ※ 매주 월요일 휴무 - 문의: 061-530-5250, 061-530-5548 덕음산을 뒤로하고 북동쪽 계곡면으로 가면 흑석산 자락에 닿는다. 산 아래 저수지를 마주한 정원이 문가든이다. 주인의 성인 ‘문’에서 따온 이름이다. 카페 통창 앞에 앉아 대표 메뉴인 황칠진액차를 마시면 정원 너머로 오류제 저수지와 흑석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50여 년 전 이곳은 저수지 둑을 쌓을 흙을 파 가던 자리였다. 정원주의 아버지가 이 땅을 사들여 보리와 유채를 심고, 나중에는 단감나무를 길렀다. 1988년 자식들에게 보탬이 되려고 땅을 팔았지만, 새 주인이 돌보지 않아 밀림처럼 변했다. 고향을 떠나 있던 아들은 22년 만에 이 땅을 다시 사들였다. 그 뒤로 주말마다 광주에서 내려와 나무를 돌본 세월이 다시 10여 년이다. 처음에는 조경수를 길러 팔 생각이었지만 나무는 더디 자랐고 사겠다는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남은 나무가 자라 지금의 정원이 됐다. 2021년 문을 연 문가든은 전남 민간정원 제18호이자 해남 1호다. 정원에 나서면 방금 마신 차가 어디서 왔는지 보인다. 물가 산책로를 덮은 황칠나무다. 해남과 완도, 장흥처럼 따뜻한 남도에서 자라는 늘푸른나무로, 예부터 줄기에서 나오는 노란 진액을 귀한 칠 재료로 썼다. 정원주는 이 길에 자신의 호를 따 '유당 숲'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곳곳에는 가족의 이름을 딴 작은 정원들이 이어진다. 카페를 나서면 딸의 세례명을 딴 ‘리디아 광장’이 정원의 첫 관문으로 맞아준다. 저수지 오류제와 맞닿은 곳에는 아들을 위해 길쭉한 낙우송을 심은 ‘남자의 숲’이 자리한다. 여기에 아버지와 어머니, 손주를 위해 가꾼 공간까지 더해져 가족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정원 곳곳에 깃들어 있다. 산책로 끝 공터에는 물가에서 잘 자라고 단풍이 고운 낙우송을 심었다. 낙우송 숲 아래 통나무 의자를 늘어놓은 무대가 있고, 옆 나무 사이에는 해먹을 매달았다. 무대 앞으로 나서면 저수지 건너 흑석산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 650m의 바위산으로, 비가 오면 바위가 검게 젖고 눈이 오면 하얗게 변한다. 바람 없는 날에는 산이 물에 그대로 비친다. 담 밖 풍경을 정원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차경(借景)이라 한다. 자리가 좋으면 정원은 면적이 의미가 없다는 정원주의 말처럼 3,000평 남짓한 문가든은 실제보다 넓어 보인다. 산책로는 대부분 턱을 없애 휠체어와 유아차도 정원 끝까지 갈 수 있다. 곳곳에 쉼터를 둔 것도 찾는 이가 천천히 머물다 가길 바라서다. 잡초를 뽑고 길을 고치는 일은 지금도 주인이 직접 한다. 문가든 -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계곡면 오류골길 64 - 운영 시간: 10:00~18:00 ※ 매주 월요일 휴무 - 문의: 0507-1490-5759 다시 남쪽, 땅끝으로 내려가는 길에 달마산이 솟아 있다. 높이는 500m가 채 안 되지만, 능선을 따라 뾰족한 바위 봉우리가 줄지어 섰다. 산 이름은 달마대사가 이 산에 늘 머문다는 이야기에서 왔다. 미황사는 그 바위 능선 아래 있다. 1692년에 세운 사적비에 따르면 신라 때 경전과 불상을 가득 실은 배가 땅끝에 닿았고, 의조화상이 불교 신도 모임인 향도(香徒) 100여 명과 함께 배를 맞이해 지금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큰 피해를 입은 뒤 1601년 다시 일으켰고, 1754년 대웅보전을 고쳐 지었다.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는 '자비의 108계단'을 오른다. 누각 자하루에 들어서면 창틀이 대웅보전과 달마산 바위 봉우리를 한 폭에 담는다. 대웅보전은 미황사의 중심 법당이자 보물이다. 5년에 걸쳐 건물을 모두 해체해 수리한 뒤 2026년 6월 다시 문을 열었다. 기둥 아래 주춧돌을 들여다보면 게와 거북이 도드라진다. 산속 법당에 바다 생물이 들어온 까닭을 두고 바다와 가까운 절이기 때문이라는 풀이도, 바다에서 온 창건 이야기와 연관 짓는 해석도 있다. 대웅보전 뒤 계단을 오르면 응진당이다. 부처의 제자 가운데 깨달음을 얻은 16나한을 모신 곳으로, 이 건물도 보물이다. 응진당 앞에서 돌아서면 마당과 기와지붕 너머로 서쪽 바다가 열린다. 해가 지면 하늘과 바다가 함께 붉어진다. 미황사에는 담장도, 따로 가꾼 정원도 없다. 뒤에는 달마산 바위 능선이, 앞에는 서쪽 바다가 있다. 절이 앉은 자리가 곧 정원이다. 미황사(해남) - 주소: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 문의: 061-533-3521 | 글, 사진: 김덕식 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6년 1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글, 사진은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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