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한반도 최남단 해남 두륜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대흥사는 백제시대 창건된 유서 깊은 도량이다. 옛날에는 두륜산을 대둔산, 한듬산 등으로 불러 대둔사 또는 한듬절이라고도 했으나 근대에 대흥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흥사 창건에 관해서는 426년에 정관존자가 세웠다는 둥 514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둥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지만 밝혀진 것은 없다. 땅끝 마을의 지방 사찰이 지금의 대찰이 된 것은 서산대사의 유언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가 자신의 의발을 두륜산에 두라는 유언을 남긴 뒤 대흥사가 크게 일어났다고 한다. 대흥사는 2018년 6월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와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장춘숲길은 대흥사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약 4km에 이르는 산책로를 말한다. 구림리의 굽이굽이 아홉굽이 숲길이라 하여 구림구곡, 봄 길이 길고도 좋아 장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두륜산 골짜기 사이로 계곡이 흐르고 이 계곡을 타고 십리 숲길이 이어진다. 봄 길이 좋다고 해서 가을길이 아쉬운 것은 아니다. 해묵은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측백나무 등이 계절마다 뽐을 내어 장춘숲길의 사계는 쉴 틈이 없다. 오히려 가을의 장춘숲길은 오색창연하다. 특히 계곡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물소리길의 단풍은 봄 숲길이 부럽지 않다. 잘 닦인 도로 양쪽으로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는 큰 길도 좋고 편백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오솔길 산책로도 좋다. 나무에 둘러싸여 걷다보면 몸과 속세의 근심이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대흥사로 들어가려면 피안교를 건너야 한다. 피안교는 속세를 떠나 열반으로 들어가기 위한 다리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피안교는 일주문 밖에 있기도 하고 안에 있기도 한데 대흥사의 피안교는 일주문 밖에 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에 마음의 그늘을 흘려보내고 걸어가면 두륜산대흥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보인다. 여기서 장춘숲길이 끝나고 대흥사가 시작된다. 일주문 오른쪽으로 난 길은 대흥사 뒤쪽 천년숲길로 이어진다. 일주문에서 해탈문으로 가는 길에 부도전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부도전으로 서산대사와 초의선사의 부도탑이 모셔져 있다. 대흥사는 우리나라 사찰의 일반적인 가람배치와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사찰을 가로지르는 계곡을 중심으로 크게 남원과 북원으로 나뉘어 있으며 건물을 자유롭게 배치했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한 북원에는 법당과 승방이 있고, 천불전을 중심으로 한 남원에는 강원이 있다. 그리고 표충사와 부속 건물, 대광명전과 부속건물 등이 있는 별원이 있다. 대웅보전이 있는 북원은 해탈문에서 볼 때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북원으로 연결되는 오래된 돌다리와 그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계곡과 물소리를 잠시 감상한 후 다리를 건너 침계루를 지나면 대흥사의 중심 건물인 대웅보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보전의 삼존불인 석가여래삼불좌상은 보물 제1863호이다. 문화가 융성했던 조선 영조 때 만들어졌다고 해서 자비롭고 편안한 상호의 불상이라고 한다. 대웅보전의 기둥은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사용해서 반듯하지 않고 삐뚤빼뚤하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등이 있고 그 옆으로 보물인 삼층석탑이 있다.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모셨다고 알려졌다. 1967년에 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12cm 높이의 여래좌상 1구가 발견되었다. 대웅보전 현판의 화려하고 힘찬 글씨는 원교 이광사의 작품이다. 대흥사에는 추사 김정희, 원교 이광사 등 당대 명필들의 글씨가 많이 남아있다. 표충사는 정조대왕의 글씨이고 대웅보전과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가 썼으며 백설당 지붕 밑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가 썼다. 가허루는 전주에서 활약하던 호남의 명필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남원은 범종각과 법당이 있으며 그 중심인 천불전은 지붕과 건물의 맵시가 매우 경쾌하다. 천불전은 과거 현재 미래에 어느 곳에나 부처님이 계신다 하여 천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내부에는 경주에서 초의스님을 비롯한 여덟 분의 스님들이 직접 깎아 제작 운반해온 옥돌 불상 천 분이 모셔져 있다. 남원에는 관음전, 정진당, 부도전, 해탈문 등이 모여 있다. 북원과 남원을 연결하는 길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500년이 된 보호수로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합쳐진 연리근이다. 뿌리가 만나면 연리근, 줄기가 겹치면 연리목, 가지가 하나되면 연리지라고 부른다. 느티나무의 왼쪽은 차분한 ‘음’의 형태이며, 오른쪽은 활발한 ‘양’의 형태를 가진다. 두 몸이 하나가 되므로 부모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해 사랑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연리나무가 나타나면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로 여겼다. 별원은 표충사가 중심이 되는 구역과 대광명전이 중심이 되는 구역이 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도량이다. 서산대사의 구국 정신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별원에 자리한 표충사는 개인의 수행에 앞서 국가의 안위를 보다 우선시했던 한국 불교의 전통을 잘 보여준다.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사명당 유정, 뇌묵당 처영스님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유물전시관인 성보박물관에는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 친필선시, 신발, 선조가 내린 교지 등 유물과 정조가 내린 금병풍 등이 보관돼 있다. 대광명전 구역은 표충사 뒤편에 자리했는데 현재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다성으로 불리우는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일지암은 대웅보전에서 900m 거리의 두륜산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성보박물관 뒤편의 초의선사 동상을 보고 대광명전 앞을 지나면 산길로 접어드는데 일지암까지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초의선사가 40여 년을 머물며 차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동다송』과 『다신전』 등을 집필한 곳이다.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당대 석학들과 차를 매개로 교류를 했던 장소로 차의 성지로 알려졌다. 초의선사 입적 뒤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옛 자료를 토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일지암은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라고 하는데 간혹 모르고 암자까지 올라갔다가 허탕을 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일지암으로 가는 길목에 출입금지 안내판을 하나 설치해준다면 좋지 않을까. 대흥사 하면 또 하나 떠오른 것이 있는데 바로 백년 여관인 유선여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으로 신선이 노니는 여행자의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곳으로 누런 개 노랑이가 살았던 집이다. 원래 대흥사 경내에는 유선여관을 포함해 여러 여관들이 있었다. 한데 대흥사 관광위락 시설 단지를 재정비하면서 유선여관을 제외한 상점과 여관, 식당들이 주차방 밖으로 이동했다. 여관들은 철거됐지만 대흥사 여관터는 5.18 사적지 해남-5호로 지정되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대흥사 주변에는 숙박시설이 많았다. 21일 광주 시위대와 해남 주민들은 시위를 벌인 후 차량으로 대흥사 경내 광주여관, 안흥여관, 유선여관, 해남여관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했다. 이곳 주민들은 다음날 광주로 향하는 시위대에게 김밥과 음료수 등을 제공했다고 한다. 해남 대흥사 - 주소: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 문의: 종무소 061-534-5502~3 / 템플스테이 사무국 061-535-5775 - 홈페이지: www.daeheungsa.co.kr - 이용시간: 없음 / 성보박물관 수~일요일 09:00~16:30 - 휴무일: 없음 / 성보박물관 매주 월,화요일 휴관 - 이용요금: 일반 4,000원 / 의경·사병·중고생 2,000원 / 초등학생 1,500원 / 만 65세 이상 노인과 미취학 어린이 무료 - 주차비: 경차 2,000원 / 승용·승합차 3,000원 / 버스 5,000원 유선관 - 주소: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376 - 문의: 0507-1459-0715 - 홈페이지: http://www.yusungwan.kr - 예약상담: 평일 10:00-18:00 (점심시간 12:30-13:30) 주말 및 공휴일은 휴무 / 전화 상담이 불가능하므로 네이버 문의 또는 카카오채널에서 ‘유선관’을 친구추가 한 후 상담해야 한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장춘숲길은 옷을 갈아입으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긴 하지만 자연 속에서 계절이 바뀜을 느끼는 것도 좋다. 이번 가을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고즈넉한 산사로의 여행을 계획해보자. 백 년 동안 대흥사의 앞을 지킨 유선관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글: 김지영 여행작가 사진: 김지영 사진작가 ※위 정보는 2022년 9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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