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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생명의 공간이다. 그 속에는 나무, 새 등 눈에 보이는 생명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저마다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조화와 상생’이 함께하기에 인터넷이 펼쳐내는 사이버 세상의 가벼움 속에서도 우리의 정서를 맑게 해주는 숲은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정형화되지 않은 나무 특유의 거칢과 투박함에서 온갖 기교를 뛰어넘는 자연스러움의 신비로운 경지를 만난다. 강릉 초당에서 경포호로 이어지는 허난설헌 생가터의 소나무 숲은 별천지로 드는 관문인 양 신비롭기 그지없다. 소나무 아래서 허공을 향해 손을 뻗는다. 두근거리며 내민 손을 청아한 기운이 감싼다. 이내 코끝에 상쾌한 솔향이 와 닿는다. 마치 송림 속에 고여 있던 천고의 세월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만 같다. 봄날 여행지로 인기 높은 강릉의 허난설헌 생가터 솔숲의 모습이다. 강릉 초당마을의 조용한 숲속에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허난설헌(1563~1589)의 생가터가 있다. 경포대, 오죽헌, 선교장 등 강릉의 쟁쟁한 명소에 가려 제 빛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이곳은 강릉 사람들이 자랑하는 명소 중 명소다. 생가터만 놓고 본다면 ‘뭐 그리 대단한가’ 하는 의문이 생길 법도 하다. 그러나 허난설헌 생가터의 백미는 집 뒤편에 펼쳐진 단아하면서도 고혹적인 소나무 숲이다. 얼핏 봐도 수령 100년은 족히 됐음직한 소나무가 곧게 뻗어 있다. 실제 이 소나무들은 허난설헌이 태어났을 때부터 있었다고도 하고, 아버지인 초당 허엽이 난설헌이 태어났을 때 심은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수령이 500년은 된 셈이다. 지나온 세월에 비하면 다소 왜소한 느낌이 들지만 오랜 세월 바닷바람과 싸워가며 제 몸을 키워온 만큼 위풍당당하다. 키가 큰 소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은 한눈에 봐도 멋진 산책로다. 삼림욕 하듯 천천히 걸어도 좋고, 소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온종일 바람과 햇살을 쐬어도 좋을 것 같다. 오솔길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들어가면 누렇게 변한 솔잎이 깔려 발걸음이 가볍고, 소나무가 뿜어내는 상쾌한 향기 덕분에 마음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오솔길은 경포호로 이어지지만 다소 번잡한 그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는다. 그만큼 고요함이 흐르는 정적인 분위기가 매혹적이다. 간간이 이름 모를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멀리 바다에서 숲으로 건너온 바람에 약간의 소금기가 묻어난다. 바다의 냄새는 이것으로 족하다. 하루 종일 끊임없이 호흡하는 숲에 서면 소나무의 정기가 전해져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안정을 얻는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풍성한 고목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찾아오는 봄처럼, 소나무 숲에는 세월을 견뎌낸 강인한 향기가 있다. 이런 향기가 있어 허난설헌 생가터 소나무 숲은 여류시인의 기품처럼 청아한 향기를 풍긴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는 숲길에 서면 누구라도 지금의 모습이 지속되기를 바라게 된다. 한 해 한 해 이어지며 하늘도 담고 구름도 담아 나무와 바람이 지금 모습 그대로 후손에게도 전해지기를. 허난설헌의 생가터에는 아직도 옛 집이 남아 있다. 흔히 ‘허난설헌 생가’로 불리지만, 그녀가 태어난 집은 주인이 바뀐 뒤 허물어지고 뒷날 다른 문중에서 다시 지었기 때문에 ‘허난설헌 생가터’라고 해야 옳다. 지금의 한옥은 ‘이광로 고옥’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기와집이다. 집은 안채와 사랑채, 곳간이 ‘ㅁ’자로 배치돼 있다. 이 모두를 담장이 둘러싸고 있다. 맞배지붕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잘 가꿔진 정원과 사랑채가 나온다. 지붕의 처마가 날렵한 곡선을 이루며 양끝이 치켜 올라간 모양새가 멋스럽다. 사랑채는 난설헌차방으로 운영되며, 여행자들이 전통차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즈넉한 한옥에서 차 한 잔의 풍류를 배우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사랑채 옆에는 사랑마당과 구분하는 내외 담을 쌓아서 출입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그 뒤로 안채로 이어지는 중문을 두었다. 안채는 여자들의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왠지 비밀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조선시대에는 남녀의 구분이 엄격했다. 반가일수록 규율이 더 엄했는데, 이곳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안채에 별도의 출입문을 두어 여자들이 대문을 통하지 않고 조용하게 출입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옆 마당과 통하는 협문도 두었다. 허난설헌의 본명은 허초희다. 난설헌은 그녀의 호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이 남동생이고, 당대 뛰어난 문장가로 평가받는 허성, 허봉이 오빠들이다. 허초희는 어릴 때 오빠들과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으며,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짓는 등 신동이라 불렸다. 15세 무렵 안동 김씨 성립과 혼인했지만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남편이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갔으나, 노류장화의 풍류에 빠져 살았다. 설상가상으로 고부 갈등도 심해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았다. 사랑하는 남매를 잃은 뒤 뱃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도 겪었다. 또 친정집에는 옥사가 있었고, 동생 허균마저 귀양 가는 등 비극의 굴레가 그녀를 괴롭혔다. 책과 먹으로 마음을 달래며 생의 울부짖음에 항거하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바다에 스며들고 /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색에게 기대었구나 /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 달빛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는 자신의 시처럼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허균이 누이의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에는 일본에도 소개돼 호평을 받았다. 생가 앞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에 들르면 허난설헌이 지은 《난설헌집》과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목판본을 볼 수 있다. 허난설헌 생가터 솔숲을 지나면 경포호가 나온다. 경포호는 백사장이 막혀서 생긴 석호다. 가장자리를 따라 돌면 호수가 바라보는 언덕에 경포대가 자리했다. 누대에 오르면 호수의 정취를 몸으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경포대라는 이름은 ‘여름밤 밝은 달과 담소의 맑은 물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는 데서 유래했다. 거울 경(鏡) 자와 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물가 포(浦), 그리고 누각 또는 정자를 뜻하는 대(臺) 자가 만났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와 밝은 달빛, 그리고 주변의 뛰어난 자연 경관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달빛이 환하게 쏟아지는 밤, 경포대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뜨는 걸로 유명하다. 하늘, 호수, 술잔 그리고 마주한 이의 두 눈에…. 1.주변 음식점 토담순두부 : 초당동 / 초당두부 / 033-652-0336 농촌순두부 : 강문동 / 초당두부 / 033-653-0811 민속옹심이앤막국수 : 지변동 / 옹심이 / 033-644-5328 은파횟집 : 강문동 / 생선회 / 033-653-9565 2.숙소 호텔현대 경포대 : 강문동 / 033-651-2233 www.hyundaihotel.com 경포비치호텔 : 강문동 / 033-643-6699 www.gyungpobeach.com 포시즌비치관광호텔 : 안현동 / 033-655-9900 www.four-seasons.co.kr 선교장 : 운정동 / 033-646-3270 www.knsgj.net 글, 사진 오주환(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2년 12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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