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로 꽃잎 흩날리는 봄에는 어떤 여행이든 대개 꽃놀이가 주가 된다. 광양 매화를 시작으로 유채꽃과 산수유꽃, 전국으로 퍼지는 개나리와 진달래를 넘어 여의도 벚꽃까지 한반도를 훑고 올라가는 전국의 꽃지도가 상춘객의 달뜬 마음까지 한바탕 훑고 지나간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 보면 봄꽃일랑 언제 왔다 갔냐는 듯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리고, 봄을 즐길 사이도 없이 계절이 바뀌는 것도 예사다. 그렇더라도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봄꽃의 끄트머리를 붙잡을 수 있는 충북 영동으로 가자. 꽃놀이 장소로는 영 생경한 그곳엔 온 산을 뒤덮는 하얀 배꽃과 분홍 복사꽃이 아직 한창이다. 하얀 배꽃은 도시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봄의 전령이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온갖 봄꽃들이 만개하는 도시의 봄날에도 배꽃만은 찾을 수 없다. 배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배밭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꽃이기 때문이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꽃, 눈만 호강시켜주는 꽃이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한 단단함을 간직한 꽃이다. 그 안에는 열매라는 결실이 보이지 않게 도사리고 있다. 열매를 위한 희생의 꽃이다. 그래서 배꽃의 그 하얀 아름다움은 흔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그 고운 모습을 쉽게 드러내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우아하게 새초롬하다. 그래서일까. 배꽃은 처녀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하다. 순백의 처녀가 아이를 낳은 뒤엔 강인한 엄마가 되듯, 배나무는 하얀 꽃에서부터 그 하얗고 풍성한 배의 속살을 예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순수한 배꽃을 보러 충북 영동 매천리로 간다. 매천리 일대에서는 100여 년 전인 1890년대부터 배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 100년 넘은 배나무에서 난 배를 먹으면 백수한다는 속설도 전해 내려온다. 배밭이 많은 매천리는 영동역이나 버스터미널과도 가까워 산책 삼아 걸어다녀도 괜찮다. 매천리 일대의 배밭과 복숭아밭을 두루 둘러보고 싶다면 자가용으로 천천히 돌아보는 것도 좋다. 배나무는 과실수이다 보니 사실 배밭은 관광지가 아니라 농부들의 땀이 배어 있는 삶의 현장이다. 그래서 영동 매천리는 진해니 하동이니 광양같이 상춘객의 본격적인 꽃구경 장소가 아니라 배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땅을 잠시 엿보는 정도의 꽃구경이 가능하다. 앞으로 몇 년 뒤 이곳에 과일테마공원을 조성해 배꽃 구경과 관광을 원활하게 할 계획이지만 아직까지는 조심스러운 관광객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서 번잡하지 않게 꽃구경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 지역이 아니니 전형적인 시골 풍경과 함께 여유롭게 배꽃을 감상할 수 있다. 배밭이 워낙 많아 양해를 구하면 배꽃 터널을 걸어보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매천리 일대는 차를 몰고 어디를 가든 배밭이 펼쳐진다. 더불어 하얀 배꽃도 하얀 융단처럼 깔려 있다. 배나무가 가지를 뻗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배꽃 터널을 걷노라면 하얀 배꽃이 그 빛깔처럼 은은한 위로를 건넨다. 배꽃은 호들갑스럽게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으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튀지 않고, 가만가만하면서도 묻히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배꽃의 꽃말이 온화한 애정과 위로, 위안이란다. 위안이 필요한 이즈음, 사람이 아닌 꽃에게서 심심한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테다. 사실 배꽃은 밤에 봐야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밤중 달빛에 비친 하얀 배꽃의 신비로움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시조 한 수 읊어본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寒)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그 뜻을 대략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 “배꽃이 하얗게 피어난 가지에 밝은 달이 비치니 꽃은 더욱 희고, 우러러 은하수의 위치를 살피니 시간이 한밤중이라. 배꽃 가지에 서려 있는 봄뜻을 어찌 소쩍새 따위가 알랴마는, 내 이런 다정다감함도 병과 같아서 도저히 잠 못 드는 밤이로구나.” 영동 매천리 -주소 : 충북 영동군 영동읍 매천리 일대 -문의 : 영동역 관광안내소 043-745-7741 (09:00 ~ 18:00) 주변 음식점 -선희식당 : 어죽 / 영동군 양산면 금강로 756 / 043-745-9450 -안성식당 : 올갱이요리 / 영동군 황간면 영동황간로 1673 / 043-742-4203 -순대고을 : 순대 / 영동군 영동읍 영동시장1길 41 / 043-745-0058 숙소 -민주지산자연휴양림 : 영동군 용화면 휴양림길 60 / 043-740-3437 https://www.foresttrip.go.kr/indvz/main.do?hmpgId=ID02030107 -모텔32일 : 영동군 영동읍 계산로 43-2 / 043-745-1317 -송호국민관광지 야영장 : 영동군 양산면 송호로 125 / 043-740-3228 글, 사진 : 이송이(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0년 3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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