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영산강이 굽이쳐 흐르는 전라남도 나주는 발걸음을 옮기는 길목마다 수백 년의 세월이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고장입니다. 조선 시대 전라도의 행정 중심지로서 위용을 자랑하던 목사고을의 풍경부터, 근대사 최고의 전환점이 되었던 학생들의 외침까지 모두 한 동선에 품고 있죠. 가벼운 걸음으로 역사 속을 거닐며 마음의 여백을 채우는 나주의 알찬 산책 코스를 소개합니다. ★나주 역사 여행지★ - 구 나주역: 옛 철길 옆에 멈춰 선 근대 아날로그 기차역 -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뜨거웠던 청춘들의 용기를 마주하는 기억의 공간 - 나주 목사내아: 한옥의 정취가 살아 숨 쉬는 조선 시대 목사의 관사 - 나주향교: 웅장한 대성전과 노거수가 어우러진 정갈한 배움터 나주 시내 중심가를 걷다 보면 세월의 흐름을 비껴간 듯 단아한 하얀색 외벽의 작은 기차역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1929년 전국적인 학생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역사적 무대인 ‘구 나주역’입니다.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지만, 연청록색 창틀과 뾰족한 박공지붕은 옛 간이역의 정취를 고스란히 품고 있어요. 역사 안으로 들어가기 전 우측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솟구친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 가슴을 묵직하게 파고듭니다. 화강암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횃불의 역동적인 불꽃을 형상화한 이 탑은, 일제의 차별에 맞서 당당히 항거했던 청년 학생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습니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채 정의를 부르짖는 세 명의 청동 학생상의 기단부에는 ‘10 30’ 날짜가 뚜렷이 새겨져 있어요. 1929년 10월 30일, 바로 이곳 나주역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인 여학생들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모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목격한 조선인 학생들이 일본인 학생들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이 용기 있는 저항이 사흘 뒤 전국적인 대규모 항일 독립 만세 운동으로 번지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죠. 푸른 나무들을 배경으로 장엄하게 빛나는 조형물의 실루엣은, 본격적인 역사 산책에 앞서 민족의 자긍심이라는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거친 시멘트 바닥이 정겨운 실내로 들어서면 아날로그 감성이 진하게 풍깁니다. 세월이 묻어난 갈색 원목 벤치와 등을 맞대고 앉는 붉은 나무 의자는 아침마다 가방을 메고 광주로 통학하던 학생들이 왁자지껄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습니다. 매표구 상단에 붙은 커다란 ‘열차시각표’와 ‘여객운임표’는 통일호와 비둘기호가 전국 철길을 누비던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요. 특히 빛바랜 연청록색 매표 창구 유리창 중앙에 적힌 ‘친절히 모시겠읍니다’와 ‘가족처럼’이라는 옛 글귀는 보는 순간 뭉클한 향수를 자극합니다. 역무원이 두꺼운 마분지 기차표를 한 장씩 뚝뚝 끊어주던 창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푸근해지죠. 커다란 미닫이 격자창 너머로 스미는 초여름의 푸른 신록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싱그러운 자연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공간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구 나주역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죽림길 20 - 운영 시간 [하절기(3~10월)] 09:00~18:00 (입장 마감 17:30) [동절기(11~2월)] 09:00~17:00 (입장 마감 16:30) - 문의: 061-334-5393 구 나주역 바로 옆, 단정하게 가꾸어진 정원수 사이로 묵직한 대리석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대한민국 학생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입니다. 일제의 불의에 맞서 전국을 세차게 흔들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 나주 학생들의 결연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전문 역사 공간이죠. 외벽에 음각된 전통 격자 문양을 바라보며 내부로 들어서면, 백 년 전 이곳에 살던 우리 형제와 누이들의 뜨거웠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아치형 진입로를 따라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는 전시실로 들어서면 일제가 자행한 식민지 차별 교육의 실상과 마주해요. 빛바랜 근대 교과서와 지도 유물들은 당시 한국인 학생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왜곡된 지식을 배워야 했는지 생생하게 고발합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이 기념관의 하이라이트인 ‘통학 열차 디오라마 부스’가 등장합니다. 말에 올라탄 일본 경찰의 거대한 그래픽 아래, 구 나주역과 증기기관차를 정교하게 축소한 미니어처가 눈길을 사로잡죠. 실제 나무로 복원한 실물 크기의 객차 모형 안팎에는 당시 교복을 입은 학생 마네킹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습니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을 출발해 광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일본인 중학생들이 우리나라 여학생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하자, 이에 분노한 나주 출신 학생들이 온몸으로 맞섰던 거사의 순간이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쉽니다. 긴장감 넘치는 열차를 지나면 실물 크기로 복원한 옛 나주역 세트장과 포토존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손에 태극기를 쥐고 당당하게 서 있는 학생들의 곁에서 역사 속 주인공이 되어 기념사진을 남겨볼 수 있죠. 뒤이어 전국으로 동맹휴학을 확산시켰던 주역들의 이름과 땀방울이 묻어나는 옛 교복이 숙연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특히 사각 철망으로 둘러싸인 붉은 기둥 조형탑은 나라를 빼앗은 일제의 시험을 거부하며 백지를 냈던 ‘백지동맹’의 역사와 모진 고문 앞에서도 지조를 지킨 청춘들의 옥중 투쟁을 모자이크 사진으로 빼곡히 담아내어 깊은 울림을 전해요. 여정의 마무리는 세계인권선언 문구가 반기는 따뜻한 체험 라운지에서 맺어집니다. 역사 도서가 알차게 마련된 이곳은 아이들이 정의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편안한 놀이터가 되어줍니다. 옛날 교복을 직접 입어보고 고유한 역사 보드게임을 즐기며 가벼운 대화를 나눠보세요. 백 년 전 책가방을 던지고 거리로 나섰던 형 누나들의 당당한 발걸음이 아이의 마음속에 올바른 정의감과 깊은 자긍심의 씨앗으로 싹터 오릅니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죽림길 20 - 운영 시간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 매주 월요일, 공휴일 휴무 ※ 단, 삼일절, 현충일, 광복절 개관 - 문의: 061-334-5393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나와 목사고을의 옛 정취가 가만히 흐르는 읍성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고즈넉한 기와 돌담이 동선을 이끕니다. 골목 어귀에서 가장 먼저 여행자를 맞이하는 것은 수령 500년이 넘은 거대한 팽나무 보호수입니다. 오랜 세월 목사내아의 곁을 묵묵히 지켜온 이 고목은, 모진 풍파를 견뎌내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강인한 생명력 덕분에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기분 좋은 행운의 기운을 전하는 상징적인 나무로 사랑받고 있죠. 팽나무의 푸른 그늘을 지나면 조선 시대 나주 목사가 머물던 살림집인 ‘나주 목사내아’의 정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양옆의 지붕보다 높게 솟구친 웅장한 솟을대문 위에는 ‘금학헌’이라는 현판이 단정하게 걸려 있어요. 거문고를 타고 학이 깃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백성을 다스리던 지방관들이 늘 마음을 맑게 씻고 청렴한 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애민 정신의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티끌 하나 없이 정갈하게 다듬어진 황토색 마당 너머로 부드러운 처마 곡선을 그리는 ㄷ자형 안채가 단아한 자태를 드러내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원형이 많이 훼손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철저한 고증을 거쳐 조선 시대 전통 관사의 격조 높은 모습으로 온전히 복원했습니다. 바닥에 깔린 화강암 장대석 기단과 일정한 간격으로 곧게 뻗은 원목 기둥들은 한국 전통 건축이 가진 비례와 대칭의 미학을 군더더기 없이 증명해요. 마루를 지면에서 넉넉히 띄워 습기를 막고 바람의 길을 열어둔 선조들의 지혜로운 공학적 관점 덕분에, 마당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강바람이 불어옵니다. 화강암 댓돌 위에 신발을 벗어두고 윤기가 반짝이는 짙은 갈색 우물마루를 딛으며 안채 중심인 대청마루로 올라섭니다.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목재를 정교하게 짜 맞춘 전통 가구식 구조의 이 호쾌한 공간은, 일반 민가에서는 감히 보기 힘든 육중한 대들보를 얹어 지방관 처소다운 든든한 안정감을 선사하죠. 마루 좌측 제단 위에는 용 문양이 화려하게 채색된 수령의 대북(용고)이 위엄 있게 자리해 관아의 기백을 고스란히 전합니다. 방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툇마루 기둥마다 걸린 주련도 놓칠 수 없는 감상 포인트입니다. 국왕의 장수와 나라의 풍년을 염원하는 ‘성수천장(聖壽天長)’, ‘백곡풍등(百穀豐登)’ 등의 하얀 글씨들은, 이곳을 거쳐 간 조선 목사들의 깊은 책임감과 애민 정신을 시적인 운치로 전해줍니다. 발걸음을 안채 뒤편으로 돌리면 낮은 옛 기와 돌담 아래, 햇살을 받아 오동통한 몸체를 반짝이는 장독대가 다정하게 다가옵니다. 통풍과 채광이 빼어난 배산임수 명당답게 사계절 내내 온화한 바람이 머무는 이곳은 마음의 고향에 온 듯한 포근한 서정을 풍겨요. 나주 목사내아는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관람 시설을 넘어, 뜨끈한 온돌방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한옥 숙박 체험을 알차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오랜 팽나무 고목 그늘 아래 마련된 원목 벤치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으며 땀을 식히고, 밤에는 은은한 나무 향 가득한 대청마루에서 한옥의 정취를 가장 가까이 호흡할 수 있죠. 옛 목사들이 누리던 격조 높은 여유와 고즈넉한 명당의 생생한 기운을 가득 채워가는 최고의 쉼터입니다. 나주 목사내아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관길 13-8 - 운영 시간: 09:00~18:00 - 문의: 061-332-6565 목사내아에서 나와 나주천을 따라 서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조선 시대 인재들이 모여 학문을 닦던 호남 유학의 중심지 ‘나주향교’와 마주하게 됩니다. 향교의 첫 관문인 외삼문 우측으로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의 세월을 버텨낸 비석들이 여행자를 맞이해요. 과거 나주 지역의 교육 발전에 이바지했거나 공덕을 쌓은 목사들과 교관들의 송덕비로, 머릿돌과 받침돌의 양식 변화를 가만히 살피다 보면 조선 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져 온 석비 건축의 변천사가 흥미롭게 읽힙니다. 외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유생들이 모여 성리학을 공부하던 강당인 ‘명륜당’이 시원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화강암 기단 위에 웅장한 팔작지붕을 올린 명륜당은, 조선 중기에 대성전과 함께 다시 지어진 뒤 후기를 거치며 수리를 거듭해 지금의 독특한 양식을 완성했습니다. 전면을 격자 살문으로 마감하여 여름철 통풍과 개방감을 극대화한 조선 후기 향교 건축의 전형을 고스란히 보여주죠. 명륜당 안으로 들어서면 은은한 윤기가 도는 갈색 우물마루와 가공하지 않은 원목 고유의 나이테 결을 그대로 살린 붉은 기둥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인공적인 꾸밈을 배제한 채 자연의 결을 고스란히 품은 육중한 나무 기둥들을 가만히 눈에 담고 있노라면, 학문에 정진하던 옛 선비들의 대담한 기백이 살며시 전해지는 듯합니다. 명륜당 뒤편으로 가면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와 서재가 넓은 마당을 ㄷ자형으로 아늑하게 감싸 안고 있습니다. 동쪽 기숙사인 동재에는 양반 자제들이, 서쪽 기숙사인 서재에는 서얼이나 평민 출신의 우수한 인재들이 묵으며 함께 학문에 힘썼던 역사적 배경이 깃든 곳이죠. 마당을 지나 향교의 가장 깊숙한 성소로 발걸음을 옮기면, 나주향교의 최고 상징인 ‘대성전’이 웅장한 위용으로 정면을 압도합니다.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공간이죠.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처음 터를 잡은 나주향교에서 가장 빛나는 건축물은 단연 대성전입니다. 정유재란 때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이 건물은 그 역사적 가치와 건축학적 완성도가 한국 향교 건축 중 최고봉으로 손꼽힙니다. 임진왜란으로 한양의 성균관 대성전이 불타 없어지자, 훗날 조정에서 성균관을 다시 지을 때 바로 이곳 나주향교 대성전을 고증의 표준 모델로 삼았습니다. 건물의 구조와 배치를 그대로 본떠 한양에 재현했을 정도였죠. 오랜 세월의 무게를 든든하게 받치고 선 거대한 화강암 기단석과, 처마를 촘촘하게 받쳐 올린 다포 양식의 지붕은 조선 유교 건축의 뛰어난 공학적 완성도를 고스란히 증명합니다. 금성산 자락의 푸른 능선을 배경으로 날렵하게 치솟은 처마 곡선을 바라보며, 조선 유학의 자존심을 묵묵히 지켜온 나주향교의 당당한 기백을 가슴 깊이 담아갑니다. 나주향교 -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향교길 38 - 운영 시간: 09:00~18:00 - 문의: 061-334-2369 ※ 위 정보는 2026년 6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글, 사진은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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