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소문도 없이 찾아온 봄. 춘삼월을 코앞에 둔 3월 중순, 조금 이른 꽃구경에 나섰다. 주인공은 동백. 동백 여행치고는 조금 늦은 감도 있지만 봄맞이 나들이를 겸한 남도 여행을 준비했다. 부산 동백섬부터 그림같은 한려수도 물길을 잇는 통영 장사도와 여수 오동도까지. 이름만 들으면 떠오르는 '동백섬' 대표주자들 중 다도해 최남단에 자리한 거문도를 찾았다. 여수에서 100km넘게 떨어진 거문도는 여수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2시간을 넘게 달려야 닿는다. 제주도와 여수를 잇는 징검다리 같은 곳에 자리한 섬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봄이 닿는 최남단 제주섬에서 뭍으로 봄기운이 상륙하기 전 한 박자 쉬어가는 공간이랄까. 위치만 놓고 보자면 봄이 가장 먼저 닿는 공간중 하나인 셈이다. 붉은 동백을 핑계 삼아 거문도로 향한다. 보석처럼 흩뿌려진 다도해를 가르는 길, 뭍에서도 한참 떨어진 거문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파란만장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인 1845년, 식민지 싸움에 열을 올리던 열강들은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 거문도를 발견한다. 그들은 곧 거문도의 위치가 동북아 해군기지의 거점으로 적합 하다는 걸 눈치챈다. 영국군을 필두로 열강들의 관심이 쏟아졌고 결국,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겠다는 것을 핑계로 거문도를 찾은 영국군은 22개월 동안 이 섬을 무단 점거한다. 1885년이었다. 당시 거문도에 들어온 영국군 중 3명은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역만리 타향에 잠들어있다. 여객선 터미널이 자리한 고도에서 '영국군 무덤'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선 골목에서 노란 유채꽃을 이어가면 이들의 묘지와 닿는다. 매년 영국대사관에서 찾아온다는 설명이 붙어있지만 평화로운 다도해를 바라보며 양지바른 곳에 잠들어 있는 그들이 못내 안쓰럽다. 뭍에서 100km도 넘게 떨어진 먼 바다이건만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이다. 불탄봉 트레킹을 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일단 서도 남단의 목넘어로 넘어가 거문도 등대부터 살피고 365계단에 올라 불탄봉으로 향하기로 했다. 1905년 준공된 거문도 등대는 남해안 최초의 등대로 백년 넘게 남도의 뱃길을 지켜왔다. 거문도 서도 북쪽에 자리한 녹산 등대와 더불어 서도 남단을 밝힌다. 등대로 향하는 길은 온통 동백 덩굴이다. 이 길만 걸어도 어째서 이 섬이 '동백섬'이 됐는지 알 것 같다. 등대를 따라 올라가면 바다를 향해 시원하게 뚫린 관백정과 저 멀리 백도(白道)의 일부가 아른거린다. 당일 배로 나가려면 고도에서 택시를 이용해 목넘어까지 넘어오는 편이 여유있다. 목넘어에서 거문도 등대까지 돌아보려면 1시간 정도 걸어야하다. 다시 목넘어로 나오면 365계단을 따라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동백 말고도 풍란과 후박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한다. 그중 가장 흔하게 눈에 띄는 건 동백이다. 거문도 서도는 전체가 숲길이고 그 숲의 7할은 동백인 듯 싶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동백과 마주한다. 다른 꽃들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사라지는 대신 만개한 채, 절정의 모습 그대로 '똑' 떨어진 동백을 보고 있자니 귀양살이하던 선비들이 이 붉은 꽃을 왜 그리 멀리했는지 알 것도 같다. 365계단을 지나 보로봉~신선바위~기와집몰랑~불탄봉까지 걷기로 했다. 불탄봉에서는 일단 유림해수욕장으로 내려와 녹산등대는 택시로 이동해 낙조를 보기로 했다. 관절에 무리가 없다면 불탄봉에서 녹산등대까지 한번에 걸어도 좋다. 뱃길로 2시간 넘게 달려왔으니 불탄봉 트레킹의 백미로 꼽히는 기와집몰랑과 불탄봉, 그리고 녹산등대 낙조는 확인해야하지 않겠는가. 동백숲에 안기거나 푸른바다와 마주하며 잔잔하게 이어지던 길은 기와집몰랑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지금 서 있는 서도와 고도 그리고 동도까지 거문도 전역이 한눈에 펼쳐진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다도해와 사이좋게 마주한 거문도의 부드러운 몸매부터 속살까지 속속들이 바라볼 수 있다. '몰랑'은 산마루를 뜻하는 남도의 사투리다. 즉, '기와집몰랑'이란 기와집 형태의 산마루를 뜻한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마치 '기와집' 같은 산마루라고 그리 부른단다. 바다에서는 미처 올려보지 못했지만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풍광도 말할 수 없이 황홀하다. 기와집몰랑을 지나 일제강점기 당시 설치한 군사시설이 남아있는 불탄봉 정상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거문도 앞바다는 평화롭기만 하다. 불과 100여년 전 열강들이 군침을 흘리던 먹잇감이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문도를 품은 바다는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불탄봉 정상 전망대에서 한박자 쉬어간다. 역시 동백이 앞뒤로 반겨준다. 아름답고 차분한, 그래서 어쩐지 처연한 거문도 앞바다를 보고 있자니 다리에 힘에 풀려버린다. 녹산곶까지 걷는 대신 유림해수욕장으로 내려와 택시를 이용해 녹산등대 초입까지 가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억새들이 누웠다 일어섰다 바람에 몸을 흔들어대며 배웅한다. 유림해수욕장에서 녹산등대까지 택시로 이동하는 요금은 3만원. 녹산등대를 보고 나와 고도 여객선 터미널까지 돌아가는 것까지 합쳐진 비용이다. 녹산등대까지 가는 길은 완만하니 부담없이 걸을 만하다. 서도 남단의 거문도 등대 길이 거친길이라면 이 길은 한없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섬사람들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인어공주상(인어해양공원)을 지나 녹산등대로 향한다. 이곳의 낙조는 놓칠 수 없는 거문도 비경으로 꼽힌다. 해가 저물어 간다. 잔잔한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아래로 파고드는 태양, 그를 하루 종일 기다리던 녹산등대는 반갑다는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사라지는 태양을 보고만 있다. 남해 먼 바다를 오고가는 고깃배를 기다리며. 1.주변 음식점 늘푸른식당 :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 061-665-7509 산호횟집 :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 061-665-5802 2.숙소 시랜드모텔 :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 061-665-1126 고도민박 :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 061-665-7288 해밀턴모텔 :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 061-666-4242 패밀리모텔 :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 061-666-2333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이소원 취재기자( msommer@naver.com ) ※ 위 정보는 2019년 11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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