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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1980년대 이전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군복무를 한 사람들이 탄식조로 내뱉던 말이다. 인제든 원통이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로 꼽히던 곳인데, 오죽 교통이 불편했으면 그랬을까? 하지만 그 덕분에 천혜의 자연이 고스란히 살아남은 우리나라의 대표 청정 지역이기도 하다. 게다가 서울-속초 간 44번 국도가 고속도로처럼 뚫리고 주요 간선도로가 깔끔하게 정비되면서 요즘은 누구나 찾기 편한 휴가지로 각광받고 있다.인제는 고대부터 오사희, 영소, 희제, 돼지발굽을 뜻하는 ‘저족’현 등으로 불리다가 돼지보다는 기린이 영물이라고 해서 인제군(麟蹄郡)이 되었다. 내린천(內麟川)을 따라가다 보면 기린면(麒麟面)을 만나는데, 모두 기린 ‘린’ 자를 쓰고 있다. 인제군을 얘기할 때 내린천을 빼놓을 수 없다. 설악산, 점봉산, 방태산 등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모여서 내린천을 이루고, 북쪽에서 흘러온 인북천과 만나 소양강 큰 줄기가 시작된다. 내린천과 인북천이 만나는 지점이 합강이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강어귀 언덕에 인제8경 합강정이 서 있다. 1676년(숙종 2년)에 인제 지역에서 처음 세워진 누각이라고 하는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왔다. 합강정 주변에는 억울하게 죽었거나 외로운 귀신들에게 제사지냈던 강원도 중앙단과 인제 출신 박인환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박인환 시인은 31세로 요절하기 전까지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 서정적인 시를 남겼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중략)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박인환, <세월이 가면> 중에서 합강교를 건너서 내린천 물줄기를 닮은 길을 따라 차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구부러진 국도에서는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처럼 느린 듯 자유롭게, 가수 박인희가 부른 <세월이 가면>을 읊조리며 달리노라면 묵은 시름까지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내린천을 따라 달리는 길은 경관이 빼어나고 곳곳이 절경이라 지루할 틈이 없다. 노루목과 피아시계곡, 하추리계곡을 지나 하답교에 이르자 인제스피디움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도중에 내린천 래프팅과 스카이짚 트랙 등 각종 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모터스포츠의 메카로 입지를 세우기 시작한 인제스피디움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모터스포츠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상태다. 세계 7위권인 자동차 생산대국이면서도 자동차 성능 개발에 필수적인 모터스포츠가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는 건 꽤나 어색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자동차 산업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갖춘 최고급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터스포츠의 발전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모터스포츠 전용 경기장이 꼭 필요하다. 이미 영암 F1경기장, 태백 모터파크가 존재하지만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멀다는 점이 아쉬웠던 참이다. 그런 와중에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인제에 모터스포츠 전용 경기장이 완공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인제스피디움은 모터스포츠 전용 경기장으로 미국의 유명 서킷 디자이너인 앨런 윌슨(Alen Wilson)이 설계를 맡았다. 경주 트랙의 총연장이 3.9km에 이르고, 국제자동차연맹(FIA)의 기준에 맞춰 설계돼 국내외 경기를 치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강릉공항과 원주공항을 이용한다면 규모가 큰 국제 경기의 유치도 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경기장 주변 환경이 너무나 훌륭하다. 하늘이 내린 보물 내린천을 끼고 점봉산과 방태산의 청정함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입지 조건은 세계 유수의 경기장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민가가 드문 곳이어서 모터스포츠 경기장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 같다. 인제스피디움 정문에 들어서면 우측에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정면에 컨트롤타워와 피트빌딩 등 경기 관련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선수들과 관객들의 숙박시설인 호텔과 콘도 건물이 나타난다. 비탈길을 좀더 오르면 경기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 스탠드가 설치된 광장에 이른다. 여기가 경기장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뷰포인트다. 전망 스탠드에서 바라본 스피디움은 규모와 구성면에서 훌륭하고 짜임새가 있다. 방송중계실을 품고 있는 메인스탠드는 얼핏 봐도 수용인원이 상당해 보인다. 추측컨대 경기장 전체 스탠드를 합치면 3만여 명은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경기장 주변의 수려한 산세가 특히 마음에 든다. 피트빌딩 쪽에서 우렁찬 배기음이 들리더니 원색으로 치장한 경주용 차량들이 트랙에 나서는 것이 보인다. 보통 자동차경주는 2~3일에 걸쳐서 연습주행, 예선전, 결승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예선전은 정해진 시간 안에 랩타임 경쟁을 벌여서 내일 있을 결승전의 출발 순서를 정하게 된다. 선두에서 출발하면 그만큼 유리하기 때문에 예선전부터 경쟁이 치열하다. 관객들은 그 광경을 보며 환호하지 않을 수 없다. 인제스피디움을 비롯한 모터스포츠 경기장은 전문 선수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경기가 열리는 날을 제외한 평소에는 서킷 주행을 즐기는 아마추어 카레이서나 일반인 라이더들을 위한 스포츠 주행이 이루어진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으면 1년 동안 통용되는 서킷 라이선스를 발급해준다. 이 라이선스를 소지한 사람은 스포츠 주행이 있는 날에는 언제든지 신청해서 본인 소유 자동차나 바이크를 타고 경기장 트랙을 마음껏 달릴 수 있다. 경주용 차량들이 요란한 배기음을 토해내자 흥미롭게 바라보던 커플이 피가 끓어오르는지 달리는 차량을 향해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이렇게 일반인들이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상당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경기장을 찾는 관객들이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일반 도로에서는 모범적인 운전을 하게 된다고 하니 말이다. 예선 경기가 끝나고 패독의 경기 진행요원이 장비를 정리하는 모습까지 본 뒤에야 발길을 돌려 스피디움 벗어난다. 긴박했던 경기의 여운을 음미하며 느릿느릿 홍천으로 향한다. 내린천에 걸린 서리교가 눈에 들어온다. 다리 건너 산 위로 이어지는 실낱같은 오솔길이 왠지 흥미를 끈다. 경기장 트랙에서 이루어지는 극한의 스피드 경쟁 못지않게 미지의 샛길을 찾아드는 것도 짜릿한 기분을 안겨준다. 기린면 서리는 산속 깊숙한 오지를 개간해서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마을이다. 서리와 함께 안이덕도 그에 못지않은 오지 마을이다. 산허리를 타고 구불구불한 샛길을 한참 올라가서 만난 산꼭대기 일대가 온통 채소밭이다. 멀리 계방산이 마주보일 만치 높은 산 위 채소밭에서 농부들이 파종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조금 전까지 최첨단을 달리는 자동차 경주를 구경하다가 갑자기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선 기분이다. 팽팽한 활시위 같은 긴장감이 전해졌던 경기장과 달리, 이곳은 평온한 시골의 모습 그 자체다. 농부들이 바이크를 타고 나타난 내 모습이 이채롭다는 눈빛이다. “저리 넘어갈 거면 길이 험하니 조심하시우~” 농부들의 염려에 화답하며 산길을 벗어나 다시 내린천변 도로에 내려선다. 상남을 거쳐 홍천으로, 그리고 양평대로의 자동차 물결을 헤치고 도심의 일상으로 들어선다. 인제스피디움 주소 :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상하답로 130 문의 : 1644-3366 http://cc.speedium.co.kr/ 주변 음식점 영동식당 : 낙지전골, 찌개백반, 삼겹살 / 인제군 남면 신남로58번길 17 / 033-461-6118 두무대식당 : 송어회 / 강원 인제군 기린면 조침령로 1233 / 033-463-1020 숲속의빈터 방동막국수 : 막국수,수육 / 강원 인제군 기린면 조침령로 496 / 033-461-0419 숙소 강변에서 황토콘도 : 강원 인제군 인제읍 내린천로 5384 / 033-462-0629 http://www.hwangtoroom.com/ 들꽃나라펜션 :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태산길 200 / 033-463-2956 http://www.flowerland.tc.to/ 인제스피디움 : 강원 인제군 기린면 상하답로 130 / 1644-3366 http://www.speedium.co.kr/ 글, 사진 : 김종한(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9년 4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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