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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한옥마을을 본 적이 있다. 먼 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던 한옥의 기와지붕. 생경하여 차창 너머로 한참 바라보았다. 왜 저곳에 한옥이 있을까? 누가 머무는 곳이지? 지나치면서 그런 궁금증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오늘의 행선지인 충북 보은의 하얀민들레한옥마을이 스쳐 갔던 바로 그곳임을 알았을 때, 그곳으로 향하는 여정은 조금 더 흥미로워졌다. 언젠가 스친 사람을 다시 만날 때에 우리가 작은 설렘을 느끼듯이. 하얀민들레한옥마을은 여성 대표가 운영하고 있지만, 한옥의 구석구석 어디 하나 그의 손 가지 않은 곳이 없다. 본격적으로 한옥마을을 꾸리기 시작한 때부터 1년 반 정도는 객실에 손님을 받지 않고 정비에만 온전한 힘을 쏟았다. 풀을 베고 약을 치는 등의 험한 일도 마다치 않고 최선을 다해 공간을 가꾸었기에, 그래서 더더욱 자신감이 있다. 정인옥 대표는 지금에야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고 자신한다. 그 구석구석을 살피기 이전에, 가장 먼저 짐을 풀러 한옥으로 향해 보자. 이곳은 윗동과 아랫동으로 분리되는데, 한옥마을의 윗동은 총 네 곳의 숙박실과 식사 공간이 있고, 아랫동에는 숙박실 한 곳과 사랑채, 정 대표의 갤러리가 있다. 각 객실에는 숙박객 인원에 맞는 이불이 준비되어 있고, 요리도 해 먹을 수 있게끔 간단한 조리도구 및 접시도 있다. 방마다 입식 테이블과 좌식 상이 다르게 놓여 있어 일이나 작업을 하러 오기에도 아주 좋은데, 알고 보니 와이파이 설비와 단체 회의를 할 수 있는 회의실 또한 구비되어 있다고. 워케이션을 떠나오기에도 적절한 공간일 것 같다. 인원도 많게는 40명 정도까지 수용 가능하다고 하니, 답답한 사무실 공간에서 벗어나 환기의 기회를 가져볼 수 있을 테다. 잠깐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한 상 가득 맛깔스러운 요리가 차려진다. 하얀민들레한옥마을에서는 단체 손님의 경우 식사를 제공하는데, 마을의 이름답게 민들레를 활용한 요리들이 특징이다. 기본적으로는 말린 민들레를 넣어 지은 밥, 민들레로 만든 장아찌와 겉절이가 상에 오른다. 다른 반찬들은 노지에서 얻은 재료로 만드는데, 덕분에 매일 맛볼 수 있는 메뉴가 달라지는 것이 특징. 이날은 직접 뜯은 근대가 들어간 된장국, 작게 썰어 양념을 얹어낸 가지구이, 단감으로 만든 깍두기, 바삭하고 달콤한 호두 정과 등을 맛볼 수 있었는데, 젓가락을 가져갈 때마다 모두의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공을 들인 플레이팅과 더불어 맛도 조화로워 자꾸만 손이 가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밥상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차를 마실 시간이다. 이곳에서는 정 대표가 직접 덖어낸 민들레차를 맛볼 수 있다. 민들레차는 이곳에서 캔 하얀 민들레의 뿌리와 줄기를 사용해 만드는데, 이것을 우리가 아는 차의 형태로 만들어 내기까지는 무려 아홉 시간이 걸린다고. 필자는 그 수고로움에 놀랐지만, 정 대표는 ‘공정을 허투루 했다간 맛이 달라지니, 꼼수는 안 된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으니, 정 대표가 잔을 건넸다. 차 거름망과 찻잔은 도자기로 되어 있는데, 기물마다 하얀 민들레가 한 송이씩 피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뜨거운 물로 우려낸 차를 마셨다. 민들레의 쌉싸래한 향기와 따뜻한 온기가 코끝에 닿는 감각이 생경하며 좋았다.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이 따끈한 민들레차를 우려 마실 수 있다고 하니 꼭 경험해 보길 바란다. 좋은 차와 함께 풍경을 바라보며 숨을 돌렸다면 그다음으로는 체험의 시간이다. 이곳에서는 자수와 천연 염색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정 대표는 자수 작가로도 수년간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현직 작가에게 그가 고안한 작업 방식과 팁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체험 활동으로는 스카프, 식탁보, 러너 등 다양한 섬유 제품들을 만들어 볼 수 있는데, 방문객마다 준비되는 프로그램이 달라진다. 정해진 프로그램을 획일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방문객의 선호에 맞게끔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다고. 정 대표는 방문객들이 단지 체험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어느새 해가 떨어질 시간이다. 노을이 질 무렵이 되면 문을 열어 보자. 새빨간 태양이 우리 숨을 막히게 할 만큼 압도적으로 빛난다. 하얀민들레한옥마을은 부수봉을 끼고 있는데, 예로부터 이 부수봉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회인 8경 중 하나로 부수단하(富壽丹霞)라 부른다. 안개 낀 노을의 풍광이 옛 시인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옥 내부의 깊은 틈새까지 물들이는 햇빛의 찬란함이 눈부시다. 바람이 조금 쌀쌀해지더라도 바로 방으로 돌아가지는 말자. 해가 전부 지고 난 뒤 하늘이 캄캄해지면 별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오니까. 가장 편한 자세로 데크에 누워 보자. 이곳에서는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고, 어떤 소음도 방해하지 않는다. 다만 하늘 위에 수도 없이 많은 별들만이 반짝이고 있다. 그 자리에서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온몸이 가볍게 떨려온다. 그 별들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해도 괜찮다. 가만히 그것들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별밤은 바쁜 일상을 살며 하늘 올려다보는 것을 잊은 우리에게 더욱 근원적인 기쁨을 준다. “여기 온 뒤로 공간이 가진 치유의 힘을 믿게 됐어요.” 정 대표는 그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정 대표에게도 사람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로 인해 괴로운 시기를 보내며 고민하던 무렵 그는 하얀민들레한옥마을로 오게 되었다. 이곳에 자리를 잡고 5년간 머무른 지금, 정 대표는 힘을 주어 말한다. 이곳에서는 그저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치유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이 공간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갈무리한 정 대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전한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소란한 공간이기보다는, 짧은 시간이나마 방문한 사람들이 제대로 쉴 수 있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무엇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자세, 꼼수 부리지 않고 제대로 하겠다는 뚝심은 요즘 세상에 부쩍 귀해졌다. 그 때문에 머무는 동안 하얀민들레한옥마을의 구성원들이 가진 이 귀한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내심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정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잠시 스쳐 가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위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하는 자잘해 보이는 노력이 방문객들의 치유와 평안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진심은 잠시 들렀다 가는 사람에게도 닿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런 마음을 가늠하고 있자니 가을볕으로 몸이 데워지는 듯 가볍게 따뜻해졌다. 충만한 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고속도로를 탔다. 저 멀리 보이는 하얀민들레한옥마을을 바라보며, 더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에 못내 아쉬웠다. 쉼은 짧고 일상은 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짧은 쉼의 기억으로 지난한 일상을 견딜 수 있다. 어떤 날에는 도망칠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괴로운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문득 가던 길을 무르고 떠나고 싶어지는 어느 날, 하얀민들레한옥마을이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보은 하얀민들레한옥마을 - 장소 : 충북 보은군 회인면 부수2길 26-17 - 문의 : 043-542-2509 - 이용요금 : 주중 12만 원, 주말 15만 원. 객실마다 정원 상이. 식사 15인 이상, 1만 5천원~2만 원, 다도 1인 1만원, 염색 3만 원~10만 원, 제품에 따라 상이, 자수 : 4~5인 이상, 별도 문의 - 산모랭이풀내음펜션 : 충북 보은군 내북면 산척상궁로 421-100 / 043-542-5257 - 개버랜드 : 충북 보은군 산외면 내북산외로 346-80 개버랜드펜션 / 010-5459-1587 - 리리스테이 : 충북 보은군 회남면 거교길 86 / 010-5123-0123 - 산골가든 : 야생버섯찌개 / 충북 보은군 회인면 보청대로 3952 / 043-544-6688 - 복다실 : 콩국수 / 충북 보은군 회인면 회인로1길 6-5 / 043-543-4777 - 라이드앤브루 : 허니대추라떼 / 충북 보은군 회인면 회인로 59-1 1층 / 0507-1419-3101 (글) 김소연 여행작가 (사진) 임학현 사진작가 ※위 정보는 2023년 10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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