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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옷장 속 반소매티, 반바지 등 얇은 옷은 서랍으로 가고, 서랍 속에 접어둔 코트, 니트 등 두꺼운 옷은 옷장에 걸린다. 겨울 준비를 마쳤지만, 마음은 왠지 싱숭생숭하다. 걷다 보면 쌀쌀한 바람이 마음을 관통하는 듯하다.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따뜻하게 데워줄 필요가 있다. 가을이 왔음을 알릴 필요가 있다. 억새꽃의 하얀 솜이 그렇게 따뜻하다고 한다. 서울에서 가까운 명성산의 억새밭으로 가보자. 지도 상, 서울에서 1시 방향 약 70㎞ 거리에 솟음이 여럿 모였다. 등고선이 오밀조밀 겹쳐 북동쪽으로 산맥처럼 연결됐다. 이곳에 광주산맥의 한 솟음 ‘명성산’이 있다. 명성산은 경기도 포천시와 강원도 철원군의 경계에 솟았다. 정상에서 보일 풍경을 떠올려 본다. 북동쪽 조망이 보통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스친다. 오전 8시 서울에서 출발, 동부간선도로를 통해 의정부를 지나기까지 정체가 계속된다. 출근시간 의정부와 서울 사이의 43번 국도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 의정부시청을 지나자 조금씩 도로상황이 좋아진다. 가는 길 왼편으로 야트막한 산세가 이어지고 어느 순간 오른편으로 험준한 산세가 나타나면 명성산이 가까움이다. 산정호수를 중심으로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제일 높아 보이는 북쪽의 산이 명성산이다. 그 외에 서쪽의 망무봉, 남쪽의 관음산과 망봉산, 동쪽의 여우봉 등이 호수를 보호하기라도 하는 듯 두터운 외벽역할을 한다. 이 천혜의 요지에는 약 천 년 전의 전설이 내려오는데…, 울“명(鳴)”자, 소리“성(聲)”자가 모여 명성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 산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때는 바야흐로 후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찰나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왕이 왕건의 정변으로 피신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당시 궁예왕은 망국의 슬픔이 커, 온 산이 떠나가도록 통곡해 명성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산정호수와 명성산의 남서쪽 기슭은 국민관광지로 지정돼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한데 모였다. 조각공원, 호수 산책로가 운치 있게 조성됐으며 주차장, 매점, 숙박업소 등 편의시설도 부족함 없이 들어섰다. 이제 명성산으로 들어가자. 전문 산악인부터 어린아이까지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난이도별 코스구성이 가능하다. 자인사를 거쳐 오르는 코스와 등룡폭포를 지나 억새군락지로 가는 코스 중 하나를 정하자. 자인사보다 등룡폭포 경유코스가 완만한 편이다. 억새군락지로 향하는 등산객 대부분은 등룡폭포를 경유해 억새군락지로 간다. 평일임에도 수도권과 가까운 덕에 명성산을 찾은 등산객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등산로 초입부터 가을 정취가 흠뻑 풍긴다. 오른편으로 계곡물이 흐른다. 수량이 줄어 물소리의 시원함은 덜하지만 졸졸거리는 소리가 간지럽다. 본격적인 등산에 앞서 지압로가 약 100m에 걸쳐 만들어졌다. 해발 900m 정도의 산을 오르고 내려오면 발에 불나기 마련. 내려오는 길, 지압로에서 발바닥 좀 식혀주자. 오르면서 보이는 가까운 산세에는 절벽과 암벽이 곳곳에 나타난다. 가을빛으로 물든 수풀들과 암벽이 명성산만 드러낼 수 있는 모습으로 각인될 독특함을 남긴다. 사진 찍으며 천천히 오른 지 100분 정도 지나자 등룡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용이 승천했다는 폭포다. 바위에 앉아 사색에 잠긴 사람,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약 1.5㎞ 구간, 옆을 나란히 하던 계곡은 등룡폭포를 지나면서 보이지 않는다. 계곡길에서 억새군락으로 이어진 능선길로 넘어온 것이다. 완만한 경사가 점점 높아지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물 한 모금이 절실해질 무렵, 약수터가 나온다. 여기서 목을 축이고 숨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약 300m 정도 남은 거리는 좀 더 가파르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뒤돌아서니 멀리 가리산이 보인다. 그 옆에 있는 것이 국망봉이리라.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죽기 살기로 오르던 중, 예고 없이 나타난 풍경에 헐떡이는 숨이 순간 멎는다. 해가 뜬 왼쪽에서는 산등성이 전체가 눈이 부시다. 햇빛을 머금은 억새꽃이 사방에 천지로 깔렸다. 뒤따라오던 다른 등산객의 감탄사가 끊이질 않는다. “이게 갈대야? 억새야?” 흔히 갈대를 보고 억새라고 부르는 경우는 적지만, 억새를 갈대라고 잘못 부르는 경우는 적지 않다. 대부분의 억새는 산지에서 볼 수 있으며, 반대로 대부분의 갈대는 강, 호수 등 습지나 갯가에서 자란다. 억새밭의 바람에 일렁이는 군무를 지나며, 팔각정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능선길이 완만한 편으로 억새밭을 만끽하며 걷기 좋다. 힘들게 오른 기억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이곳 분위기에 빠져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이 서로 부딪치며 바스락 소리가 잔잔히 깔린다.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의 음악이랄까. 이제야 몸도 마음도 겨울준비가 탄탄해진 느낌이다. 마음에 이제 가을이 왔음을 제대로 알려줬으니 말이다. 팔각정 주위로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간식을 즐긴다. 땀이 흠뻑 나도록 등산하고 멋진 풍경이 보이는 곳에서 어떤 것이 맛없으랴. 명성산에 오기 전, 간식거리 준비는 필수 되겠다. 팔각정에서 북쪽으로 약 200m 오르면 삼각봉이다. 산골마을이 하나둘 보이고 철원과 포천이 동시에 보인다. 광주산맥의 허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철원의 험준한 산세가 북쪽방향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가운데 억새가 모여 바람의 지휘 따라 군무를 추는 환상이 있고, 계곡을 내려온 물이 모여 호수를 이뤘다. 자연은 참 오묘해 알다가도 모르겠고 우리 상식을 넘는 반전이 무궁무진하다. 봄에는 그 파릇함을 ‘느끼자’는 여행소개가 주를 이뤘다. 반면에 가을은, 그 속으로 ‘빠지자’는 여행소개가 더 적절할 것 같다. 명성산에 둥지를 튼 가을이 너무 깊어, 황홀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억새밭은 거닐었다기보다 헤엄친 듯하다. 명성산을 등지고 억새꽃처럼 희망도 하얗게 부풀어 오르길 기대해본다.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안정수 취재기자(ahn856@gmail.com) ※ 위 정보는 2016년 10월에 갱신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에 사용된 텍스트, 사진, 동영상 등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기사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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